SAE와 스피노자의 『에티카』 · 3번째 글
세 번째 글 ·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가
명제 서른여섯 개를 증명한 뒤, 그는 독자 쪽으로 돌아서서 그 손에 아직 무엇이 쥐어져 있는지 봅니다.
1부는 명제 36까지 나아가며 증명을 마칩니다. 그다음에는 부록이 붙습니다. 이 안에서는 더 이상 명제와 증명을 나누지 않습니다.
부록 첫머리에서 그는 앞서 증명한 내용을 한 단락으로 모읍니다.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하나뿐이고, 자기 본성의 필연성만으로 존재하고 활동한다. 만물의 자유로운 원인이며, 만물은 신 안에 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증명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편견을 없애려고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편견이 남아 있고, 바로 그것들이 내가 설명한 방식대로 사물의 연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심하게 방해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것들을 이성 앞에 불러 심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에 매여 있다
그에 따르면 이 편견들은 모두 한 가지 생각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것이 자기들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신 역시 만물을 어떤 목적으로 이끈다고 믿습니다. 신은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인간을 만든 까닭은 자신을 숭배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곧바로 이 생각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세 단계를 밟겠다고 합니다. 먼저 왜 대다수 사람이 이 편견에 안주하고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받아들이기 쉬운지 원인을 찾습니다. 그다음 어디가 틀렸는지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선과 악, 공과 죄, 칭찬과 비난, 질서와 혼란,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편견들이 어떻게 거기서 생겨나는지 이야기합니다.
왜 틀렸는지를 말하기 전에, 왜 사람이 믿는지부터 말합니다.
여기서 도출할 일은 아니다
원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는 한 가지를 밝힙니다. 인간 정신의 본성으로부터 이것들을 도출하는 것은 여기서 할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인정해야 할 한 가지 사실만을 토대로 삼겠다. 사람은 태어날 때 사물의 원인을 모르며, 누구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구하는 욕구가 있고, 자신에게 그 욕구가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설명은 그 토대에서 이어집니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지만, 무엇이 자기를 그렇게 원하게 하는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유롭다고 여깁니다. 무엇을 하든 자기에게 이롭기를 바라니, 모든 일에서 목적만 묻고 목적을 들으면 더 묻지 않습니다. 눈은 볼 수 있고, 이는 씹을 수 있고, 초목과 짐승은 먹을 수 있고, 해는 비추고, 바다는 물고기를 기릅니다. 그러면 자연을 다스리는 하나 또는 여럿의 존재가 이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준비했다고 단정합니다. 자연은 아무것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 곧 인간에게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증명하려다가, 도리어 자연과 신도 인간처럼 미쳤다는 것을 증명한 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멈추어 보라고 권합니다. 일이 결국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자연에 편리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불편한 일 또한 적지 않습니다. 폭풍, 지진, 질병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인간이 신들의 심기를 거슬러 신들이 화를 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수학을 언급합니다. 수학이 진리의 다른 기준을 보여 주지 않았더라면, 이 편견 때문에 진리가 인류에게 영원히 가려졌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학은 목적을 다루지 않고 도형의 본질과 성질만 다룹니다.
이 편견이 어디서 틀렸는지에 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앞의 명제를 가리키고 설명을 한 단락 덧붙입니다.
세차를 하면
자기가 세차한 다음 날에는 꼭 비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달 치 날씨 기록을 보여 주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다음에 세차를 마치면 다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당신은 기록을 더 넘기지 않고 질문을 바꿉니다. 무엇 때문에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나요.
맺으며
부록은 이 두 문장으로 끝납니다. 이것들이 내가 여기서 지적하려 한 편견들이다. 이런 종류가 더 남아 있더라도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
명제 서른여섯 개를 증명한 뒤, 그는 읽는 사람 쪽으로 돌아서서 그 손에 아직 무엇이 쥐어져 있는지 봅니다.
SAE와 나란히 읽기 · 선택해서 읽는 곁글
SAE 『제1비판』에는 한 번 꿰뚫어 보았다고 해서 환상을 낳는 조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 부록에서 일상의 경험이 날마다 그 편견을 반박하는데도 사람들이 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타고난 무지를 그대로 두는 편이 집 전체를 허물고 다시 짓기보다 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곁글이지 논증이 아닙니다.
SAE 『제1비판』 산문 읽기본문·판본·출처
이 한국어판은 Non Dubito에 공개된 중국어 산문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에티카』 전체나 전문 논문을 옮긴 번역은 아닙니다. 기존 영어판도 영어권 독자를 위해 따로 썼으며, 중국어 간체판과 번체판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바탕 원고가 인용한 공개 라틴어 본문에는 사용한 인쇄본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웹판에서는 The Latin Library의 라틴어 전사본으로 대조하고, 각 편의 판본 주와 링크에 해당 위치 및 확인 범위를 적었습니다. 이 전사본을 새로 편집한 비평판이라고 하거나, 원고가 처음 이용한 미상의 웹페이지와 같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SAE와 나란히 읽는 곁글은 선택해서 읽는 비교이며, 증명은 아닙니다.
본문과 판본에 관한 주
1부 부록에 해당합니다. 편견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스피노자의 설명과, 부록 앞의 형식적 증명을 구분합니다.
세차 장면은 이 연작의 비유입니다. 스피노자 원저의 사례가 아니며, 모든 미신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장면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