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SAE와 『국가』
SAE · Plato's Republic · 한국어 재구성판
02 / 13

태양과 볼 수 없는 것

Han Qin (秦汉)

끝내 갚지 않은 원금

글라우콘이 통치자가 배워야 할 가장 큰 대상을 묻자 소크라테스는 선의 이데아를 말한다. 그러나 선 자체를 정의하라는 요구에는 물러서서 그 자식인 태양을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리스어에는 빚의 이자라는 말놀이도 겹친다. 글라우콘은 오늘 이자를 받고 원금은 나중에 받겠다고 하지만 원금은 오지 않는다.

눈과 색만으로는 볼 수 없고 빛이 필요하다. 태양은 사물을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생겨나고 자라게 한다. 선도 아는 자에게 앎의 힘을, 대상에게 인식 가능성을 주며 존재와 본질까지 준다. 선은 존재 너머에 놓인다.

근원과 작용

SAE도 보통 내용으로 채울 수 없는 바닥에 닿는다. 그것은 구분하는 행위로서의 ‘아님’, 곧 부정이다. 부정을 부정하려 해도 이미 구분을 실행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생각하고 원해야 하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플라톤의 선은 존재와 방향을 공급하는 근원이다. SAE의 부정은 모든 규정이 통과하지만 아무것도 낳거나 끌어당기지 않는 작용이다. 칼이 많은 요리에 필요해도 음식이 칼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떠받치지 않는 토대인가

플라톤은 내용도 방향도 주지 않는 것을 왜 토대라고 부르느냐고 물을 수 있다. 부정할 수 없음은 지위를 보여 주지만 생산력을 증명하지 않는다. SAE는 어쩌면 최종 생산자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모든 구분의 불가피한 형식을 설명한다.

반대로 플라톤은 가장 높은 자리를 ‘선’이라 불렀다. 설명되기도 전에 삶을 움직이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주저하고, 압박을 받아 말한 뒤 너무 멀리 끌려왔다고 불평한 것은 그 힘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후대가 자신 있게 채운 자리에서 그가 더듬었다는 사실이 선에 대한 더 정확한 진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