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 108 · 삶 뒤에 남는 작업
반 고흐, 색
한 봉투 안에 오십 프랑과 형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반 고흐의 색은 세상을 다시 보게 한다. 사랑받는 일은 그림으로 갚아야 할 빚이 아니며, 질병도 위대함을 위해 치러야 할 값이 아니다.
1. 그 별이 빛나는 하늘
1889년 6월. 생레미. 생폴드모졸 요양원.
쇠창살이 달린 창문이 있다. 반 고흐는 그 너머로 밀밭과 먼 지형을 본다. 동트기 전에는 유난히 커 보이는 샛별도 본다. 그 풍경을 테오에게 편지로 전한다. 요양원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다른 방도 하나 내주었다.
그 뒤에 〈별이 빛나는 밤〉이 나온다.
창밖을 한 번 올려다보고 그 순간을 고스란히 천 위로 옮긴 것은 아니다. 그는 낮에 여러 차례에 걸쳐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마을은 그 창문에서 보이는 마을이 아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앞으로 당겨졌고, 하늘도 다시 배치되었다. 눈앞의 풍경과 기억과 상상이 한 장의 캔버스에서 만난다.
별들이 도는 듯하다. 파란 흐름이 다른 파란 흐름 속으로 말려든다. 달 둘레에는 빛의 고리가 퍼진다. 사이프러스는 스스로를 태워 없애지 않는 불처럼 솟아오른다. 지붕들은 낮은 곳에 그대로 있는데, 하늘은 그 위를 거대한 강처럼 흐른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난 뒤의 밤하늘은 이런 모습이다.
그 마음은 손이 하는 일에서 모습을 얻는다. 파랑과 노랑을 어떻게 붙여 놓을지, 붓질을 어디서 돌릴지, 사이프러스가 어떻게 화면을 받치게 할지. 감정은 저절로 캔버스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
해바라기와 밀밭,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도 이렇게 다시 우리 앞에 올 수 있다. 그가 누구보다 많은 것을 봐서가 아니다. ‘꽃이네’, ‘의자네’ 하는 데서 보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바라보았다. 남은 것은 색이다.
2. 그 사람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쥔더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다.
미술상에서 일했고, 영국의 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벨기에 보리나주 탄광 지대로 가서 전도했다. 갱도가 있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찾아가야 할 환자들이 있었다. 1879년에는 여섯 달의 수습 기간을 둔 전도사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오래 이어지는 직업이 되지는 못했다.
광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아픈 사람을 찾아다녔다. 전도를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일로 만들려 했다. 이제 그 직업의 길이 끊겼다. 마음을 쏟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는데, 자신은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880년, 스물일곱 살에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때 처음 연필을 잡은 것은 아니다. 이미 배우고 보고 그려 왔다. 이제 흩어져 있던 시도를 지속적인 작업으로 만들려 한다.
판화를 모사하고, 소묘 교재를 읽고, 원근법을 연습한다. 안톤 마우베에게 배웠다. 나중에는 안트베르펜의 미술학교와 파리의 코르몽 화실에서도 수업을 들었다. 스스로 배운 것이 많지만, 스승도 동료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색채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얻은 것이 아니다.
1880년부터 1890년까지, 십 년. 회화 작품은 약 구백 점, 종이에 작업한 작품은 천백 점이 넘는다. 큰 숫자다. 그 밑에는 같은 얼굴을 거듭 그린 시간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선을 다시 그어 본 시간이 있다. 종이와 캔버스와 물감에는 돈이 든다는 사실도 있다.
1888년에 그린 〈붉은 포도밭〉은 1890년 2월 브뤼셀 전시회에서 안나 보흐에게 사백 프랑에 팔렸다. 그렇다고 생전에 예술로 얻은 수입이 그것 하나뿐은 아니다. 1882년에는 헤이그의 시가지를 그리는 소묘 주문을 받았고, 1888년 편지에는 초상화 한 점으로 이십 프랑을 받았다는 대목이 있다. 생활의 어려움은 사실이다. ‘평생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는 말은 다른 기록들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테오는 파리에서 미술상으로 일하며 여러 해 동안 돈을 보냈다. 빈센트는 그림과 집세, 몸 상태, 다음에 주문할 물감을 이야기했다. 이 글에서 참고한 서신판에 실린 현존 편지 903통 가운데, 빈센트가 테오 한 사람에게 보낸 것은 651통이다.
편지들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동시에 종이를 넘기고 장부를 계산하는 소리도 들려준다. 훗날 전설이 되는 삶이라고 해서 계산서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3. 혼돈의 아름다움
앞선 글에서 볼츠만은 마룻장을 들어 올렸다. 그 밑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분자가 움직인다. 위에 표시된 온도와 압력은 여전히 믿을 만하다. 다만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씩 전부 말해 주지는 않는다.
고흐에게 오면 익숙하게 딛고 있던 바닥이 다시 조금 흔들린다.
우리는 별이 뜬 하늘임을 알아보면 눈앞의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붓이 파랑 속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것들이 다시 낯설어진다. 볼츠만은 측정값 아래의 분자를 따라갔고, 고흐는 우리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계속 바라보았다. 한쪽에는 통계와 실험이, 다른 쪽에는 붓질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길이 다 알았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더 나아간다.
그래도 서로를 비출 수는 있다.
이 연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루를 깐다. 알아보고,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 놓는다. 뉴턴은 방정식을 쓴다. 우리는 덕분에 많은 것을 안다. 하지만 사이프러스라는 것을 아는 일이 이 나무를 다 보았다는 뜻은 아니다. 저 빛이 별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 밤을 다 말한 것은 아니다.
잠시 이름을 붙이기 전에 바라보자. 먼저 멈춘다. 마을 옆에서 솟는 어두운 덩어리를 본다. 왜 저 파랑은 배경으로 조용히 물러나지 않는지 본다.
그림 자체에도 질서는 있다. 수직으로 선 사이프러스, 낮게 놓인 마을, 돌아가는 하늘이 서로를 붙든다. 색이 거세게 흐를수록 화가의 결정은 더 잘 보인다. 모든 가능성을 한꺼번에 쏟아 놓은 것이 아니다. 많은 가능성 가운데 이번에는 이렇게 놓기로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반듯한 윤곽을 찾은 다음에야 안심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데 익숙한지도 모른다. 이 하늘은 눈이 미처 정리를 끝내기 전에 밀려온다. 마을은 여전히 거기 있고 사이프러스도 있다. 알아보는 것들 사이로 전에는 보이지 않던 움직임이 흐른다.
때로는 눈이 아직 충분히 빠른 이름을 찾지 못했는데 그림이 먼저 우리를 멈춰 세운다. 바로 그 일에 마음이 움직인다.
볼츠만이 반 고흐 대신 이 아름다움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반 고흐도 볼츠만 대신 우주의 마지막 순간을 그려 주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너무 일찍 나온 ‘이미 알아’라는 말을 붙들 뿐이다.
4. 다 말하지 못한 것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어제는 지나쳤던 꽃병 앞에서 오늘은 발이 멈춘다. 꽃에 아름다움이라는 꽃잎이 한 장 더 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눈을 감고 이 꽃이 나를 어떻게 감동시킬지 마음대로 정한 것도 아니다.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앞에 선다. 꽃의 모양과 색, 빛이 있다. 오늘의 기분, 전에 보았던 꽃의 기억, 피고 시드는 일에 대한 느낌도 함께 온다. 하지만 항목마다 숫자를 매겨 더한다고 아름다움이라는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는 이 만남을 다 말할 수 없다. 이름도 알았고 설명도 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보고 싶다. 말로 다 담지 못한 그 부분을 여기서는 여항이라 부른다. 꽃병 옆에 따로 놓인 물건이 아니라, 이 만남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반 고흐는 꽃을 그린다고 꽃을 버리지 않는다. 거듭 보고, 그림 안에서 꽃들이 맺는 관계를 바꾼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해바라기가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썼다. 식물도감에 반드시 실려야 할 성질은 아니다. 그래도 색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러니 그림에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구체적인 일일 수 있다. 이 꽃, 이 하늘, 아무도 앉지 않은 이 의자. 온 우주를 향한 선의의 선언이 아니라, 한 사물 앞에서 시간을 쓰려는 마음이다.
하지만 빨강과 초록은 사람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밤의 카페〉에서 그는 그 색으로 끔찍한 인간의 정념을 표현하려 했다. 방은 다정하지 않다. 등불도 행복만 비추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언제나 세계를 친근하게 그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림 속 관심이 화가의 모든 말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탕기 부인에 대한 악의적인 말들도 있다. 해바라기를 지키려고 그 문장들이 없었던 척할 필요는 없다. 색채는 인격의 면책 증명서가 아니다.
그래서 보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노란 붓질 하나에 마음이 움직이기 위해 그의 삶 전체를 숭배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움직였다는 이유로 그의 고통과 성격, 모든 판단을 옳다고 할 필요도 없다.
나중에 작품이 더 널리 사랑받았다고 해서 인류가 마침내 사랑을 아는지 묻는 시험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전시와 출판, 수집과 가격이 작품이 사람에게 오는 길에 관여했다. 그러나 가격은 그 사람 대신 마지막까지 보아 주지 못한다.
그림은 대신 보지 않는다. 다시 보고 싶게 한다.
5. 빈센트와 테오
테오는 형보다 네 살 어리다. 이야기 속에서 끝없이 돈을 보낼 수 있는 손이 아니다.
자기 일과 자기 몸이 있고, 나중에는 아내 요와 아이도 있다. 고용주와 조건을 상의해야 하고 수입을 걱정해야 한다. 지치기도 한다. 빈센트는 그것을 안다. 동생의 건강을 묻고, 그 집에 짐을 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가까운 사이에도 오해가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늘 똑같은 찬사가 아니다.
1890년 7월 22일, 테오는 형에게 편지를 쓴다. 집안일을 설명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요가 피로하다는 것도 전한다. 빈센트가 편지 쓰기조차 어려워하는 듯해 걱정한다. 몸이 좋지 않으면 가셰 의사를 찾아가고, 빨리 소식을 알려 달라고 한다. 오십 프랑을 동봉한다.
돈과 그 문장들이 같은 봉투에 있다. 돈만 투자로 읽고 나머지는 생산량에 대한 기대로 읽을 수 없다.
빈센트는 사랑받았다. 그러나 사랑받았다는 사실이 그림으로 갚아야 할 빚이 되지는 않는다. 테오가 돕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사람이지, 며칠마다 새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 기계가 아니다.
진지하게 작업하는 일은 빈센트가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방식일 수 있다. 그래도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이 동생을 배신하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를 염려하는 말이 ‘계속해야 해’만 남게 되면, 뒤에서 받치던 손이 등을 짓누르는 손으로 바뀔 수 있다.
7월 23일 자, 실제로 발송된 편지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편지에서 빈센트는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가들만큼 잘해 보려고 한다. 도착했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도비니의 정원을 이야기하며 그림을 설명하고, 같은 여관의 화가 히르시흐를 위해 물감 목록을 전달한다. 요에게 안부를 전한다.
그림, 돈, 동생, 제수, 다른 화가의 물감. 삶은 아직 그것들을 ‘위대한 일’과 ‘편지에 쓸 가치도 없는 일’로 나누지 않았다.
비슷한 날짜의 보내지 않은 초안은 훨씬 무거운 어조다. 두 문서를 붙여 결말이 정해진 유서 한 통으로 만들 수는 없다. 사람은 고쳐 쓰면서 망설일 수 있다. 같은 날에도 서로 다른 말을 품을 수 있다.
테오는 오베르로 달려와 형이 세상을 떠날 때 침상 곁을 지켰다. 1891년 1월 25일에는 테오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두 죽음 사이에는 약 여섯 달이 있었다.
작품이 널리 이해받는 날까지 두 형제 모두 살아 있지 못했다. 편지는 남았다. 한때 그 편지를 받아 읽던 사람들은 남지 않았다.
6. 반 고흐와 볼츠만
방정식이 새겨진 돌. 아직도 흐르는 것 같은 캔버스.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차가움과 따뜻함이 손에 닿을 듯하다. 묘비에 새긴 글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캔버스의 파랑은 아직도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분자들의 긴 움직임을 읽다가 저 하늘을 올려다본다. 사람의 한 생은 놀랄 만큼 짧다. 꽃은 시들고 방은 비고 붓을 쥔 손도 멎는다. 그런데 그의 색은 지나가는 이 순간에 우리를 붙잡아 둔다. 보라고, 여기 아직 꽃 한 송이가 있다고.
방정식에서 캔버스로 옮겨 오면, 우리를 멀리 넘어서는 물음에서 한 사람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자리로 돌아온다.
둘 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도 손을 내민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볼츠만은 생전에 국제적인 학술적 영예를 얻었고 동료들의 생일 기념 논문집도 받았다. 반 고흐에게도 전시와 구매자와 평론이 있었다. 그렇다고 논쟁과 질병과 돈의 어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내밀어진 손들은 분명 그들에게 닿았다. 덕분에 견딜 만해진 날도 있었고 여전히 힘든 날도 있었다.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그들 대신 말할 수는 없다.
작업은 사람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렇다고 거꾸로 그 삶을 보상할 수는 없다. 옳은 관계식이 죽음을 옳게 만들지 않는다. 숨이 멎을 만큼 놀라운 그림도 질병을 마땅히 치러야 했던 대가로 만들지 않는다.
반 고흐는 실제로 수많은 짧은 순간을 남겼다. 꽃은 고개를 떨굴 것이고, 빛은 옮겨 갈 것이다. 의자가 기다리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고 그 순간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이 꽃을 바라볼 이유를 얻기 위해 먼저 우주의 결말을 써 놓을 필요는 없다.
돌은 물감이 되지 않았다. 물감도 방정식이 되지 않았다. 나란히 놓을 수는 있다. 그것들을 남긴 사람에게는 서로 환산할 수 없는 각자의 일생이 있었다.
7. 아를
1888년 2월,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 도착한다.
그의 눈은 이미 일본 판화에서 배웠다. 남부를 보며 일본을 떠올리고, 더 과감하게 쓸 수 있을 색을 생각한다. 판화와 상상으로 자란 동경이지, 일본에 다녀온 사람이 쓴 견문록이 아니다.
노란 집을 빌리고 다른 화가들도 오기를 바란다. 침실, 카페, 우편배달부 룰랭, 해바라기, 강 위의 밤이 하나씩 작업 속으로 들어간다. 아를에서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1888년 작품이다. 나중에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과는 다른 그림이다.
노란 집의 희망에도 생활이 있다. ‘예술가 공동체’라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침대와 의자가 있어야 하고, 청구서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 그림을 마친 뒤 이야기할 사람도 필요하다.
고갱이 10월에 온다. 함께 살고 함께 그린다. 어떻게 그릴지, 어떻게 살지를 두고 다투기도 한다. ‘한 사람은 오만하고 한 사람은 예민했다’는 말이 그들의 동거 전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자기 꿈으로 다른 사람을 초대한다고 그 꿈이 상대의 꿈도 된다는 보장은 없다.
12월 23일, 반 고흐는 심각한 위기 속에서 왼쪽 귀를 다치고 치료받는다. 고갱은 아를을 떠난다. 함께하던 생활은 끝난다.
1889년 5월 8일, 반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들어간다. 1890년 5월 16일에 나온다. 그 일 년에 약 백오십 점의 회화를 그렸다. 작업할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1889년 9월 초 편지에는 전날 조금씩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창밖의 그루터기 밭을 갈고 있다. 보랏빛 흙 옆에 노란 띠가 놓이고 뒤에는 언덕이 있다. 그는 작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두려움과 잘 풀리지 않는 일, 필요한 인내에 관해서도 쓴다.
더 고통스러울수록 더 많이 그렸다는 증거가 아니다. 적어도 어떤 때에는 고통이 손을 멈추게 했다.
일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이성이 반쯤 침몰했다는 유명한 말은 1890년 7월 23일 무렵의 보내지 않은 초안에 있다. 괴로운 사람이 자기 상태를 말한 것이지, 이성의 절반을 구백 점의 그림과 바꾼 영수증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계산대 반대편에 서서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느냐고 물을 자리에 있지 않다.
그리는 일은 중요하다. 먹고 쉬고 돌봄을 받는 일도 중요하다. 다시 붓을 들 기회를 주는 것은 다음 상처가 아닐 수 있다. 오늘 밤 잘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내일 누군가 찾아오는 일일 수 있다.
8.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
반 고흐는 훗날 작품이 얻은 훨씬 넓은 이해를 생전에 누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1890년 1월, 알베르 오리에가 그의 그림에 관한 글을 발표한다. 반 고흐는 2월에 답한다. 고마워하면서도 지나치다고 여긴 칭찬 앞에서 불편한 마음을 전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몽티셀리와 고갱 쪽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마침내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쓰는데, 빛이 모두 자기 이름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앙데팡당전에 그림이 나갔다. 브뤼셀의 레 뱅, 곧 Les XX에서 출품을 요청했다. 안나 보흐가 〈붉은 포도밭〉을 샀다. 시냐크는 아를로 그를 찾아갔다. 텅 빈 세상에 테오 한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족이 알아봐 주는 일도 중요하다. 화가 동료가 병원에 찾아오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마법 같은 힘은 없다. 누군가에게 보인 사람도 병을 앓고, 살기 어려워하고, 어떤 날에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다.
샬럿의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 앞에서 자신은 감정 없는 기계가 아니며 가난하다고 마음이 덜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을 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제인의 대등함은 그가 동의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반 고흐 역시 한 사람으로서 무게를 갖기 위해 화랑이나 비평가나 후대의 허락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림에는 관객이 필요할 수 있다. 사람의 존재는 전시 심사를 통과한 뒤 발급받는 자격증이 아니다.
나중에 오는 관객도 저절로 눈을 뜨는 것은 아니다.
요 반 고흐-봉허르(Jo van Gogh-Bonger)는 편지를 보존하고 작품이 전시되고 유통되도록 일했으며, 1914년에는 세 권짜리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출간했다. 날짜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 종이를 읽어 내고 순서를 잡아야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자동으로 일을 이어 가는 테오의 그림자가 아니다. 스스로 결정한다. 여러 해를 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까닭에는, 누군가 벽에 그림을 걸고 서랍에서 편지를 꺼냈다는 사실도 있다.
여기서는 잔이 떠오르고 와일드가 떠오르고 돌을 안은 볼츠만도 떠오른다. 나중에 찾아온 것은 저마다 달랐다. 추모, 다시 펼쳐진 책,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 뒤늦은 시선은 우리가 그들의 삶을 읽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어느 하루에는 더 이상 제때 도착할 수 없다.
반 고흐가 남긴 것 가운데 독특한 것은 그림 한 점이 다음에 무언가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의자를 본 뒤에는 다른 빈 의자 앞을 그렇게 빨리 지나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와 똑같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자리에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는 보는 법을 가르친다. 그림 앞을 떠날 때 가지고 가는 눈은 여전히 우리 자신의 눈이다.
9. 밀밭
1890년 7월. 오베르쉬르우아즈.
그림 속에 밀밭이 있다. 노랑이 멀리 달리고, 짙은 파랑이 위에서 내려누른다. 까마귀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이다. 누군가 7월 27일의 현장을 보존해 놓은 장면이 아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마지막 몇 주의 작품이다. 어두운 하늘만으로 마지막 그림이라고 정할 수 없고, 새들에게 죽음의 증인 역할을 맡길 필요도 없다. 그달 편지에서 반 고흐는 밀밭과 슬픔, 외로움을 말한다. 그러면서 전원이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도 말한다. 결말을 안다는 이유로 그 뒤쪽은 읽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7월 27일에 총상을 입는다. 29일 라부 여관에서 죽는다. 서른일곱 살. 테오는 침상 곁에 있었다. 서신판의 연표는 자살이라는 설명을 채택한다. 그렇다고 그날의 모든 발걸음을 본 목격 기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림은 남았다. 사람은 남지 않았다. 두 문장 사이에는 공정한 교환이 없다.
이하의 다리에서의 만남은 문학적 상상이다.
다리에 또 한 사람이 왔다. 서 있다. 몸에 물감이 묻어 있다.
해바라기의 노랑, 밤하늘의 파랑, 사이프러스의 초록, 포도밭의 빨강. 셔츠에, 손에, 얼굴에도 조금. 붓을 들고 있다. 한 자루가 아니라 한 움큼. 붓털에는 아직 색이 붙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빈터에 서 있다. 플라톤은 쪼그려 앉아 설계도를 그린다. 흄은 백개먼 판을 펼친다. 쇼펜하우어는 다리 아래를 본다. 키르케고르는 도약했다. 튜링은 사과를 바라본다. 체호프는 난간에 기대어 있다. 칸토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코페르니쿠스는 책을 내려놓고 떠났다. 사르트르는 서성인다. 보부아르는 거울을 들고 있다. 콰인은 한 문장을 말했다.
테슬라는 웅웅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에디슨은 전구를 들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위치는 불확정적이다. 보어는 보내지 않은 편지를 쥐고 있다. 톨스토이는 처방전을 들고 체호프 맞은편에 서 있다. 셰익스피어는 없다. 그는 다리 아래의 물이다. 스피노자의 손에는 유리 가루가 묻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쪼그려 앉아 마루를 깐다. 패러데이는 쪼그려 앉아 마룻장을 들어 올린다. 맥스웰은 서서 방정식을 쓴다.
잔 다르크는 불을 품고 다리 위 허공에 떠 있다. 와일드는 우아한 모습으로 그 문장을 들고 있다. 라마누잔은 틈새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오펜하이머는 재를 짊어지고 앞으로 걷는다. 샬럿은 펜을 들고 다리 위에 ‘Reader’를 써 놓았다. 에밀리는 다리 너머 황야에 있다. 바람은 그쪽에서 불어온다. 볼츠만은 방정식이 새겨진 돌을 품고 있다.
반 고흐가 그들을 본다. 소크라테스 둘레에는 빈터의 흰색이, 잔 둘레에는 불의 주황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짙은 파랑이다. 에밀리가 있는 곳에는 히스꽃의 회보랏빛이 있다. 오펜하이머는 회색을 짊어진다. 볼츠만의 돌 옆에는 어두운 빨강이 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색도 따라 움직인다. 소크라테스 곁의 흰색에 잔의 주황이 비친다. 황야에서 바람이 온다. 그곳의 회보라는 다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문득 가까워 보인다. 색들은 저마다 빛나면서 서로를 비춘다.
그가 붓을 든다.
다리의 색을 그리면서 색과 색 사이의 거리도 남겨 둔다. 모두를 자기 자신으로 바꾸지 않는다. 사랑받고 난 뒤의 이 다리를 그려 보려 한다.
멀리 칸트가 서 있다.
칸트는 무슨 색일까.
반 고흐가 오래 바라본다. 그러다 웃는다. 저쪽에는 흰빛이 있는 듯하다.
그 흰빛 속에서 빨강은 파랑이 되지 않고 파랑도 노랑을 덮지 않는다. 모든 색이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는 먼 곳을 보다가, 아직 색이 묻어 있는 한 움큼의 붓으로 눈을 내린다.
반 고흐가 그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붓에서는 아직 물감이 떨어진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그가 걸어간 자리마다 색이 남는다.
읽기 안내와 출처
작품과 생애는 MoM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Huygens 서신판을 참고했다. 현존 편지 903통 중 651통이 테오 한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형제의 모든 왕복 편지 수를 추정한 것이 아니다. 901번은 테오가 7월 22일 보낸 편지, 902번은 빈센트가 23일 보낸 편지, RM25는 같은 무렵의 미발송 초안이다. 별개의 문서를 유서 한 통으로 합칠 수 없다.
〈별이 빛나는 밤〉은 창밖 풍경을 그대로 베낀 그림이 아니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마지막 작품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서신판 연표의 자살 설명을 따르되 현장이나 마지막 말을 지어내지 않는다. 형제의 죽음이 가깝다는 사실로 사인을 추정하지도 않는다. 요의 편집 작업과 1914년 출판은 해당 판의 출판 이력을 따르며, 제인 에어 대목은 23장을 풀어 쓴 것이다.
‘사랑받고 난 뒤’는 글의 미학적 해석이지 화가의 고백이나 진단이 아니다. 볼츠만과의 비교는 아름다움의 물리적 증명이 아니며, 질병을 창작에 필요한 대가로 보지도 않는다. 9절에서 명시한 뒤의 다리와 인물들, 흰빛은 상상이다. 그 빛은 모든 안료를 섞어 얻은 결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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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