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 108 · 삶 뒤에 남는 작업
볼츠만, 아래에는 무질서가 있다
묘비에는 방정식이 남았지만 사람은 남지 않았다. 분자의 운동에서 강의실로, 원자 논쟁에서 여행으로. 모든 것이 멈춰야 질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인정도 한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I. 묘비
빈 중앙묘지. 묘비 하나. 돌에 새겨진 방정식 하나.
S = k log W
S는 엔트로피, k는 볼츠만 상수다. W는 똑같은 거시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미시적 배열의 수를 센다. 여기서 log는 자연로그다. 글자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아래 들어 있는 것은 많다.
기체가 든 병을 바라본다. 온도도 일정하고 압력도 일정하다. 계기의 바늘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병 안에서 분자들이 차렷 자세로 줄을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움직이고, 부딪히고, 방향을 바꾸고, 다시 부딪힌다. 안에서는 서로 다른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데도 계기는 거의 같은 값을 가리킬 수 있다.
일정함은 진짜다. 움직임도 진짜다. 반듯한 숫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말해 주지는 않을 뿐이다.
볼츠만은 이 두 층위를 연결했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었다. 분자를 하나하나 줄 세우지 않고도 어떻게 질서가 생겨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훗날 플랑크가 그 관계를 지금의 익숙한 형태로 썼다. 그 뒤에 사람들이 묘비에 새겼다. 한평생의 연구가 이곳에서는 몇 글자로 남아 있다.
방정식은 돌에 남았다.
그 일을 한 사람은 이제 없다.
II. 그 사람
루트비히 볼츠만. 1844년 2월 20일, 빈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요제프 슈테판에게 물리학을 배웠다. 1866년, 스물두 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그라츠, 빈, 뮌헨, 라이프치히를 오갔다. 때로는 수학을, 때로는 실험물리학을, 때로는 이론물리학을 가르쳤다. 빈으로 돌아와서는 자연철학 강의도 했다.
도시 이름을 따라가면 끝내 다 풀지 못한 짐이 보인다. 자리도, 연구 방향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떠나거나 머무는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다른 도시에서 다른 강의실로 들어간다. 또 몇 해의 삶이 새 주소에서 시작된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곱슬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글에는 예민함과 따뜻함도, 깊이 가라앉았던 시기들도 나온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 다른 날씨들이 지나간다.
강의실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리제 마이트너가 그의 강의를 들었다. 파울 에렌페스트도 제자였다. 에렌페스트는 1899~1900년에 열의 역학적 이론을 다루는 그의 수업을 들었다. 학교에 싫증을 느끼던 젊은이에게 그 강의는 물리학으로 들어가는 길을 다시 열어 주었다. 그는 나중에 볼츠만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쟁에 지친 사람이 강의실에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줄 수 있다. 학생이 가져가는 것은 분포 하나, 유도 과정 하나만이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학문에도 들어갈 길이 있다는 발견일 수 있다. 어디서 시작하면 되는지 누군가 보여 준 것이다.
그것도 그가 남긴 일이다. 묘비에는 새겨져 있지 않다.
III. 마루 아래의 무질서
뉴턴 역학은 사람들에게 강한 자신감을 주었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알면 운동방정식을 따라 그다음을 계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라플라스는 그 생각을 상상 속 극한까지 밀고 나갔다. 모든 상태와 힘을 알고 충분한 분석 능력을 갖춘 지성이라면,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계산 안에 담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체가 든 병 앞에 선 우리는 그 지성이 아니다. 입자가 너무 많다. 하나하나가 방금 무엇과 부딪혔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장부에 적어 둘 수 없다.
볼츠만은 그저 뉴턴이 틀렸고 세상에 법칙 따위는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바꿨다. 분자 하나하나의 경로를 모르더라도 기체가 어떻게 될지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열이 전달되는지, 왜 압력이 이 값에 머무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분자가 잠시 뒤 어디에 있을지를 묻는 대신, 어느 속력 범위에 속하는 분자가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바깥의 계기에 같은 값이 나타나도록 만드는 내부 배열은 몇 가지나 되는지 묻는다.
마루 위에 온도계가 놓여 있다고 상상해 보자. 섭씨 26도.
마룻장을 들어 올리면 분자들이 움직이며 부딪힌다. 온도계는 그 하나하나를 쫓지 않아도 된다. 고전적 이상 기체에서 절대 온도는 분자의 평균 병진 운동 에너지에 대응한다. 분자들은 용기 벽에 끊임없이 부딪혀 운동량을 전달하고 압력을 만들어 낸다. 잠잠한 바늘을 받치는 것은 쉬지 않는 움직임이다.
그러면서도 똑같은 온도는 서로 다른 수많은 분자 경로와 양립할 수 있다.
이 연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줄곧 마루를 깔고 있다. 사물을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 놓는다. 볼츠만은 우리가 이미 다 깔았다고 생각한 열역학의 마룻장 하나를 들어 올린다. 마루를 없애지는 않는다. 아래에 무언가가 영원히 멈춰 있어야만 마루를 믿고 디딜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더 어려운 질문도 있다. 분자 한 번의 충돌은 역학적으로 거꾸로 서술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병 전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일상에서 대개 거꾸로 진행되지 않을까? 로슈미트의 가역성 반론이 바로 이 지점을 짚었다. 모욕이 아니었다. 볼츠만이 답해야 할 문제였다.
패러데이는 장으로 눈을 돌렸다. 볼츠만은 엄청나게 많은 입자의 운동으로 눈을 돌렸다. 두 사람이 마루 아래서 서로를 밀어내는 별개의 세계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하나만 진짜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충분하다고 여겼던 설명에, 더 물어야 할 자리가 드러난 것이다.
아래는 무질서하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IV. 누가 원자를 믿었는가
원자는 존재하는가?
19세기 말에는 모든 물리학자가 같은 답을 내놓는 질문이 아니었다.
볼츠만은 분자 운동을 물질을 이해하는 실제적인 실마리로 받아들였다. 마흐가 경계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모형이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안의 대상을 세계의 궁극적 실재로 여길 권리가 생기는가? 그는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원자에 강한 의문을 품었다. 경험을 서술하는 데 정말로 원자가 꼭 필요한가?
오스트발트는 또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가정된 작은 입자들에게 모든 설명을 맡기기보다 에너지와 그 변환을 중심으로 물리학을 구성하려 했다. 마흐와 같은 주장은 아니었다. 볼츠만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없다’는 한마디를 되풀이한 것도 아니었다.
1895년, 뤼베크의 학술 모임에서 오스트발트가 기계론적 설명을 비판했다. 볼츠만이 일어나 반박했다.
오랜 뒤에 쓴 회고에서 조머펠트는 그 대결을 황소와 날렵한 투사의 싸움에 비유하며, 그때는 황소 쪽이 우세했다고 평가했다. 펠릭스 클라인이 볼츠만을 지지했고 현장의 젊은 수학자들도 같은 편이었다고 기억했다. 여러 해가 지나 돌아본 장면이지, 현장 속기록은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그 회고 속의 볼츠만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반대자가 있었다. 독자와 제자, 동료도 있었다. 1899년에는 영국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04년 예순 번째 생일에는 여러 나라의 물리학자들이 논문을 모아 그에게 기념 논문집을 바쳤다.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인정도 이미 있었다. 생일에 받은 논문집이 로슈미트의 반론에 대신 답해 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학회에서 나온 반대의 목소리가 그 논문집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누군가는 그의 논증에 반박했고, 누군가는 그다음 생각을 이어 갔다. 그의 목소리는 빈방의 메아리가 아니었다. 듣는 사람이 있었다. 듣는다고 언제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제나 듣기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V. 볼츠만과 칸토어
칸토어는 무한에도 크기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원소를 하나씩 모두 나열하겠다는 약속은 모든 무한 집합에 대해 지킬 수 없었다. 대각선 논법은 완전해 보이던 목록을 그 목록 자체의 한계 앞에 세웠다.
볼츠만은 다른 마룻장을 들어 올렸다. 일정한 측정값 아래에 셀 수 없이 많은 분자의 경로가 있었다. 칸토어는 모든 것을 담았다는 목록을 살폈고, 볼츠만은 입자를 하나씩 쫓을 수 없는 기체를 연구했다. 수학적 증명과 물리 실험에는 저마다 걸어야 할 길이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을 나란히 세울 수는 있다.
각자의 연구에서 익숙한 이해 방식이, 그동안 담아내지 못했던 것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크로네커가 반대한다고 칸토어가 제기한 수학적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원자의 존재에 논쟁이 남아 있다고 볼츠만이 통계적 방법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살아 있을 때도 인정을 받았다. 칸토어는 독일수학회 창립에 참여했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04년에는 실베스터 메달을 받았다. 같은 해 볼츠만에게는 예순 번째 생일을 기리는 동료들의 논문집이 도착했다.
인정은 이미 있었다. 질병과 어려움도 여전히 있었다. 둘은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
칸토어는 1918년 요양원에서, 볼츠만은 1906년 두이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두 생애의 끝이었다.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 학회와 강의실, 동료들이 써 준 논문을 그들의 삶에서 지우지는 않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기다리고 싶어진다. 마침내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니 이제 다 괜찮아졌다고. 하지만 메달이 오고 기념 논문집이 와도 그다음 날은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 옳았다는 말만이 아니다.
수학 한 페이지는 쓴 사람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방정식도 그렇다.
어느 쪽도 한 사람이 살아 낸 전부는 아니다.
VI. 볼츠만과 맥스웰
맥스웰과 볼츠만을 잇는 것은 후대의 글쓴이가 그은 비교의 선만이 아니다. 둘의 이름이 같은 분포에 남아 있다.
맥스웰-볼츠만 분포. 적절한 고전적 평형 조건에서 기체 분자의 속력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나타낸다. 모든 분자가 같은 속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빠른 분자도 있고 느린 분자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각 속력 범위가 차지하는 비율에는 규칙이 있다.
맥스웰이 먼저 한 구간을 걸었다. 볼츠만은 그 연구를 이어 분포를 평형과 충돌, 열역학의 문제들에 더 깊이 연결했다. 둘 다 분자를 하나씩 쫓아가지 않으면서도 분자를 버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 연작에서 맥스웰이 가져오는 것은 빛이다. 그는 패러데이가 열어 놓은 장의 연구를 전자기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볼츠만이 가져오는 것은 ‘무질서’다. 열역학의 일정한 계기값 아래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움직임이다.
그렇다고 빛의 이론이 줄곧 환영만 받은 것은 아니다. 맥스웰은 1879년에 세상을 떠났고, 헤르츠의 중요한 전자기파 실험은 1880년대 후반에 이루어졌다. 오늘날 교과서 한 페이지에 나란히 놓인 이론과 실험 증거 사이에는, 그때만 해도 아직 하지 않은 일이 남아 있었다.
볼츠만 자신도 맥스웰 이론의 지지자였다. 가르쳤고, 강의록을 출판했으며, 유럽 대륙에 알려지는 데 힘을 보탰다. ‘무질서’ 속에서 질문한 사람이 빛의 이론을 위한 길도 열었던 것이다.
빛을 향해서는 고개를 들고, 분자를 보려고는 몸을 숙인다. 여기서는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 두고 싶다. 한 발견에는 아름다움을, 다른 발견에는 차가움만 나누어 주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분자가 제각기 움직인다. 그런데도 하나의 분포가 그들을 이어 준다. 무질서 속에도 천천히 읽어 낼 수 있는 것이 있다.
VII. 엔트로피
거시적 열역학에서 제2법칙은, 외부와 물질도 에너지도 주고받지 않는 고립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평형에 도달했다고 내부의 모든 운동이 멈춘 것은 아니다.
‘고립계’라는 말을 빼면 안 된다. 뜨거운 물이 방 안에서 식을 때 물 자체의 엔트로피는 줄어들 수 있다. 주변이 그 열을 받는다. 전체 변화를 따져야 제2법칙을 어겼는지 알 수 있다. 이 법칙을 세상의 모든 곳이 매 순간 더 어질러져야 한다는 명령으로 바꿀 수는 없다.
상자 하나를 떠올려 보자. 가운데 칸막이가 있다. 한쪽 절반에는 기체가 있고 다른 절반은 진공이다. 칸막이를 치운다.
기체가 퍼진다.
기체가 상자 전체에 대략 고르게 퍼져 있을 수 있는 미시적 배열은 엄청나게 많다. 모든 분자가 우연히 원래의 절반에만 머무는 배열의 비중은 놀라울 정도로 작다. 거시적 평형이 흔한 것은 분자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상태와 양립하는 미시 상태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우의 수가 많다’는 사실이 입자를 밀어 주는 힘은 아니다. 입자가 어떻게 움직이고 부딪히는지, 계가 어떤 상태에서 출발했는지도 봐야 한다. 볼츠만의 통계적 설명은 작은 요동이 일어날 여지를 남긴다. 극도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과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도 한다.
깨진 잔은 우리가 일상에서 기다리는 동안 저절로 다시 붙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편 하나하나가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를 ‘삶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옮기는 순간, 물리 법칙에 그 법칙이 내린 적 없는 판결을 맡기게 된다.
열적 죽음도 마찬가지다.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입자가 끝내 꼼짝하지 않게 된다는 광경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는 차이가 사라진다는 전망이다. 온도 차이가 없으면 열기관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작동할 수 없다. 우주의 먼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우주의 역사와 진화 조건에도 달려 있다. 묘비의 한 줄만으로 그 결말 전체를 써 버릴 수는 없다.
여기에는 여전히 체호프의 작은 메아리가 남는다.
『세 자매』의 자매들은 모스크바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모스크바에 가지 못했다’는 말로 그들을 다 말한 것은 아니다. 제4막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별을 맞고, 어떻게 계속 살아갈지 마주한다.
온도 하나도 병 안의 모든 움직임을 낱낱이 말해 주지는 않는다. 닮은 것은 짧은 설명과 그 설명이 하나하나 담아내지 않은 것들 사이의 거리다. 인물들의 아쉬움이 엔트로피라는 뜻도, 분자에게 인간처럼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체호프는 자매들의 삶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방정식 역시 그것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신 결정할 수 없다.
VIII. 두이노
1906년 9월 5일. 트리에스테 근처의 두이노.
볼츠만은 아내와 딸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 휴가 중에 그는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예순두 살이었다.
학문적 논쟁은 실제로 있었다. 질병과 삶의 어려움도 실제로 있었다. 하지만 남은 기록이 그 순간의 전부를 보존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들을 일렬로 늘어놓아 1895년의 학회에서 이날까지 곧게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만들 수는 없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이미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분자 운동에서 출발해 액체 속에 떠 있는 미립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정량적 예측을 제시했다. 논문이 나온 날 원자가 사진처럼 모든 독자의 눈앞에 직접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1908~1909년 페랭의 측정은 분자 이론에 강력한 실험적 지지를 제공했다. 볼츠만은 그 실험들이 이루어질 때까지 살아 있지 못했다.
그렇다고 평생 벽 앞에 혼자 서 있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1904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 기간에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했다. 1905년에는 버클리에서 강의했고 스탠퍼드에도 방문했다. 서로 다른 해에 떠난 두 여행이다. 한 번의 여행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여행기에서 그는 자기 영어를 걱정하며 ‘blackboard’와 ‘chalk’, 곧 칠판과 분필이라는 단어를 특별히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분자 운동을 이해시키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다른 언어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이어 갈지 배워야 했다.
식사와 여행, 강의를 쓴 문장들도 볼츠만의 것이다. 그 문장들이 고통이 없었다고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통이 한 사람 전체를 삼키지 못하게 한다.
과학의 벽은 곳곳에서 느슨해지고 있었다. 그가 그 변화를 얼마나 보았는지는 우리가 대신 판단할 만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그는 그다음을 살아서 보지 못했다. 그다음에 온 것들도 그를 돌려놓지는 못한다.
IX. 무질서
이 절의 다리에서 벌어지는 만남은 문학적 상상이다.
S = k log W.
돌에 새겨진 글자는 가지런하다. 그렇다고 가지런히 줄 선 분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리 어귀에 한 사람이 더 왔다. 몸집이 있고 눈이 좋지 않다. 돌을 안고 서서 숨을 고른다.
돌에는 방정식이 새겨져 있다. 그가 품에 안고 있다. 무겁다.
소크라테스는 빈터에 서 있다. 플라톤은 쪼그려 앉아 설계도를 그린다. 흄은 백개먼 판을 펼친다. 쇼펜하우어는 다리 아래를 본다. 키르케고르는 도약했다. 튜링은 사과를 바라본다. 체호프는 난간에 기대어 있다. 칸토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코페르니쿠스는 책을 내려놓고 떠났다. 사르트르는 서성인다. 보부아르는 거울을 들고 있다. 콰인은 한 문장을 말했다.
테슬라는 웅웅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에디슨은 전구를 들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위치는 불확정적이다. 보어는 보내지 않은 편지를 쥐고 있다. 톨스토이는 처방전을 들고 체호프 맞은편에 서 있다. 셰익스피어는 없다. 그는 다리 아래의 물이다. 스피노자의 손에는 유리 가루가 묻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쪼그려 앉아 마루를 깐다. 패러데이는 쪼그려 앉아 마룻장을 들어 올린다. 맥스웰은 서서 방정식을 쓴다.
잔 다르크는 불을 품고 다리 위 허공에 떠 있다. 와일드는 우아한 모습으로 서서 그 문장을 들고 있다. 라마누잔은 틈새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오펜하이머는 재를 짊어지고 앞으로 걷는다. 샬럿 브론테는 펜을 들고 있다. 에밀리는 다리 너머 황야에 있다. 바람은 그곳에서 불어온다.
볼츠만은 아리스토텔레스 옆에 서서 마루를 내려다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마룻장 하나를 단단히 놓고 있다. 볼츠만이 보는 것은 그 판자만이 아니다. 아래에서는 서로 다른 미시적 배열이 끊임없이 바뀐다. 위에 이름 하나를 붙여 놓았다고 모두 함께 멈추지는 않는다.
마루는 여전히 두 사람을 받친다. 볼츠만이 내려다본다. 발밑의 단단함과 그 아래서 보이는 움직임이 동시에 있다.
패러데이가 다른 틈새에서 이쪽을 본다. 맥스웰은 계속 쓰고 있다. 볼츠만은 그 펜을 보고, 다시 품 안의 돌을 본다.
돌을 조금 고쳐 안는다. 모서리가 손을 누른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팔이 조금 내려가자 몇 글자도 함께 내려간다.
그러고는 고개를 든다.
멀리 칸트가 서 있다.
사람의 윤곽이 너무 멀다. 잠시 통계적 요동이 떠오른다. 잠깐 나타났다가 곧 흩어질 형체일 뿐일까?
그래도 그는 그쪽으로 걷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품에는 돌이 있다. 발아래에는 다리가 있다. 에밀리가 있는 황야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질서가 영원히 단단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그쪽으로 걸어가는 일은 거짓이 아니다.
읽기 안내와 출처
식과 기체의 설명은 플랑크 『열복사 이론』 120절과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I권 39·40·44·46장을 참고했다. 온도와 평균 병진 운동 에너지의 관계는 여기서 사용하는 고전적 이상 기체 모형에 관한 것이다. 고립계라는 조건, 운동과 초기 조건이 중요하며 경우의 수만 세어 완전한 증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생애는 빈 대학, MacTutor, Brush와 Flamm의 역사 연구를 참고했다. 1895년의 논쟁 장면은 훗날 좀머펠트의 회상으로 전해진다. 왕립학회 추도문 xi·xiii쪽은 1899년 선출과 1904년 기념 논문집을 기록한다. 1905년 여행기의 1992년 발췌 번역과 주석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와 1905년 버클리 여행을 구별한다. 아인슈타인의 1905년 예측과 페랭의 1908–1909년 실험도 구별했다.
소급해 임상 진단을 내리거나 자살을 한 가지 학문적 논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9절의 다리와 돌, 몸짓과 칸트는 문학적 상상이다. 마루·무질서·요동의 이미지는 인간의 가치나 윤리적 방향을 물리학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묘비와 공식의 형성 — 빈 중앙묘지의 묘비 사진 · 묘비와 공식의 형성 — 책, PDF 155쪽 · 묘비와 공식의 형성 — 논문 · 출생, 학업, 재직 — 대학 기록 · 외모와 건강 —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전기 · 가르친 사람과 배운 사람 — 전기 · 가르친 사람과 배운 사람 — 인물 항목의 ‘University of Vienna’ 절 · 라플라스, 통계적 서술, 온도와 압력 — 항목 · 라플라스, 통계적 서술, 온도와 압력 — 제39장 · 라플라스, 통계적 서술, 온도와 압력 — 제40장 40–4절 · 가역성과 통계적 설명의 조건 — 제46장 · 마흐와 오스트발트 — 항목 · 마흐와 오스트발트 — 전기 연구 · 1895년 뤼베크와 조머펠트의 회고 — Robert Deltete의 1999년 연구 게재 페이지 · 생전의 인정 — 동시대 추도문 · 칸토어의 연구, 인정, 말년 — 전기 · 맥스웰, 분자 속력, 전자기파 — 연표 · 맥스웰, 분자 속력, 전자기파 — 전기 · 제2법칙, 국소적 엔트로피 감소, 쓸 수 있는 온도 차이 — 제44장 · 체호프의 인물들과 문학적 비교 — 본문 · 아인슈타인의 예측과 페랭의 실험 — 원논문 · 아인슈타인의 예측과 페랭의 실험 — 프랑스어 전문 · 두 번의 미국 여행과 여행기를 쓰는 사람 — DOI · 두 번의 미국 여행과 여행기를 쓰는 사람 — 열람용 PDF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