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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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 108 · 삶 뒤에 남는 작업

디킨스, 균열

그는 독자가 낯선 이를 위해 의자를 옮기게 했다. 그래도 캐서린은 자기 경험의 흔적을 남겨야 했다. 공장에서 내민 손부터 태운 편지와 간직한 편지까지. 한 방의 온기는 다른 방에 사는 사람의 대답을 대신하지 못한다.

1. 두 개의 방

찰스 디킨스에게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먼저 독자들이 기억하는 방으로 들어가 보자. 벽난로에 불이 타고, 식탁에는 음식이 놓여 있다. 문이 마침내 다른 사람에게도 열린다. 스크루지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린 팀은 살아 있다. 올리버는 집을 얻었고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어른이 되었다. 바깥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다. 안에서는 누군가 의자를 조금 옮겨 당신이 앉을 자리를 만든다.

물론 디킨스의 소설에 이 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고픈 아이들,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생보다 길게 이어지는 소송, 돌보러 오는 이가 없는 집도 있다. 바깥이 춥기 때문에 안의 온기는 장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떻게 문전에서 거절당하는지 읽고 나면, 그 아이에게 내주는 의자 하나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다.

이번에는 그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1836년, 그는 캐서린 호가스와 결혼했다. 스물두 해 뒤 두 사람은 별거했다. 캐서린은 함께 살던 집을 떠났고, 여동생 조지나는 디킨스 곁에 남았다. 언론에는 디킨스의 이름이 붙은 성명이 실렸다. 그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있었다. 동시에 많은 독자에게 다른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말하고 있었다.

별거 성명 한 장에 스물두 해가 다 들어갈 수는 없다. 열 명의 아이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는 가구 열 점이 아니다. 한때 가까웠고, 나중에는 상처가 생겼다. 앞의 일을 기억한다고 뒤의 일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두 개의 방.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인 것이 아니다.

질문은 문간에 있다. 독자가 낯선 사람을 위해 의자를 옮기게 만드는 작가는, 이미 자기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2. 구두약 공장

1824년, 런던. 찰스는 열두 살이었다.

집안 형편이 더는 버티지 못했고, 찰스가 일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2월 20일, 아버지 존이 빚 때문에 마셜시 교도소에 갇혔다.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은 나중에 아버지와 함께 지내러 들어갔다. 누나 패니는 왕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찰스는 밖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했다. 가족 가운데 그만 혼자 담장 밖에 남았던 것은 아니다.

워런 구두약 공장. 작은 통의 입구를 종이로 덮고, 끈을 묶고, 가장자리를 자른 뒤 상표를 붙인다. 손은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가 나중까지 견디기 어려웠던 일로 기억한 것은 노동 자체만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고 싶었고, 언젠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해서 누가 손에 들린 통을 대신 받아 주지는 않았다. 작업장이 훗날 챈도스가로 옮긴 뒤에는 거리 쪽 창문 옆에서 일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다. 밖에서 보면 능숙한 두 손이었다. 유리창 안에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같은 회상 속에 다른 아이가 한 명 더 나온다.

밥 페이긴은 찰스보다 나이가 많았고, 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찰스가 심하게 아팠을 때는 뜨거운 물을 담은 병으로 몸을 덥혀 주며 돌봤다. 나중에는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고집했다. 찰스는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남의 집 문 앞에서 다 왔다고 가장하고, 페이긴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길을 갔다.

가난한 아이는 이미 손을 내밀었다. 찰스는 아직 자기 주소를 감추고 있었다.

돌아보면 훗날의 대작가보다, 누구의 집도 아닌 문 앞에서 헤어지는 두 아이가 오래 남는다. 한 아이는 방금 다른 아이를 돌봐 주었다. 다른 아이는 아직 그에게 얕보일까 두렵다. 호의는 이미 닿았다. 수치심은 곧바로 비켜서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디킨스는 포스터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자전적 글의 일부를 남겼다. 포스터는 그것을 전기에 실었다. 그중 일부는 다른 모습으로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들어갔다. 소설에서 데이비드는 열 살이며, 포도주 상인의 창고에서 병을 다룬다. 열두 살 찰스와 구두약 통, 그가 보낸 하루하루를 그대로 옮긴 기록은 아니다.

그 작업장은 글 속에 남았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아도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아이가 훗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을 쓰려면, 먼저 그 창문 뒤에 놓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처방전

디킨스는 사회에 처방전을 써 주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더 착해지라는 말만 적혀 있지 않았다.

『올리버 트위스트』 2장에서 아이 하나가 빈 그릇을 들고 앞으로 나가 조금 더 달라고 청한다. 어른들이 먼저 들은 것은 배고픔이 아니었다. 무례함이었다. 몫이 이미 정해진 사람이 그것으로 모자란다고 말한 것이다. 그릇은 이렇게 작은데, 반응은 이렇게 크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는 어느 성탄절 아침에 눈물만 흘리고 끝내지 않는다. 결말에서 그는 밥의 급료를 올리고, 가족을 돕겠다고 약속하며, 불에 석탄을 더 넣으라고 말한다. 깨달음이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닿는다. 방이 따뜻해지는지 알려면 집주인이 얼마나 감격했는지만 보아서는 안 된다.

『황폐한 집』은 사람들을 끝나지 않는 소송 속에 넣는다. 동시에 집 안으로 또 다른 추위를 들인다. 젤리비 부인은 먼 곳의 자선 사업에 몰두한다. 어린 아들은 계단에서 넘어지고, 딸은 온몸에 잉크를 묻힌 채 어머니가 불러 주는 편지를 받아 적는다. 시선은 아주 멀리까지 닿는데, 바로 곁에서는 돌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디킨스는 이 장면을 이미 썼다. 먼 곳을 걱정하는 마음과 가까운 곳을 돌보지 않는 일이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장면을.

『어려운 시절』에서 시시의 아버지는 서커스에서 말을 다룬다. 하지만 시시는 교실에서 요구하는 말의 정의를 대지 못한다. 다른 아이가 다리 넷, 초식, 이빨 마흔 개를 외우자 정의가 완성된다. 이빨 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 답을 들은 뒤 선생은 마치 시시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전부 재어 본 듯 행동한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창고의 아이가 계속 자라도록 한다.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의 삶 전체를 미리 닫아 버리는 판결은 아니다. 아이 앞에 남은 삶은, 한때 자신을 다치게 한 환경이 옳았다고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들은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사람을 당신 앞에 세운다. 조금 더 가까이. 다시 조금 더 가까이. ‘저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는 말만으로 넘어갈 수 없을 만큼.

그 관심을 실제 연단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1858년 디킨스는 그레이트오먼드스트리트의 어린이병원을 위해 연설하고 모금했으며, 병원을 돕는 『크리스마스 캐럴』 낭독회도 열었다. 청중은 집으로 돌아갔다. 기부금은 남아 병실의 돌봄이 될 수 있었다.

이 연작에서 톨스토이도 처방전을 들고 있다.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의 손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건넨다. 종이를 뒤집으면 또 한 면이 있다. 그 처방을 쓴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가?

4. 디킨스와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참회록』에 이 질문을 써 넣었다. 남을 가르치려 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몰랐던 시절을 돌아본다. 영지도, 가족도, 작품의 명성도 되풀이되어 돌아오는 질문에 답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다음은 무엇인가?

종이를 자신 쪽으로 돌린 것이다. 글쓴이도 종이 위에 있다.

포스터가 보존한 별거 전 편지에서 디킨스도 펜을 자신에게 돌린 적이 있다. 캐서린이 자신을 불행하게 했으며 자신은 그녀를 더 불행하게 했다고 인정했다. 자신의 변덕과 흔들림, 까다로운 성격을 적었고 탓을 전부 그녀에게 돌리지는 않았다. 같은 펜이 그런 인정도 써 내려갔다.

이제 다른 종이를 보자. 1858년 6월 12일, 잡지 『Household Words』에 「Personal」이라는 그의 성명이 실렸다. 디킨스는 작품으로만 자신을 아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다. 집안일은 원만히 해결되었다고 설명하고 소문을 부인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아내의 이름으로도 선언했다.

독자가 책에 보낸 신뢰가 직접 겪지 않은 한 가정의 일로 옮겨졌다. 작품에 온기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캐서린이 하고 싶은 말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같은 해에 또 다른 편지가 신문에 전해졌다. 낭독회를 맡아 진행하던 아서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였다. 거기에는 캐서린의 어머니 역할을 깎아내리고 정신적 안정성을 의심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6월의 성명과 다른 문서다. 둘을 접어 한 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주장은 뒤늦게 남겨진 다른 기록에서 온다. 캐서린은 죽기 전 이웃 에드워드 더턴 쿡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쿡은 1879년 1월 윌리엄 모이 토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디킨스가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는 회상이었다. 아내의 기억이 이웃의 펜을 거쳐 남은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과거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들을 수 있다. 그때 자신도 같은 방 안에 있었다고 가장할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물음을 대중 앞에 펼쳤다. 디킨스는 친구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신문에는 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두 사람에게 더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아내들의 말을 들을 자리도 남겨 두어야 한다. 작가의 자책과 설명과 고통을 이렇게 많이 읽은 뒤에, 그녀는 무엇을 겪었는가.

균열을 보는 것은 한 가지 일이다. 그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말하도록 두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5. 디킨스와 와일드

와일드는 아름다운 얼굴을 의심하게 만든다. 디킨스는 점잖은 사람들 앞으로 빈 그릇을 내민다. 그 두 장면을 읽고 나면 작가의 서재와 집 문을 보면서 겉모습만으로 안심하기 어렵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도리언은 시빌에게 상처를 준 뒤, 그림 속 자신의 입에 변화가 생겼음을 발견한다. 잔인함의 흔적이다. 거울을 보면 실제 얼굴에는 같은 변화가 없다. 겉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상처받은 사람에게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그릇을 든 아이도 점잖은 겉모습 아래의 다른 것을 드러낸다. 아이의 식량을 정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일어서자 그 질서가 방해받는다.

한 사람은 보기 좋은 표면이 일어난 일을 덮지 못하게 한다. 다른 사람은 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쉽게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 둘 다 독자가 이미 듣고 싶어 하는 좋은 말만 되풀이한 것은 아니다.

와일드의 삶과 미학 사이에도 아무런 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옥중에서 쓰고 나중에 『심연으로부터』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글에는 자책이 있다. 아내의 행동도 있다. 몸이 좋지 않은데도 제노바에서 영국까지 와서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해 세워 둔 미학적 형상이 아니다. 누군가 실제로 그 길을 왔다.

도리언은 와일드의 자화상이 아니다. 수감 중인 사람의 자책이 그가 받은 처벌의 정당함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와일드를 진지하게 읽기 위해 먼저 모순 없는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디킨스가 캐서린을 어떻게 대했는지 물으려면, 먼저 그의 모든 연민이 거짓이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불은 한 방을 밝힐 수 있다. 옆방이 추운지 아닌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대신해 대답해 주지 못한다.

6. 열 명의 아이

찰스와 캐서린에게는 열 명의 아이가 있었다.

찰스 주니어, 메리, 케이트, 월터, 프랜시스, 앨프리드, 시드니, 헨리, 도라, 에드워드.

열 개의 이름이지, 나누어 배치할 열 자리가 아니다. 도라는 생후 몇 달 만인 1851년에 죽었다. 1858년 부모가 별거할 때 살아 있던 아이는 아홉이었다. 큰아이들은 이미 성장했고 막내는 아직 어렸다. 부모의 별거는 이미 서로 달라져 있던 아홉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장남 찰스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조지나는 디킨스 곁에 남았고, 나중에는 메리와 함께 그의 집안일을 맡았다.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나이와 관계, 이후의 삶이 있었다. 모두를 아버지 편과 어머니 편으로 갈라 놓으면 종이 위의 선은 반듯해진다. 정작 사람들은 그 밖으로 밀려난다.

캐서린도 그 뒤로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박물관에는 그녀가 쓰던 꽃다발 받침이 남아 있다. 꽃을 식탁 위에 세워 놓고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물건이다. 케이트에게 남긴 뱀 모양 팔찌와 조지나에게 남긴 뱀 모양 반지도 있다. 물건이 누구를 용서했는지 알려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가 무엇을 간직하고, 고르고, 다른 사람에게 건넸는지 그 흔적을 남긴다.

캐서린은 1879년에 세상을 떠났다. 딸 케이트는 훗날 어머니가 남편의 편지를 대영박물관에 주기를 바랐다고 회상했다. ‘그가 한때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글래디스 스토리가 1939년 책에 케이트의 기억을 적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거쳐 도착한 말이다. 그래도 ‘한때’에서 자꾸 눈길이 멈춘다.

그러나 편지는 실제로 남았다.

영국도서관의 소장품 목록에는 디킨스가 캐서린에게 쓴 편지 136통이 등록되어 있다. 1835년부터 1867년까지의 편지다. 캐서린은 죽기 전에 케이트에게 건넸고, 케이트는 1899년 당시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다. 종이 위의 글씨는 보낸 사람의 것이다. 종이가 보존되었다는 사실에는 받은 사람의 행동도 들어 있다.

백 통이 넘는 옛 편지로 나중의 상처가 중요하지 않다고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느 작가가 한때 자신을 사랑했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여성이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녀는 관계 안에 실제로 존재했던 한 부분을 간직했다. 나중의 설명이 이전의 자신까지 함께 지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7. 1860년 9월

개즈힐 저택. 집 뒤의 들판.

9월 4일, 디킨스는 윌스에게 편지를 써서 전날 한 일을 알렸다. 이십 년 동안 쌓인 편지와 서류를 불태웠다는 것이었다. 연기를 작은 상자에서 나오는 정령에 빗대었다. 시작할 때는 날씨가 맑았는데 끝날 무렵에는 큰비가 내렸다. 그래서 자기 편지들이 하늘까지 흐리게 만든 모양이라고 농담했다.

연기가 오르고 비가 내린다. 그의 편지 속에서 종이 더미는 생생한 결말을 얻었다. 그러나 다른 이의 손으로 간 종이까지 그가 정한 곳에서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들판으로 가져가 태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보관하던 편지와 서류였다. 이미 다른 이들에게 보낸 편지까지 같은 불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캐서린이 갖고 있던 편지가 바로 그 반례다.

1865년에는 맥레디에게, 순전히 업무에 관한 편지를 제외하고는 이제 받는 편지를 모두 없앤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편지를 사적인 관계 안에 남겨 두려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그로 인해 기록에 생긴 빈곳을 볼 수 있다. 불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매번 무엇 때문에 없앴는지 그 동기 전체를 읽을 수는 없다.

엘런 터넌은 분명 이 삶 안에 있었다. 1857년 디킨스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열여덟 살로, 그보다 스물일곱 살 어렸다. 편지를 태운 해에는 이미 스물한 살이었다. 남은 자료는 그녀가 그의 삶에서 차지한 자리에 관해 어느 정도 알려 준다. 사라진 편지가 모든 소문을 자동으로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편지 외에도 다른 종류의 자료가 있다. 디킨스의 1869년 유언장에서 맨 처음 나오는 유증은 엘런 롤리스 터넌에게 주는 천 파운드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하나하나 재현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남은 자료가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과는 함께 설 수 없다.

불은 한 부분을 가져갔다.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다른 부분을 남겼다.

후대가 무엇을 보게 될지 결정하는 힘이 언제나 작가의 두 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8. 마지막 날

1870년 6월 8일. 개즈힐 저택.

포스터가 모은 기록에 따르면, 디킨스는 이날도 정원의 스위스식 작은 집에서 글을 썼다. 쓰고 있던 책은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이었다. 오전에 쓰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돌아가 썼다. 저녁 식사를 하러 본채에 들어왔을 때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고, 이윽고 쓰러졌다.

6월 9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쉰여덟 살이었다. 소설은 완성되지 못했다. 전날 종이에 남긴 문장들은 그가 독자에게 써 주지 못한 결말 앞에서 멈췄다.

6월 14일,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코너에 묻혔다. 생전에는 켄트에 묻히기를 바랐고, 미리 대중에게 알리지 않는 간소한 장례를 요구했다. 장소는 달라졌다. 하지만 비공개로 치른 의식은 그가 원하던 고요함을 지켰다.

묘비도 조용하다. 이름. 태어난 날짜. 죽은 날짜. 한 생을 대신 정리하는 찬사는 없다.

몇 달 전인 3월 15일, 그는 공개 낭독회의 청중에게 작별을 고했다. 포스터가 그날 밤을 기록했다. 디킨스는 『피크윅 클럽 여행기』를 덮고 자기 자신으로서 감사를 전한 뒤 무대를 떠났다. 박수는 그를 조금 더 붙잡았다. 책은 닫혔다. 그들 앞에는 아직 한 사람이 있었다. 독자들의 사랑도 진짜였다.

독자는 다른 곳에서 여전히 그의 연민을 말할 수 있다. 아이가 그릇을 내미는 페이지를 펴고, 스크루지가 석탄을 더 넣으라고 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캐서린이 이야기에 들어왔을 때, 그 페이지들로 그녀 앞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그녀는 책 바깥의 독자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살았고, 겪은 일이 있다. 독자의 눈물은 그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

9. 균열

디킨스는 많은 독자에게 따뜻한 집을 남겼다.

그의 결혼 생활을 나중에 알았다고 해서 그 집을 허물 필요는 없다. 아이는 여전히 굶주려서는 안 되고, 사람에게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큰 집이어도 작가 곁에서 살던 사람을 삼킨 뒤, 바깥 독자들의 감동을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라고 해서는 안 된다.

샬럿의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에게 묻는다. 가난하고 평범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영혼과 마음이 없다는 것인가. 그녀는 사랑받고 싶지만,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 페이지에서 이쪽을 보면 캐서린이 간직한 편지도 그녀의 존재 허가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캐서린이 간직한 편지가 디킨스에 대한 최종 판결일 필요도 없다. 그 안에는 관계의 일부가 있다. 보낸 사람 혼자 어느 페이지에서 그 관계를 시작할지, 어디부터는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할지 정할 수는 없다.

이하 다리 어귀의 만남은 이 글의 문학적 상상이다.

다리 어귀에 한 사람이 더 왔다. 옷차림이 단정하다. 한 손에는 펜을, 다른 손에는 성냥갑을 쥐고 있다.

발밑에 균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널빤지를 놓으며 남긴 이음새가 아니다. 그가 글에 쓴 돌봄과 누군가 실제로 받은 대우 사이에 벌어진 틈이다.

한 발은 이쪽, 다른 발은 저쪽에 있다. 서 있는 모습이 안정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빈터에 서 있다. 플라톤은 쪼그리고 앉아 도면을 그린다. 흄은 백개먼 판을 펼친다. 쇼펜하우어는 다리 아래를 본다. 키르케고르는 이미 도약했다. 튜링은 손에 든 사과를 바라본다. 체호프는 난간에 기대 있다. 칸토어는 하늘을 본다. 코페르니쿠스는 책을 내려놓고 떠났다. 사르트르는 파이프를 들고 서성인다. 보부아르는 거울을 든다. 콰인은 나직이 한 문장을 말했다.

테슬라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에디슨은 불이 들어오지 않은 전구를 들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위치는 불확실하다. 보어는 보내지 않은 편지를 쥐고 있다. 톨스토이는 처방전을 들고 체호프 맞은편에 서 있다. 셰익스피어는 없다. 그는 다리 아래의 물이다. 스피노자의 손에는 유리 가루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쪼그려 앉아 바닥을 놓는다. 패러데이는 쪼그려 앉아 널빤지를 들어 올린다. 맥스웰은 서서 방정식을 쓴다.

잔 다르크는 불을 지닌 채 다리 위쪽에 떠 있다. 와일드는 우아하게 서서 그 문장을 들고 있다. 라마누잔은 틈에서 몸을 반쯤 내밀었다. 오펜하이머는 재를 짊어지고 앞으로 간다. 샬럿은 펜을 들었다. 에밀리는 다리 밖 황야에 있고, 바람은 그녀 쪽에서 불어온다. 볼츠만은 방정식이 새겨진 돌을 안고 있다. 반 고흐의 손에는 붓이, 옷에는 물감이 있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색이 남는다.

디킨스가 톨스토이를 한번 본다.

처방전을 써 본 두 사람이 다리 위에서 조금 떨어져 서 있다. 톨스토이의 종이는 펼쳐져 있고 디킨스의 종이는 말려 있다. 수많은 사람에게 건넸던 글이 지금은 각자의 손에 돌아와 있다. 느껴지는 무게도 저마다 다르다.

디킨스의 종이는 꽉 말려 있다. 성냥갑 모서리가 손바닥을 누른다. 한쪽 발을 조금 옮긴다. 균열은 그 움직임을 따라 닫히지 않는다.

그 안에 편지가 있다.

그 종이에 적힌 말은 그가 썼다. 캐서린이 받아 한 통 한 통 간직했다. 세월을 건너서도 이 작은 종이 더미는 여전히 그의 불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종이가 아래에 있다. 자신의 글씨가 보인다.

멀리 칸트가 서 있다. 디킨스도 보고, 발밑의 종이도 본다. 독자에게 내준 따뜻한 집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균열이 닫힌 것도 아니다.

캐서린의 자리는 이미 거기에 있다. 칭찬보다 먼저, 비난보다 먼저. 편지는 그녀의 삶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내야 하는 값이 아니다.

디킨스는 아직 펜을 들고 있다. 펜으로 계속 쓸 수는 있다. 하지만 편지를 받은 사람의 삶을 자신이 일방적으로 다는 각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는 칸트 쪽으로 간다. 불안정한 걸음이다. 성냥갑은 여전히 손에 있지만, 성냥불을 켜지는 않는다.

발밑의 균열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난다. 편지를 접는 소리 같다.

읽기 안내와 출처

소설 장면은 『크리스마스 캐럴』 5절, 『올리버 트위스트』 2장, 『황폐한 집』 4장, 『어려운 시절』 1부 2장, 『데이비드 코퍼필드』 11장을 따른다. 공장 경험은 성인이 된 디킨스의 회상을 포스터가 보존한 것으로 어린 시절 일기가 아니다. 소설 속 아이의 나이와 일을 작가의 매일 기록으로 읽지 않는다.

포스터는 친구이자 전기 작가로 부부 양쪽을 중립적으로 기록한 사람이 아니다. 1858년 6월 12일 성명과 나중에 공개된 아서 스미스 편지를 구별한다. 정신병원 이야기는 캐서린의 회상, 쿡의 1879년 기록, 후대 인용을 거쳤으며 실제 수용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한때 나를 사랑했다’도 케이트와 Storey를 거친 말을 Slater의 인용으로 참고한 것이지 캐서린의 자필 편지가 아니다.

영국도서관 Add MS 43689 목록은 1835–1867년 디킨스가 캐서린에게 보낸 136통과 케이트의 1899년 기증을 기록한다. 모든 원고를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목록 정보다. 1860년 9월 4일 편지의 ‘어제’에 따라 소각은 3일로 잡으며 받은 편지와 보낸 편지를 구분한다. 마지막 날은 포스터가 모은 기록, 6월 14일 장례와 이름·생몰일만 새긴 묘비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기록을 따른다.

와일드·톨스토이와의 비교는 언급한 작품과 기록에 한정하며 인물을 작가와 동일시하거나 자책으로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9절의 명시 이후 다리와 균열, 성냥갑과 몸짓은 상상이다. 역사 자료의 빈곳은 하이젠베르크 원리의 적용이 아니다. 독자도 상처받은 사람을 대신해 용서를 써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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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