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108 · 타자와 빈자리
레비나스, 얼굴
타자는 내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만이 아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이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얼굴은 윤리적 요구를 건넨다. 눈을 마주치면 폭력이 멈춘다는 보장은 아니다.
1. 포로수용소의 오 년
1940년 6월. 프랑스 렌. 프랑스군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었다.
군 통역관 가운데 한 사람은 서른네 살이었고 안경을 썼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프랑스 국적을 얻은 것은 1931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였다.
독일군은 그를 프랑스 군인으로 포로로 잡았다. 나중에는 독일로 보내 Stalag XI-B 관할 아래 가두었다. 전쟁포로라는 신분은 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보호막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는 신분은 아니었다. 나치는 유대인 포로를 따로 떼어 놓고 모욕하고 강제로 부렸다. 포로의 국적에 따라서도 대우는 크게 달랐다. 레비나스에게는 그 신분이 유대인 민간인들에게 가해진 추방과 절멸을 피하게 해 주는 한 겹의 보호가 되었다.
그동안 리투아니아에 있던 가족들에게는 다른 운명이 닥쳤다. 아버지. 어머니. 두 남동생. 모두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되었다. 1941년 독일군 점령 이후 리투아니아의 유대인들은 대규모 총살을 당했다. 코브노 게토는 학살과 강제노동과 이송을 겪으며 존속하다가 1944년에 끝내 파괴되었다.
레비나스는 포로수용소에 고립되어 있었다. 산림 작업을 비롯한 강제노동을 했다. 유대인 포로들은 다른 포로들과 구별되어 취급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살아 있는 사람을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만들 수 있었다. 제도는 그의 목숨을 남겨 두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그의 온전한 존엄을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곳에 거의 오 년 동안 갇혀 있었다. 거의 오 년. 약 천팔백 번의 낮과 밤.
그런 날들에도 그는 책을 읽었다. 프루스트를 읽고 철학을 읽고 노트를 썼다. 포로 시절의 수첩들은 훗날 별도로 출간되었다. 감금되어 있던 동안 발전시킨 사유는 1947년에 나온 『존재에서 존재자로』에도 들어갔다. 이것이 그의 첫 책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1930년에 후설을 연구한 박사논문을 출판했다.
그 길은 전쟁 전 히틀러주의에 관한 성찰에서 출발해 포로 생활을 지나 전후로 이어졌다. 경험이 완성된 답을 건넨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질문들을 더 이상 옆으로 밀어 놓을 수 없게 했을 뿐이었다.
차츰 또렷해진 그 질문을 이렇게 말해 볼 수 있다.
서양철학의 강력한 한 전통은 존재의 문제를 중심에 두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하이데거까지,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는 일이 다른 모든 질문에 앞서는 조건처럼 보였다. 레비나스도 바로 그 전통 안에서 배웠다.
그것은 철학의 가장 높은 질문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묻게 된다. 내가 당신을 이해하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나는 아직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당신을 분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여기 있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가. 이 질문은 내 지식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도 되는가.
중심은 존재가 아니다. 타자다.
이 말은 존재를 연구하면 반드시 나치즘에 이른다는 뜻이 아니다. 서양철학 전체가 살인을 명령했다는 뜻도 아니다. 레비나스가 중단시키려는 것은 다른 확신이다. 내가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도 내 설명 안에 잘 들어맞을 것이라는 확신. 누군가가 오직 내 세계의 한 부분으로만 나타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내 세계에 이의를 제기할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후의 작업에서 그는 철학을 거듭 그 질문 앞으로 데려왔다.
2. 집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했다. 레비나스는 오 년의 포로 생활에서 풀려났다. 서른아홉 살이었다.
자유가 돌아왔다. 그러나 예전의 삶이 자유와 함께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집은 어디에 있는가.
카우나스는 어린 시절의 도시였다. 그곳은 소련의 점령과 독일의 점령을 겪고, 격리와 총살과 이송을 겪었다. 제7요새, 제9요새. 도시 주변의 장소를 가리키던 이름들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묻힌 장소의 이름이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남동생. 그 구체적인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때 그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도시는 다시 세울 수 있다. 거리에는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린 그를 알던 사람이 식탁의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는 것은 아니다.
아내 라이사와 딸 시몬은 살아남았다. 친구이자 작가인 모리스 블랑쇼가 박해를 피하도록 도왔고, 딸은 수녀원에서도 보호받았다. 그들의 생존은 추상적인 제도가 저절로 작동한 결과가 아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레비나스는 파리로 돌아갔다. 아내와 딸을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 가족의 가장 가까운 이들을 잃었다. 동시에 아내와 딸과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들도 태어났다. 새 일상은 오래된 상실에 대한 보상금이 아니었다. 슬퍼하는 일과 살아가는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포로 생활에 관해 썼다. 「개의 이름, 혹은 자연권」에서 개 보비는 포로들을 반긴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동물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존엄은 더 이상 엄숙한 문구로만 남아 있지 않다. 사람이 거절하고 개가 건넨 인사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회상만이 아니었다. 『존재에서 존재자로』에서 『전체성과 무한』으로, 다시 1974년의 『존재와 다르게, 또는 본질의 저편』으로, 그의 생각은 계속 변했다. 마지막 책의 헌사는 살해된 가족들을 육백만 유대인 희생자와 증오의 다른 희생자들 가운데 기억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총수 속으로 삼켜지지 않는다. 헌사에는 가족들의 이름도 히브리어로 남아 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수백만이라는 숫자 앞에서, 이름은 구체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을 계속 그 자리에 있게 한다.
이 문장들에서 애도와 철학이 만난다. 부모와 형제를 논증의 재료로 바꾸는 일이 아니다. 철학이 인간을 말하면서, 실제로 살았던 그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논증은 죽은 이를 되돌려 주지 못한다. 다음 폭력이 멈추리라고 보장하지도 못한다. 다만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희생해도 된다고 선언할 때 물을 수 있다. 누가 당신에게 그 권한을 주었는가. 당신의 목적보다 먼저, 당신의 계산보다 먼저, 이 사람은 이미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는 사십 년이 넘도록 이 질문을 써 나갔다.
3. 얼굴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에는 얼굴이라는 개념이 있다. 프랑스어로는 비자주, visage다.
이목구비를 더한 것이 아니다. 상대의 눈을 몇 초 동안 바라보라는 기술도 아니다. 타자가 내 앞에 나타나고 나에게 요구를 건네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을 관찰하고 묘사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묘사의 부속물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내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그에 관해 내린 결론을 중단시킬 수 있다.
이를 선명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은 너무 기초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더 기초적인 무언가를 가져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자.
낯선 사람을 본다. 나이, 옷차림, 표정, 직업에 대한 짐작. 정보가 빠르게 정리된다. 서른 살쯤 된 남자, 지하철을 기다리는 것 같다. 분류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분류하고 나면 그 사람에 관해 다 알았다고 믿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당신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당신이 잠깐 멈추어, 방금의 범주들이 그 사람 자체를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것은 얼굴이라는 개념에 다가가는 입구이지, 일정한 반응이 반드시 일어나는 심리실험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자신이다. 서른 살쯤 된 남자라는 말은 정확한 묘사일 수 있지만 그 사람 전부는 아니다. 의사는 나이와 병력과 검사 결과를 알아야 한다. 그런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자료 한 묶음뿐이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의 그는 누구인가. 당신의 말로 완전히 묘사할 수 없는 존재다. 자기 내면을 지니고, 자기 과거와 미래를 지니고, 자기 고통과 기쁨을 지니고, 이 순간을 자기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람. 당신과 닮았지만 당신의 것은 아닌 존재다.
그 ‘당신의 것이 아니다’가 중요하다. 그는 당신의 연장이 아니다. 당신의 대상이 아니다. 당신의 도구가 아니다. 집어 들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이다.
그 사실이 얼굴을 통해 나에게 드러난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단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일반론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한 사람 앞에서 내 자유가 질문을 받는 일이다. 그 사람은 쓸모가 있거나 사랑스럽거나 똑똑하다는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만 제거당하지 않을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다. 레비나스는 이 요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나를 죽이지 말라.”
그것은 윤리적 요구이지 얼굴 근육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아기, 노인, 낯선 이, 적, 사랑하는 사람. 이들이 사람으로 인정될지를 내 취향이 결정하지 않는다. 보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거나 나를 마주 바라볼 수 없는 사람도 그래서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니다. 눈 맞춤이나 인지 능력을 검사하는 입장시험은 여기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기가 아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적’, ‘이단자’, ‘장애물’, ‘부수적 피해’. 이런 이름표는 눈앞의 생명을 비켜 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선전과 명령과 거리도 폭력을 쉽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살인자가 피해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얼굴이 총알을 막아 주지는 않는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저항은 바로 총보다 더 강한 힘이 아니다. 연약한 사람은 나를 막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내 폭력을 물음 앞에 세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해서는 안 된다’가 ‘해도 된다’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는 윤리의 출발점을 뒤집어 놓는다. 윤리는 자족적인 규칙부터 마련한 다음 눈앞의 사람을 어디에 배치할지 찾는 데 그칠 수 없다. 규칙이 계속 그 사람의 질문을 받게 해야 한다. 타자는 체계가 작동을 마친 뒤에 덧붙여 고려하는 부가 항목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과 권리와 제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앞의 사람 말고도 제삼자가 있다. 똑같이 보호받아야 할 다른 사람들이 있다. 충돌하는 요구를 비교하고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려면 여전히 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얼굴은 누구를 위해 판단하는지 일깨운다. 판단의 의무를 없애 주지 않는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윤리가 제일철학이라고 말한다. 지식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지식만으로는 다른 사람을 무제한 처분할 권한을 스스로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우선성은 윤리적 우선성이다. 모든 사람이 시간 순서상 먼저 만남을 경험하고 나중에 생각을 배운다는 주장이 아니다.
4. 하이데거
1928년과 1929년, 레비나스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 있었다. 스물두 살이었다. 그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프라이부르크로 간 것은 후설에게 현상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열일곱 살 위의 철학자가 그 학문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마르틴 하이데거였다.
레비나스는 그의 강의를 듣고, 1927년에 나온 『존재와 시간』을 읽었다. 그 책의 영향은 깊었다. 책장에 꽂아 둘 하나의 학설이 아니었다. 인간이 세계 속에서 사는 일, 시간과 관계 맺는 일, 죽음을 대하는 일을 새롭게 보게 하는 사유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뒤 그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중요한 해석자가 되었다. 글쓰기와 번역을 통해 그 사유의 길을 프랑스 철학계의 논의 속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1933년이 왔다. 그해 5월 27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 취임 연설. 하이데거가 연단에 섰다. 그는 이미 5월 1일에 나치당에 가입했다.
연설의 제목은 「독일 대학의 자기주장」이었다. 그는 학식 있게 말했다. 그리스어를 인용했다. 지식 봉사, 노동 봉사, 군사 봉사라는 세 가지 봉사를 이야기했다. 독일 대학이 독일 민족의 운명에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철학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나치 정권에 자기 권위를 보태고 있었다.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 연작의 다리를 빌려 그 선택을 상상해 보자. 이어지는 길은 전기에 기록된 내면의 숙고가 아니다. 우리가 그리는 우화다.
다리의 끝은 늘 멀리 있다. 그곳에 칸트가 있다. 하지만 다리만이 유일한 방향은 아니다. 반대편에도 길이 나 있다. 그 길에도 사람들이 걷는다.
다리 밖의 길에서는 차이가 장애물이 되고, 제거가 해결책이 된다. 그 길을 걷는 이들은 신앙을 지킨다고, 명령을 수행한다고, 역사적 사명을 완수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명분도 피해를 입는 사람을 대신해서 대답할 수는 없다.
그 길은 누구든 수단으로 환원될 수 있는 곳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지는 것은 ‘당신은 내 도구도, 내 장애물도, 치워 버릴 물건도 아니다’라고 인정하려는 마음이다.
그곳을 수단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거기서 관계는 점점 이용과 명령과 제거의 모습을 띤다. 그 길을 선택한 사람도 같은 권력에 삼켜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운명이 자동으로 집행하는 정의가 아니다. 가해자가 빠져나갈 수 있다. 피해자가 무고하다고 해서 상처를 입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삶의 이러한 악화를 날씨로 그린다. 끝없이 쏟아지는 폭풍우로.
하이데거는 걷다가 멈췄다. 칸트를 읽은 사람이었다. 어려운 철학도 설명할 수 있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식이 그를 대신해서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디뎌 주지는 않았다.
그가 잠깐 멈췄다. 길 위의 한 사람이 오른팔을 높이 들어 서둘러 오라고 손짓했다. 그 인물에게 특정한 이름은 없었다. 시대마다 되풀이되는 초대를 나타내는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합류하면 성가신 사람들의 말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된다. 팔은 높이 들려 있었다. 망설일 필요 없는 길을 가리키기라도 하는 듯했다.
하이데거는 팔을 든 사람과 다리 사이에 서 있었다. 망설였다.
그는 구체적인 유대인들을 알고 있었다. 스승 후설, 제자 레비나스. 그들은 책 속의 추상적인 낱말들이 아니었다. 그들을 안다는 사실도 그의 공적 선택을 막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 팔이 올라간다. 실제의 그가 이렇게 망설였는지는 모른다. 그가 어디에 가입했는지는 안다.
역사적 사실로 돌아가자. 하이데거는 1934년에 총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나치당에서는 탈퇴하지 않았다. 전쟁 뒤에도 자신의 정치적 책임에 충분히 응답하는 공개적 반성과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존재와 시간』의 후설 헌사는 1941년 판에서 사라졌다. 사상적 계승과 정치적 선택은 저절로 같은 방향을 유지해 주지 않았다.
그의 개인적 철학 일기인 『검은 수첩』은 2014년부터 공개 출간되었다. 그 안에는 사유의 구조에 들어 있는 반유대주의적 진술들이 있다. 시대에 휩쓸린 사람이 잠시 내뱉은 말만이 아니다. 생각하고 다듬은 입장이다.
여기서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하이데거는 철학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존재와 시간』은 20세기의 수많은 논의를 바꾸었다. 기술과 언어와 진리에 관한 성찰도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명제가 옳다는 뜻은 아니다. 더구나 지적 성취로 정치적 책임을 상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나치 선택 역시 실제였다. 당원 가입, 총장 연설, 수첩의 반유대주의적 생각들은 그저 그런 시대였다는 말로 지워지지 않는다. 두 사실은 같은 사람에게 속한다. 같은 삶에서 일어났다. 이것이 그의 운명이다.
그 선택은 판단할 수 있고 판단해야 한다. 공적인 행위는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 한 개인의 사사로운 길에 불과하지 않다. 그러나 행위를 판단하기 위해 그 사람을 한 단어로 줄일 필요는 없다. 그의 사유를 인정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
다리 밖의 폭풍우는 누구든 버려도 되는 것이 될 수 있는 관계의 비유다. 현실의 피해자들이 짊어진 것은 비유보다 훨씬 무겁다. 그들의 고통을 철학자 머릿속의 드라마로 바꾸어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의 선택이다. 그것이 그 비의 날씨다.
그리고 레비나스. 1928년 프라이부르크 세미나에서 경의를 품고 주의 깊게 듣던 그 유대인 학생은, 평생의 철학적 작업으로 이 선택에 응답했다.
그는 하이데거를 비판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질문이 가하는 압력 속에서 계속 생각했다. 표지판 하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 사유의 길에서 충분한 자리를 얻지 못했던 것을 물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레비나스는 그 물음 앞에, 타자가 나에게 건네는 윤리적 요구를 놓는다. 앞의 질문에서는 나의 처지, 나의 가능성, 나의 유한성이 중요하다. 그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오직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 다른 사람을 이해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내 죽음과 마주하는 일과 다른 사람의 죽음에 흔들리는 일은 같은 경험이 아니다. 레비나스는 두 번째 경험의 무게를 가져온다. 내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뿐 아니라, 저 사람의 죽음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모든 명제를 기계적으로 뒤집는 일이 아니다. 존재를 중심에 두면 반드시 나치를 선택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는 철학에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깊은 사유가 있는데도, 왜 한 사람이 타자를 저버리는 일을 막지 못할 수 있는가.
그의 대답은 철학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었다. 생각 자체가 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각은 윤리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어디로 옮기는가. 타자의 얼굴로.
5. 무한한 책임
레비나스의 윤리에는 처음 들으면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타자가 내게 요구하는 책임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책임이 아니다. 능력이 닿는 범위의 책임이 아니다. 비례하는 책임이 아니다. 무한하다.
무슨 뜻인가. 얼굴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응답으로도 완료되지 않는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 준다. 아픈 사람을 돌본다. 모두 응답이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그 얼굴의 요구를 영원히 끝내 주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한 뒤에도 아직 빚이 남아 있다. 지나치게 들리고, 두렵게 들릴 수도 있다. 레비나스는 책임을 가벼운 말로 쓰지 않았다. ‘인질’이라는 무거운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입장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척할 필요는 없다.
그가 먼저 거부하는 것은 상대가 서명해야만 효력이 생기는 계약으로 책임을 이해하는 태도다.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 나중에 같은 만큼 돌려줄 것이라는 증거부터 요구할 수는 없다.
한 번 도와준 일이 영구적인 ‘다 갚았다’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은 복잡하다는 사실에서 무한한 청구서를 계산해 내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부름을 나 자신에 대한 만족으로 완전히 청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기서 무한이라는 말의 뜻이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실패하면 죄인이라는 말도 아니다. 그 요구의 구조 자체가 열려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닫히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현실의 사정으로 돌아가 판단해야 한다. 돌보는 사람은 쉬어야 한다. 해를 입는 사람은 떠날 수 있다.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계를 세운다고 상대를 사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레비나스 자신도 제삼자를 말한다. 나와 눈앞의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쩌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책임은 비교와 정의와 법과 제도를 요구한다. 한 개인의 요구를 무한히 충족시키라는 뜻이 아니다.
병동에 빈 침대가 하나뿐이다. 내가 먼저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을 영원히 밖에 둘 수는 없다. 배분에는 규칙이 필요하다. 그 규칙도 침대에 누운 사람을 번호 하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과, 그럼에도 내려야 하는 공적 판단. 두 끝 사이의 긴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모든 절차를 지켰다는 말로 질문을 끝내기가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그의 힘이다. 동시에 무한한 책임이 가장 기꺼이 돌보는 사람들로부터 무한히 가져가는 방식으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을 이유도 있다.
다리는 한 사람을 짓눌러 다른 사람의 발판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타자에게 자리를 남긴다는 것은 또 다른 수많은 타자가 있음을 감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한한 책임은 자신의 고결함을 증명하는 훈장이 아니다. 마음대로 꺼 버릴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6. 유대교
레비나스는 철학만 읽지 않았다. 평생 탈무드도 읽었다.
탈무드에는 미슈나와 그것을 둘러싼 토론들이 들어 있다. 법과 이야기와 해석과 논박이 함께 있다.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은 채 끝없이 이어지는 주석만은 아니다. 판단을 내리면서도 다른 많은 의견을 보존한다.
1960년부터 레비나스는 프랑스어권 유대인 지식인 모임에서 탈무드 강독을 해 나갔다. 여러 해에 걸쳐 지속된 이 작업은 나중에 여러 권의 책으로 묶였다.
탈무드는 그의 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에게 읽기란 오래된 한 문장을 오늘의 구호로 바꾸는 일만은 아니었다. 다른 해석자의 목소리가 내 확신을 끊고 들어올 수 있었다.
어떤 토론에는 최종적인 판정이 되지 못한 의견도 보존되어 있다. 후대의 독자는 결론이 어떤 반대에 답해야 했는지 볼 수 있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의견의 차이를 기억에서 지우는 일은 같지 않다.
그런 독서에서 하나의 윤리적 연습을 들을 수 있다. 내 해석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질문도 여전히 거기 있다. 그 질문이 내 판단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대신 더 신중히 말하게 할 수 있다. 모든 목소리를 합치면 저절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지막 발언을 내 목소리가 독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견을 사라지게 만드는 일과 반대다. 하지만 그래서 전통 전체가 권위와 배제와 최종 판단이 전혀 없는 완벽한 세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전통의 완벽함을 지어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흩어져 사는 경험, 박해, 소수자로 사는 일은 유대 역사의 중요한 경험이다. 안전하게 머물 곳에 대한 요구를 절박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어느 민족에게도 다른 이를 영원히 해치지 않으리라는 보증을 자동으로 주지는 않는다. 상처받은 사람도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레비나스는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그의 철학과 구체적인 정치 판단 사이의 관계가 늘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1982년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 이후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는 팔레스타인인이야말로 이스라엘인의 타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적,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들, 정의의 판단 쪽으로 향했다.
그 대답은 오랜 비판과 논쟁을 불러왔다. 아무 균열 없는 보편적 포옹으로 다시 써 줄 수는 없다. 반대로 그가 어떤 민족은 본래 얼굴이 없다고 선언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어려움은 더 날카롭다. 구체적인 사람이 적으로 규정될 때, 취소할 수 없다던 그 요구는 정치적 판단 속에서 얼마나 남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열린 채로 두고 그를 계속 읽을 수 있다. 얼굴에 관해 썼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상황에서 얼굴을 온전히 보았으리라 단정하지 않으면서. 위대한 사유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내놓은 시험을 받아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남길 것. 특히 내가 그를 해칠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요구는 읽는 사람뿐 아니라 쓴 사람에게도 향한다.
7. 목적의 왕국
이제 한 가지를 말할 때가 되었다. 앞의 세 편에서 아직 정면으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줄곧 다리의 가장 먼 끝에 세워 두었지만, 그가 선 곳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이제 말한다. 그곳은 목적의 왕국이다.
칸트는 1785년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이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성적 존재들이 공통의 법칙을 통해 연결되고, 각각은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받으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만 취급되지 않는다. 의무와 규칙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법칙이 함께 따를 만한 것인지 묻는다.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할 것.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 것.
그 왕국에서도 사람들은 협력하고 서로 돕고 서로에게 봉사한다. 모든 유용한 관계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 전체를 그가 나에게 얼마나 쓸모 있는지로 줄이는 일을 거절한다.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역사가 반드시 따를 것이라는 보증이 붙은 시간표도 아니다. 현실을 판단할 방향을 남기는 것이다. 제도가 효율적이 될수록 더 물어야 한다. 그 제도는 누구를 생략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살았던 교수는 철학에 그 방향을 남겼다. 우리가 그를 다리 먼 곳에 세우는 것은 이후의 모든 사상가가 그에게 출석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각의 삶이 이 질문을 비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놓은 표지는 이백 년 넘게 멀리 서 있다.
『Great Lives』의 백여덟 삶은 여러 시대를 건넌다. 히파티아, 토마스 아퀴나스, 베르그송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다가온다. 다른 신앙들과 함께 있는 앎,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사유, 박해에 응답하는 한 사람. 누구도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칠 필요는 없다. 그들이 하나의 학설에 속한 것도 아니다.
레비나스는 이 질문에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무게를 더한다. 칸트는 사람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레비나스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그 사람이 벌써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묻는다.
두 생각은 서로를 밝힐 수 있다. 같은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자율과 보편 법칙과 이성적 주체들의 공동 입법을 강조한다. 레비나스의 무한한 책임은 ‘당신도 내게 똑같이 빚지고 있다’를 내 응답의 선행조건으로 삼기를 거부한다. 이 비대칭성은 지워서는 안 된다.
한쪽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의적인 의지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깨운다. 다른 한쪽은 우리의 자기충족을 중단한다. 책임이 늘 내 사전 동의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차이는 남는다. 두 사람을 같은 다리에 놓는 일은 이 연작의 해석적 비교이지 철학사의 등호가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공통의 방향은 이것이다. 한 사람의 삶을 다른 사람의 목적만을 중심으로 남김없이 배치할 수는 없다.
그곳에는 그곳의 날씨가 있다. 폭풍우가 아니다. 맑은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이다.
병과 죽음과 상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는 충돌하고 어려운 판단도 필요할 것이다. 서로에게 자리를 남긴다고 아무도 다치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해가 생겼을 때에도 상대가 거절할 수 있고, 바로잡고 책임을 묻는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 날씨는 선행과 맞바꾸는 상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고 싶은 삶의 조건을 그린다. 모두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만 묻는다면 공기는 좁아진다. 누군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도 경청받을 자격을 잃지 않는다면, 조금의 공간이 열린다.
이것은 산문의 날씨이지 역사가 반드시 나아진다는 기후 법칙은 아니다. 칸트는 목적과 법칙으로 쓴다. 레비나스는 얼굴과 책임으로 쓴다. 우리는 바람과 비를 빌려 그 질문을 일상의 감각 속에 돌려놓으려 한다.
세대마다 자기 언어로 다시 말한다. 모든 세대가 다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8. 다리
상상 속의 다리로 돌아가자. 레비나스가 다가왔을 때는 밤이었다. 키가 크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어두운 정장을 입었다. 우리는 노년의 고요함과 함께 그를 걸어오게 했다. 얼마나 많은 얼굴이 그 앞을 지나갔던가. 그래도 보는 일은 그가 끝냈다고 여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다리 중간에 도착했다. 히파티아가 있었다. 여전히 손에 아스트롤라베를 들고 있었다. 아퀴나스는 건너편에 빈손으로 서 있었다. 베르그송은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비나스도 베르그송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에는 히파티아에게, 아퀴나스에게. 아주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다리 중간에서 자리를 찾아 섰다.
먼 끝에 칸트가 서 있었다. 그날 밤은 전보다 조금 더 또렷했다. 윤곽이 보였고 대략적인 몸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다가오지 않았다. 다가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 있었다.
다리 반대편, 다리 밖으로 이어지는 길 위로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번개. 그 길을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가장 빠르게 걷던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너무 멀리 가서 폭풍우 깊숙이 들어간 뒤였다.
가까운 길에는 교수 가운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멈췄다가 걷고, 다시 멈췄다. 다리 쪽은 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하이데거였다.
길 위의 한 사람이 오른팔을 높이 들어 계속 오라고 손짓했다. 어둠 속에는 읽을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 합류하라고 재촉하는 움직임만 있었다.
하이데거는 팔을 든 사람과 다리 사이에 섰다. 망설였다. 레비나스를 바라보았다.
레비나스는 다리 중간에 있었다. 하이데거의 책임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선언하지도 않았다. 다리에는 다시 타자에게 응답할 자리를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그를 데려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먼저 용서하라고 요구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하이데거는 몇 초 동안 레비나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오른팔을 높이 든 사람을 향해 걸었다.
조금 느리게 걸었다. 걸음마다 망설였다. 그래도 걷고 있었다.
그 길에는 폭풍우가 쏟아졌다. 비가 이미 그에게도 내리기 시작했다. 레비나스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아퀴나스가 건너편에서 걸어와 레비나스 곁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하이데거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쪽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히파티아도 한 번 바라보았다. 손에 든 아스트롤라베의 각도는 변하지 않았다. 베르그송은 조금 더 가까이 서 있었다. 그 역시 하이데거 쪽을 보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비는 계속 내렸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선택을 자기가 바늘을 돌릴 수 있는 시계처럼 여기지 않았다.
다리 중간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다음 레비나스가 몸을 돌렸다. 히파티아의 손에 있는 아스트롤라베가 바람 속에서 달빛을 받았다. 달빛은 온화했다.
다리의 먼 끝, 칸트가 선 곳에는 바람이 불었다. 부드럽고 느린 바람이었다. 반대편 길에는 폭풍우가 쏟아졌다. 중간에서는 바람이 더 잔잔했고 달빛이 다정했다.
레비나스는 히파티아 곁으로 가서 섰다. 무언가 한마디를 했다. 히브리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어였을지도 모른다. 둘만 알아듣는 어떤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히파티아가 살짝 웃었다. 달빛이 눈금에 더 정확히 닿도록 아스트롤라베를 기울였다.
건너편에서 아퀴나스가 조용히 무언가 말했다. 라틴어였다. 베르그송은 절반을 알아듣고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늘 먼 곳을 보던 사람, 다리의 가장 먼 끝에 서 있던 사람은 히파티아를 보고 아퀴나스를 보고 베르그송을 보았다. 이번에는 레비나스를 보고 있었다.
레비나스는 알아차리고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만났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의 부속물이 되지 않았다. 먼 끝의 사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비나스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각각 자기 방향으로 돌아갔다. 칸트는 계속 먼 곳을 바라보았다. 레비나스는 계속 다리 중간을 바라보았다.
다리 밖의 길에서 하이데거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폭풍우가 내렸다. 다리 위의 달빛은 여전히 온화했다.
레비나스는 서 있었다. 부모와 두 남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와 딸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삶은 이어졌고 노년에도 새로운 상실이 찾아왔다. 쓰고 가르치고 경전을 읽는 일이 세계에서 폭풍우를 없애지는 못했다. 이 다리의 누구도 모든 일을 완수한 뒤에야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맞은편에 있는 것은 무한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한 일은 유한했다. 그 유한함을 핑계로 맞은편에서 오는 부름을 꺼 버리지는 않았다.
읽기 안내와 출처
포로 생활과 저술 연대는 레비나스 연구소, 1944년까지 존속한 코브노 게토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자료를 참조했다. 1974년 헌사에는 가족의 이름이 있다.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첫 저서가 아니다.
얼굴과 제삼자는 생리적 인식이나 한 돌봄 제공자에 대한 무한 착취가 아니다. 1982년 인터뷰는 적과 정의의 논의 속에서 읽으며 팔레스타인인에게 본래 얼굴이 없다는 명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의 자기 진술은 면책이 아니다.
다리와 갈림길, 날씨, 시대를 넘는 만남과 대화는 전기 기록이 아닌 문학적 상상이다. 인물 비교는 저자의 읽기다. 가까운 질문이 같은 학설을 뜻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행위에 대한 판단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Institut d’études lévinassiennes — biography · USHMM — The Holocaust in Kovno · Emmanuel Levinas — scholarly overview and primary bibliography · Levinas’s Ethical Politics — the 1982 interview · Heidegger — Der Spiegel interview (self-account) · University of Freiburg — Edmund Husserl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