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 108 · 타자와 빈자리
조식, 소유할 수 없는 것
칠보시의 전설, 낙신의 작별, 조표에게 보내는 긴 시. 제약받던 왕족은 작위만으로 다 말할 수 없는 목소리를 남겼다.
하나, 일곱 걸음
조식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들어 보았을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조식이 죽은 뒤 약 두 세기가 지나 편찬된 《세설신어》에 실려 있다. 당시 조위 궁정에서 남긴 현장 기록은 아니다. 지금부터 떠올릴 대전과 발소리와 침묵은 전승을 다시 이야기하기 위한 장면이다. 사료에 기록된 어느 하루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전을 상상해 보자. 조비는 이미 황제이고, 조식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한 사람은 명령이 나오는 자리에 있다. 다른 사람은 대답해야 한다.
두 사람은 변 부인에게서 태어난 형제였다. 조식이 조비보다 다섯 살 어렸다. 같은 아버지, 같은 어머니, 함께 자란 세월. 이제 그 가까움 사이로 황제와 신하의 거리가 들어와 있다.
조비는 눈앞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알아 온 동생이다. 아버지 조조는 조식의 재능을 특별히 아꼈으며, 한때 그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생각도 했다. 이 이야기의 날카로운 끝은 바로 그 익숙함 속에 있다. 네가 누구인지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다.
결국 아버지는 동생을 택하지 않았다. 선택된 사람은 자신, 조비였다.
하지만 이 얼굴은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동생의 재능은 황제의 눈에 위협이 되어 있다.
그가 명령했다.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라. 짓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조식이 일어섰다.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일화 속에서는 일곱 걸음을 다 걷기 전에 시가 나온다.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네 구절을 옮기면 이렇다.
“콩을 삶느라 콩대를 태우니, 콩은 솥 안에서 운다.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리 급히 나를 삶아 대는가.”
네 구절, 한자 스무 자. 《세설신어》에 실린 것은 여섯 구절이고 표현에도 차이가 있다. 이처럼 짧은 시에도 전해져 온 역사가 있다.
솥 아래에서 타는 것은 콩과 같은 식물에서 나온 줄기다. 솥 안의 콩은 울고 있다.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자랐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서둘러 나를 괴롭히는가.
잠깐 대전이 조용해졌다.
일화에 따르면 조비는 크게 부끄러워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날 수 있다. 조식의 실제 삶은 그럴 수 없다.
조조가 죽은 220년 이후 조식은 조비와 조예, 두 황제의 시대를 살았다. 작위는 오르내렸고 봉지는 바뀌었다. 조정에서는 감시와 의심이 따라왔다. 모든 이동이 강등이었던 것은 아니며, 줄곧 같은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왕족의 높은 신분이 그가 원하던 정치적 활동의 여지를 주지는 않았다.
232년에 그는 죽었다. 사서에서는 마흔한 살, 오늘날 나이로는 마흔 안팎이었다. 총애받던 소년에서 거듭 청원하는 제후가 되기까지, 그 삶은 길지 않았다. 기다림이 그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칠보시는 형제가 서로를 핍박하는 일을 한순간에 응축한다. 이제 읽으려는 것은 그 순간 너머의 긴 날들이다. 남이 정해 준 자리에서 살면서도, 어떻게 자기 목소리가 계속 나오게 할 것인가.
둘, 후계자 다툼
조비가 왜 동생을 내버려 둘 수 없었는지 이해하려면 두 사람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조조에게는 아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조비와 조식이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중요한 후보가 되었다. 맏아들 조앙은 이미 전사했다. 조비에게는 나이가 많다는 이점이 있었고, 조식에게는 재능으로 얻은 총애가 있었다. 태어난 순서만 확인하면 아무 논란도 남지 않는 문제는 아니었다.
왜 그토록 총애했을까.
조식은 뛰어났다. 아버지조차 놀랄 만큼 뛰어났다.
《삼국지》는 그가 열 살을 조금 넘었을 때 이미 책을 널리 읽고 글을 잘 지었다고 전한다. 아버지는 글을 보고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준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 조식은 눈앞에서 시험해 보아도 좋다고 했다. 동작대가 완성되자 아들들이 올라가 부를 지었는데, 그는 빠르게 써 내려가 조조를 놀라게 했다. 재능은 후대가 붙여 준 명성만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이미 보았던 것이었다.
그 재능에는 성정도 얽혀 있었다.
전기는 조식이 위의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술을 절제하지 않았다고 쓴다. 한편 조비는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잘 관리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자신의 기호를 쉽게 드러냈고, 다른 사람은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하는지 더 잘 알았다. 그러나 한쪽에 진솔하다는 이름을, 다른 쪽에 계산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정치적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아들의 글을 좋아하는 것과 그 아들에게 권력을 맡겨도 된다고 믿는 것은 완전히 같지 않다.
조식에게는 지지자들이 있었고 조조도 여러 차례 망설였다. 아버지의 편애가 신하와 계승과 통치의 문제가 되었다.
조식은 실제로 아버지의 신뢰를 손상하는 일을 했다. 수레를 타고 전용 도로를 달렸으며 허락 없이 사마문을 열었다. 그저 제멋대로인 젊은이의 외출이었다고만 할 수 없다. 금령이 어겨졌고, 담당 공거령이 처형되었으며, 조조는 제후들에게 가하는 제한을 더 엄하게 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이미 다른 사람의 목숨에 닿아 있었다.
219년 관우가 조인을 포위했을 때, 조조는 조식에게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가게 하려 했다. 전기에 따르면 조식은 너무 취해 명령을 받지 못했고, 그 임명은 철회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두 해 앞선 조비의 후계자 지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사건의 순서는 중요하다.
217년, 조비가 위왕의 세자로 세워졌다.
220년 조조가 죽었다. 조비는 위왕을 계승했다. 몇 달 뒤 마지막 한 황제의 퇴위를 강요하고 위 왕조를 세웠다.
조비는 황제가 되었다. 조식은 그 자리에 오를 뻔한 사람에서 황제의 동생이 되었다. 더구나 한때 그 황제를 대신할 뻔했던 동생이었다.
조식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그가 이후에 받은 억압을 인정할 수 있다. 앞의 일이 뒤의 일을 자동으로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사실은 정치적 역할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뛰어난 사람도 통제력을 잃고 상황을 잘못 판단한다. 재능은 매번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보증서가 아니다.
편지와 표문에는 진지하게 일하고 공을 세우고 싶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를 모두 아버지의 사랑만을 원했다는 이야기로 바꿀 근거는 없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으면서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을 수 있다. 하나의 바람만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람보다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후계자 다툼이 남긴 위치였다. 그가 나중에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든, 황제를 대신할 수 있었던 동생은 이미 황제의 정치적 기억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 뒤로는 자신을 설명하는 일조차 위험해졌다.
셋, 황초
220년, 조비는 연호를 황초로 바꾸었다.
황초 2년인 221년, 조식은 안향후로 강등되었다가 같은 해 견성후로 옮겨 봉해졌다. 222년에는 견성왕이 되었다. 명칭은 달라졌다. 그러나 자기 삶을 얼마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는 명칭만으로 알 수 없다.
후에서 왕이 되는 것은 실제 승진일 수 있다. 봉지를 바꾸는 데 매번 같은 동기가 있었다고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영예와 이동이 황실 친족을 향한 조정의 경계를 없애지는 않았다.
감독하는 사자가 있으면 행동은 언제든 정치적 증거로 바뀔 수 있다. 221년 관균은 조식이 술에 취해 오만하게 굴고 사자를 위협했다고 고발했다. 그 뒤로 처벌과 강등이 이어졌다. 편지 한 장과 걸음 하나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상상하지 않아도 위험은 충분히 분명하다. 자기 삶을 설명하는 권한이 자기에게만 있지 않았다.
그는 형에게, 나중에는 조카에게 표문을 올렸다. 군사를 이끌고 싶었다. 나라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재능을 시와 부 밖에서도 쓰고 싶었다. 대우에 칭찬과 영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바라던 활동의 폭은 허용된 자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부양받는 제후에게는 녹봉과 저택과 시중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이점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와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참여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황실 친족의 관리에서 한 가지 논리가 드러난다. 지위를 주면서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죽일 필요는 없다.
매일 일어나고 먹고 책을 읽도록 두면서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실제로 협의할 수 있는 문제로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삶이 곧 죽음과 같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살아가는 데 중요한 한 부분이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손에 잡혀 있다.
조조의 죽음과 조식의 죽음 사이에는 열두 해가 있었다.
침묵만 있었던 열두 해는 아니었다.
그는 한 가지를 했다. 썼다.
제한된 각각의 봉지에서 계속 썼다. 시를 썼다. 부를 썼다. 황제에게 올리는 공식 글인 표를 썼다. 쓰는 일로 자신이 사라지지 않게 했다.
많은 글이 황제에게 도달해야 했다. 감사, 진정, 등용의 청원. 그 문장들은 위험한 읽기를 견뎌야 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자신을 위협으로 여길 수도 있는 사람에게 글을 쓰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좁은 곳을 지나는 셈이었다.
시와 부에는 다른 목소리가 머물 수 있었다. 표문은 반드시 거짓이고 시에는 꾸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사람이 슬픔과 갈망과 분노에 서로 다른 글의 자리를 줄 수 있었다. 훗날 그가 볼 수 없는 독자들도 그 글을 통해 그에게 다가올 것이다.
조정은 그에게 자리를 정해 주었다. 그의 글에는 그 자리만 남아 있지 않았다.
넷, 낙수
《낙신부》의 서문은 이야기를 황초 3년, 222년, 수도에서 봉지로 돌아오는 길에 놓는다.
수레가 멈춘다. 낙수를 지나는 나그네가 쉰다.
낙수는 낙양 남쪽으로 흐르는, 그리 크지 않은 강이다. 중국의 전통 설화에는 이 강의 여신 복비가 등장한다. 전설 속 복희의 딸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부의 세계로 들어간다. 화자가 여신을 만난다는 것이 역사상의 조식도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러나 글은 불가능한 만남이 독자 앞에서 천천히 일어나게 한다.
먼저 화자는 물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놀라 마부에게 묻는다. 마부는 저 모습이 낙수의 여신 복비가 아니겠느냐고 한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모습이 익숙한 여정을 중단시킨다.
그는 다시 본다.
부는 그 시선에 긴 언어를 바친다. 그녀의 모습은 이렇게 그려진다.
“놀라 날아오르는 기러기처럼 가볍고, 헤엄치는 용처럼 유연하다. 가을 국화처럼 빛나고 봄 소나무처럼 무성하다. 때로는 엷은 구름이 달을 가린 듯, 때로는 바람이 눈을 휘몰아치는 듯하다.”
놀란 새에서 용으로, 꽃과 나무에서 구름과 눈으로 이미지가 옮겨 간다. 어느 하나의 비유도 그녀를 붙잡아 두지 못한다. 모두 일상의 척도를 넘어, 여신의 모습을 인간 너머의 영역으로 밀어 올린다.
움직임은 이렇게 쓴다.
“물결 위를 가볍게 걷는데, 비단 버선에서 먼지가 인다.”
가벼운 발걸음은 수면에 거의 닿지 않는 듯하다. 비단은 몸에 속하면서도 인간의 몸이 지닌 무게를 따르지 않는다. 물결, 가벼운 걸음, 비단, 먼지. 좀처럼 정지시켜 그릴 수 없는 한 획이다. 몸의 이미지와 인간에게 속하지 않는 움직임이 같은 문장 안에 있다. 크기와 비례를 재어 다 설명할 수 있는 초상이 아니다.
부 속의 나그네는 그녀를 바라본다.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는다.
그는 끌린다. 물결을 건너 마음을 전하고 옥 장식을 선물하고 싶다. 그녀도 응답한다. 머무름과 망설임, 몸짓과 말로 응답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의심과 예법, 인간과 신의 차이가 남아 있다. 서로 끌린다는 말 하나로 거리가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신이고 그는 사람이다.
부의 뒷부분은 이별이다. 물 위에 떠나는 행렬이 펼쳐진다. 신령, 수레, 구름. 헤어짐은 화려하면서도 아득하다. 나그네는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작별의 말에서 여신이 직접 이야기한다.
“사람과 신의 길이 다름을 한스러워하고, 한창인 때를 함께하지 못함을 원망한다. 비단 소매를 들어 눈물을 가려도 눈물은 옷깃으로 흘러내린다. 아름다운 만남이 끝나고 한 번 떠나면 서로 다른 곳에 있어야 함을 슬퍼한다. 사랑을 나타낼 작은 정표로 강남의 빛나는 구슬을 드린다. 어두운 깊은 곳에 숨어 살아도 오래도록 내 마음을 그대에게 보내리라.”
소매를 들어 눈물을 가리는 사람은 그녀다. 구슬을 바치는 사람도, 마음을 보내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도 그녀다. 남성의 시선 아래 묘사되는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부는 그녀 자신의 슬픔과 작별에 목소리를 준다.
그녀가 떠난 다음, 나그네는 곧바로 평온하게 길을 이어 가지 않는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찾고, 밤에도 잠들지 못한다. 마침내 고삐를 잡아 말을 몰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맴돌며 쉬이 떠나지 못한다.
부가 끝난다.
천팔백 년 동안 독자들은 계속 물었다. 그가 쓴 것은 여신뿐인가.
그녀에게서 갈망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존재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독해는 부에 담긴 움직임과 목소리와 거리에서 자라야 한다. 처음부터 사실은 그녀를 쓰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대대로 주석가들은 다르게 읽었다. 어떤 이는 여신이 조비의 아내인 견후이며, 조식이 젊은 시절 그녀를 사랑했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은 문학 비평사에서 활발하게 살아왔지만 강한 증거는 없다. 어떤 이는 여신을 조식의 정치적 이상이라고 읽는다. 재능을 펼칠 수 있었을, 그러나 잃어버린 자리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아름다움 자체, 자유 자체, 세상이 담을 수 없는 존재처럼 더 추상적인 것을 본다.
이 글은 그 가운데 한 편을 택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말한다. 부는 갈망을 아주 깊게 쓸 수 있지만, 상대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묘사했다고 해서 그 상대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그녀를 언어의 끝까지 그릴 수 있다. 몸짓 하나하나의 아름다움도, 자신이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녀를 붙잡을 수는 없다.
그녀는 타자다.
사랑하거나 함께 살면 사람들이 더 이상 타자가 아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친밀함도 약속도 진실할 수 있다. 다만 내가 너를 원하므로 너는 오직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낙수 가에서 만나는 사람은 감정의 정리를 이미 끝낸 성인이 아니다.
그는 아직 그리워한다.
부는 그 그리움을 삭제하지 않고 소유로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떠났고 그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떠나지 못한다. 상대가 자기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한다고 해서 아픔이 곧바로 멈추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하나의 격언보다 두텁다. 생각은 분명해져도 감정은 여전히 길을 가고 있다. 그녀는 그녀이고 그는 그다. 거리는 슬픔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내 슬픔을 멈추기 위해서만 그 거리를 일방적으로 지울 수는 없다.
다섯, 백마왕 표에게
223년, 조비가 여러 형제를 수도로 불렀다. 조식, 임성왕 조창, 백마왕 조표였다. 이 입조가 긴 시의 배경이 되었다.
조창은 낙양에 머물던 중 갑자기 죽었다. 정사는 병사라고 기록한다.
뒤의 《세설신어》에는 조비가 독을 넣은 대추로 조창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삼국지》 본문은 저택에서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일화는 후대 사람들이 형제 사이의 공포를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먼저 쓰인 기록과 같은 증거의 무게를 얻지는 않는다.
전승과 기록을 구분한다고 조식의 상실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조창은 죽었다. 조식과 조표는 각자의 봉지로 돌아가야 했다. 죽음으로 헤어진 뒤, 두 사람은 귀로에서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다.
서문은 담당 관리들이 두 왕이 봉지로 돌아가는 길에 숙소를 달리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한다. 조식은 이 가로막힘을 시 앞에 적었다. 막 한 형제를 잃었는데, 살아 있는 형제와도 원하는 만큼 함께 있을 수 없다.
형제의 만남은 다시 황실 친족을 관리하는 규정 아래 놓였다. 조식과 조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헤어지는 날, 조식은 조표에게 긴 시를 썼다. 《백마왕 표에게 드림》이다.
일곱 장이 서로 이어지며 슬픔도 자리를 옮긴다. 길의 어려움, 강요된 헤어짐, 죽은 형, 살아 있는 동생, 그리고 어떻게든 버틸 힘을 갖추게 해야 하는 자신의 말들.
중간에는 조표에게 건네는 이런 말이 있다.
“장부의 뜻은 사해에 있으니 만 리도 이웃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이 줄지 않는다면 거리가 가까움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다. 같은 이불을 덮어야만 서로 아끼는 마음을 보일 수 있는가. 근심이 병이 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뜻에 비해 너무 좁은 정이 아니겠는가.”
뜻을 세계로 넓히면 만 리도 이웃이 될 수 있다. 떨어져 있다고 정이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함께 덮는 이불만이 그 증거도 아니다. 근심을 병으로 만들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강하게 말한다. 여기에는 부드러운 애착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당대의 남성적 결의의 이상도 담겨 있다.
조표를 위로하는 말이다.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그 위로는 다시 흔들린다.
“괴로움과 수고를 곱씹어 무엇하랴. 천명마저 참으로 의심스럽다. 허무한 신선의 세계를 구했으니, 적송자는 오래 나를 속였다. 변고는 잠깐 사이에 일어나는데 누가 백 년을 붙들 수 있으랴. 이 이별 끝에 다시 만나지 못하는가, 언제 다시 손을 잡겠는가. 왕은 귀한 몸을 아끼시라. 우리 함께 흰머리의 나이를 누리자. 눈물을 거두고 긴 길에 오르며, 붓을 들어 여기서 작별한다.”
고통과 걱정이 얽히고 하늘의 명마저 의심스러워진다. 불로장생의 약속도 다음 만남을 보장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작은 바람으로 돌아간다. 몸을 잘 돌보아 달라. 우리 둘 다 늙을 수 있으면 좋겠다. 눈물을 닦고 길에 오르고 붓을 들어 작별한다.
이 이별 끝에 다시 만나지 못하는가. 언제 다시 손을 잡겠는가.
한자로 열 자. 어떤 위로의 논리도 해결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그 안에 있다.
함께 더 가고 싶은 두 형제가 잠잘 곳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눈앞에는 길이 있지만, 다음 만남을 자신들의 일정에 써넣을 수는 없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 모른다는 것은 시의 깊은 공포다. 다음 만남이 불확실할수록 몸을 아끼라는 한마디는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어진다.
권력은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
매번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도 사람의 관계를 계속 좁힐 수 있다. 봉지, 입조, 숙박, 교제. 어느 것이나 허가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관리자에게는 하나의 규정일지 모른다. 당사자에게는 다음에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이 된다.
조비는 동생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익숙함이 의심을 자동으로 없애 주지 않았고, 혈연이 자유를 자동으로 보호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선택했다.
이는 레비나스의 얼굴을 심리적 보증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얼굴을 보았다고 해서 해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아는 사람을 억압하고 가족의 삶을 자기 안전감보다 뒤에 둔다.
우리는 행동과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명령 뒤에 있었던 내면의 동기를 전부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이데거를 다룬 글 옆에 놓으면, 한정되지만 날카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구체적인 사람을 아는 것과 그를 희생해도 되는 자리에 놓는 것은 왜 함께 일어날 수 있는가.
조위의 황실 정치를 나치즘 지지와 같은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맥락과 규모와 제도가 다르다. 비교는 질문을 비출 수 있지만 어느 쪽의 역사도 대신할 수 없다.
가까움은 지배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아니다. 학식도 그렇지 않다. 물어야 하는 것은 두려움과 이해관계가 밀려올 때에도 상대에게 거절할 자리가 남아 있는가다.
훗날 사마씨가 위를 대신했고 황실은 다른 권력 아래 놓였다. 권력은 자기 후손을 반드시 보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조비가 동생을 억눌러 필연적으로 받은 보복이라고 쓸 수는 없다. 역사는 시인의 적을 벌주도록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다.
이런 삶을 폭풍에 빗댈 수는 있다. 날씨가 판단을 대신하게 할 수는 없다.
여섯, 갇힌 제후
마지막 열두 해 동안 쓰는 일은 조식에게 목소리를 낼 길을 남겨 주었다.
안향, 견성, 옹구, 동아, 진. 명칭과 봉지는 여러 차례 달라졌다. 강등도 있었고 승진도 있었다. 그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조정의 권력과 자신 사이의 쉽게 풀리지 않는 거리였다.
감시와 고발의 가능성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형제의 만남은 제한되었고 여행과 정치 활동은 통제되었다. 아무 자원도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몇몇 중요한 결정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형이 죽은 뒤에도 조카에게 등용을 구하며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어 했다. 후대가 가장 잘 아는 모습은 시인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바라던 전부는 아니었다.
그 바람들은 원하던 공간을 얻지 못했다.
그가 계속 쓴 일을 존중한다고 해서 모든 억압받는 사람에게 똑같은 강인함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병들고, 말을 잃고, 다시는 붓을 들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자격을 잃은 일이 아니라 상처를 입은 일이다.
먼저 이 점이 분명해야 한다.
조식은 시와 부와 표문과 편지, 악부의 노랫말을 남겼다. 허용된 범위 안에서 행동하면서 글이 그 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의 귀에 이르게 했다.
그의 글에는 피해자의 자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망도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높은 나무에는 슬픈 바람이 많고 바다는 파도를 일으킨다. 날카로운 칼이 손에 없으니 벗을 많이 맺어 무엇하랴.” 이런 구절은 자기 처지의 진실을 보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하지만 자연을 관찰하는 눈, 벗을 그리는 마음, 과거 인물에 대한 판단, 인간의 삶을 생각하는 사유도 있다.
읽으면서 우리는 여전히 보고 판단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난다.
구속은 자유를 빼앗고 표현할 힘을 훼손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얼굴 없는 물건이 된 것은 아니다. 조식을 자로 삼아 작품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충분히 온전했는지 재서는 안 된다. 자신을 대신해 말할 책이 없는 사람도 들을 가치가 있고 보호받아야 한다.
작품은 그가 입은 상처를 지우지 않았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면서도 무거운 아픔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온전한 천재와 무너진 실패자 사이에서 한쪽만 고르라고 그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글은 다른 것을 보여 준다.
권력은 그가 할 수 있는 말을 모두 해 버리지 못했다.
조정은 작위와 땅과 제한을 부여하고, 그를 경계해야 할 황실 친족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배치가 《낙신부》의 갈망이나 조표와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다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는 남들이 작성한 자신의 기록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다.
상처 입지 않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쓰기라는 구체적인 일이 어떤 감정들에 형태를 주었기 때문이다. 한 글자를 쓰고 한 문장을 고치고, 어느 목소리가 시에 남을지 고르는 일. 작은 행동이지만 감시자가 전부 대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글쓰기가 존엄을 발급해 준 것은 아니다. 이미 존엄을 가진 사람이 후대에 들릴 수 있는 목소리를 남기게 한 것이다.
조비는 226년에 죽었다. 조식은 여섯 해 더 살았다. 조예 시대에도 제한은 이어졌다. 제도는 그것을 세운 사람보다 오래 살기도 한다. 한 사람이 떠난다고 그 움켜쥔 손이 저절로 풀리지는 않는다.
황제는 바뀌었지만 처지가 그에 따라 열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를 읽으면 그 처지가 조식의 전부는 아니었음을 안다.
일곱, 가질 수 없는 것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작품들을 거듭 지나는 실이다. 여신은 소유할 수 없고, 형의 신뢰는 강요할 수 없고, 정치적 바람은 가로막히며, 형제의 만남도 규정된다. 모두 아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불가능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빼앗긴 자유는 되찾으려 해도 된다. 뒤의 일까지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할 아름다운 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조식은 이를 어떻게 마주했을까.
갈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사람은 상실을 덜 아프게 하려고 사실은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변화이자 자신을 지키고 새로 살아가는 시작일 때도 있다. 내려놓는 모든 사람에게 타자성을 피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 글들의 특징은 아픔을 서둘러 무관심으로 고쳐 쓰지 않는 데 있다.
《낙신부》는 갈망을 깊게 쓰며 여신이 직접 작별하게 한다. 마음을 오래 그대에게 보내겠다는 약속은 그녀의 목소리다. 화자가 그녀를 얻었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말이 아니다. 그녀는 말한다. 그런데도 떠남은 일어난다.
조표에게 준 시도 이별을 아무것도 아닌 척하지 않는다. 언제 다시 손을 잡겠는가. 글은 그 질문을 열어 둔다.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정치적 표문에서도 조식은 거듭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궁정의 형식이 언어를 묶어도 바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갈망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타인을 소유할 권리로 만들지 않는 일은 어렵다.
두 유혹이 가까이 있다. 아프지 않으려고 상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대를 반드시 자기 것이어야 하는 물건으로 만드는 것. 두 길을 거부한다고 해서 영원히 가망 없는 갈망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고, 협의하고, 거절하고, 떠나는 것 모두 서로를 존중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상대의 무게는 내 성공이나 실패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잃더라도 상대가 무가치하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추구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그의 삶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너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말은 고통의 유일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가볍게 넘을 선도 아니다.
천팔백 년 뒤에도 조식은 이 긴장을 느끼게 한다. 다가가고 싶지만 상대 대신 결정할 수 없다. 행동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의 배치가 길을 막는다. 앞의 일은 내가 소유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뒤의 일은 권력이 나를 소유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둘은 다르면서 한 사람의 삶에서 만난다.
앞선 글들에서 우리는 윤리와 관계와 철학의 언어로 타자에게 다가갔다. 조식은 다른 언어를 준다.
갈망의 언어다.
타자는 그리움에도, 이별에도, 도무지 평온하게 떠날 수 없는 밤에도 나타난다. 그렇다고 모든 욕망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갈망은 자신을 더 또렷이 듣게 하고 맞은편의 목소리도 듣게 할 수 있다.
자리를 남기는 것은 자신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갈망이 모든 사람의 결말을 써 버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칸트는 사람이 단지 수단으로 줄어드는 것을 거부한다. 레비나스는 얼굴이 나의 자유를 묻게 한다. 부버는 내가 안다고 여긴 관계를 ‘너’가 중단하게 한다. 조식에게서 읽는 것은 갈망과 소유 사이의 좁은 길이다.
완전히 같은 네 가지 철학은 아니다. 서로 다른 네 언어 사이에서 우리가 듣는 메아리다.
그 방향에 바람이 있다. 부드러운 바람이.
여덟, 다리
상상 속 다리에 다시 밤이 왔다. 조식이 다가왔다.
그에게 낡은 옷을 입히고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 두자. 여기에는 조회의 의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옆에 서서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 적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손에 무엇인가 들고 있었다.
히파티아의 아스트롤라베 같은 것은 아니었다. 베르그송의 지팡이 같은 것도 아니었다. 죽간 한 꾸러미나 비단 두루마리였다. 그 위에는 자신의 손으로 쓴 글자가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걸었다. 그는 젊어서, 마흔 안팎에 죽었다. 오랫동안 구속받은 피로는 자세에 남겨 두자.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설명하느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게 하자.
다리 가운데에 이르렀다.
히파티아가 있었다. 손에는 아스트롤라베가 있었다. 건너편의 아퀴나스는 손이 비어 있었다. 베르그송은 지팡이에 몸을 기댔다. 레비나스가 서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부버가 있었다.
다리에는 그 다섯만 있지 않았다.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방정식을 쓰는 사람, 옥수수를 관찰하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별 지도를 읽는 사람, 소설을 쓰는 사람, 설계도를 그리는 사람. 쪼그리고 메모하는 사람, 앉아서 먼 곳을 보는 사람, 옆 사람과 조용히 말하는 사람.
조식은 둘러보았다.
히파티아와 아퀴나스, 베르그송과 레비나스, 부버는 모두 그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의 책을 읽지 않았고 그들이 얼굴과 만남과 목적을 어떻게 말할지도 몰랐다. 칸트가 태어나려면 천 년도 더 지나야 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보였다.
그들이 여기서 하는 일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철학 전부를 이해했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 서 있는 방식이, 먼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했다. 손의 두루마리는 펼쳐도 되고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 길게 이야기하러 다가가지는 않았다. 다리 가운데 자리를 찾아 섰다. 두루마리를 곁에 놓았다. 자신이 쓴 시와 부였다. 손으로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글자는 이미 쓰였다. 천팔백 년 동안 세상에 남아 자신의 일을 해 왔다.
다리의 먼 끝에는 칸트가 서 있었다. 그날 밤은 전보다 조금 선명했다. 대략적인 윤곽과 머리카락 색깔을 볼 수 있었다.
다리 밖 저 길에서는 하늘이 어두워졌다. 번개가 쳤다.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가장 멀리 간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교수의 가운을 입은 저 남자, 하이데거도 지난번보다 더 멀리 가 있었다.
조식이 그 길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 길을 알아보았다.
자신의 시대에도 권력은 형제를 밀어냈다. 조비는 226년, 자신보다 여섯 해 앞서 죽었다. 조예가 뒤를 이었지만 제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훗날 사마씨가 위를 대신했다. 누군가 굳게 잡았다고 믿은 자리도 자손을 위해 영원히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조식은 잠시 바라보았다.
상처가 이제 아프지 않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형이 벌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안정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바깥의 비는 그의 복수를 완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몸을 돌렸을 때도 그 명령들로 생긴 상실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것들만이 그가 바라볼 방향을 정하지는 않았다.
조식이 돌아섰다.
히파티아의 손에 든 아스트롤라베가 달빛을 받았다.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히파티아도 웃었다. 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식은 그리스어를 몰랐고 히파티아는 중국어를 몰랐다. 하지만 서로의 도구는 보았다. 아스트롤라베와 죽간. 서로 다른 시대의 두 도구가 비슷한 일을 했다. 별을 보이게 하고, 글자를 보이게 하고, 달리 보이지는 않지만 보아야 할 무언가를 보이게 하는 일.
아퀴나스가 건너편에서 걸어왔다. 라틴어로 무슨 말을 했다. 조식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말투에는 익숙한 것이 있었다. 많은 말을 쓴 뒤 멈춘 사람의 말투였다. 조식도 많은 글을 쓴 사람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부버가 조금 가까이 왔다. 어두운 옷, 흰 수염, 빈손. 한 사람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를 겪었고, 다른 사람은 성인이 된 뒤 형과 조카의 구속하는 권력 아래 살았다. 두 상처는 같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도 나를 혼자 남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누구의 고통이 더 컸는지 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리 가운데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달빛은 부드러웠다.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던, 다리 가장 먼 끝의 형상이 히파티아와 아퀴나스, 베르그송과 레비나스, 부버를 보았다.
이번에는 조식을 보았다.
두 눈길이 잠깐 만났다.
조식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복종을 기다리는 황제가 없었다. 그저 눈을 들어, 똑같이 서 있는 다른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눈에는 인정하는 빛이 있었다.
나는 당신의 언어 전부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당신이 나의 자리를 황제의 조서 속에만 남겨 두지 않았다는 것은 보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먼 곳을 바라보던 형상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식은 다리 가운데 서 있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아무 관계도 없었던 삶은 아니었다. 그래도 간절히 바라던 많은 것을 잃었다. 남은 글은 천팔백 년을 건너갔다. 뒤에 오는 독자들은 여신의 작별을 들었고 조표에게 건넨 몸을 아끼라는 말을 들었으며, 작위로 다 쓰이지 않은 한 사람을 들었다.
불멸로 그 삶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읽기 안내와 출처
생애의 기본 자료는 『삼국지』 권19다. 칠보시와 독 대추는 후대 『세설신어』의 일화다. 217년 후계자 결정은 219년 만취 사건보다 앞선다. 안향후는 221년, 왕은 222년. 조비는 226년, 조식은 232년 사망해 육 년 차이다.
『낙신부』에서 인간과 신의 차이를 슬퍼하며 마음을 남기겠다는 이는 여신이다. 뒤에는 강을 거슬러 찾기, 불면, 망설임이 이어진다. 『증백마왕표』는 일곱 장이며 관원들의 따로 숙박하라는 요구를 기록한다. 조표는 이복동생이다. 영영 못 볼 두려움은 이후 일정의 증거가 아니다.
다리와 갈림길, 날씨, 시대를 넘는 만남과 대화는 전기 기록이 아닌 문학적 상상이다. 인물 비교는 저자의 읽기다. 가까운 질문이 같은 학설을 뜻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행위에 대한 판단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