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 108 · 하나의 세계 만들기
바흐, 음표로 세운 하나의 우주
먼저 라이프치히의 장인을 본다. 그다음 그의 우주에 귀를 기울인다.
1. 라이프치히의 장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후대가 ‘위대한 예술가’를 위해 마련한 초상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베토벤의 격렬함, 모차르트를 둘러싼 신동의 후광, 바그너의 자기 신화를 잠시 옆에 놓아 보자. 먼저 한 장인이 보인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학교의 음악감독, 토마스칸토르. 도시의 주요 교회 음악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은 무엇이었을까. 주일과 축일 예배에 쓸 음악을 준비하고, 학생 성가대를 연습시키고, 음악을 가르치고, 연주자와 악보 필사를 조율하고, 학교와 교회의 실무를 처리하는 일. 직책에는 라틴어 수업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맡도록 했다. 시와 학교 당국과는 예산, 인원, 학생 성가대 지휘 책임자의 임명권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음악 뒤에는 그다지 듣기 좋지 않은 일이 잔뜩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일한 것은 1723년부터 세상을 떠난 1750년까지, 27년이었다. 특히 처음 몇 해에는 교회력을 바싹 따라가며 새 칸타타가 나왔다. 뒤에는 재연과 개작, 다른 작곡가의 작품도 쓰였다. 예배가 다가오고, 또 다음 예배가 다가왔다. 음악은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수난곡과 미사곡, 오르간곡과 건반곡, 실내악과 관현악까지 합치면 전해지는 작품이 천 곡을 넘는다.
그 숫자 뒤에 현실과 격리된 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두 번의 결혼에서 스무 아이를 얻었고, 열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 아이를 기르고 상실을 겪는 일, 제자를 가르치는 일, 행정 문제로 다투는 일은 작곡과 같은 삶 안에 있었다. 가족과 학생, 연주자도 필사와 연습을 도왔다. 그들의 손을 거쳐 종이 위의 음악이 실제 소리가 되었다.
영감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불꽃만 보고 있으면 납기를 보지 못한다. 이번 주일에 울려야 한다. 다음 주일에도 다시. 재능은 되풀이되는 노동 속에서 목소리를 얻었다.
앞서 두보를 이야기하며 현실에 거듭 응답하는 시인을 보았다. 여기의 바흐 역시 마감에 떠밀려 모양이 깎인 사람만은 아니다. 스스로 끌을 들고 자기 손으로 세운다. 압박 속에서 일하면서 일의 조건을 작품의 재료로 바꾼다. 지칠 줄 모르는 기계가 아니라, 계속 일하는 한 사람이다.
2. 푸가
바흐에게 다가가려면 푸가 한 곡을 듣는 법부터 배워도 좋다.
푸가는 한 성부에 주선율을, 나머지에 배경을 영구히 맡기는 음악이 아니다. 여러 성부가 각자의 선을 지키면서 서로를 쫓고 얽힌다. 성부는 사람이 노래할 수도, 악기가 연주할 수도 있다. 건반 앞에서는 두 손으로 여러 선을 동시에 걷게 할 수 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시작을 들어 보자.
첫 성부가 주제를 제시한다. 대개 몇 마디 정도다. 이 연작의 말을 빌리면 이것이 ‘구축’이다. 다음 작업을 이어 갈 수 있는 하나의 소리 단위다.
둘째 성부가 응답하며 들어온다. 보통 딸림조의 위치에서, 흔히 5도 위나 4도 아래에서 나타나며, 조성 관계를 유지하려고 일부 음정을 조정하기도 한다. 그저 높은 선율을 낮은 음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선율이 다른 방향에서 돌아오는 것처럼, 알아볼 수 있지만 놓인 자리가 달라졌다.
그동안 첫 성부는 계속 나아가며 둘째 성부와 대위 관계를 이룬다. 각각 향하는 곳이 있다. 수직으로 만나는 음에는 협화도, 불협화도, 그 해결도 있다. 음악의 질서는 긴장을 지워 버리는 일이 아니다. 긴장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셋째 성부가 들어온다. 4성 푸가라면 넷째도 뒤따른다. 몇 개의 선이 차례로 주제를 가져오고, 이후에도 조성과 음역과 조합을 바꾸어 주제가 다시 나타나게 한다.
올라가는 선율을 내려가게 바꾸는 것은 전위, 음가를 늘리는 것은 확대, 줄이는 것은 축소다. 더 넓은 대위법적 작법에서는 음의 순서를 거꾸로 하는 역행도 가능하다. 선택할 수 있는 기법들이지, 모든 푸가가 거쳐야 하는 필수 목록은 아니다. 같은 출발점이 거듭 바뀌고, 듣는 이는 그 흔적을 따라 주제를 알아본다.
이 글은 여기서 깎기와 세우기의 순환을 듣고 싶다.
주제는 구축이다. 잠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건축의 단위다.
변형은 깎기다. 이미 형태를 얻은 것을 다시 묻고 다시 빚는다.
성부 사이의 긴장은 잔여를 떠올리게 한다. 한 선만 들어서는 다 들을 수 없는 무엇이다. 대위법은 음악 용어이고, 잔여는 여기서 쓰는 철학적 비유다.
푸가는 끝없이 성부를 늘릴 필요가 없다. 한정된 선들을 떠나게 하고 돌아오게 하며 교차시키고, 주제의 제시와 삽입구를 번갈아 이어 간다. 같은 순간에 여러 방향이 있고, 함께 모여 어느 한 성부도 혼자 갖지 못하는 전체를 이룬다.
창발. 한 선율이 나머지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맺는 관계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여기서 뉴턴을 떠올린다. 적은 수의 법칙이 넓은 물리적 설명을 열고, 적은 음악 재료가 복잡한 소리 관계를 연다. 같은 종류의 증명은 아니다. 그래도 구성하는 아름다움은 서로를 비출 수 있다.
3.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원제 Das Wohltemperierte Clavier는 바흐의 가장 잘 알려진 건반곡집 가운데 하나다. 두 권이며, 각 권은 전주곡과 푸가 스물네 쌍으로 열두 장조와 열두 단조를 지나간다.
다장조에서 나단조까지 스물네 조. 각 조마다 전주곡 하나, 푸가 하나. 세계의 모든 음악을 그린 지도는 아니지만, 장·단조 체계의 스물네 문을 하나씩 열어 놓는다.
당시에는 여러 조율법이 공존했다. 자주 쓰는 조에서는 아름답게 울려도 먼 조에서는 거친 음정을 만드는 조율도 있었다. 모든 조를 연주할 수 있게 배분한 조율은 길을 넓혔다. ‘잘 조율된’이라는 말이 오늘의 12평균율과 곧바로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바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선호했는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악보가 들려주는 사실은 있다. 이 곡집 안에서는 어느 조도 쓰이지 않은 채 남아 있지 않는다. 각 쌍은 자기만의 전개를 얻는다. 첫 권 표지에는 배우는 사람의 공부와 이미 능숙한 사람의 즐거움도 용도로 적혀 있다. 교육과 예술이 서로 다른 방에서 살지 않는다.
듣다 보면 이 연작의 중심에 있는 입장이 떠오른다. 주체는 목적이며, 단지 수단인 것만은 아니다.
조성은 사람이 아니며, 이 비유로 윤리적 주체의 자격을 얻는 것도 아니다. 다만 듣는 방식으로서, 어떤 조를 다른 조로 가기 위한 복도로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다장조가 올림바단조를 변두리로 밀어낼 필요는 없다. 각각 펼쳐질 아름다움이 있다.
이를 음악의 ‘목적의 왕국’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듣는 이의 상상이지 바흐가 칸트를 위해 써 준 증명이 아니다. 들리는 것은 서로 다른 목소리에 자리를 남겨 둘 가능성이다.
4. 신
바흐의 적지 않은 악보 원고에는 두 가지 약자가 보인다.
‘J.J.’ — Jesu Juva, 예수여, 저를 도우소서.
‘S.D.G.’ — Soli Deo Gloria, 오직 신께 영광을.
이 말들은 일을 신앙의 방향 안에 놓는다. 바흐는 루터교 예배의 삶 속에서 작곡했고, 궁정과 도시, 학생과 연주회를 위해서도 썼다. 신을 위한 일이 청중과 이웃이 없는 일일 필요는 없다.
이 연작의 여러 인물 사이에 뚜렷한 자세 하나가 더해진다.
잠시 몇 사람을 실루엣으로 그려 보자.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지키고, 칸트는 이성에 묻고, 니체는 자신을 거듭 넘어가고, 석가모니는 해탈을 가리킨다. 이 윤곽만으로 각자의 생각과 신앙을 다 그릴 수는 없다.
바흐는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악보에 적는다.
그 자세를 따라 상상하면, 그는 자신을 음악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여길 필요가 없다. 노동을 받음과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인은 몸을 굽혀 자신이 믿는 더 큰 질서를 종이 위로 가져온다. 이 모습은 이 글의 읽기이지, 그가 남긴 내면의 독백은 아니다.
같은 신앙을 갖지 않아도 그런 방향이 하루하루의 일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천 곡 넘는 작품을 신앙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고, 한 사람이 결코 지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되지 않는다.
창조할 때마다 자아가 홀로 세계를 낳아야 한다면 짐이 무거워진다.
자신보다 큰 관계 안에 몸을 놓으면 때로는 힘을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믿는 사람을 고갈에서 보호하고 믿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고갈시키는 처방전은 아니다.
말년의 바흐는 시력이 크게 약해졌고, 1750년 눈 수술 뒤 건강이 더 나빠졌다. 눈먼 그가 코랄 전주곡을 구술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사후 출판물에 남아 있다. 나중에는 세상을 떠나는 당일 사위에게 불러 주었다는 이야기로 전해졌다. 그러나 남은 악보와 판본의 관계가 병상의 장면 전체를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이제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와 이어지는 그 작품에는 더 이른 음악의 뿌리도 있다.
전승을 현장 기록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말년에 여전히 작품을 고치고 정리하던 바흐는 청력을 잃은 뒤 교향곡 9번을 쓴 베토벤과 울림을 나눈다. 몸의 어려움이 일이 남긴 흔적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병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에게 계속 창작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5. B-A-C-H
『푸가의 기법』은 바흐 말년의 큰 작업 가운데 하나다. 의심의 여지 없이 ‘맨 마지막 작품’이라고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박한 라단조 주제가 일련의 푸가와 카논을 지탱한다. 전위, 확대, 축소, 두 주제와 세 주제의 결합. 한정된 재료에서 복잡성이 층층이 자란다. 푸가의 가능성을 깊이 탐구한 작품은 모든 가능성을 소진하지 않고도 집대성일 수 있다.
각 성부는 총보에서 따로 적혀 있고, 곡집 전체의 연주 편성은 명시되지 않았다. 건반 연주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강하며, 후대에는 여러 합주 편곡도 나왔다. 악보의 추상성이 몸과 악기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음색이 달라져도 성부의 관계는 윤곽을 드러낼 수 있다. 다른 빛 속에 같은 건물이 서 있듯이.
보통 콘트라풍크투스 14번이라고 부르는 미완성 푸가는 남아 있는 부분에서 세 주제를 차례로 제시하고, 이어 그것들을 결합하기 시작한다. 그중 셋째 주제가 작곡가의 이름을 음악 안으로 데려온다.
독일식 음이름에서 B는 시 플랫, A는 라, C는 도, H는 시 내추럴이다. B-A-C-H. 네 음은 이름인 동시에 성부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재료다.
이름은 193마디에서 들어온다. 음악이 그 순간 멈추지는 않는다. 계속 움직이다가 손으로 쓴 악보가 239마디에서 끊긴다.
악보에는 대체로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이 쓴 것으로 보는 주기가 있다. 그 뜻은 B-A-C-H를 대주제로 넣은 이 푸가를 쓰던 중 작곡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작품과 죽음을 이어 주는 주기지만, 이름을 적는 바로 그 순간 손이 멎었다는 현장을 전해 주지는 않는다.
왜 그 단절이 남았을까. 끝내 쓰지 못한 것일까, 뒤의 자료가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후대 사람이 이어 쓸 수도 있다. 보완판을 택하는 연주도 있고, 끊긴 자리에서 멈추는 연주도 있다. 이런 사정을 알아도 갑자기 찾아오는 침묵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괴델을 떠올리는 것은 이 글의 연상이지, 음악 속에서 불완전성 정리가 다시 증명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괴델이 다룬 것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형식 체계다. 이름을 음표로 만드는 일은 형식 체계 안에서 그 체계 자신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것과 다르다. 음악을 반드시 중단시키는 법칙이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청자는 이렇게 느낄 수 있다. 건축물 안에서 건축가의 이름이 울렸는데, 종이는 그 건물 전체를 우리 손에 넘겨주지 않았다.
바흐는 1750년 7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한 생명의 끝과 한 악보의 단절이 후대의 읽기에서 겹쳐졌다. 하나의 기록된 순간은 아니지만, 강한 공명을 이룬다.
장자는 일곱 구멍을 뚫자 혼돈이 죽었다고 썼다. 이 우화를 옆에 놓는 것은 바흐가 이름을 새겨 푸가를 죽였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묻기 위해서다. 모든 것을 구조 안에 배치하려 할 때, 그 바깥에는 무엇이 남는가.
하나의 구축이 모든 것을 담고 스스로 닫힐 수 있을까. 여기서는 질문으로 남겨 두자. 음악도 남는다. 불완전하다고 죽지는 않았다. 이름은 울렸고, 성부들은 여전히 귀를 이끈다. 악보는 가장자리에 닿았다. 듣는 사람은 아직 가장자리에 닿지 않았다.
6. 잊혔을까
바흐는 죽은 뒤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유럽의 취향은 새로운 양식으로 옮겨 가고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시대가 왔다. 바흐의 일부 음악은 오래되고 복잡하게 들리기도 했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과 요한 크리스티안 같은 아들들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건반곡과 오르간곡, 대위법의 솜씨는 제자와 가족, 수집가와 작곡가들을 통해 전해졌다.
원고는 흩어졌고 많은 작품이 실제로 사라졌다. 악보를 폐지로 취급하거나 고기를 싸는 데 썼다는 이야기도 후대에 돌았다. 마음 아픈 그 그림이 문서 하나하나의 경로를 확인하는 전승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없어진 종이도 있지만, 소중히 보관하고 베끼고 연습한 종이도 있다.
1829년 베를린에서 스무 살의 펠릭스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의 중요한 공개 재연을 지휘했다. 일부를 덜어 내고 바꾼 판본이었다. 바흐가 떠난 지 거의 80년. 오래된 교회 작품이 새로운 연주회 문화로 들어왔고, 청중도 달라졌다.
그 공연은 바흐 부흥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완전한 망각에서 한 사람을 갑자기 건져 낸 것이 아니라, 이어져 오던 전통을 훨씬 넓은 대중 앞에 내놓았다.
연주와 출판과 연구가 쌓여 갔다. 바흐는 서양 음악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곡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비교적 작은 모임 안에서 돌려 보던 악보가 더 많은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영역에 상대적으로 물러나 있던 때에서 널리 공유되는 고전의 자리로. ‘망각, 발견, 추앙’이라는 곧은 길보다 이 여정은 구불구불하다.
두보를 떠올리게 하지만 같은 연표는 아니다. 두보는 당나라 때 이미 원진 등에게 높이 평가되었고, 송대에는 더욱 널리 모범으로 받아들여졌다. 살아 있을 때의 이해, 사후의 전승, 뒤늦은 존숭이 천천히 겹쳐진다.
두 사람의 명성은 죽은 뒤에도 계속 새로 쓰였다. 두보는 시성으로 불렸고,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같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월계관이 장인의 손을 가려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은 시구를 다듬고, 한 사람은 성부를 엮었다. 둘에게는 생전에도 그 작업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작품은 왜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까. 이 글은 밀도를 생각해 본다. 선율 안에 대위법이 짜이고, 가을의 슬픔과 고향에서 먼 거리, 오랜 나그네살이와 늙음, 병과 홀로 있음이 두보의 한 대구에 몰려든다. ‘만 리 먼 곳에서 가을을 슬퍼하며 늘 나그네로 지내고, / 늙고 병 잦은 몸으로 홀로 높은 곳에 오른다.’ 복잡함에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겹겹이 포개지는 관계 안에 있다.
밀도는 때로 다시 듣기와 다시 읽기를 요구한다. 또 선생과 연주자, 필사자와 출판자가 필요하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도 만날 기회를 남겨 주기 위해서다. 시간이 자동으로 천재에게 상을 주지는 않는다. 누군가 돌아보아야 작품이 다시 소리를 낸다.
7. 두 우주
뉴턴과 바흐의 삶은 40년 넘게 겹쳤다. 뉴턴은 오늘의 달력으로 1643년에, 바흐는 1685년에 태어났다. 뉴턴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잉글랜드에서 수학으로 물리 세계의 설명을 세웠다. 한 사람은 독일의 땅에서 음표로 들을 수 있는 세계를 세웠다.
둘을 나란히 놓는 것은 닮은 야심을 보기 위해서이지, 두 일이 완전히 같다고 선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뉴턴은 운동 법칙과 중력 법칙에서 출발해 지상과 천상의 많은 운동을 하나의 설명에 담았다.
바흐는 주제와 대위법의 기법에서 출발해 단순한 재료로 복잡한 성부 관계를 키웠다.
뉴턴의 출발 원리는 간결하고 설명의 범위는 넓다.
바흐의 재료는 적을 수 있지만 펼쳐지는 모습은 아주 풍부하다.
두 작업은 규칙이 제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성을 열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수학적 모형은 경험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음악 작품의 가치를 사과가 어떻게 떨어질지 예측하는 능력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뉴턴을 생각하면 행성이 돌고 사과가 떨어지고 혜성이 돌아오는 모습을 본다.
바흐를 들으면 성부가 얽히고 주제가 변하고 긴장이 생겼다 풀리는 것을 따라간다.
뒤에 상대성 이론은 뉴턴 이론의 경계를 드러냈고, 뉴턴 이론은 알맞은 조건에서 여전히 유효한 근사로 남는다. 『푸가의 기법』은 다음 물리 이론에 밀려날 차례를 기다리는 가설이 아니다. 후대 음악은 다른 길을 열고, 바흐를 비판하고 다시 쓰고 새롭게 연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실험으로 반박된 옛 답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바흐가 뉴턴보다 더 영원하다거나 예술에는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적 설명과 예술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을 이어 간다. 하나의 우주는 보이는 것을 설명하도록 돕고, 다른 우주는 다시 들어 보라고 초대한다.
8. 오직 신께 영광을
이 연작이 상상하는 다리 어귀에 한 사람이 더 왔다. 18세기의 검은 외투를 입고 가발을 썼으며, 손에는 악보 한 묶음을 들었다. 잠시 다른 사람은 보지 않는다. 악보를 본다.
이 그림 속의 그는 조용하다. 곁에서 몸을 굽혀 관찰하는 다윈과 서로 비친다. 일상의 다툼은 잠시 멀어졌다. 그는 듣는다. 성부 사이의 관계와 주제의 변형, 대위법을.
그를 여기로 데려온 것은 어느 한 번의 영감만이 아니다. 지나간 주일들, 연습, 필사, 수정이기도 하다. 마감은 끌이었다. 어떻게 일할지 선택하는 것은 그의 손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는 하나의 우주를 세웠다. 음표로, 대위법으로, 푸가로.
그 우주에는 정밀한 구조가 있고 연주자들이 매번 새로 택하는 호흡도 있다. 『푸가의 기법』을 펼치면 아직 그곳에 있다. 모든 판본과 모든 연주에서 선택마다 유일한 정답 자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성부들이 여전히 우리를 엄밀하면서도 살아 있는 만남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면 완전한 모습으로 전해지지 않은 푸가에 이른다. B-A-C-H는 이미 울렸다. 음악은 239마디에 닿는다. 연주자가 뒤를 덧붙이지 않기로 하면, 소리는 여기서 멈춘다.
Soli Deo Gloria. 오직 신께 영광을.
세운 사람은 떠났고 세워진 것은 남았다. 여기 멈추어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침묵도 작품이 남긴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읽기 안내와 출처
라이프치히의 직무, 칸타타 연간 작품군, 1730년의 자원 요청과 말년은 바흐 아카이브의 연표를 참조했다. 매주 교회 음악을 준비하는 일은 27년 동안 매주 새 칸타타를 쓰는 일과 다르다. 재연과 수정도 작업의 일부였다. ‘천 곡 이상’은 규모를 나타내는 말이며, 작품목록의 각 번호를 중복이나 귀속 논란이 전혀 없는 별개의 신작으로 세지 않는다.
푸가 설명은 듣기 위한 길이지 고정 형식의 정의가 아니다. 성부 수, 응답, 삽입구, 변형 기법은 작품마다 다르다. 대위법은 양식에 맞게 조직되는 불협화도 품는다. 역행은 더 넓은 대위법적 작법에 속하며, 『푸가의 기법』의 거울상 전위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각 권 스물네 쌍, 모두 마흔여덟 쌍의 전주곡과 푸가로 이루어진다. 첫 권 표지에는 1722년과 학습 및 즐거움을 위한 용도가 적혀 있고, 둘째 권은 뒤에 성립했다. 좋은 조율과 12평균율은 같은 말이 아니다. 조성과 성부를 목적 자체인 주체와 나란히 놓는 것은 청각적 비유이며, 음표에 윤리적 인격을 부여하는 일이 아니다.
J.J.와 S.D.G.는 일부 원고에 보이는 신앙의 표기이지 모든 원고의 고정 요소가 아니다. 신앙은 노동에 방향을 줄 수 있지만, 작곡가가 한 번도 지치지 않았거나 비신앙인이 반드시 고갈된다는 증거는 아니다. 소크라테스, 칸트, 니체, 붓다에 관한 짧은 문장은 이 글의 인물군을 이루는 실루엣이다.
BWV 668과 1751년 『푸가의 기법』 초판에 붙은 코랄 판본의 관계는 복잡하다. 출판자들은 미완성을 보충하려고 코랄을 더하고, 눈먼 바흐가 친구에게 구술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라이프치히 코랄 원고의 BWV 668은 신원을 알 수 없는 필사자의 글씨이며, 사위 알트니콜이 베낀 것은 앞의 BWV 666과 667이다. 이것으로 사망 당일 사위에게 구술했다고 확정할 수 없다. 눈병, 수술, 사후의 이야기만으로 여기서 현대 의학적 사인을 진단하지 않는다.
『푸가의 기법』의 원고, 1751·1752년 인쇄본, 현대의 곡 순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미완성 푸가는 흔히 콘트라풍크투스 14번이라 불리며, 초판 제목은 Fuga a 3 Soggetti다. B-A-C-H 주제는 193마디에 나오고 원고는 239마디에서 끝난다. 곡집의 중심 라단조 주제는 남아 있는 부분에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후대의 보완은 이를 더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음악적 가능성을 보일 뿐, 잃어버린 바흐 원고를 찾아냈다는 뜻이 아니다.
원고 말미의 주기는 보통 C.P.E. 바흐에게 귀속되지만, 작곡가가 239마디를 쓰다가 죽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서명, 자기 지시, 장자와 괴델의 병치는 문학적 해석이다. 괴델의 제2불완전성 정리는 해당 조건 아래 형식 체계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하는 데 한계를 둔다. 음악의 중단을 예언하지 않으며, 한 삶의 가치에 판결을 내리지도 않는다.
1829년 베를린의 『마태 수난곡』 재연은 수용사의 전환점이지, 이전 80년간 바흐 음악을 전한 사람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고기를 쌌다는 등의 이야기는 후대의 전승으로 남겨 두며 특정 원고의 확인된 이력으로 쓰지 않는다. 두보가 당대부터 받은 평가는 원진의 묘지명에서도 확인된다. 뉴턴과의 비교 및 다리에서의 만남은 이 글의 구상이다. 마지막 침묵은 특정한 연주와 청취의 경험이며, 바흐가 미완을 의도적인 완성으로 제시했다는 주장이 아니다.
라이프치히 바흐 아카이브: 생애 연표 · 라이프치히 바흐 아카이브: 작품의 전승과 목록화 · 네덜란드 바흐 협회: 『푸가의 기법』 BWV 1080 · 네덜란드 바흐 협회: 코랄 전주곡 BWV 668 · 네덜란드 바흐 협회: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BWV 862 · 헨레: 『푸가의 기법』 비평판 서문 · Lyrebird Music: 『푸가의 기법』 편집 해설과 교감 기록 · 미국 의회도서관: 존 모런의 연주회 해설과 원고의 신앙 표기 · Journal of New Music Research: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조율의 코퍼스 연구 · 원진: 두보의 묘지명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