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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결혼론 · 01

혼인신고를 한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오전에는 증서 두 권이, 저녁에는 각자가 입 밖에 낸 말이 있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어느 것도 다른 것을 대신해 이후의 삶을 살아 주지는 않는다.

Han Qin ·

천모와 쉬징이 혼인신고를 하던 날은 날씨가 좋았다. 절차를 마친 두 사람은 계단에 서서 잠시 어디로 갈지 몰랐다.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꽃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쉬징은 작은 증서 두 권을 가방에 넣으며 물었다. 국수부터 한 그릇 먹을까?

두 사람은 이미 몇 년째 사랑하고 있었다. 국수가 어제보다 갑자기 더 맛있어진 것도 아니고, 천모가 기록 하나 늘었다고 쉬징의 마음을 전부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변화도 없는 날은 아니었다. 제도가 이 관계를 인정했다. 저녁에는 친지들 앞에서 각자 상대와 어떻게 살아갈 마음인지 말할 예정이었다.

잔치가 끝날 무렵 외삼촌이 이제 한 가족이 되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웃었다. 우리는 이날의 모든 일을 쉽게 ‘결혼’이라는 한 단어에 담는다. 그러나 그 안의 여러 일을 나누어 보면, 각각이 왜 소중하고 무엇은 대신할 수 없는지 더 잘 알게 된다.

도장 하나와 두 사람의 말

오전에 이루어진 것은 공개적인 인정이었다. 두 사람과 친지가 알던 관계가 제도의 기록에 들어가고, 그 규칙이 정하는 신분과 권리, 절차가 생겼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생기는지는 제도마다 다르다. 증서 한 장으로 세계 어디서나 같은 질서가 생긴다고 할 수 없다. 등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규칙 자체의 정당성을 입증하지도 않는다.

저녁에 한 말은 각자의 약속이었다. 말이 비슷할 수도, 함께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말 뒤에 서겠다는 사람은 각각 천모와 쉬징이다. 도장이 천모 대신 약속할 수 없고, 쉬징의 마음이 앞으로 변하지 않으리라고 보증할 수도 없다.

사랑도 있다.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며 도장으로 인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고 전에도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다른 누구로도 바뀔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이후에도 그럴 수 있고, 긴 삶에서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다. 증서는 그런 순간을 만들지 못하며 어느 한쪽 대신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선언하지도 못한다.

사랑, 각자의 약속, 제도의 인정은 서로의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고 모든 것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관계가 인정받았다고 각자의 말이 모두 이행된 것도 아니다. 반대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랑이 신고한 사랑보다 얕은 것도 아니다. 일을 구분하는 것이지 관계에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모습도 하나가 아니다. 국가에 등록하는 관계도 있고, 문중이나 종교, 다른 공동체가 자기 규칙에 따라 인정하는 관계도 있다. 누군가 알고 축복한다는 것과 규칙이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다르다. 여러 인정이 함께 존재한다면 각각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따로 살펴야 한다.

이들을 구분한다고 결혼식에 절차만 남는 것은 아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기에, 증서에 감당할 수 없는 영원을 맡길 필요도, 진심 어린 말 한마디로 앞으로의 성실함을 면제받을 필요도 없어진다.

오늘의 사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선다

그날 밤 쉬징은 천모와 함께 늙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진심이었다. 몇 년 뒤 어느 평범한 저녁, 늦게 퇴근한 천모는 자신을 위해 남겨 둔 국 한 그릇을 보았다. 또 몇 년 뒤 쉬징이 공부 때문에 잠시 집을 떠나게 되자 그는 전에 신경 쓰지 않던 집안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약속의 시간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은 날들에서 펼쳐진다.

결혼을 매일 새롭게 하는 같은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는 어제의 말이 날마다 무효가 되고 아침마다 다시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약속한 내용은 이어지고, 그에 맞추어 꾸린 삶도 이어진다. 매일 그 자리에 서는 이는 오늘도 그 말을 책임질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약속은 가볍지 않다. 상대는 그 말을 믿고 직장을 바꾸거나 도시를 옮겼을 수 있다. 혼자 계획하던 내일을 두 사람의 내일로 고쳤을 수 있다. 마음을 바꾼다고 그 모든 일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설명하고 이미 남긴 영향을 마주하는 일은 생략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약속이 미래를 잠그는 자물쇠가 되지는 않는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약속했으니 떠나면 안 돼’라는 말은 과거의 말을 상대 손에 넘겨 오늘의 사람 대신 결정하게 한다. 약속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과 약속한 사람이 이후 변할 가능성을 없애는 것은 같은 성실함이 아니다.

쉬징이 다른 지역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했을 때 천모는 집은 어쩌느냐고 불쑥 물었다. 순간 자신의 일상이 흐트러질 것부터 생각했다. 이후 두 사람은 무엇을 함께 마련하고 무엇은 그녀가 결정할 일인지 다시 이야기했다. 당황해서 한 말은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 그의 전부를 영원히 규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날 배려했다고 전날의 말이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았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영원히 빈틈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온기는 이후 잘못된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말이 떨어진 뒤에도 상대의 불편함이 다시 돌아와, 오늘의 계획을 어제와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에 있다.

이제부터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다투다가 천모가 말했다. 신고도 했으니 이제 당신은 내 사람이야. 두 사람 모두 아는 친근한 말이었다면 그 순간의 관계에서 뜻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쉬징이 어디로 가고 누구를 만나며 공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쓰였다면, 증서를 다른 일에 사용한 것이다. 제도가 부부라는 지위를 인정했다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긴 것은 아니다.

‘한 가족’도 마찬가지다. 겨울밤 누군가 문을 열어 주는 따뜻함, 아플 때 혼자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안도가 될 수 있다. 반면 명절에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지, 누구의 일을 내려놓아도 되는지를 정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 늘 같은 것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따뜻한 말을 모조리 없앨 것이 아니라, 말하는 이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 보아야 한다.

두 사람은 사랑의 그 몫을 오직 상대에게만 주겠다고 각자 약속할 수도 있다. 이 연작은 사랑론에서 다룬 이러한 배타성을 이어받는다. 먼저 본인이 이 한 사람을 향해 품는 사랑이고, 약속은 그것을 인정해 말로 드러내며, 제도는 자기 규칙에 따라 공개적인 측면을 부여한다. 내가 한결같음을 주는 대가로 상대의 내면을 결정할 권한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제 합의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했는지, 합의한 경계를 넘었는지는 진지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잠깐 마음이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다 읽을 수는 없다. 배우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도 자기 삶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더욱 없다. 특별한 사랑이 두 사람만 사람으로 인정되는 작은 세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이 논의에는 범위가 있다. 두 성인 사이에 사랑과 각자의 약속, 제도의 인정이 있으며 서로를 부속물로 삼지 않는 쪽으로 나아가는 경우다. 순전히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 사랑 없이 유지하는 관계, 실제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여기의 따뜻한 장면으로 그런 경우의 결론을 대신할 수 없다.

논의 밖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결혼이 아니라거나 그 안의 사람이 비난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쪽이 더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약속을 성실히 지킨다고 쉽게 기만이라 써서는 안 된다. 사랑이 끝나도 약속과 이미 남은 삶은 같은 날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 편에서 다시 살핀다.

특히 이미 떠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아직 집 안에 있다는 이유로 머무름을 자유로운 선택이라 부를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전에 품었거나 지금도 품은 사랑까지 대신 부정해서도 안 된다. 보호가 필요하다면 감정이 충분히 순수하다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도움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신고하던 날로 돌아가 보자. 쉬징은 증서 두 권을 함께 가방에 넣었고, 천모는 꽃을 들어 주었다. 친밀한 동작이지만 어느 것도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합치지는 않았다. 오후는 길었고 국숫집은 아직 열려 있었다. 어디로 먼저 갈지 의논할 수 있었다.

그 뒤의 많은 날도 그럴 것이다. 크고 작은 일이 차례로 찾아오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을 데려온다. 기록이 있고 그날의 말이 있다. 그래도 오늘을 어떻게 함께 살지는 오늘의 두 사람이 이어받아야 한다.

원 논문과 이 글의 범위

이 글은 결혼론 논문 여덟 편을 바탕으로 주요 구별과 일상의 예를 살려 썼다. 모든 기술적 명제와 철학적 비교 독해를 항목마다 재현하지는 않는다. 원문의 영어판은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이 한국어판도 논지와 예시를 보존하면서 한국어에 맞게 옮겼다. 부부 등장인물과 확장한 생활의 세부 사항은 모두 허구의 예시다. 실제 사례가 아니며 특정한 결혼에 처방을 내리지도 않는다.

논문은 성인 두 사람 사이의 한 종류의 결혼으로 논의 범위를 한정한다. 다른 형태를 부정하거나 범위 밖의 사람들에게 우열을 매기지 않는다. 예시에는 남녀 부부가 자주 등장하지만 성별 조합은 논의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제도상 인정과 해소에는 구체적인 규칙이 적용된다. 이 글은 현행 법률 안내가 아니며, 마음속 사랑을 검사하거나 필요한 안전과 보호를 대신하지 않는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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