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론 · 02
‘우리’라고 말한 뒤에도 누가 ‘나’를 말할 수 있을까
이사를 의논하는 시간, 닫을 수 있는 문 하나. 함께 산다는 것은 각자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말이 여전히 식탁에 올라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저우위안이 항저우의 직장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린샤는 등불 아래서 오래된 책의 한 쪽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는 직책과 교량 공사를 이야기했고, 그녀의 어머니와도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끝에 이르자 ‘우리’를 벌써 여러 번 썼다. 우리가 가면 집은 우선 빌리면 되고, 주말에는 어머니를 뵐 수 있겠네.
린샤는 이야기를 듣고 손에 들었던 얇은 종이를 먼저 잘 놓았다. 가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복원 작업실을 떠나면 그곳에서 자신은 무엇을 할지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저우위안이 열심히 이야기해서 차마 끊을 수 없었다. 잠들기 전 그는 친구에게 우리가 이사하려 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 ‘우리’에는 진짜인 것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의 열망,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계속 함께 살고 싶은 바람. 그러나 진짜인 것 하나가 빠져 있었다. 린샤 자신의 답이었다. 따뜻한 미래도 때로는 상대보다 앞서 걸어가 그를 대신해 도착해 버린다.
함께 가더라도 같은 이유일 필요는 없다
나중에 저우위안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집부터 고르지 않고 다시 앉았다. 그는 그 다리를 맡고 싶었다. 린샤가 간다면 어머니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계속 책을 복원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었다. 같은 이사를 의논하려면 먼저 이유가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이사하려면 두 사람이 각자 받아들여야 한다. 한 사람이 아무리 세심하게 계획을 설명해도 다른 사람의 그 한 걸음을 대신할 수 없다. 들었다고 동의한 것은 아니다. 상대의 바람을 진지하게 여긴다고 자기 계획은 생략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다.
결혼의 ‘우리’는 때로 함께 하는 일을, 때로 서로를 인정하는 친밀함을 가리킨다.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후자는 진실할 수 있지만, 그 사실이 전자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랑하니까 이사에 동의해야 해’는 친밀함을 빌려 아직 합의하지 않은 일을 끝내는 말이다.
이미 정한 규칙도 쓸모가 있다. 공동 계좌에 매달 얼마씩 넣을지, 누가 어느 날 어른을 돌볼지는 각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인 계획일 수 있다. 양쪽이 인정한 절차로 바꿀 수도 있다. 규칙이 사람 위에 올라서서는 안 된다는 말은 잊고 싶으면 잊으라는 뜻이 아니다. 어디서 온 규칙인지, 누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보아야 한다.
린샤가 결국 항저우로 갔다고 해서 처음의 ‘우리가 이사하려 한다’는 말이 그녀를 건너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중의 동의는 이전의 대답을 소급해서 허가하지 않는다. 다행히 집에서는 이런 일도 가능하다. 결과는 같더라도 과정을 다시 걸을 수 있다. 되찾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다.
항저우에서 작은 발코니가 있는 집을 빌렸다. 그는 교량 도면을 살폈고 린샤는 책을 복원할 곳을 알아보았다. 일상은 촘촘히 얽혔지만 길이 하나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다리는 여전히 그의 것이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녀에게 있었다. 같은 등불 아래 각자 진지하게 사는 두 삶이 있을 수 있다.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다
이사한 뒤 어느 주말, 린샤는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저우위안은 이해하지 못했다. 집을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망했다고 말하고 시간을 바꿀지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돼’와 ‘정말 피곤한 게 아니라 나랑 있기 싫은 거잖아’는 다른 말이다.
앞의 말은 그의 어려움을 대화로 가져온다. 뒤의 말도 반박 가능한 짐작이라면 계속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그녀가 피곤하다고 할 때마다 막아 버린다면, 그녀의 내면을 대신 써 놓은 것이다. 배우자가 감정을 심사해 통과시켜야만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함께 살면 서로가 투명해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잠자는 모습, 좋아하는 음식, 언제 찡그리는지 알기에 한 번 더 물으면 오히려 서먹해 보일 것 같다. 익숙함은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미 다 읽은 책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생각과 감정, 혼자 있는 시간, 바깥 사람들과의 관계, 만나기 전의 세월에는 여전히 본인에게 속한 부분이 있다. 나눌 수 있고 이야기 속으로 초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나눴다고 그곳의 열쇠를 넘겨 앞으로 매번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우위안은 새벽에 강가로 낚시를 갔다가 별다른 이야깃거리 없이 돌아온다. 린샤가 대학 친구와 통화할 때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농담도 있다. 이런 빈칸이 꼭 결혼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시간과 의미를 맞춰야만 저녁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를 남겨 둔다고 의견을 금지하지도 않는다. ‘당신 친구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는 들어 볼 만한 생각일 수 있다. 이유를 설명하고 반박할 기회를 준다면 대화 안에 있다. 그러나 친밀함으로 바깥과의 연락을 끊거나 반대에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면, 단지 걱정이라 부를 수 없다. 안전과 실제로 떠날 수 있는 통로에는 친밀함이 없앨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어느 날 린샤는 옛 일기의 짧은 대목을 읽어 주었다. 그는 자신을 만나기 전의 그녀를 들었다. 그녀는 그날을 자기가 가져오고 싶어서이지, 그에게 마침내 과거 전체를 캐물을 자격이 생겨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초대받아 들어가는 친밀함과 언제든 침입할 수 있는 권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상대에게 자기 인생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모든 말을 믿는 것은 다르다
린샤는 저우위안이 원하는 직책에 줄곧 의문이 있었다. 약속한 업무가 바뀌지 않을까, 또 자주 출장을 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한다고 그를 자기 인생이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계획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믿는 것은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의심하지 않는다’를 안심시키는 말로 듣는다. 동기와 모든 설명을 의심하지 말고 언제나 먼저 믿으라는 말로. 하지만 이 논의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상대가 절대 틀리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아니다. 그가 내가 처분할 물건이 아니라는 인정이다. 구체적인 사실은 여전히 확인해야 하고 실제 피해도 마주해야 한다.
신뢰에도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 린샤는 어머니의 재검진 동행을 저우위안에게 안심하고 맡기면서도, 작업실의 책 몇 권은 만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후자가 그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지위와 특정한 물건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지는 같은 시험으로 묶을 필요가 없다.
그의 방향을 진지하게 대하면서 자기 방향을 접을 필요도 없다.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가, 나는 다 괜찮아’가 편안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자기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함께 이사했다는 사실만으로 남이 어느 쪽인지 판정할 수 없다.
‘이 집을 위해서’라는 말은 특히 천천히 들어야 한다. 함께 정한 계획을 상기시키는 말과, 근거 없이 한 사람이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정하는 말은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 차이는 이번에 무엇을 근거로 삼고 답을 허용하느냐에 있다. ‘집’이라는 단어 자체를 믿을 만한지에 있지 않다.
깊은 사랑처럼 보이는 또 다른 짐도 있다. ‘내 평생을 당신에게 바쳤는데 헛살게 할 수는 없잖아.’ 서운함을 말할 수 있고 그 세월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남아 있어야 내 삶이 헛되지 않다고 보장받으려 한다면, 또 하나의 인생을 상대 어깨에 올리는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 대신 살아서 그의 일생을 완성해 줄 수 없다.
저우위안은 나중에도 모든 의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린샤도 자신을 언제나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그 주말 그녀는 방문을 닫고 창가에 잠시 앉았다. 서둘러 무엇을 하지는 않았다. 저녁에 나와 함께 아래로 내려가겠느냐고 묻자, 그는 좋다며 보던 도면을 접었다.
그녀에게는 그에게 속하지 않은 몇 시간이 있었고, 그에게는 그녀가 참여하지 않은 오후가 있었다. 그래도 함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낮 동안의 거리를 다 설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거리가 다시 가까워지려는 한 걸음을 없애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 논문과 이 글의 범위
이 글은 결혼론 논문 여덟 편을 바탕으로 주요 구별과 일상의 예를 살려 썼다. 모든 기술적 명제와 철학적 비교 독해를 항목마다 재현하지는 않는다. 원문의 영어판은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이 한국어판도 논지와 예시를 보존하면서 한국어에 맞게 옮겼다. 부부 등장인물과 확장한 생활의 세부 사항은 모두 허구의 예시다. 실제 사례가 아니며 특정한 결혼에 처방을 내리지도 않는다.
논문은 성인 두 사람 사이의 한 종류의 결혼으로 논의 범위를 한정한다. 다른 형태를 부정하거나 범위 밖의 사람들에게 우열을 매기지 않는다. 예시에는 남녀 부부가 자주 등장하지만 성별 조합은 논의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제도상 인정과 해소에는 구체적인 규칙이 적용된다. 이 글은 현행 법률 안내가 아니며, 마음속 사랑을 검사하거나 필요한 안전과 보호를 대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