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론 · 02
눈앞에 없어도, 왜 여전히 그 사람일까
기억은 사람을 그대로 보관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움은 없는 사람에게도 무게를 주지만, 돌아온 사람이 따라야 할 자를 조용히 만들 수도 있다.
일요일 저녁 여덟 시 반이면 장위안은 시계를 보기 시작한다. 남쪽에서 공사 일을 하는 예칭과 아홉 시에 통화하기로 했다. 아홉 시 오 분, 아직 안 온다. 잊었을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에게만큼은 중요하지 않은 전화가 되었을까.
예칭이 간 지 일 년이 넘었다. 직접 맡기로 한 일이라 아쉬워도 왜 갔는지는 안다. 그에게도 여기 남아 할 일이 있고 예칭도 그 결정을 무관심으로 읽지 않았다. 각자 삶이 없어 이 전화로만 버티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일요일의 기다림은 반 시간을 길게 만든다.
그녀를 그리면 삼 년 전 첫 만남이 자주 온다. 친구 집 창가에서 귤을 까고 있었다. 이후 여러 만남보다 선명하다. 과일 가게 앞에서도 멈춘다. 본인도 사진도 그날 가져온 작은 물건도 없는데 여전히 여기 있다.
그리움의 평범하면서 이상한 점이다. 여기 없는 사람이 여기 일에 참여한다. 자료를 꺼내 사람을 그대로 눈앞에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그녀가 그에게는 여전히 중요하다.
떠올릴 때마다, 오늘 다시 손에 든다
기억 속 예칭이 서랍에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다. 창밖이 오후 같기도 저녁 같기도 하고 귤 까는 손도 늘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변하지 않는 사진을 매번 꺼냈다고도 할 수 없다.
떠올림은 오늘 다시 집어 드는 일이다. 오늘의 그리움과 상실과 기대도 들어간다. 더 참을성 있고 잘 웃는 사람이 되거나 당시의 냉담함이 빠질 수도 있다. 기억이 움직인다고 그리움이 반드시 거짓은 아니고 정확하다고 진짜 사랑의 합격증도 아니다.
스탕달은 사랑의 마음을 소금 광산에 넣는 나뭇가지에 비유했다. 평범한 가지를 넣었는데 꺼내니 반짝이는 결정이 달려 있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새로운 완벽함을 찾아 더하기도 한다. 이 비유는 한 면을 짚지만 모든 사랑을 같은 생성 순서로 쓰라고 하지는 않는다.
결정은 먼저 생각하는 쪽에 생긴다. 예칭이 늘 온화했다는 기억은 그가 일 년간 더한 것일 수 있다. 그것만으로 이미 그녀에게 무엇을 가했다고 말하면 빠르다. 아직 모르며 그 모습대로 살라는 요구도 못 받았다. 달라진 것은 그가 기다리고 보는 방식이다. 그녀에게 미치는 작용은 실제 말과 행동이 닿을 때 살펴야 한다.
프루스트의 스완은 오데트에게서 그림을 알아보고 이후 얼굴과 몸에 그 벽화를 찾는다. 마음속에 다른 형상을 걸어 둔 일과 그 형상으로 눈앞의 사람에게 요구하는 일은 두 걸음이다. 하나로 합치지 말아야 한다.
옛날 사랑한 사람과 닮았다는 말도 갈린다. 닮음이 시작이어도 나중에 실제로 예칭을 본다면 시작이 끝까지 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 사랑하는 것이 닮은 원래 사람이고 똑같이 닮은 다른 이도 된다면 대체 불가능한 대상은 예칭이 아니다.
《현기증》에서 옷과 머리색과 머리 모양을 하나씩 바꾸게 하는 행위에는 문제가 선명하다. 당시 스코티가 아는 바로는 사랑한 이를 잃었고 눈앞의 다른 사람을 기억대로 바꾸어야 한다. 여기서는 이 행위를 빌릴 뿐 이야기에 판결을 보태지 않는다. 눈앞의 사람이 기억을 완성하게 하면 더는 혼자 생각하는 일만이 아니다.
‘삶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면’이라는 바람도 그렇다. 마음속에서는 자신과 기억의 교류지만 상대에게 늘 그날처럼 하라고 하면 첫눈이 자가 된다. 만남 대신 앞으로 벗어나면 안 될 고정된 사진을 받은 것처럼.
돌아온 사람이 기억에 사과할 필요는 없다
연말 예칭이 돌아왔다. 머리는 짧고 말은 빠르며 웃을 때 고개를 안 숙인다. 역에서 본 장위안은 먼저 기억하던 사람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 생각 뒤의 한마디는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다시 알아 가도 된다. 귤을 까며 고개 숙인 이도 그녀였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 이도 그녀다. 옛 장면을 태울 필요는 없되 지금이 틀렸다고 선언할 권한은 없다. 이 수정은 먼저 그에게 일어난다.
많이 달라졌으니 다시 알아 가는 중이라고 말하면 그때 대화가 예칭에게 닿는다. 일 년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해를 고칠 자리가 실제 있으면 여지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명령 안 했다는 것만으로 도움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실제 어떻게 열렸는지 보아야 하고 이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본인의 몫이다.
다른 길은 기억은 그대로 두고 눈앞의 사람을 고치는 것이다.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예전에는 참을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인내가 자신이 보탠 것인데 그녀가 누구인지 설명하게 한다면 자기 일 년의 상상을 그녀 일 년의 숙제로 넘긴다.
금지어를 정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변한 것 같다는 말도 틀릴 수 있는 관찰로 답을 청할 수 있다. 그녀의 답으로 이해가 바뀌는가, 무슨 말이든 기억 속 사람이 맞고 현재 사람은 틀리게 되는가가 다르다. 말투만으로는 판단이 끝나지 않는다.
빗나갈 수 없는 기다림도 있다. 전화하면 사랑, 안 하면 방해하기 싫어서 사랑, 냉담하면 일부러 시험하니 역시 사랑이다. 모든 일이 같은 답으로 돌아온다. 확신 같지만 원래 짐작을 다시 보게 할 결과가 하나도 없다.
이 해석이 마음속에만 있다면 먼저 그가 자기 삶을 어떻게 정하는지 본다. 그녀의 모든 답에 적용하면서,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을 부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자신을 설명할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제삼자는 이를 지적할 수 있지만 그녀가 진짜 누구를 사랑하는지 대신 정하거나 장위안을 통째로 해석 끝낼 수는 없다.
기억이 틀릴 수 있다고 해서 그리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억이 눈앞의 사람이 돌아올 자리를 여전히 주는가가 문제다. 돌아오자 점점 완벽해진 기억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다림이 상대 대신 답하지는 못한다
아홉 시 통화에는 실제 약속이 있다. 자발적으로 한 번 더 걸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다른 기대다. 약속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없고 안 한 약속을 오래 기다렸다고 보탤 수도 없다. 둘 다 무거울 수 있으나 출처가 다르다.
제때 전화해도 마음속 사랑이 입증되지 않으며 오 분 늦었다고 기대만으로 빚이 생기지 않는다. 이미 한 약속은 여전히 인정하는 마음과 남에게 남긴 작용으로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막혔는지 못 했는지 둘이 바꿨는지 따로 확인하고 기대로 사실을 끝내서는 안 된다.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다면 말할 수 있다. 이번 주는 한 번 더 전화했으면 한다는 말은 내 처지를 건넨다. 사랑하면 매일 먼저 걸어야 한다고 하면 한 걸음 더 간다. 원하는 것뿐 아니라 무엇이 그녀의 사랑인지까지 정한다.
어느 주에는 말 안 하고 한 번 더 걸지 기다렸다. 전화가 오자 안심했다. 하지만 안심으로 그녀 마음의 사랑을 인증하지는 못한다. 그리웠거나 일이 있나 걱정했거나 마침 시간이 났을 수 있다. 응답은 실제 자료이지 확인이 끝난 속마음이 아니다.
시험의 기준은 먼저 그에게 있다. 혼자 설계한 것만으로 이미 말과 행동으로 압박했다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그가 마련한 방식이 구체적으로 짚을 수 있는 영향을 이미 냈다면 말로 밝힐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더 안 걸었으니 안 아낀다고 말하면 그 기준으로 그녀의 행동을 대신 설명한다.
모든 확인이 사랑의 시험도 아니다. 눈앞의 사람이 본인인지 확인하는 일과 꾸민 반응으로 사랑을 입증시키는 일은 다르다. 페넬로페가 침대의 비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장면은 한 문답에 신원과 정절의 문제가 함께 있어도 하나로 다른 것을 정산할 수 없음을 일깨운다.
못 보는 까닭이 남쪽에 가서가 아니라 죽음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쪽에 생기는 사랑은 상대가 죽었다고 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은 편지와 말도 계속 작용할 수 있고, 떠올릴 때마다 기억이 달라지는 일도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을 죽은 이가 새로 준 답인 척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영원히 계속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억이 흐려지거나 기다림이 자꾸 어긋나 끝내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 교류가 끝나도 사랑할 수 있고 기억이 있다고 사랑도 남았다는 증거는 아니다. 끝남은 동시에 오지 않아도 된다.
전화가 울려도 모든 일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둘에게 원만한 결말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내가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오늘 네가 누구인지 정할 수 없다. 목소리를 기다렸어도 미리 준비한 답만 듣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길잡이는 원논문 제0편, 여섯 시선은 1~6편, 마지막 여섯 이야기는 제7편에 대응한다. 여덟 편은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지 기술적 논증 전부를 문단마다 옮긴 글이 아니다. 영어는 독립적으로 썼으며 한국어도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각 글에 원논문 링크가 있다. 시선은 사랑의 발달 단계도 남의 속마음을 검사할 시험도 아니며 밖에서 성숙을 인증하는 기준도 아니다. 혼인과 성의 면을 따로 다룬다고 사랑 안의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사랑 논의로 이미 한 약속과 제도적 요구, 필요한 보호를 취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