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사랑론 · 03

내가 사랑했고, 내가 잘못 보았다

내 사랑이라고 인정해도 그녀가 내 소유가 되지는 않는다. 편지를 다시 읽고 그 판단은 내가 내렸다고 아는 것, 그런 작은 일에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Han Qin ·

여자는 수의사이고 남자는 도시계획 일을 한다. 안 지 일 년쯤, 남자는 사랑하지만 여자가 아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달 답이 늦고 짧고 예의만 차린다. 되읽을수록 한 뜻으로 보인다. 나를 멀리하는 것이다.

지난 모임에서 친구들 앞에 부적절한 말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낮춰 본 것일까. 옛 친구에게 편지를 써 그녀는 변덕스럽고 자기를 오해하게 했다고 한다. 뒤에 알고 보니 그달 어머니가 입원했다.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병실을 지키며 복도에서 급히 문자를 보냈다.

다시 읽고 얼굴이 붉어졌다. 글자들이 뜻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 뜻을 읽어 냈다. 내가 잘못 보았다. 이번에는 잘못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사랑이 한 단계 올라가는 의식은 아니다. 목소리에 문득 끌릴 수도 같은 사랑 안에서 내가 사랑한다고 깨달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뒤의 면을 본다. 그녀가 사랑을 내 손에 넣거나 운명이 대신 감당하지 않는다. 출처를 선택하지는 않았어도 이 사랑은 내 것이다.

그 판단은 누가 내렸는가

사랑에 주인이 생겼다고 하면 마음대로 다스리게 된 것처럼 들린다. 오히려 아니다. 사랑한다고 인정해도 당장 시작하거나 끝내라고 명령할 수 없고 그녀의 소유권도 얻지 않는다. 내 사랑과 내 사람은 같은 말이 아니다.

여기서 주인은 잘못이 돌아올 자리만큼 작다. 다 옳다고 여길 때는 세상이 원래 그런 듯하다. 그녀의 냉담함도 내 억울함도 당연하다. 잘못 읽었다고 알아야 판단한 누군가가 있었음을 본다. 그 사람은 나다.

정말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면 어떨까. 걱정시키기 싫어 다 괜찮다고만 했을 수 있다. 그러면 잘못 본 이유에 그녀의 몫도 있다. 그래도 멀리한다는 것은 남자가 문자를 읽어 내린 판단이며 대신 읽어 준 사람은 없다. 숨긴 일은 따로 봐야 하고 판단을 넘길 근거는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도 그녀의 몫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모든 책임을 떠안는 일도 아니다. 전부 내 탓이라거나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하면 자신을 향하는 듯하면서 구체적으로 잘못 본 일을 피해 사람 전체를 벌할 수 있다. 그 몇 마디에서 어떻게 그 결론에 갔는지를 보면 된다.

남도 오해하게 한 건 너라는 한마디로 반성한 적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말로는 밀어내도 속에서는 돌이켰을 수 있고 예쁜 사과 속에서 여전히 원망할 수도 있다. 말이 들린다고 그 순간이 일어났는지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바로 정식 반성을 고하지 않고 편지만 다시 읽어도 그 변화는 진짜일 수 있다. 바쁨을 냉담함으로 잘못 봤다고 나중에 말하면 새 교류가 되어 어떻게 닿았는지 따로 살펴야 한다. 잘못을 아는 데 남이 검사해 줄 의식은 필요 없다.

그녀도 남자를 본다. 갈수록 긴 편지에 자기 감정만 생각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반복 질문은 두려움 때문이라 그녀도 잘못 볼 수 있다. 사랑받는 사람도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판단하고 오해하고 다시 생각한다.

나중에 각자 어떻게 읽고 생각했는지 털어놓는다. 잘못은 각각 인정해야 한다. 그녀가 놓친 것을 알려도 대신 인정해 줄 수 없고 그녀도 남자 대신 고칠 수 없다. 자기 이해를 주되 상대가 어떻게 이해할지까지 써 두지 않아야 대화에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그녀는 내가 정해 둔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사귄 뒤 남자는 사랑하는 자기 모습도 좋아함을 안다. 세심하고 참을성 있고 기다릴 줄 아는 자신이다. 잘못이 아니다. 좋아하는 이에게 보이는 것도 친밀함의 일부이며 자기가 불안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통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내가 너를 잘 이해하느냐고 묻자 어떤 곳은 그렇고 어떤 곳은 아니라고 한다. 뒷말은 듣기 싫어 웃으며 그렇다고 할 때까지 되묻는다. 보이려던 마음이 미리 정한 자신을 비추라는 요구가 된다.

이해하느냐는 진짜 질문일 수 있다. 아니라고 해도 답으로 받아들이면 아직 열려 있다. 자주 묻고 하루 답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것만으로 상대의 판단까지 대신하려 한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답이 미리 바란 것과 달라도 되는지가 차이다.

아직 사랑하느냐도 약한 마음의 질문일 수 있어 나쁜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늘 답은 하나뿐이고 무응답도 다른 답도 안 되며 망설임까지 고쳐야 한다면 그녀의 답은 사랑받는 자신이 여전히 있음을 보여 주는 거울이 된다.

그녀를 사랑하며 사랑하는 자신도 좋아하는 것과, 그녀에게 확인받는 자신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뒤에도 나라는 말은 많지만 잘못이 돌아올 자리가 아니라 다른 모습은 비춰서는 안 되는 형상이다. 그녀의 눈이 그 형상을 위해 일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후 실제로 그의 필요대로만 답했는지는 별개다. 대신 결정하려는 방향의 요구가 있었다고 그녀의 이해를 이미 차지한 것은 아니다. 거절하거나 요구를 지적할 수 있다. 이후 이해와 행동을 보아야지 몇 번 물었는지만으로 다 일어났다고 할 수 없다.

사랑과 섞이기 쉬운 다른 경우도 있다. 헤어진 친구가 급히 새 사람을 찾는다. 잘해 주면 그쪽으로 가고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다시 연애 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사랑하고 누군가로 그 자리를 채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젊은 자신에게서 먼저 사랑을 사랑한 뒤 사랑할 대상을 찾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연애하고 싶다고 누구든 대체 가능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외로움과 열렬함만으로 판정하지 말고 눈앞의 사람이 여전히 이 사람인지 물어야 한다.

마음속 이야기가 이미 남에게 한 일은 아니다. 사랑으로 구원받으리라는 상상은 우선 자기 일이다. 나를 구하러 왔으니 전 사랑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 함께하라고 역할을 건네 연기하게 하면 상대 삶에 들어간다. 거울이 내 안에 있는 것과 그녀에게 비추라는 것은 두 걸음이다.

자기애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것도 아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상대에게서 자기 모습이나 과거, 이상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며 그 상대를 선택하게 된 까닭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물었다. 여기서는 그 유래만으로 사람을 판결하지 않는다. 이번에 그녀의 관점이 자기 관점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본다.

다 설명하지 못해도, 내가 사랑한다

왜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다친 고양이를 치료할 때 손이 안정적이고 천천히 생각하고 말한다고 한다. 몇 가지 말해도 전부가 아님은 안다. 내 사랑이라고 인정해도 그 사랑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왜 어떤 목소리가 하필 나를 움직이는지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성장 과정과 만난 사람, 상실의 두려움을 배운 때에는 선택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내 사랑이라고 안다고 그 출처가 갑자기 투명해지지 않는다. 다 설명 못 한다고 성의 없음도 아니며 온전한 이유 목록을 내야 사랑할 자격을 얻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전생부터 알았나 보다 농담한다. 지금 돌아보는 말로 시적 표현을 내쫓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당시 순간의 구성 요소도 지금 사람 대신 감당할 말도 아니다. 운명이니 내 판단을 마주할 필요가 없다면 주인을 다시 밀어낸다. 네가 내 것이 될 운명이라고 하면 그녀의 갈 길을 대신 쓴 것이다.

몇 년 뒤 상상 속 모습도 사랑했다고 알 수 있다. 늘 침착하고 필요하면 나타나는 그녀다. 실제 그녀는 당황하고 지치며 병원 복도에서 몇 글자만 답하기도 한다. 상상이 끝난다고 나머지 사랑까지 전부 거짓일 필요는 없다. 알고도 사랑할 수 있다.

오해에서 자란 사랑이 알게 될 때 진짜 끝날 수도 있다. 내가 잘못 봤다는 것과 나를 속여 사랑하게 했다고 인정하라는 것은 다르다. 실제 숨긴 일, 기존 약속과 기대어 온 사실은 각각 봐야 한다. 한 가지 끝남으로 모든 일을 정산할 수 없다.

오해를 깨닫는 전환이 사랑보다 먼저일 수도 있다. 너무 빨리 결론 내렸음을 알고서야 다시 보일 자리를 내준다. 오해를 인정했다고 이미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옛 판단이 입구를 막지 않게 될 수 있다.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의 모형은 주지 않는다. 작고 어려운 차이만 남긴다. 나를 움직인 것은 내가 마련한 것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 움직임에서 나온 판단은 남이 내려 준 것이 아니라고도 인정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 거울이 아니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길잡이는 원논문 제0편, 여섯 시선은 1~6편, 마지막 여섯 이야기는 제7편에 대응한다. 여덟 편은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지 기술적 논증 전부를 문단마다 옮긴 글이 아니다. 영어는 독립적으로 썼으며 한국어도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각 글에 원논문 링크가 있다. 시선은 사랑의 발달 단계도 남의 속마음을 검사할 시험도 아니며 밖에서 성숙을 인증하는 기준도 아니다. 혼인과 성의 면을 따로 다룬다고 사랑 안의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사랑 논의로 이미 한 약속과 제도적 요구, 필요한 보호를 취소하지 않는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