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사랑론 · 01

공항 대합실에서, 그 목소리만 들렸다

이름도 모르는데 왜 하필 이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일까. 아주 짧았어도 그 뒤의 일생으로 증명해야만 있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Han Qin ·

겨울 저녁, 비행기가 지연됐다. 탑승구에 앉은 남자는 옆자리 여자의 통화를 듣는다.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모르겠다. 낮고 조금 쉰 목소리로 문장 끝이 내려앉는다. 고개를 들어 한 번 보았다. 여자는 그를 보지 않았다. 다른 항공편 안내가 나오자 짐을 들고 떠났다.

이름도 목적지도 전화한 이유도 모른다. 무엇이 좋았느냐고 물으면 그 목소리밖에 말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좋은 목소리를 들은 것만은 아니었다. 수십 명이 이야기하는 곳에서 하필 이 목소리만 들렸다. 똑같이 낮고 쉰 다른 목소리라면 그때의 움직임이 아니다.

대화도 연락처도 그다음도 없다. 우리는 결과로 첫 만남의 이름을 정하곤 한다. 나중에 사귀면 첫눈에 반했다고 하고 이후가 없으면 우연한 설렘이라 한다. 그러면 그 순간 무엇이었는지까지 여러 해 뒤 결말의 승인을 기다리게 된다.

이 사랑론은 다른 데서 본다. 이 사람이, 이 순간에는, 대체될 수 없다. 사랑은 먼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고개를 들고 배웅하는 모습을 보거나 고백을 들어도 밖에서 본 것은 단서다. 안의 순간까지 대신 인증할 수는 없다.

그 순간은 연애 이력서가 아니다

순간은 초시계 한 칸이 아니다. 전화가 몇 분 걸려도 그에게는 마음이 움직인 같은 한 번일 수 있다. 몇 초 동안 어디를 보았는지보다 그때 향한 것이 정말 이 사람이었는지를 나눈다.

이 글들은 한 번의 사랑이 한 사람을 향한다고 읽는다. 같은 한 번에서 누구로 바꿔도 같다면 이 사람의 대체 불가능함은 아니다. 오늘은 이 사람이 떠오르고 다음에는 저 사람에게 움직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순간을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 한 순간으로 합치지는 않는다. 이 모습을 구별하려는 것이지 도덕 판결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독점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뜻도 아니다. 공항의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만 사랑하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쪽의 한 번이 이 사람뿐이었다고 상대도 그래야 하거나 앞으로 매일 안 바뀐다는 결론은 안 나온다. 내 마음의 움직임과 상대가 내게 무엇을 빚졌는지는 다르다.

매력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합창의 여러 성부를 함께 좋아할 수도, 미술관에서 그림 한 점 앞에만 설 수도 있다. 하나에 집중했다고 사랑이 되지는 않는다. 주의가 모인 것과 이 사람이 그때 대체 불가능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랑에 빠짐과 우애를 비교하며 사랑이 흔히 한 사람에게 향한다고 논했다. 하지만 거기서의 동시성, 수, 공동생활은 여기서의 한 번의 움직임과 같지 않다. 한마디를 빌려 이미 입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먼저 사람 수로 순간을 잘라 놓고 그 순간에는 하나만 들어간다고 증명해서는 안 된다.

우정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이런 순간이 있는지는 같은 질문으로 따로 살펴야 한다. 친구들이 함께 웃는 장면과 대강 견주어서는 안 된다. 우정과 사랑도 사이 전체에 이름을 한 번 붙여 영원히 나눌 수 없다. 오래 알고 함께 일하고 논쟁하고 도와 온 두 사람이 어느 오후 문득 서로에게서 그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첫눈은 연애의 필수 첫 단계가 아니다. 함께 일한 지 여러 해 뒤 회의실에서 여자가 서류를 내려다볼 때 남자가 처음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여섯 글은 질문의 순서이지 감정이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다. 짧았다고 낮은 사랑이 아니며 오래 이어졌다고 그때가 더 진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목소리가 왔다고, 그 사람을 안 것은 아니다

남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을 움직인 것은 소리가 내려오는 방식이지 통화 속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뜻을 알아 감동하거나 옛사람을 떠올렸다면 같은 만남에 언어와 기억과 이해도 들어온다. 함께 있을 수 있지만 목소리 자체가 일으킨 순간을 그것들로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

얼굴만도 아니다. 목소리일 수도, 기울어진 획과 문득 멎는 자국 같은 글씨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름과 직업과 경험을 먼저 알아야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 순간에는 왜 이렇게 사랑하는지에 관한 자기 설명이나 앞으로 갈 오랜 방향이 아직 펼쳐지지 않았다. 우선 지금의 일이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영혼의 기억으로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설명했고 셸러는 다른 길에서 사랑이 앎에 앞서는 방식을 물었다. 다 안 뒤에 사랑한다는 것만이 가능한 순서는 아님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 설명 전체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갑작스러운 감정만으로 운명이나 객관적인 가치 순서를 입증하지도 않는다.

사랑과 아름다움도 바로 합칠 수 없다. 그 목소리는 아름답고 다른 사람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도 이 사람이 대체 불가능해야 하지는 않는다.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 것과 이 사람에게 움직이는 것은 함께일 수도, 앞의 일만 있을 수도 있다. 모두의 평가에서 이겨야 누군가에게 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과 초상과 화면도 매체만 보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과 모습이 실제 남아 여기 왔다면 매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향하는 것은 그 사람인가, 비슷한 모습만 있으면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반대편에 그 사람이 정말 있는지, 실제로 무엇이 전해졌는지도 사진이라는 이름만으로 정할 수 없다.

보통의 첫눈에는 이미 일방향 교류가 있다. 통화는 여자의 행동이고 그 목소리가 실제로 남자에게 와 그 순간을 바꾸었다. 여자가 알아차리거나 답해야 영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누가 읽었는지 몰라도 글이 남긴 영향은 있는 것과 같다.

모든 경계 사례를 해명한 것은 아니다. 기차 맞은편에서 자는 사람, 본인 몰래 찍힌 사진, 깨어서도 기억나는 꿈속 사람에게서는 각각 어떤 행동이나 남은 것이 전해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AI에서는 반대편에 이 관계의 당사자가 될 주체가 실제로 있는지도 문제여서 여기서는 판단을 미룬다. 움직임이 진짜라고 이 문제까지 다 해결된 척하지 않으며 범위 밖이라는 이유로 감정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결하지도 않는다.

다루는 것은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 있고 남에게도 남 나름의 양보 못 할 이유가 있음을 알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다. 질문의 범위이지 나이 시험이나 타인이 발급할 성숙 인증이 아니다. 성별을 제한하지 않고 생식 목적과 성 경험도 이 순간의 전제가 아니다. 지금 논하지 않는다고 사랑에 그런 것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첫인상으로 그 사람의 앞날을 정할 수는 없다

목소리는 남자의 생활에 들어왔지만 그의 마음속 순간까지 여자의 생활에 들어간 것은 아닐 수 있다. 여자가 알아차리지 않았고 시선도 말이나 행동으로 닿지 않았다면 내면 전부를 여자에게 한 행동으로 셀 수 없다. 짝사랑이 온전한 사랑이라고 둘이 약속한 생활까지 이미 가진 것은 아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 말을 했다고 하자. 그날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고 말하면 자기 경험을 전하는 것이다. 여자가 어떻게 이해하는지 답할 수 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주 조용한 사람인 줄 알겠다고 하면 달라진다. 한 목소리의 모습으로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후 논쟁에서 여자가 목소리를 높이자 남자가 말한다.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그때 기억한 모습이 앞으로 그녀가 따라야 할 자가 되었다. 첫눈이 여자의 일생을 써 놓지 않았는데 남자가 그것으로 대신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말이 무엇을 하는지 살피려는 것이지, 말한 사람 전체에 도장을 찍으려는 것은 아니다. 틀릴 수 있는 관찰이라 고쳐 주면 듣는 것과 반박을 전부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으로 읽는 것은 다르다. 자신을 설명할 자리를 차지하려는 시도와 실제로 그 자대로 살았는지도 다르다. 여자는 거절할 수도 차츰 목소리를 낮출 수도 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할 자리를 실제 주었다면 그 교류가 무엇을 열었는지 봐야 한다. 존중한다고 스스로 말했기 때문에 이미 끝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첫눈에 끌렸다는 사실만으로 저절로 도움이 되거나 통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방향은 실제 말과 행동에서 살펴야 한다.

비행편을 부르자 여자는 떠났다. 그 순간이 지나갔다고 뒤돌아볼 의무가 생기지는 않는다. 이전 약속은 있다면 별도로 남는다. 없다면 바라본 눈길에서 만들어 낼 수 없다. 만남이 지남, 사랑이 끝남, 공동생활이 끝남, 남은 영향이 사라짐은 동시에 일어나는 한 가지가 아니다.

다음 날 남자는 잊었을 수도 그 목소리를 기억할 수도 있다. 기억한 모습이 그대로인지, 다음 기다림이 어디서 자라는지는 다음 글에서 본다. 지금은 일생을 보증하지 않아도 그 순간의 무게를 인정할 수 있다. 여자의 답까지 마련해야만 정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길잡이는 원논문 제0편, 여섯 시선은 1~6편, 마지막 여섯 이야기는 제7편에 대응한다. 여덟 편은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지 기술적 논증 전부를 문단마다 옮긴 글이 아니다. 영어는 독립적으로 썼으며 한국어도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각 글에 원논문 링크가 있다. 시선은 사랑의 발달 단계도 남의 속마음을 검사할 시험도 아니며 밖에서 성숙을 인증하는 기준도 아니다. 혼인과 성의 면을 따로 다룬다고 사랑 안의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사랑 논의로 이미 한 약속과 제도적 요구, 필요한 보호를 취소하지 않는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