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사랑론 · 들어가며

다른 누구도 아닌, 왜 이 사람인가

장점은 비슷하게 늘어놓을 수 있어도 사람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덟 편은 사랑에 등급을 매기지 않고, 이 사람만은 바꿀 수 없다는 마음이 삶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살핀다.

Han Qin ·

친구가 묻는다. 그 사람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진지한 태도, 웃는 모습, 오래 이야기했는데 서둘러 답을 주려 하지 않던 날을 떠올린다. 그런 사람은 또 있다고 친구가 말한다. 나도 안다. 하지만 똑같이 진지하고 잘 들어 주는 사람을 찾는다고 이 일이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조건을 적어 놓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늘 그렇지 않다. 그가 가장 좋다고 입증하지 못하고 이유도 다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그때 조건이 비슷한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마음은 이미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사랑론은 여기서 시작한다. 이 사람이, 이 순간에는, 대체될 수 없다. 사랑받는 이의 조건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가 아니다. 사랑하는 쪽에서 그때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까지 그를 대체 불가능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사랑은 먼저 공공의 표결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짝사랑도 답을 받아야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죽어 현실의 교류가 멈췄다고 살아 있는 이의 사랑도 끝났다고 선언할 수 없다. 밖에서 한눈에 인증할 수도 없고, 기다린 해와 눈물의 양, 함께 산 적이 있는지로 마지막 판정을 내릴 수도 없다.

여기서 순간은 초시계로 자른 일 초가 아니다. 한 번 사랑이 작용하는 때를 말한다. 이 관점에서 같은 순간의 사랑은 이 한 사람을 향한다.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면 서로 다른 순간이 번갈아 온 것이지 한 순간이 둘을 동시에 향한 것은 아니다. 사랑을 이해하는 단위이지 남의 연애사를 판결할 도덕표가 아니다.

매력적으로 여기는 일과는 다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마음에 들 수도 있고 한 사람만 마음에 들 수도 있다. 수가 적다고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외모와 목소리, 장점을 지닌 이로 바꿔도 마음이 같다면 여기서 말하는 ‘하필 이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도 관계 이름만으로 단번에 나눌 수 없다. 같은 사이에서도 어떤 때에는 친구로서 서로를 알고 다른 때에는 사랑이 일어날 수 있다.

여섯 시선이지, 여섯 단계가 아니다

첫째 시선에서는 어떤 한 가지가 문득 무게를 얻는다. 목소리나 걸어오는 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처음 알았을 때만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해 알고 지내다가 어느 날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 첫눈이라는 것은 그 경험의 모습이지 달력의 첫날이 아니다.

둘째는 그가 눈앞에 없어진 뒤다. 기억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나타날지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은 사람을 그대로 상자에 보관하는 일이 아니다. 떠올릴 때마다 오늘의 내가 들어간다. 실제로 왔는데 생각과 다르면 기억 속 그를 고칠까, 그 기억으로 눈앞의 사람이 틀렸다고 정할까.

셋째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나다. 잘못 본 판단을 운명이나 상대에게 통째로 넘기지 않는다. 상대가 속였다면 속인 일도 별도로 사실이다. 자기 판단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모든 잘못을 떠맡는 일이 아니다.

넷째는 이 움직임이 이어지는 방향이 되는 것이다. 열정이 매 순간을 채우지 않아도 방향은 남는다. 다른 사람도 좋은 줄 알지만 바꿀 수는 없다. 이 방향을 흉내 내는 것도 있다. 모두 어울린다고 해야 인정하거나, 꼭 사귀기만 바라다가 이루면 흥미를 잃거나, 자신이 안 바뀌겠다는 이유로 상대도 바뀌지 못하게 하는 경우다.

다섯째는 이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삶이 내 연장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한 사람으로서의 무게는 줄지 않는다. 함께 가고 싶다고 그가 반드시 동행해야 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대목은 멋진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실제로 반대하거나 떠나려 할 때 내 진심을 그를 누르는 명령으로 바꾸지 않는 일이다.

여섯째는 둘이 각자 상대를 그렇게 대하다 어느 순간 서로 만나는 것이다. 두 자신을 하나로 녹이는 일도, 먼저 사랑을 주고 보답을 요구할 영수증을 얻는 일도 아니다. 만날 약속으로 만남의 조건은 만들 수 있다. 그 약속 자체가 마음속 순간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누구나 끝까지 가야 할 성장 코스가 아니다. 상대에게 자기 삶이 있음을 아는 사람도 특정 일에서는 통제하려 할 수 있다. 첫눈처럼 보이는 순간도 오래 동행하는 관계로 자라지 않았다고 낮은 등급이나 덜 진짜인 사랑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읽지 한 사람과 사랑 전체에 도장을 찍지 않는다.

이 글들이 다루는 것은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 있고 남에게도 남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음을 알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다. 나이별 성숙 인증도 아니며 성별 조합도 제한하지 않는다. 성과 생식을 여기서 펼쳐 다루지 않는다고 사랑이 성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혼인의 약속과 제도적 보호를 따로 다룬다고 결혼 뒤에는 사랑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진짜 사랑한다고, 모든 행동이 옳지는 않다

놓치기 쉬운 점이 있다. 사랑이 실제로 있어도 상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처음 본 모습으로 재고 기억 속 사람으로 지금 사람을 고치려 하며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게 한다. ‘나는 너뿐이니 너도 나뿐이어야 해’라고 한다. 모두 진짜 마음의 움직임에서 자랄 수 있다.

반대로 많이 주고 오래 참았다고 상대가 자신이 되도록 도운 것은 아니다. 자기 몫을 전부 거두어 싸움이 멎어도 둘 다 자리가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한쪽의 사랑은 보답을 요구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상처든 끝없이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랑에 총점을 내지 않는다. 어떤 도움은 가능성을 열면서 같은 일 안에 자기 바람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요구도 담을 수 있다. 둘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나중의 좋은 결과가 당시의 억압을 변명하지 못하며, 여지를 주었는데 바라던 결과가 안 나왔다고 당시를 통제로 바꿔 판정할 수도 없다.

철학 전통과 비교하면 이 글들이 구체적인 사람에게서 멀어질수록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닌 이유가 보인다. 원논문은 《향연》 속 디오티마의 사다리와 견준다. 거기서는 아름다운 한 몸에서 더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나아간다. 여기서는 보는 각도가 달라져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이다. 비교는 그 대목에 한정되며 플라톤의 사랑론 전체를 판정하지 않는다.

원논문은 사랑을 구하는 일과 주는 일로 나누는 전통도 논한다. 하지만 주었다고 상대에게 여지를 주었다는 증거는 아니고 바란다고 곧 소유하려는 증거도 아니다. 실제 말과 행동으로 돌아가 상대가 싫다고 하고 다시 이해하고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사랑에 얼마나 이타적인 이름을 붙였는지만 들어서는 안 된다.

끝나는 일이 모두 같은 일은 아니다

사랑이 끝날 때 여러 일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밀어 넣곤 한다. 한 순간이 지남, 내 사랑이 끝남, 공동생활이 멎음, 약속과 남긴 영향이 아직 처리되지 않음은 서로 다른 속도로 갈 수 있다.

그가 떠나 교류를 끝내도 내 사랑이 남는지는 그가 정하지 못한다. 내가 사랑을 끝내도 과거 전부가 거짓이었다고 하거나 남에게 한 약속까지 지울 권리를 얻지는 않는다. 나중에 다른 이를 사랑했다고 그 사실만으로 옛사랑이 이미 끝난 날짜를 거슬러 써넣을 수도 없다.

사람은 진지하게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인정하는 약속을 편하다는 이유로 몰래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떠나면서 상대에게는 ‘아직 여기 있다’고 전하는 약속을 남겨 실제로 맡지 않는 일을 맡는 듯 보이게 해도 안 된다. 무엇이 남았는지 인정하고 떠남이 분명히 이해되게 하는 문제는 넷째 글에서 다룬다. 얼굴을 맞대고 작별해야 한다는 뜻도, 약속으로 안전하게 떠날 길을 막으려는 뜻도 아니다.

마지막 글은 새 단계를 더하지 않고 이야기가 되묻게 한다. 《오만과 편견》의 잘못 인정이 사랑보다 먼저라면 어떨까. 《제인 에어》가 날 밝기 전 다시 작별하지 않고 나갔다고 떠남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일까. 페넬로페가 돌아온 남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은 사랑을 시험할 판을 짜는 일과 같은가. 일자가 릭에게 대신 생각해 달라고 했을 때 이후의 이견까지 넘긴 것인가. 인물은 이론의 예를 위해서만 있지 않다. 그들은 한 설명을 멈추어 다시 보게도 한다.

이야기도 독자 대신 모두의 판결을 끝내지 않는다. 사랑하면서 거절하는 이도 있고 며칠만 함께했지만 서로 오래 기억하는 이도 있다. 작품이 속마음을 주면 그곳까지 읽는다. 답하지 않은 곳은 이론으로 작가 대신 채우지 않는다.

그래도 왜 사랑할까. 상대가 내 각본대로 사는 이가 아니기에 나를 다치게도, 혼자 못 떠올릴 질문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필 이 사람인 까닭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독립적인 사람은 여럿이며 그 대체 불가능함은 사랑하는 쪽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사랑이 없거나 답을 못 받아도 사람의 가치는 줄지 않는다. 모두에게 사랑하라고 권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사랑을 더 세밀히 볼 시선을 남기려 한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길잡이는 원논문 제0편, 여섯 시선은 1~6편, 마지막 여섯 이야기는 제7편에 대응한다. 여덟 편은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지 기술적 논증 전부를 문단마다 옮긴 글이 아니다. 영어는 독립적으로 썼으며 한국어도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각 글에 원논문 링크가 있다. 시선은 사랑의 발달 단계도 남의 속마음을 검사할 시험도 아니며 밖에서 성숙을 인증하는 기준도 아니다. 혼인과 성의 면을 따로 다룬다고 사랑 안의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사랑 논의로 이미 한 약속과 제도적 요구, 필요한 보호를 취소하지 않는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