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단도
나무꾼은 피 묻은 시체와 밧줄과 빗은 보았지만 칼은 없었다고 먼저 말한다. 마사고와 죽은 무사의 진술에는 가슴을 찌른 장식 단도가 공통으로 등장하고, 무사는 누군가 그것을 뽑아 갔다고 덧붙인다. 나무꾼이 가져갔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중립적 증언에도 틈이 생긴다. 영화가 그 의심을 답으로 만들었어도 원작은 단도를 끝내 의문으로 남긴다.
깨끗한 증언은 없다
승려는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고, 방범관리는 다조마루의 악명을 늘어놓으며, 장모는 강인하고 정숙한 딸의 모습을 지키려 한다. 사건과 직접 이해관계가 적어도 사람은 관찰한 사실만 전달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믿는 세계와 자기 역할을 함께 증언한다. 일곱 진술은 원본을 가린 일곱 장의 거짓말이라기보다, 처음부터 서로 다른 필요 속에서 만들어진 일곱 개의 기록이다.
그래도 남는 공통분모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결론은 증언의 충돌을 너무 멀리 밀어붙인다. 다케히로는 죽었고, 마사고는 다조마루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며, 그 행위자는 다조마루다. 세 당사자는 다른 거의 모든 것을 두고 다투지만 이 사실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강도에게는 정복, 아내에게는 고백의 출발점, 남편에게는 죽음의 전제가 되어 어느 서술도 그것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의 힘과 한계
『라쇼몬』의 하인은 행동 전에 설명을 얻고, 『덤불 속』의 사람들은 행동 뒤 자기 모습을 지킬 설명을 만든다. 말은 도둑을 의로운 생존자로, 강도를 호걸로, 무력한 죽음을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고 한 여성이 침해당한 사건 자체는 그 정체성 서사 아래 남는다. 아쿠타가와는 정답을 주지 않지만, 알 수 없는 동기와 지워서는 안 되는 사실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