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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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할 수 없는 사람들로 만든 시스템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 사이트에서는 간체와 번체를 전환할 수 있다. 원문에는 1화 피해자의 위험한 행동, 도미네이터의 작동 모드, 면죄체질, 1기 이후의 시간 순서 등에 관한 사실관계 교정이 반영되어 있다. 1기 전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대사의 한국어 표현은 이 판본의 독립 번역이며 공식 자막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후생성 청사가 습격당했다. 형사과는 조를 나누어 건물 안을 수색하고, 한 집행관은 혼자 지하로 내려간다.

이름은 카가리 슈세이. 스물두 살. 팀에서 농담을 가장 좋아하고 요리를 잘하며 진지한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사람이다. 혼자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간다. 통신에 잡음이 끼더니 완전히 끊긴다.

맨 아래층에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다.

몇 분 뒤 공안국장이 도미네이터를 들어, 평소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모드로 바꾼다. 시체를 남기지 않는 모드다. 카가리는 웃으며 못 해 먹겠다고 욕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리고 없어진다.

공안국 기록에서는 실종자가 된다. 조금 지나자 윗선은 그를 탈주자로 규정한다. 동료들은 믿지 않고, 2계 감시관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도 두 달 뒤 수색은 흐지부지 끝난다.

그의 평생 기록 마지막 줄에는 조직을 배신했다고 적힌다. 그 줄을 쓴 쪽은 그를 죽인 쪽이다.

도면에 없는 방

지하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거대한 공간. 원통형 용기가 줄지어 서 있다. 용기에는 액체가 차 있고, 액체 속에는 뇌가 잠겨 있다.

247개.

표본이 아니다. 작동하고 있다. 이 나라의 모든 범죄계수 판정, 색상 분석, 직업 적성 진단, 도미네이터의 잠금이 풀리는 매 순간까지, 모두 이 247개의 뇌가 합의해서 내놓는다. 이른바 ‘시빌라 시스템’은 슈퍼컴퓨터도 알고리즘도 아니다. 인간의 뇌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 뇌들은 어디서 왔을까?

특수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들의 사이코패스가 아예 읽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범죄 의도와 행동에 따라 수치가 정상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마키시마 쇼고는 살인 중에도 범죄계수가 너무 낮아 도미네이터가 잠겨 있거나 낮은 모드밖에 쓰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작품은 이를 ‘면죄체질’이라 부른다.

이 구조를 똑똑히 보자.

숫자로 모든 사람의 위치를 정하는 시스템. 그 판정의 핵심은 통상적인 규칙으로는 자신이 판정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허점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허점으로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측정할 수 없는 부분을 통에 담았다

여기서는 조금 더 머물러야 한다. 작품 전체의 뼈대가 여기 있다.

어떤 측정에도 측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 하나로 사람을 재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그 자의 눈금에 없는 것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된다. 자를 더 정밀하게 만들고 눈금을 더 촘촘히 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눈금 바깥’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눈금을 촘촘히 새길 때마다 무엇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할지 다시 정할 뿐이다.

시빌라의 해결 방식은 이 작품에서 가장 독한 상상이다.

측정 못 하는 사람들이 없는 척하지도, 그들을 없애지도 않았다. 따로 골라 액체에 담근 다음, 판정하는 일을 맡겼다.

누구에게나 이 시스템이 측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시스템의 해법은 그 부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꺼내서 통에 넣고 시스템을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더 차가운 귀결이 있다. 시스템은 자신을 스스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시민을 판단할 때의 전제는 판단자가 판단 대상 바깥에 선다는 것이다. 자신까지 판단 대상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돌아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밖에 남아 있어야 한다. 사회 전체에 숫자를 부여하지만 자신에게는 숫자가 있을 수 없다.

이 사회의 질서는 그렇게 기묘한 자리에 놓인다. 모두가 측정되는데 유일하게 측정되지 않는 것은 자 자체다. 위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모든 것을 안에 넣으려는 틀은 그 틀 자신을 넣을 수 없다.

247개의 뇌는 그 명제에 살을 붙인 모습이다.

그 뇌들은 누구인가

‘인간의 뇌로 만든 컴퓨터’보다 더 삼키기 어려운 층위가 있다.

면죄체질자는 특별히 고결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범죄 의도가 수치에 정상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것은 정신의 구조가 이 자의 통상적인 판정 방식 밖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이 사회의 어느 기준으로 봐도 가장 위험한 부류다. 연쇄살인범, 살인을 기술로 삼는 사람, 남의 고통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공안국장의 몸은 의체다. 안에 ‘국장’이라는 사람은 없다. 뇌들이 번갈아 맡는 껍데기만 있다. 그 몸 뒤에 있는 존재 가운데 하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러니까 그날 카가리 슈세이를 총으로 지워 버린 것은 공적인 몸을 걸친 살인범이었다.

한 걸음 더 가 보면 선명해진다. 시민 하나하나가 위험한지를 판정하는 장치는 이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고 판정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류도 풍자도 아니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그렇게 된다. 이들의 수치는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스템 자신의 규칙에 따르면 통상적인 처리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 처리 대상에 속하지 않는 데다 마침 ‘위험을 알아보는’ 능력까지 갖췄으니, 판정석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배치다.

시스템 내부에서는 완전히 앞뒤가 맞는다. 그 언어로는 반박할 수 없다.

다섯 살

카가리 슈세이에게 돌아가자.

색상이 탁해진 것은 다섯 살 때였다.

다섯 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범죄도, 가해도, ‘선택’이라 부를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측정해 보니 수치가 정상이 아니었고, 이후 한 번도 나아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사회에서 다섯 살 잠재범이란 무엇인가? 기억이 생기기도 전에 인생 전체가 쓰였다는 뜻이다. 보통 학교에 다닐 수 없고 보통의 진로를 가질 수 없으며 다른 아이들처럼 자랄 수 없다. 시설에 수용되어 그 안에서 크고, 어느 나이가 되면 눈앞에 남은 길은 둘뿐이다.

첫째. 격리시설에 계속 남는다. 평생.

둘째. 나가서 집행관이 된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사냥한다.

두 번째를 골랐다. 누구라도 두 번째를 고를 것이다.

그 사이 십수 년을 어떻게 보냈을지도 생각해 보자. 아이 하나가 시설에서 자란다. 진짜 바깥세상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반 친구도, 이웃도, 자기가 잠재범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자기 같은 사람들을 위해 따로 지은 공간 안에서 생긴다. 그 공간이 존재하는 까닭은 그를 다른 사람들과 떼어 놓기 위해서다.

훗날 농담을 좋아하고 아무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언제든 분위기를 띄우는 성격은 거기서 자랐다. 다섯 살부터 자기가 문제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은 한발 먼저 자기를 가볍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흔한 자기방어다. 내가 먼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면, 너희에게는 비웃을 것이 없으니까.

더 괴로운 일이 있다. 그는 ‘수치가 정상인’ 사람이 될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할 수 있기 전에 길이 닫혔기 때문이다. 다섯 살 아이의 수치는 어디서 오는가? 가정, 환경, 겪은 일, 타고난 기질. 어느 것도 자기 손안에 있지 않다. 시스템은 결과 하나를 읽고 그에 맞춰 평생을 짰다. 그 결과를 만든 원인 가운데 그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두 길을 발급한 주체도 똑같다. 두 가지 인생 사이에서 고른 것이 아니다. 같은 체제가 마련한 두 칸 중 하나를 골랐다. 여기서 ‘자유’란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를 자기가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체계가 사람에게 자리를 남겨 두었는지 보려면 선택지가 몇 개인지를 셀 것이 아니라, 그 선택지를 전부 그 체계가 나눠 주었는지를 봐야 한다.

자발적으로 어느 자리에 남을 수는 있다.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언제든 남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모든 문이 같은 방의 다른 구석으로 이어진다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위로에 불과하다.

남이 열어 준 문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작품은 여기서 단단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 덕분에 카가리라는 사람이 제 발로 선다.

지하로 내려가던 도중 최구성을 만난다. 바로 이 건물을 습격하는 데 가담한 사람이다. 최구성은 함께 가자고 권한다. 너도 이 시스템을 증오하지 않느냐,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하나의 문이 열렸다. 바깥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열어 준 출구였다.

카가리는 거절했다. 아주 매몰차게 거절했다. 먼저 시스템을 증오하는 것도, 그 덕에 편히 사는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도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고는 너나 나나 쓰레기이며, 남들이 잘사는 게 부러울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아야 한다.

‘나는 집행관이고 내 의무가 있다’고 하지 않았다. 번듯한 명분은 무엇도 꺼내지 않았다. 상대와 자기를 함께 판정했다. 자기 안의 증오까지 포함해서. 그 증오가 어디서 왔는지 알았고, 정의로 포장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이 문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시스템이 내주는 길도, 시스템에 반대하는 사람이 내주는 길도 택하지 않았다.

그가 평생 단 한 번 정말로 자기 발로 나아간 길은 지하 맨 아래층으로 내려간 길이었다. 그 길 끝에서 그는 지워졌다.

그 모드는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그를 죽인 한 발은 분해 모드였다. 평소에는 사람에게 쓰지 않는다. 사람을 처리하려면 마비와 살상 두 모드로 충분하다.

그 모드를 쓴 이유는 실용적이다. 시체가 남지 않는다.

시체가 없으면 현장도, 부검도, 사망 기록도 없다. 그러니 ‘실종’이라고 썼다가 ‘탈주’라고 고칠 수 있다. 근무 도중 죽은 사람이 동료를 버리고 달아난 사람으로 다시 쓰인다.

이 대목에서 가장 차가운 점이다. 시스템은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결말까지 바꿨다. 목숨만 잃은 것이 아니다. 자기 인생이 기록되어야 마땅한 방식까지 잃었다.

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를 알고, 달아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믿지 않는 것은 소용없다. 증거도 시체도 없고 의문을 걸 수 있는 단계도 없다. 두 달 뒤 수색은 멈춘다.

한 사람은 완전히 처리될 수 있다. 앞으로 남들의 기억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까지 포함해서.

아카네는 같은 것을 보고도 살아남았다

뒤에 츠네모리 아카네도 같은 방에 들어간다.

똑같은 247개의 용기를 보고 똑같은 설명을 듣는다. 카가리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자 시스템은 조건을 협의한다. 비밀을 지키기만 하면 생명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같은 방, 같은 진실, 두 사람, 두 결말.

차이는 무엇을 보았느냐에 있지 않다. 시스템이 그들을 더 써먹을 수 있느냐에 있다.

카가리는 사냥개 하나일 뿐이다. 사냥개는 바꿔 끼울 수 있고, 한 마리를 지워도 작동에 영향이 없다. 아카네는 다르다. 모든 진실을 알고도 색상이 탁해지지 않는, 이 시스템에서 극히 드문 표본이다. 시스템은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 남겨 두고 관찰하고 싶다. 장차 이용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았다. 그녀가 살아남은 이유와 카가리가 죽은 이유는 같은 이유다.

그 옹호에는 진실이 있다

시빌라 쪽 이야기에도 충분한 자리를 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글은 욕설이 된다.

아카네에게 한 말은 하나하나 성립한다.

지금 이 사회에는 범죄가 거의 없고, 사람들은 안전하고 풍족하고 질서 있게 산다고 한다. 사실이다.

작동을 멈추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추상적인 ‘사회적 비용’이 아니다. 이름과 성이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이, 뒤이어 닥칠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시간에 죽는다. 이것도 사실이다. 역사는 그런 일을 너무 많이 보여 주었다.

면죄체질자들을 ‘초대’해서 받아들이며, 그중에는 자발적으로 합류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키시마가 면전에서 거절한 뒤에도 시스템은 생포해서 편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므로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 공적인 권리가 아니다. 이 옹호는 절반만 성립한다.

더 받아치기 어려운 말도 한다. 내가 없는 세계를 한번 시험해 봐도 좋다고.

어려운 이유는 대안을 제시할 책임이 실제로 반대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제도를 욕하기는 쉽다. ‘그럼 죽을 사람들은 무엇으로 받아 낼 것인가’에 답하기는 훨씬 어렵다. 이 이야기에서 시빌라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이 질문 앞에서 비어 있다. 파괴하려는 사람도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완성된 주장이 있지만, 질서가 무너진 뒤 수백만 명을 받아 낼 방안은 하나도 없다. 자신도 그들을 감당할 생각이 없다고 인정한다.

시스템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며, 판단 그 자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이다. 적어도 자발성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은 있다. 시빌라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몸과 이름과 이후의 개인적인 삶을 내놓고, 질서를 유지하는 집단적 판단의 일부가 됐다. 그중 일부는 진심으로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과만 보면 대다수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실제로 유지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여기다. 내놓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나중에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자격이다.

자발적으로 자기를 포기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할 권리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 사라진다. 통에 잠긴 사람은 나가겠다고 신청할 수 없다. 다시 개인이 될 수 없다. ‘다시 된다’는 행동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이미 환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발적이냐 강제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모양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멈추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두 경우 모두 더 이상 없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은 없다

이 글의 사람들을 나란히 세우면 같은 모양이 보인다.

카가리에게는 선택지가 둘 있었다. 모두 시스템이 주었다.

야요이에게도 선택지가 둘 있었다. 모두 시스템이 주었다.

247개의 뇌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입구에서 한 차례 선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으로서 수정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택이기도 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스무 살부터 완성된 진로 지도가 있다. 뭐든 들어 있다. 지도 밖으로 나가는 길만 없다.

이 사회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통제가 엄격하다는 점이 아니다. 오히려 느슨하다. 통행금지도, 밀고도 없다. 말할 수 있고, 연애할 수 있고, 직장을 옮길 수 있고, 상사를 싫어해도 된다. 여러 면에서 지금 우리보다 자유의 폭이 넓다.

다만 하나를 가져갔다. 이 지도 위에 있지 않을 방법은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자유’와 조금 다르므로 한마디 더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부자유를 벽이나 금지령, 갈 수 없는 장소로 그린다. 여기에는 벽이 없다. 가능한 모든 목적지에 미리 길을 깔고 거리를 적고 안내자를 배치한 뒤,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평생 무엇에도 부딪치지 않는다. ‘내 앞을 가로막았구나’라는 느낌이 없다. 실제로 막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한 번도 서 보지 않았을 뿐이다.

선택지를 많이 주는 체계도 완전히 닫혀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선택지를 자신이 발급한다면 그렇다. 선택지를 아주 조금 주는 체계에도 틈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라도 자기 관할 밖에 있다면 그렇다. 기준은 개수가 아니라, 손이 닿지 않는 곳이 하나라도 있느냐이다.

카가리의 그 길은 이 이야기에서 누군가 정말로 지도 가장자리까지 걸어간 유일한 길이었다.

그곳에서 지도를 무엇으로 그렸는지 보았다. 그리고 지도 위에서 지워졌다.

앞에서 한 가지 말을 했다. 시빌라는 면죄체질자의 편입을 초대라고 부른다.

이 이야기에는 그 초대를 직접 받고 거절한 사람이 실제로 있다. 그가 내놓은 이유는 이렇다. 사람은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할 때만 가치를 만들어 낸다.

거의 흠잡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린다.

다음 글에서는 이 말을 한 사람이 나머지 스무 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보자.

《PSYCHO-PASS 사이코패스》. 스토리 원안·각본 우로부치 겐, 감독 시오타니 나오요시, 총감독 모토히로 카츠유키, 애니메이션 제작 Production I.G.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방영된 전 22화. 이 연작은 1기를 기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