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번 반복된 한 이름
어머니가 살해된 뒤 시력과 보행 능력을 잃은 나나리는 정치적 인질로 일본에 보내져 오빠와 숨어 산다. 를르슈는 그녀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다정한 세계를 만들겠다고 맹세하고, 거짓말과 전쟁과 희생을 정당화할 때마다 같은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나나리가 실제로 원한 것은 오빠와 함께 사는 일, 서로 다정한 세상이었다. 그것은 전쟁 계획이 아니었고, 그녀는 누구에게도 세계를 정복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녀의 첫 정치적 선택
나나리는 스스로 총독 자리를 받아들이고 유페미아가 이루지 못한 행정특구를 다시 제안한다. 처음으로 ‘보호해야 할 동생’이 아니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정치 주체로 나선 순간이다. 를르슈는 그 선택을 듣자마자 계획에 대한 장애물로 읽고, 특구의 논리를 이용해 일본인을 집단 추방시키는 대응책을 짠다. 함정일 수 있고 저항의 명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합리적이지만, 그의 첫 반응이 동생의 판단을 묻는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목적이 아니라 이유가 될 때
목적은 도달하려는 사람이고 이유는 다른 행동을 떠받치는 지지대다. 나나리는 를르슈의 모든 희생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이유가 되지만, 그 계획을 수정할 권리를 가진 목적은 되지 못한다. 그녀가 ‘나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미 죽은 사람들이 헛되었다는 부담까지 그녀가 떠안게 된다. 기아스 없이도 거부권을 막을 수 있다. ‘너를 위해서’라는 사랑의 문장은 받는 사람이 되돌려 줄 수 없는 선물이 될 때 가장 단단한 명령이 된다.
진짜 동생과 만들어진 동생
황제가 심은 가짜 기억 속 동생 로로는 어려서부터 교단의 살인 도구로 길러졌다. 진실을 안 를르슈는 형제 역할을 계속 연기하며 그를 소모 가능한 자원으로 두고, 샤리를 죽인 뒤에는 거짓 애정으로 죽음의 임무에 보낸다. 로로는 그 가짜 온기를 알면서도 를르슈를 구하고 죽는다. 나나리는 이유, 로로는 도구였지만 둘 다 질문받는 목적은 아니었다. 사랑과 눈물이 진짜여도, 상대를 목적으로 대했는지는 결국 그에게 물을 자리를 남겼는가로 판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