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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판단력 연습과 놀이 · 경쟁하기

이기고 싶지만, 당신은 상대 선수만은 아니다

상대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좋은 수를 둡니다. 그래도 이기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수가 나에게 던져진 문제이기 전에 그 사람의 발견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Han Qin ·

철학 산문이지 인지능력 검사나 향상을 보장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끝에 붙인 작은 관찰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점수를 매기거나 모범 답안을 정하지 않으며, 그 답으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이 공원을 걷다가 한 사람이 불쑥 저 나무까지 달리자고 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둘은 뛰기 시작합니다. 중간쯤 가자 앞선 사람이 뒤돌아보고 반걸음 늦춥니다. 뒤의 사람은 바깥이 비었다는 것을 알아봅니다. 여기로도 앞지를 수 있겠네.

참가 신청도 심판도 없지만 경주는 생겼습니다. 출발점은 조금 전 서 있던 곳이고 도착점은 나무이며 먼저 가면 이깁니다. 이만큼은 정했지만 언제 속도를 높이고 어느 쪽으로 앞지를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달리는 두 사람에게 남은 일입니다.

혼자 달릴 때는 길과 바람, 자기 다리를 마주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달라집니다. 그도 먼저 도착하고 싶고, 살피고 있으며, 내가 달리는 방식에 따라 자신을 바꿉니다. 우리가 원하는 자리는 같지만 1등을 동시에 둘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도 내가 어떻게 보는지 보고 있다

추가된 것은 추월해야 할 몸 하나만이 아닙니다. 나는 그가 내가 안쪽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리라고 추측합니다. 그는 그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면서 상대가 나를 어떻게 예상할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내 계산이 끝났다고 멈춰 서는 재료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속도를 높일지 추측하는 것과 지금 앞지를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은 여전히 다릅니다. 앞의 것은 판단에 쓸 재료입니다. 뒤의 것이 이 연작에서 말하는 판단입니다. 규칙이 이번 상황에 대해 다 정하지 않은 가능성을 내가 알아보았습니다. 실제로 치고 나갈지, 언제 나갈지는 뒤따를 행동입니다. 셋은 가까이 있어도 하나로 섞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판단도 틀릴 수 있습니다. 바깥으로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바로 가속할 수도 있고, 길이 보이는 것보다 좁을 수도 있습니다. 앞지르지 못했다고 판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질렀다고 결과만으로 판단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선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 순간 무엇을 어떤 근거로 알아보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잠깐의 흥일 수 있습니다. 나무에 닿아 웃고 다시 산책하면 그만입니다. 더 긴 시간과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 해 달리기를 연습했고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이번 경주는 되고 싶은 자기 모습과 연결됩니다. 두 종류의 사람을 높낮이로 나누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이기고 싶다는 말도 사람마다 무게가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기고 웃거나 지고 우는 모습만으로 옆 사람이 그 사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패배가 오랜 노력을 건드렸을 수도 있고, 지금 잠깐 속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긴 뒤 말이 없다고 놀고 있지 않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경기 중 행동과 얼굴의 감정은 단서를 주지만 한 사람의 모든 이유를 자동으로 내주지는 않습니다.

그 한 수는 먼저 그의 것이다

이제 판 옆으로 가 봅시다. 상대가 내가 계산하지 못한 수를 둡니다. 말 하나를 버리고 막힌 길을 엽니다. 나는 말을 지킬 생각만 하다가 갑자기 알아봅니다. 이렇게도 갈 수 있었구나.

그 길을 알아본 것은 내 판단이지만, 그 수를 둔 것은 그의 판단입니다. 내가 다음에 만회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 일들이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둔 수라고 내 발견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이해했다고 그의 발견도 내 이름 아래 가져올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기고 싶어도 됩니다. 상대를 존중한다고 자기 수를 멈추거나 일부러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이 협력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이 판의 승패는 여전히 그 규칙대로 나뉩니다. 좋은 수라는 한마디가 경기 관계 전체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승부하는 중에 풀어야 할 수순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내 승리를 어렵게 만들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지 못한 한 수를 찾아냈다는 사실은 다음 판에 써먹어 이길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경기 뒤의 악수나 ‘정말 멋졌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악수는 예절일 수도 있고 칭찬은 듣기 좋은 겉치레일 수도 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이번 결과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릴 뿐, 맞은편 사람을 어떻게 보았는지 바로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복기할 때에도 차이가 곧 드러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승리만 원하는 사람도 상대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자기 이해를 바꿉니다. 더 살펴볼 것은 상대의 생각을 그의 생각으로 들었는지, 다음 판에 쓸 정보로만 모아 두었는지입니다. 바뀐 것은 이 수를 둔 사람에 대한 내 이해일까요. 아니면 그의 두는 방식에 관한 정보만 갱신한 것일까요.

둘이 나란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이기고 싶다는 이유로 그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단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복기에 응했다는 이유로 존중의 증서를 발급해서도 안 됩니다. 나중 대화는 앞선 순간을 이해할 새 자료를 줄 수 있지만 그때의 내면을 직접 비추는 기계는 아닙니다. 자료가 모자라면 부족한 채로 남겨 두는 편이 대신 다 말하는 것보다 정직합니다.

경기 뒤 둘이 함께 어느 수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복기 자체가 협력하는 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대국이라는 이름 아래 있어도 둘 사이의 관계는 바뀝니다. 활동 전체에 경쟁이나 협력 중 하나의 영구 딱지를 붙이기보다 이런 변화를 구분하는 것이 더 쓸모 있습니다.

이름 하나로 경기 전체를 설명하지는 말자

프로 경기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선수는 현장에서 다음 행동을 판단하는 동시에 계약에 따라 출전하고, 결과는 상금과 수입, 자격으로 이어집니다. 놀이와 일은 같은 경기 안에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을 받았다고 매번의 발견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놀고 있어도 노동과 계약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순위와 점수는 본래 규칙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승컵을 얻는 것과 자기 돈을 승패에 거는 것은 다릅니다. 이 연작은 판 밖의 내기와 맺은 관계에 따라 도박의 몫을 논의 범위에서 제외합니다. 돈을 거는 사람에게 판단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수가 자기 경기 결과에 돈을 걸었다면 제외하는 것은 그의 그 몫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정상적인 경기까지 함께 지우지는 않습니다. 참가비를 모아 상금을 만드는 경우를 어떻게 구분할지는 원논문에도 질문으로 남습니다. 순전히 운이 정하는 판 역시 여기서 판단력 연습이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부정행위는 질문을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두 사람은 같은 규칙으로 겨룬다고 생각했는데 한쪽이 몰래 진행되는 일을 바꿉니다. 상대가 들어왔다고 생각한 판과 실제 마주하는 판은 달라집니다. 카드 한 장을 훔쳐보아 승산만 바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매 수에서 판단이 필요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연작의 구분에서는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의 그 몫은 더는 놀이로 세지 않습니다. 원래 약속대로 노는 상대의 몫은 여전히 놀이입니다. 참여자 모두가 함께 속인다면 원래 판에 남아 있는 그런 몫은 없습니다. 다만 이 경계를 어떻게 충분히 설명할지, 공모와 모두가 드러내 놓고 규칙을 바꾸는 일을 어떻게 나눌지는 원논문에서도 전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를 적었다고 증명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내기 때문에 일부러 지는 것은 패세를 보고 패배를 인정하는 일과도 다릅니다. 앞의 것은 결과를 판 밖의 돈에 연결하고, 뒤의 것은 이번 판을 마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졌다는 결과만 보고 둘을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약속을 몰래 바꾼 일까지 없앨 수는 없습니다.

실력 차이가 크다고 그 판이 빈 껍데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수가 초보자와 두면 승패가 이미 기울어 있어도 초보자는 길 하나를 처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연습은 그가 실제로 알아본 이번 순간에 있지, 옆 사람이 대신 계산한 발전 점수에 있지 않습니다. 다음에도 남을지, 판 밖으로 옮겨 갈지는 별도로 보아야 합니다.

공원의 그 나무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는 경주가 낸 결과이고, 중간에 찾아낸 길은 한 사람이 이번에 한 판단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달릴지는 여전히 그의 일입니다. 진지하게 겨루면서 그 사실도 남겨 둡니다. 그러면 승리만 바라보거나 이기고 싶지 않은 척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는 너무 좁은 자리에 자신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해당 SAE 논문을 바탕으로 쓴 독자용 산문이며, 기술적인 논증 전체를 문단별로 옮긴 글은 아닙니다. 영어판도 영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한국어판은 공개된 중국어 산문에서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놀이가 열어 주는 가능성을 실력 향상의 보장이나 인격 검사, 반드시 참여해야 할 과제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해당 원논문으로 가는 링크도 따로 제공합니다.

해당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