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읽기
Non Dubito

판단력 연습과 놀이 · 혼자 놀기

그 한 수는 내가 알아보았다

혼자 놓아 본 판에는 조언하는 상대도 호루라기를 부는 심판도 없습니다. 그래도 길을 찾아냈다가 방금 잘못 보았다고 거두는 일은 누군가가 하고 있습니다.

Han Qin ·

철학 산문이지 인지능력 검사나 향상을 보장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끝에 붙인 작은 관찰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점수를 매기거나 모범 답안을 정하지 않으며, 그 답으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기보를 책상에 펼치고 해답은 뒤집어 둡니다. 그림대로 말을 놓고 한동안 보다 보니 룩을 옆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수쯤 진행하니 나이트가 길을 막습니다. 말을 되돌립니다. 아니네, 아까 잘못 보았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상대가 갑자기 계획을 깨뜨리지도 않았고 선생님이 답을 알려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은 아닙니다. 길 하나를 알아보았고, 그 길을 스스로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판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처음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그 사이의 발견과 부정까지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인 대국은 시작되지 않았어도 한 사람의 판단력은 벌써 쓰였습니다.

상대가 없어도 살펴볼 것은 있다

규칙은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 주지만 이번 수까지 정하지는 않습니다. 퍼즐 상자에 전체 그림이 있어도 어느 조각부터 맞출지는 남아 있습니다. 블록은 더 직접적입니다. 이 하나로 위의 두 층을 받칠 줄 알았는데 옆으로 기웁니다. 규칙이 정하지 않은 일이 남고, 재료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돌려줍니다.

이것을 보는 일은 몇 수 더 계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함께 일어나기 쉬운 일을 나누어 봅시다. 여기로도 돌아갈 수 있다고 알아보는 것은 판단입니다. 돌아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하는 것은 판단에 쓸 재료입니다. 손을 뻗어 말을 옮기는 것은 뒤따르는 행동입니다. 알아보고도 두지 않을 수 있고, 해답대로 다 옮긴 뒤에야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손이 움직였다고 발견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움직이지 않았다고 발견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차이를 생각하면 재촉하는 말 하나를 덜 할 수도 있습니다. 퍼즐 조각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는 사람이 시간을 버리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직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이미 찾은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살피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옆 사람은 행동을 볼 수 있지만, 행동만으로 그 순간을 대신 설명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아까 잘못 보았다는 것도 말을 되돌리는 동작만은 아닙니다. 앞서 생각한 길을 더는 받아들이지 않기에 돌아가서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거두었어도 다시 놓기 귀찮아 그대로 둘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블록을 무너뜨렸다고 잘못을 고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싫증 나서 다르게 만들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요. 판단을 거두는 일과 손으로 원상복구하는 일은 서로 나뉠 수 있습니다.

거두는 판단도 틀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보면 룩의 우회가 나이트에 완전히 막힌 것이 아니라 다음 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발견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잘못은 첫 발견이 아니라 너무 일찍 부정한 데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고칠 기회이지, 고친 뒤 반드시 옳다는 보증서가 아닙니다.

상대가 지적하지 않고 동료가 이어 주지 않아도 그 판단은 자신이 맡습니다. 누군가 힌트를 주고 허점을 짚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일까지 대신 해 주지는 못합니다. 판단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은 경기에서 이겨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문제를 다시 놓으면 다음에는 다른 길을 볼 수도, 같은 수를 둘 수도 있습니다. 같다고 새로 알아본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달라졌다고 더 잘 이해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반복은 판단력을 실제로 다시 써 볼 기회를 줍니다. 발전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막대기이면서 말일 수도 있다

마당에는 또 다른 혼자 놀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막대기를 타고 달리며 자기 말이라고 합니다. 그건 막대기라고 급히 바로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랴 하고 외칠 때는 말이지만 놀이를 마치고 장작더미에 놓을 때에는 밤에 먹이를 줘야 하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로 보는 방식이 함께 있어도 됩니다. 어느 하나를 먼저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마구잡이로 무엇이든 하는 일도 아닙니다. 막대기를 말로 받아들였다면 타고, 매어 두고, 도랑을 넘는 일이 그 약속 속에서 일어납니다. 마당의 굽이를 발견하고 이 말은 저쪽으로도 달릴 수 있겠다고 알아봅니다. 그만 논다고 하고 내려놓으면 이 판도 끝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보는 일을 이미 해낼 수 있는 아이입니다. 이 예 하나로 모든 나이의 역할놀이에 결론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규칙의 뜻은 반대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버나드 슈츠는 《베짱이》에서 게임에서는 본래 피할 수 있는 장애물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으로 결과를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시선을 조금 돌려 봅니다. 움직이는 방식의 제한을 받아들이기에 여기서 또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가 질문이 됩니다. 슈츠가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규칙의 두 면입니다. 하나는 무엇을 막는지, 다른 하나는 무엇을 남기는지 봅니다.

혼자 노는 판에도 기준 하나를 세울 때가 있습니다. 10분 안에 퍼즐을 완성해야 성공이라거나 이번에는 지난 기록을 넘어야 한다고 정합니다. 정말 그 판의 조건으로 삼았다면 그 기준에 질 수도 있습니다. 완성만 하면 끝나는 것과 10분 안에 완성해야 성공하는 것은 다릅니다. 뒤의 경우에 성패를 재는 자가 하나 더 생깁니다.

마음으로만 빨리 하고 싶고 10분을 성공 조건에 넣지 않았다면 다릅니다. 시간을 재는지, 어떻게 약속하고 기록했는지는 놀이의 구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시계를 한번 보았다는 사실로 그 사람이 마음속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입증되지는 않습니다. 그냥 빨리 하고 싶을 수도, 이번 기록을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과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판은 가능성을 열지만 그를 대신해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의 자신보다 빨리 달리고 싶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난 기록은 남겨진 성적이지 눈앞에 따로 서서 나를 이길 방법을 궁리하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기록을 기준으로 삼아도 혼자 노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신과 경쟁한다는 일상적인 말은 좋지만, 그 때문에 어제의 나를 다른 사람 하나로 쪼갤 필요는 없습니다.

푹 빠져들어도 나올 길은 있어야 한다

퍼즐을 하다 보면 이 점을 잊기 쉽습니다. 조각을 놓은 것은 전부 자기인데 고개를 들어 보니 날이 어둡습니다. 마치 그동안 자신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이 판단은 내 것이라는 말은 나중에 나를 덧붙인 이야기가 아닐까요.

적어도 이런 퍼즐 경험은 꼭 그렇게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잊었다는 것은 주의가 줄곧 자기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색과 가장자리, 빈틈을 보았지 조각마다 내가 놓는다고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틀렸다고 알아차리면 앞의 판단을 거둘 수 있습니다. 조각을 떼는 것은 그 뒤에 따르는 동작입니다. 판단이 자기 것이려면 늘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다머는 놀이가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경험을 썼습니다. 두 시각을 승패로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놀이가 어떻게 일어나며 노는 사람을 어떻게 이끄는지 묻습니다. 여기서는 그 오가는 흐름 속에서 이번 발견이 누구의 것인지 묻습니다. 깊이 몰입하면서도 자기 판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때 거둘 수 있을지, 오류를 알아볼지는 이번 일을 보아야 합니다. 몰입이라는 말만으로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잊는 것과 설계 때문에 떠나기 어려워지는 일을 하나의 좋은 경험으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한 단계를 깨자마자 다음 단계가 시작되고 보상은 불규칙하게 오며, 멈추면 거의 손에 닿았던 것을 잃는 듯합니다. 설계자는 이런 조건으로 그만둘 여지를 줄이고 있습니다. 노는 사람에게 직접 종료 버튼을 누르면 되지 않느냐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갈 길이 아직 열려 있으면 그 사람은 실제로 놀고 있으면서도, 나가기를 어렵게 하는 설계는 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판단이 함께 성립합니다. 출구가 완전히 막히면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자발적인 놀이가 아닙니다. 실제로 떠날 수 있는지, 설계가 떠나는 비용을 어떻게 늘리는지 보아야지 화면의 버튼 유무만 볼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오후 내내 놀았다고 출구가 막혔다고 입증되지는 않습니다. 한 번 멈추지 않았다고 이제 다시는 자기 판단을 부정할 수 없다고 선언할 수도 없습니다. 설계를 비판하려고 참여자를 판단 능력이 이미 사라진 사람으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멈추었는지 자체로 이번 연습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혼자 논 오후에 쓸모 증명서를 발급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아보고 판단을 바꾸고 다시 해 보는 일은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변화가 남는지, 판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는 따로 물어야 합니다. 글쓰기조차 방에 혼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넣을 수 없습니다.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읽을지 이미 상상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방향은 협력 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말은 다시 원래 자리에 놓였습니다. 계속 두어도 되고 책을 덮어도 됩니다. 헛된 놀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더 훌륭한 수를 억지로 찾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때 내가 알아보았다는 것과, 나중에 아까는 아니었다고 거둔 것은 방에 증인이 없었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해당 SAE 논문을 바탕으로 쓴 독자용 산문이며, 기술적인 논증 전체를 문단별로 옮긴 글은 아닙니다. 영어판도 영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한국어판은 공개된 중국어 산문에서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놀이가 열어 주는 가능성을 실력 향상의 보장이나 인격 검사, 반드시 참여해야 할 과제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해당 원논문으로 가는 링크도 따로 제공합니다.

해당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