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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국가 간 협력 · 03

모두 동의한 뒤에도, 계속 물을 수 있을까

출생증명서의 ‘미정’, 정산되지 않은 영수증, 서로 다른 행선지를 뽑은 가족. 누가 이 질문을 결정권자에게 보낼 수 있고, 누가 혼자 답이 끝났다고 선언해서는 안 될까.

Han Qin ·

사례에 나오는 국가·지명·인물·사건과 표결 수치는 모두 허구다. 공동 결정을 강제로 집행할 상급 기관을 두지 않는 협력을 철학적으로 살펴보는 글이며, 현행법이나 현실의 모든 국제기구를 설명하지 않는다. 실제 분쟁에 대한 판정이나 구체적인 외교 처방을 제공하는 글도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다. 출생증명서의 국적 칸에는 ‘미정’이라고 적혔다. 다음 해가 되어도 그 두 글자는 그대로였다.

원논문의 가상 이야기에서 이것은 서류 한 장의 실수가 아니다. 전쟁 중 목적민주공화국, DRP는 출국 후 여섯 달 안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국적을 없앴고, 그들이 외국에서 낳은 아이도 등록하지 않았다. 그들을 받아준 이웃 나라에는 그 나라의 문턱이 있었다. 어른들이 국경을 넘은 뒤, 아이는 두 제도 사이에서 태어난 셈이다.

뒤에 세 나라는 협력체를 만들었다. DRP도 국적을 박탈해 자국 사람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지 않겠다는 제약을 받아들였다. 이듬해 다른 두 회원국이 질문을 제기했다. 국적을 잃은 사람은 몇 명이고, 등록되지 않은 아이는 몇 명이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의 절차를 시작할지 정하는 표결에 DRP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설명할 수 있었고, 설명 전체를 기록에 남기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이들이 묻지 못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권한이다.

DRP는 내정 문제이며 법령도 헌약보다 먼저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목적연합도시국, UCSE에 되물었다. 당신들도 부모가 합법적으로 5년을 거주해야 아이에게 국적을 주지 않는가. 우리에게 질문할 자격이 있는가?

그 답변과 다른 회원국이 제출한 수치는 모두 기록에 실렸다. 하지만 DRP는 설명을 요구받은 인원수를 내놓지 않았다. 그 빈칸도 기록에 그대로 남았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아도, 질문을 막을 수는 없다

질문할 때마다 상대의 동의부터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싫다는 한마디가 영원히 그 사람 손에 남은 열쇠가 된다. 상급 기관을 두지 않은 것은 공동기관이 회원국 대신 결정하지 못하게 하려던 일이다. 그런데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못하는 장치로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새 협약을 맺는 일과 이미 한 일을 묻는 일에 같은 열쇠를 쓸 수 없다. 앞 글에서는 새 제약을 더하려면 관련된 각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는 이미 받아들인 의무 아래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있다.

그렇다고 질문하는 쪽이 어느 나라에나 자기 말대로 답하라고 요구할 권한을 저절로 얻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할 자격과 특정 절차에서 답할 의무는 다르다. 여기서 DRP가 답해야 하는 것은 헌약의 약속과 절차를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체계 밖의 국가는 사무총장의 편지 한 장으로 같은 조약상 의무를 지지 않는다. 답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무엇을 물었고 답하지 않았는지는 공개해서 남길 수 있다.

질문받는 쪽에 문을 닫을 권한이 없다고 해서, 질문하는 쪽이 혼자 충분히 답했다거나 영원히 답이 부족하다고 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질문이 다른 형태의 명령이 된다. 질문자가 독점하지 않는 판단의 절차가 필요하다. 아직 없다면 해결되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 모든 질문이 즉시 합의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자가 빠졌다는 한 줄만으로 공정해지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의 사무총장은 DRP 국적이어서 업무에서 빠졌다. 대신 맡은 사무차장은 질문을 낸 목적민족연합, NUT의 국적을 갖고 있었다. DRP는 이의를 제기했다. 사무국은 당시 조항에 따라 대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의도 기록에 실었다. 한 번 규칙대로 처리했다고 편향이 사라졌다고 할 필요는 없다. 그 규칙으로 충분한지 다시 물을 수 있다.

내정이라는 말도 질문을 거두어갈 수 없다. 한 나라 대신 통치하지 않는 것과 어떻게 통치하는지 묻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그 법령 때문에 신분을 잃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남았고, 그 나라의 수용시설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증명서가 비어 있었다. 결과는 애초에 국경 안에서 멈추지 않았다.

DRP가 UCSE에 던진 반문도 방해되는 소리라며 버려서는 안 된다. UCSE의 문턱이 같은 아이들을 실제로 가로막는다면 그 문제도 새로 물으면 된다. 상대도 잘못했다는 사실은 이쪽의 답변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두 나라가 동시에 한 아이에게 각각 답을 빚질 수 있다.

기록이 공개된 뒤 UCSE는 부모의 합법 거주 5년 조건을 없앴다. 이후 수용시설에서 태어난 아이 389명이 국적을 얻었다. DRP도 새 등록 방식을 내놓았지만, 부모 중 한 사람이 영사관에 직접 가서 신청하고 전시 출국 절차를 보완해야 했다. 기록에 나온 기한까지 아이 37명이 등록되었고, 부모의 국적은 회복되지 않았다.

변화는 기록 뒤에 일어났다. 그렇다고 모두 그 한 번의 질문 때문에 생겼다고 말할 증거는 없다. 각국의 국내 기관이 각자의 절차에 따라 바꿨다. 변화는 적을 수 있어도 인과관계를 대신 채울 수는 없다. 양쪽에 남은 미해결 문제도 진전이 있었다는 말 속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나를 대신해 묻지 않는다면

여기까지 마이크를 쥔 쪽은 여전히 국가였다. 그렇다면 개인은 외교 당국이 ‘이 사람을 대신해 나설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기 전에, 자기 문제를 직접 올릴 수 없을까?

전쟁 중 UCSE의 공격이 이웃 나라 역의 대합실에 떨어졌다. 사망자 수는 양국 발표가 다르다. 뒤에 UCSE가 보상기금을 만들었지만 자국민과 자국 안의 합법 거주자만 대상으로 삼았다. 유족 27가구의 신청은 배제되었다. 별개의 일에서는 농가 311가구가 비축 곡물을 냈다. 영수증에는 전후 정산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정산 방식은 마련되지 않았다.

유족은 민원을 냈고 농가도 신청했다. 문을 두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문들이 계속 걸어갈 길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삼계진정위원회가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변호사에게 맡겨 자기 이름으로 진정을 냈다. 본국 외교 당국이 전달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위원회가 과거의 모든 일을 맡은 것은 아니다. 공격 자체는 관련 조항 발효 전이어서 심사 범위 밖이었다. 반면 발효 뒤에도 계속된 보상 대상 배제와 미정산 영수증은 받아들였다. 절차에 범위가 있다고 해서, 범위 밖의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길이 정말 쓸모 있는지는 세 가지부터 보면 된다. 누가 접수 여부를 정하고, 질문받는 쪽이 혼자 막을 수 있는가. 사람들이 실제로 제출할 수 있는가. 제출한 뒤 보복받지는 않는가. UCSE 관련 진정은 다른 위원들이 심의했고, UCSE가 단독으로 접수를 정하지 않았다. 보복이 있었는지 이야기의 기록을 찾으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보복이 전혀 없었다고 확인된 사실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위원회는 이후 의견을 냈다. UCSE는 나중에 보상 자격을 바꾸고 영수증을 정산했으며, 유족에게 일부를 삭제한 자료도 주었다. 질문은 결정하는 곳까지 닿았다. 하지만 보상받은 것은 19가구였고, 8가구는 사망자가 민간인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농가들은 오래전 곡물 가격으로 정산해 30%가 부족하다고 했고, 자료도 전부 공개되지 않았다.

의견 하나가 나온 것은 완전한 구제가 아니다. 이 위원회가 내는 것은 의견이지 판결이 아니다. 회원국은 미리 받아들인 약속에 따라 답하고 이행한다. 위원회에 법원의 모든 권한이 있다고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디까지 질문이 닿았고 무엇이 달라졌으며, 어디에는 아직 답이 없는지 나누어 적어야 한다.

공동 회의 자체에는 물을 수 있을까

이 길로 회원국에는 물을 수 있지만 공동기관에는 못 묻는다면,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긴다. 나라들이 따로 결정할 때에는 답해야 했는데, 모여서 결정한 뒤에는 아무도 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주에서 석협방으로 피한 사람들은 동평 수용소에 들어갔다. 회원국 회의는 이송 인원을 분담하고 가구별로 행선지를 추첨하기로 했다. 성인 자녀는 따로 한 가구로 셌다. 뽑힌 곳을 거절하면 그해 이송 자격을 잃었다. 46가구는 NUT 북부에 친척이 있었지만 다른 곳을 뽑았고, 그중 31가구는 거절해 수용소에 남았다. 또 다른 9가구에서는 성인 자녀와 부모가 서로 다른 나라로 배정되었다.

담당 부서는 추첨으로 나누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각국이 맡을 수용 몫이며, 당사자는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문장으로 실제 처지를 입증할 수는 없다. 거절 뒤에 무엇이 남는지,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는지도 실제로 살펴야 한다.

영향을 받은 사람 일부가 공동 회의의 결정 자체에 대해 진정을 냈다. 사무국은 이런 결정은 진정위원회의 관할이 아니라고 보았다. 위원회 다수는 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접수했다. 사무국의 해석이 그대로 결론이 되었다면, 질문받는 공동 체계가 자신에게 향한 문을 닫았을 것이다.

나중에 회원국 회의는 성인 자녀와 부모를 한 가구로 묶을 수 있게 했고, 행선지를 거절한 사람에게 다음 해 자격을 남겼다. 형제자매는 여전히 합치지 않았다. 이미 잃은 한 해도 새 규정이 생겼다고 돌아오지 않았다. 바꿀 수 있다는 것과 다 고쳤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질문을 낸 사람 중에는 회원국 안에 살지도 않는 이들이 있었다. 공동 조치로 회하강의 상업 물자 왕래가 막혔을 때, 문서에는 인도적 물자의 예외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허가는 평균 41일을 기다렸고, 정수 약품도 이중용도 물자로 분류되었다. 건너편 진료소와 마을 사람들도 진정했다. 회원국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면, 조치는 국경을 넘어 사람을 건드리면서 질문만 국경을 넘지 못한다.

공동 회의는 뒤에 규정을 바꿔 기한을 줄이고 정수 약품의 제한을 없앴으며 인도적 장터를 열었다. 그전에 약이 끊기고 가게들이 문을 닫았던 몇 달은 여전히 남는다. 조치를 결정한 공동 절차와 허가를 담당한 석협방은 각각 자기가 한 일을 설명해야 한다. 서로 저쪽을 가리키며 사람을 한 바퀴 돌려 원점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

질문할 수 있어도 그 길이 영원히 열린다는 보장은 없다. 뒤의 이야기에는 회원국이 개인 진정 약정에서 나가면서 새 진정이 접수되지 않는 일도 나온다. 사라진 길은 실제 손실이다.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물을 수 있다는 말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러나 탈퇴했다고 이미 한 행위와 무응답 기록,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질문까지 함께 사라지지도 않는다.

협력에서 가장 남겨둘 만한 것은 모두가 마침내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그 뒤에도 누군가 출생증명서와 영수증, 수용소와 진료소에서 출발해, ‘아니요, 여기에 아직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결정한 사람들 앞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원논문과 읽기 안내

SAE 국가 간 협력론을 바탕으로 공개된 중국어 교양 산문에서 출발해,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원 산문의 논증과 사례, 제한 조건을 보존하되 논문의 모든 명제와 부록을 기술적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사례 속 조항은 한 가지 제도적 선택이며 유일한 최선의 설계라는 뜻이 아니다. 질문, 답변 의무, 강제 집행을 구분하며, 나중에 정책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앞선 질문이 그 변화를 일으켰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각 글에서 해당 원논문으로 이어진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별도의 읽을거리는 현재 영어·중국어 간체·중국어 번체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따라가는 가상의 이야기와는 별도의 연작이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