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협력 · 02
상급자가 없어도, 약속은 왜 지켜야 할까
작은 나라는 다섯 달을 기다렸다. 새 유역 협정은 맺지 못했지만, 이전의 통보 의무는 남아 있었다. 협력이란 늘 다시 찬성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이미 약속했는지 구분하는 일인지 모른다.
석협방이 가입을 신청했을 때, 기존 세 나라 가운데 두 나라는 곧 동의했고 한 나라는 동의하지 않았다. 석협방은 다섯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 다섯 달을 곧바로 절차의 고장이라고 부르지는 말자. 이 가상의 이야기에서 각국은 새 회원을 받으려면 모두의 서면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미리 약속했다. 사무총장이 충분히 기다렸으니 동의한 것으로 치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전원 동의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때만 진짜가 된다.
물론 기다리는 데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구 1,100만 명의 석협방은 경해에서 외양으로 나가는 유일한 항로를 통제한다. 체계 밖의 고원연방은 그 가입을 원하지 않았다. 석협방은 연료의 약 70%를 연방에서 수입하고 있었고, 은행 세 곳에는 결제 심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서한도 도착했다. 각국이 이유를 다 설명한 다음부터 압력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동의를 미루던 나라는 목적민주공화국, DRP였다. 그해 여름 공화국은 고원연방과 값싼 화학비료를 장기로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어떤 의원은 두 일이 무관하다고 했고, 다른 의원은 시기가 우연 같지 않다고 했다. 원논문은 그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다고 대신 판정하지 않는다. 이 산문도 추측을 내막인 것처럼 채워 넣을 수 없다.
다섯 달 뒤 DRP 인민의회가 가입 수용을 승인했다. 석협방의 방의회도 가입안을 통과시켰다. 180석 중 찬성 121표, 반대 59표였다. 자국법상 필요한 표는 120표였으니, 겨우 한 표를 넘었다.
겉으로는 모두의 협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과 서로 다른 문턱을 거쳐야 성립했다.
동의는 날마다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아니다
공동 상급 기관이 없는 약속은 마음 상태를 적는 표처럼 오해되기 쉽다. 오늘은 하고 싶으니 하고, 내일은 싫으니 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정말 그렇다면 누구도 그 약속에 기대어 생활을 꾸릴 수 없다.
하지만 협약에 동의한다는 것은 앞으로 일정한 절차를 따르겠다고 동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종류의 사안은 다수로 결정하고, 어떤 사안은 다시 각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미리 정할 수 있다. 나중에 한 번의 표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앞서 받아들인 절차가 갑자기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다수결의 효력은 이미 인정한 절차에서 나온다. 사람이 많으면 저절로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속 헌약은 사안을 나눈다. 새 회원의 가입이나 새로운 공동 제약을 더하는 일에는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이미 한 일을 묻고 기록을 만드는 절차에서는, 질문받는 쪽에 문을 여닫을 열쇠를 주지 않는다. 정확히 몇 표가 필요하고 누가 심의에서 빠져야 하는지는 이 이야기에서 선택한 규칙이지, 유일한 규칙은 아니다.
이 구별이 있으면 협력체가 언제든 새 요구를 더할 수 있는 상급자로 변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기분이 상할 때마다 이미 약속했던 질문까지 못 하게 되지도 않는다. 회원국은 새로운 의무에 반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존 의무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나라는 동의했다’는 말도 한 겹 더 나누어야 한다. 석협방의 121표는 현지 법에 따라 가입을 성립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반대 59표가 찬성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국가가 자기 절차를 거쳐 동의를 표시한 것이지, 모든 주민이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후에도 국내의 통로를 통해 이 결정을 물을 수 있다.
가입한 석협방과 DRP가 각각 한 표를 가진다는 것도 공동 체계 안에서 두 나라가 갖는 지위에 관한 말이다. 양국의 모든 개인이 같은 무게의 정치적 대표성을 얻었다는 선언이 아니다. 한 나라 한 표로 인구 차이가 사라지지 않고, 강자가 약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보장도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지키려는 것은 시장, 인구, 군사력을 그대로 추가 표결권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가입은 어느 강대국에 거두어달라고 청하는 일도 아니다. 삼계진은 목적민족연합, NUT 안에 있고 사무국도 그곳에서 일한다. 소재지 국가라고 더 많은 권한을 가질 수는 없다. 장소를 내준 일과 먼저 시작한 공로는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공헌이 앞으로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권한으로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새 협정을 맺지 못해도, 강물은 흘러온다
가입 후 석협방은 또 다른 협정과 마주했다. 이번에는 자기가 서명하고 싶지 않았다. 가입 문제가 아니라 강에 관한 협정이었다.
윈허강은 NUT에서 목적연합도시국인 UCSE로 흘러들어 바다로 간다. 두 나라에는 물 배분과 홍수 정보 통보에 관한 기존 협정이 있었고, 중재를 통해 유량과 자료 전송 의무도 정했다. 석협방의 협수강은 윈허강의 지류다. 석협방이 들어오자 사무국은 세 나라의 유역 의정서를 마련해, 자료 공유와 공동 운영을 그쪽으로도 넓히려 했다.
석협방은 서명을 거절했다. 한편으로 발전소 대출계약이 제3자에게 운영 자료를 제공하는 일을 제한했고, 대출은행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방의회 수리위원회는 새 초안의 갈수기 유량 요구가 저수하는 해에는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했다. 두 이유를 ‘그 나라는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한마디로 합쳐서는 안 된다. 하류에 유용한 방식도 상류에는 부담일 수 있다.
서명이 없었으므로 세 나라의 새 협정은 성립하지 않았다. UCSE와 NUT는 뒤에 별도의 양자 보충협정을 맺고, 자신들이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사무국 자료센터로 보내기로 했다. 그 협정에 석협방을 당사자로 셀 수는 없고, 석협방 대신 발전소 자료를 넘기겠다고 약속할 수도 없다.
그해 여름, 발전소 수문이 고장 나 긴급 방류가 이루어졌다. 석협방이 NUT에 알린 것은 방류 시작 40분 뒤였다. 하류의 두 마을이 잠겼고 한 사람이 죽었다. 한편 애플시는 전달받은 관측 자료로, 홍수 정점이 오기 아홉 시간 전에 경보를 냈다.
이때 석협방에 묻는 것은 성립하지 않은 새 협정에 억지로 서명시키는 일이 아니다. 가입하면서 이미 헌약의 통보 의무를 받아들였다. 다른 나라 안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사전에 알리고, 그럴 틈이 없었다면 사후에 곧바로 알려야 한다는 의무다. 세 나라의 유역 의정서가 맺어질 때까지 효력이 미뤄진 조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새 약속과 기존 약속을 구별해야 한다. 새로운 자료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약속한 통보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대출계약이 무엇을 제한하는지도 따로 봐야 한다. 운영 자료를 제공하는 것과 방류 뒤 곧바로 알리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계약상 안 된다고만 말하며, 계약이 금지하지 않은 일까지 함께 숨길 수 없다.
겨울이 되자 석협방과 NUT는 방류 전에 전화로 알리는 방식을 새로 정했다. 진전이지만 여름의 일을 끝내주지는 않는다. 다음번 통보 방식을 고친 것과 이번에 두 마을이 잠기고 한 사람이 죽은 일은 따로 봐야 한다. 함께 처리되었다고 묶어버릴 수는 없다.
자료센터도 실제로 쓸모가 있었다. 애플시에는 아홉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발전소 운영 자료는 여전히 제공되지 않았다. 아홉 시간은 실제로 얻은 성과이고, 얻지 못한 자료는 실제로 남은 빈칸이다. 앞의 사실만 인정하면 협력은 홍보가 된다. 뒤의 사실만 보면 이미 이루어진 보호까지 한꺼번에 지워버린다.
하나의 협약으로, 누구 대신 어디까지 약속할 수 있을까
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협정에서 나가는 일과 서로의 생활에서 나가는 일은 다르다. 석협방이 서명하지 않아도 물은 흐른다. 두 나라가 협력을 중단한다고 홍수가 새 경계를 알아보지는 않는다. 공동 상급 기관이 없을수록, 이미 약속한 범위와 아직 약속하지 않은 부분을 더 분명히 적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동의하면 무엇이든 협약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려보내면 고문이나 재판 없는 구금을 당할 곳으로 사람을 넘기도록 하는 송환 약정을 생각해보자. 종이에 여러 나라가 서명했다고 위험에 놓일 사람들의 동의까지 대신한 것은 아니다. 서명한 쪽이 그들에게 지는 책임도 자동으로 줄지 않는다. 이것은 이 연작이 제시하는 철학적 요구이지, 실제 사건에 대한 법적 판결을 대신 내리는 말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부담을 나누는 약정에서도 우선 나누는 것은 각국의 몫이지, 이미 도착한 사람들을 짐처럼 배분하는 것이 아니다. 협력은 사람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그 이름으로 사람을 결정에서 빼버릴 수는 없다. 위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하고 어디로 갈지 정할지는 그에 맞는 법과 현실의 판단을 필요로 한다. 원칙 한 문장이 대신 처리해주지 않는다.
협약이 한 가지를 더 다룰 때마다 다시 물어야 한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는가. 왜 공동으로 맡아야 하는가. 그 대가는 누가 지는가. 조항이 적을수록 좋다는 뜻이 아니다. 홍수 경보, 국경을 넘는 진정, 기록 공개에는 세심한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줄여야 하는 것은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고 추가하는 권한이지, 실제로 사람에게 필요한 보호장치가 아니다.
공동으로 맡는 일에는 회원국 안의 사건도 포함될 수 있다. 가령 개인 진정 절차를 받아들인 국가는 그 범위 안에서 답하겠다고 이미 약속했다. 내부의 일과 관련된다고 곧바로 그 나라의 내정을 맡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 절차에서 질문이 닿는다고 공동기관이 그 나라 대신 통치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회원국이 체계 밖의 나라와 따로 맺는 무역협정도, 다른 회원국이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공동기관이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기존 약속의 이행과 충돌하는지, 실제로 타인을 억누르는지는 각각 물을 수 있다. 새로운 공동 제약을 더하려면 새 협약을 맺는 길을 거쳐야 한다. 잠깐의 불만을 그 절차 대신 몰래 끼워 넣어서는 안 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누군가는 새 협약에 오래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자료는 끝내 얻지 못할 수 있다. 밖의 강자는 회의실 밖의 힘으로 압박할 수 있다. 절차를 명확히 나누었다고 협력이 이 어려움을 모두 없애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답이 두 개뿐일 필요는 없다. 한 중심이 모두 대신 결정하거나, 아니면 모든 약속이 언제든 무효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강은 그 사이의 길을 보여준다. 이미 약속한 일에는 그 약속에 따라 답한다. 아직 약속하지 않은 일은 약속한 척하지 않는다. 나중에 방식을 고쳤다고, 그전에 입은 손실을 덮지 않는다.
약속의 무게는 때로, 이렇게 서로 다른 일을 섞지 않고 계속 구별하는 인내에 놓여 있다.
원논문과 읽기 안내
SAE 국가 간 협력론을 바탕으로 공개된 중국어 교양 산문에서 출발해,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원 산문의 논증과 사례, 제한 조건을 보존하되 논문의 모든 명제와 부록을 기술적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사례 속 조항은 한 가지 제도적 선택이며 유일한 최선의 설계라는 뜻이 아니다. 질문, 답변 의무, 강제 집행을 구분하며, 나중에 정책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앞선 질문이 그 변화를 일으켰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각 글에서 해당 원논문으로 이어진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별도의 읽을거리는 현재 영어·중국어 간체·중국어 번체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따라가는 가상의 이야기와는 별도의 연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