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협력 · 01
함께 일하려면, 모두의 상급자가 꼭 필요할까
세 이웃 나라가 오래된 세관 건물에서 협약에 서명했다. 이제 누가 결정할까. 가상의 국경 마을에서, 협력이 할 수 있는 일과 슬그머니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을 살펴본다.
우선 지도 속 실제 나라들은 잠시 잊어보자. 삼계진이라는 국경 마을을 상상해보면 좋겠다. 세 이웃 나라는 이곳에서 휴전과 철군에 관한 협정에 서명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마을의 옛 세관 건물로 들어선다. 이번에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협력하기 위해서다.
원논문이 설정한 가상의 이야기다. 현실의 어느 세 나라를 에둘러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한꺼번에 외울 필요도 없다. 목적연합도시국은 UCSE, 목적민족연합은 NUT, 목적민주공화국은 DRP라고 줄여 부르겠다. 일단 서명이 끝난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협약을 맺은 해, DRP의 한 의원이 물었다. 우리가 들어가는 곳은 더 큰 나라입니까? 앞으로 삼계진이 결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우리 인민의회가 결정하는 겁니까?
지나치게 따지는 질문이 아니다. 한 사람은 이미 자기 나라의 기관들을 상대하며 살아왔다. 이제 그 위에 공동의 체계가 하나 더 생긴다. 그곳에서 직접 명령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권력이 한 겹 더 얹힌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물을 때, 원래 뽑았던 의원은 아직 답할 수 있을까. 새 기관은 누구에게 답해야 할까.
외무장관은 헌약이 어느 공동기관에도 공화국에 명령할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답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문서에 상급자가 없다고 적혀 있다고 해서, 앞으로 실제로 하는 일에도 상급 권력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 건물 안의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삼계헌약』은 회의를 열 장소와 기록을 보관할 사무국을 마련했고, 개인의 진정을 받는 위원회도 두었다. 각 나라는 한 표씩 갖는다. 공동 군대나 경찰은 없다. 사무총장은 질문할 수 있지만 어느 나라에 법을 고치라고 명령할 수 없다. 진정위원회는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사람을 보내 강제로 집행할 수는 없다.
이 기관들과 조항은 이야기에서 택한 한 가지 구성이지, 국제기구 설계의 모범답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한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무엇을 물을 수 있고, 무엇을 결정할 수 있으며, 결정한 것은 누가 실행하는가. 그럴듯한 기관 이름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초안을 만들 때 다른 길을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공동 의회와 법원, 방위군을 두고, 조금씩 더 큰 연합으로 나아가자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에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실제로 어려운 문제를 건드린다. 나라들이 다투며 결론을 내지 못할 때, 누군가 나서서 멈춰주었으면 하고 바라기 쉽다. 다만 그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여러 나라가 영원히 하나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각자의 법에 따라 그렇게 결정한다면, 그것은 별도로 진지하게 책임져야 할 일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미 각국 대신 결정하고 강제로 실행할 권한을 얻어놓고도, 우리는 연락만 하는 곳이니 그에 맞는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태도다.
공동 부대를 보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각국이 따로 결정하지 않아도 공동 직책을 맡은 누군가의 명령으로 출동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이미 어떤 권한을 쥐었는지 살펴야 한다. 부대 이름을 ‘조정 병력’이라고 붙여도 그 사실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법원의 결정에 구속력이 있다는 말만으로 그 법원을 상급자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각국이 어떤 권한을 맡겼고, 그 결정이 각국의 법을 거쳐 어떻게 이행되는지까지 봐야 한다.
협력 속에서 몰래 늘어나기 쉬운 것은 큰 건물보다, 누구도 넘겨준 적 없는 결정권인지 모른다. 긴급하다는 이유로 한 번, 편리하다는 이유로 한 번, 효율을 위해 또 한 번 경계를 조금씩 넘는다. 그런 일이 쌓이면, 함께 의논하던 곳이 어느새 다른 사람들 대신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연작은 우선 질문의 범위를 정한다. 각국이 자기들 위에 강제력을 가진 공동 상급 기관을 두려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살펴보는 것이다. 현실의 모든 국제기구를 한꺼번에 설명하지도 않고, 다른 방식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도 않는다.
상급자가 없다고, 서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가장 직접적인 반론은 이렇다. 마지막에 강제로 이행시킬 기관도 없는데 약속이 무슨 소용인가. 어느 나라가 아예 무시하면,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 반론이 가리키는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막지 못할 때가 있다. 문제를 기록한다고 지금 고통받는 사람이 곧바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말로 위로를 대신할 수도 없고, 어떤 제도를 만들면 언제나 평화가 온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명령한다’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다. 각국은 자신을 구속하는 협정을 맺을 수 있다. 이미 내린 결정을 물을 수 있고, 답한 내용과 답하지 않은 부분을 남길 수 있다. 원래 제공하던 협조를 중단할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이 다음 거래나 대출, 공동 행동을 준비할 때, 그 기록을 보고 결정할 수도 있다.
총지휘관이 없다는 이유로 이런 일이 모두 빈말이 되지는 않는다. 협조를 끊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소수만 보던 자료를 공개하면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근거도 달라진다. 다만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과 상대의 삶을 대신 정할 권리를 얻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가령 어떤 물자를 더는 팔지 않는 것과, 상대의 마을에 들어가 누가 밖으로 나가도 되는지 정하는 것은 다르다. 앞의 행동은 우선 내가 제공할 협조를 정한다. 뒤의 행동은 이미 그곳의 결정을 넘겨받았다. 그렇다고 모든 공급 중단을 무해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조치가 사람이 살아갈 길을 끊어놓는다면,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빈말만 남을 수 있다. 거절할 여지는 문서에 ‘자발적’이라고 쓰였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남아 있는지를 봐야 한다.
무력으로 다른 나라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 대신 결정하는 행위를 막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 지배를 저지했다고 해서 보호받는 이들의 미래를 대신 정할 자격까지 얻지는 않는다. 누가 병력을 보내고, 근거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각각 설명해야 한다. 뒤의 글에서 따로 살펴볼 것이다. 공동 상급 기관을 두지 않는다는 말을, 공격을 받아도 구경만 해야 한다는 말로 바꾸지는 않는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길을 왜 계속 시도할까. 옳다는 것조차 타인 대신 결정할 무제한 통행증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의 미래를 잘 마련해준다 해도, 결정하는 이가 진실하고 결과도 좋아 보인다 해도, 그곳 사람들은 여전히 남이 준 답을 이행하고 있을 뿐일 수 있다.
이것은 정부에 외부의 질문을 막을 부적을 주는 주장이 아니다. 나라가 자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여전히 물을 수 있다. 당신 대신 결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당신 일은 남과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남겨두려는 것은 사람들이 다시 판단하고 성장할 여지이지, 권력자가 답하지 않아도 되는 여지가 아니다.
‘함께 결정했다’는 말 속에서 사람을 지우지 않으려면
삼계진에서 협약을 맺은 뒤, 한 신문은 새 체계를 ‘세 나라 위에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사무국 공보는 체계의 이름으로 내는 문서마다 어느 기관이 결정했는지, 몇 표로 통과했는지, 각국이 어떻게 표를 던졌는지 쓰도록 요구했다.
문서 작성의 자잘한 문제처럼 들릴 수 있다. 사실은 큰말 속에서 사라지기 쉬운 사람들을 남기는 일이다. 어느 나라 대표가 그 표를 던졌고, 어떤 절차로 권한을 얻었으며, 돌아가서는 누구에게 설명하는가. 모두의 의지라고 합쳐버리면 이 질문들이 한꺼번에 가려지기 쉽다.
협력에 참여했다고 좋은 나라라는 훈장을 받는 것도 아니다. 회원국들은 문제마다 전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오늘은 질문할 수 있는 절차를 지지하고, 내일은 그 절차를 침묵시키려 할 수도 있다. 읽어야 할 것은 실제로 한 일이다. 이름이나 영구히 유효한 신분증이 아니다.
서명한다고 힘의 차이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큰 나라의 시장, 대출, 항로와 군사력은 회의실 밖에서 회의실 안의 결정을 계속 흔든다. 한 나라 한 표는 마법이 아니다. 명목상 모두의 기구가 한 나라의 영향력을 뻗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훌륭한 규약이 있는지만 볼 수 없다. 작은 쪽이 거절할 수 있는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질문을 안으로 보낼 길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특히 ‘국가는 모두 평등하다’는 말로 그 안의 사람들을 가려서는 안 된다. 끝내 보호해야 할 생명은 국가가 아니다. 여기서 국가는 약속을 맺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창구이지, 거대한 인간이 아니다. 결정의 영향은 강가의 주민, 서류를 기다리는 아이, 비축 곡물을 징발당한 농가에 이른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존중하는 것은 사람이 지배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국가가 사람들의 질문을 전부 삼키도록 허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협력은 적어도 두 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회원국에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게 질문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공동 회의가 마련한 방식 때문에 가족이 갈라지고 국경 진료소에 약이 닿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정만 했으니 책임은 집행국에 전부 있다는 말로 끝낼 수 없다. 공동 결정과 구체적인 집행에는 각각 설명해야 할 몫이 있다.
이 길이 가장 볼품없어 보이는 대목은, 가장 정직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계속 생기고, 의견은 이행되지 않으며, 보호는 제때 오지 못할 수 있다. 상급 기관을 만들지 않았다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그런 결과만 책임 기록에서 지워서는 안 된다.
우선 삼계진의 옛 세관 건물을 기억해두자. 주소가 있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겨둘 기록이 하나씩 생긴다. 유용한 협력이 되는지는 그 안에 모두를 대신해 답하는 한 사람이 앉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곳에서 나온 답 하나하나에, 다시 질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원논문과 읽기 안내
SAE 국가 간 협력론을 바탕으로 공개된 중국어 교양 산문에서 출발해,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원 산문의 논증과 사례, 제한 조건을 보존하되 논문의 모든 명제와 부록을 기술적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사례 속 조항은 한 가지 제도적 선택이며 유일한 최선의 설계라는 뜻이 아니다. 질문, 답변 의무, 강제 집행을 구분하며, 나중에 정책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앞선 질문이 그 변화를 일으켰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각 글에서 해당 원논문으로 이어진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별도의 읽을거리는 현재 영어·중국어 간체·중국어 번체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따라가는 가상의 이야기와는 별도의 연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