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 영화 읽기 · 2 / 3
그 거짓말의 목적은 아이를 내일까지 살게 하는 것뿐이었다
이 글의 목차
콘크리트로 지은 방에 수십 명이 서 있다. 독일군 장교가 들어와 독일어로 수용소 규칙을 고함친다.
그가 묻는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와서 통역하라.
깡마른 남자 하나가 손을 든다. 그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장교가 한마디씩 고함칠 때마다 그가 한마디씩 옮긴다.
장교는 규칙을 말한다. 그가 하는 말은 이렇다. 게임이 시작됐다. 먼저 천 점을 따는 사람이 진짜 탱크 한 대를 받는다.
장교가 수용소의 금지 사항을 외치는 동안, 그는 감점 항목을 하나씩 꼽는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면 감점. 배고프다고 간식을 달라면 감점. 울어도 감점.
고함을 마친 장교가 나간다. 방 안의 어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다섯 살 아이 하나만 그 말을 진짜로 믿는다.
I. 살아남는 일을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바꾸다
그 규칙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무척 단순하고, 모두 같은 곳을 향한다.
울지 말 것.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지 말 것. 배고프다고 하지 말 것.
게임에서는 이 세 가지가 감점 항목이다. 수용소에서는 조용히 있기, 은신처를 벗어나지 않기, 어른들이나 경비병 앞에 달려 나가지 않기로 이어진다.
나중에는 규칙이 하나 더 붙는다. 큰 소리로 고함치는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 들키면 탈락이다. 이 규칙의 목적은 한층 직접적이다. 아이더러 잘 숨어 있으라는 것이다.
이 거짓말은 아이에게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장 살아남는 일을 다섯 살짜리가 알아듣고, 때로는 해낼 수도 있는 행동으로 바꾸어 줄 뿐이다.
조슈아에게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사람으로 자라야 하는지 요구하지도, 어른이 된 뒤 살아갈 세계를 대신 정해 주려 하지도 않는다. 다음 점호, 다음 수색, 다음 밤을 버텨 내게 하려는 것뿐이다.
II. 현실이 들이닥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메워야 한다
이 게임은 한 번 설명했다고 단단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날마다 구멍이 뚫리고, 귀도는 날마다 그것을 메운다.
아들이 달려와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서는 자기들을 단추와 비누로 만들고, 사람을 불태운다고 누군가 말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통해 아이에게도 수용소의 살인적인 현실이 다가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문의 모든 세부가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을 아이가 감지했다는 점이다.
귀도는 웃음을 터뜨린다. “누가 그런 말을 하니?” 웃으면서 한술 더 뜬다. “그럼 내일 아침엔 내가 바르톨로메오로 손을 씻고, 프란체스코로 내 재킷을 여미겠네!” 그러더니 단추 하나를 떨어뜨리고는 “어이쿠, 조르조가 떨어졌네!” 하고 받아넘긴다.
그는 정색하고 부정해서 이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내는 대신, 더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부풀린다. 아이는 그래서 당분간 그것을 ‘어른들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쪽으로 분류해 둔다.
더 아슬아슬했던 장면도 있다. 아이들 모두에게 씻으러 가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조슈아는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원래 목욕을 싫어하던 아이는 이번에도 숨어 버린다.
씻으러 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는 그 살육을 아이의 시야에 넣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치워 버리지도 않는다.
조슈아가 살아남는 데에는 아버지의 지어낸 이야기와 다섯 살 아이의 고집, 그리고 우연이 함께 작용한다. 귀도는 전능하지 않다. 모든 일을 막을 수는 없다. 현실이 들이닥칠 때마다 서둘러 한 겹을 더 덧대는 수밖에 없다.
III. 방송으로 전한 말은 게임의 일부가 아니다
귀도가 하는 모든 일이 그 게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용소 방송실을 발견하고 조슈아를 데리고 뛰어든다. 마이크를 잡고 수용소 전체를 향해 외친다. “좋은 아침이에요, 공주님.”
지난밤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꿈을 꾸었고, 그때 도라가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고 말한다. 아이도 마이크에 바짝 다가가 엄마를 부른다.
여자들이 있는 수용 구역에서 도라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이 말에는 전술적인 쓸모가 전혀 없다. 누구를 한 입 더 먹이지도, 하루 덜 일하게 하지도 못한다. 게임 점수를 단 한 점 올려 주지도 못한다.
그 말이 하는 일은 하나다. 한 여자에게 남편과 아들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린다.
나중에 귀도는 장교들의 모임에서 접시를 나르다가 축음기 나팔을 창밖으로 돌려놓고 오펜바흐의 뱃노래를 튼다. 도라와 함께 들었던 곡이다.
음악이 수용소를 가로질러 흐른다. 건너편의 도라가 그 소리를 듣는다.
사람을 머릿수와 노동 시간, 처리할 물량으로 세는 곳에서, 그는 발각될 위험을 무릅쓴다. 오직 특정한 한 사람에게, 그가 아는 또 한 사람이 아직 여기 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IV. 레싱 의사가 알아본 것은 쓸모 하나뿐이었다
레싱은 독일인 의사다. 전쟁 전에는 귀도가 일하던 호텔에 묵던 손님이었다. 두 사람은 곧잘 함께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는 귀도의 재치를 좋아했고 천재라고 불렀다.
그러나 수용소의 레싱은 아무 죄 없는 구경꾼이 아니다. 수용소 체계 안에서 수감자들을 검사하고 선별하는 의사다. 누가 더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장치 속에 그 자신이 들어가 있다.
그는 예전에 나눴던 수수께끼 하나로 귀도를 알아본다. 귀도에게 희망이 생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니, 도라를 찾는 일을 도와줄 수도 있다. 어쩌면 가족 모두를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줄 수도 있다.
마침내 장교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레싱이 기회를 잡아 귀도를 따로 부른다. 초조한 표정으로, 줄곧 자기를 괴롭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꺼내려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수수께끼에 오리가 한 마리 나온다. 오래도록 생각해도 답을 몰라 잠을 잘 수가 없으니, 귀도가 꼭 풀어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가장 서늘한 이유는 레싱이 귀도를 잊었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너무도 정확하게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수수께끼를 풀어 주던 영리한 웨이터는 알아보면서, 그 웨이터가 지금 살해당하고 있는 사람이자 아내를 찾는 남편이며 아이를 숨기려 애쓰는 아버지라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사람의 쓸모를 알아보는 눈과 사람 자체를 보지 못하는 눈은 얼마든지 함께 있을 수 있다. 레싱은 귀도의 얼굴을 잊을 필요가 없다. 그 얼굴 뒤의 모든 것을, 아직 자신에게 쓸모 있는 능력 하나로 줄여 버리면 된다.
V. 안개 속의 산
어느 날 밤, 귀도가 잠든 아들을 업고 수용소 안을 걷다가 길을 잃는다.
안개가 짙다. 앞쪽에 산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시신이 쌓여 이루어진 산이다.
귀도는 그 자리에 멈춘다. 얼굴에서 희극적 연기가 사라진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업고 떠난다.
잠든 아이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관객은 충분히 많은 것을 보았다.
이 장면이 게임의 경계를 긋는다. 게임은 영화가 관객에게 제시하는 수용소의 모습이 아니다. 한 인물이 한 아이 둘레에 잠시 버티고 세운 가림막이다. 카메라는 몇 번이고 그 바깥에 서며, 우리도 그곳에 남겨 둔다.
아이가 당장은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앎을 관객이 짊어진다. 조슈아가 몇백 점을 딸 때마다, 우리는 그 점수가 실제로 돌아가는 장치 속에서는 아무 효력이 없음을 안다. 아이가 이해하는 것과 관객이 이해하는 것 사이의 거리는 고통을 덜어 주지 않는다. 귀도가 날마다 무엇을 지탱하고 있는지 보게 한다.
VI. 이 게임에는 끝이 있다
이 게임에는 결승선이 있다. 천 점, 탱크 한 대, 그리고 끝.
그 규칙은 이 장소와 이 위급한 상황에 붙어 있다. 세상을 설명하는 영구적인 이론이 되려 하지 않으며, 조슈아에게 어떤 믿음을 평생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거짓말이 본래 무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공포가 아이에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증거는 더더욱 아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한정된 특징이다. 귀도가 세운 것은 임시 구조다. 그것이 내세운 용도는 더는 숨을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끝난다.
어떤 거짓말은 한 사람의 미래를 점령한다. 계속 믿으라고 요구하고, 그가 누구인지를 새로 규정하며, 나중에 제기하는 질문에는 벌을 준다. 귀도의 게임은 다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을 정하고, 그 행동으로 시간을 번다. 그러면서 더는 게임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향한다.
그런데 그 순간이 실제로 왔을 때, 벌어지는 일은 단순히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이 아니다.
조슈아는 여전히 게임을 믿는다. 그리고 약속된 상품이 정말 나타난다.
거짓말이 제 역할을 마칠 때에도 아이는 아직 그것이 거짓말인 줄 모른다. 다음 글에서는 이 시간차를 지키기 위해 귀도가 무엇을 치렀는지, 그리고 그 탱크가 정확히 어떤 약속을 실현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은 로베르토 베니니와 빈첸초 체라미가 공동 각본을 쓰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1997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