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 영화 읽기 · 3 / 3
그때 그는 결과를 알지 못했다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의 논지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글이다. 대사와 표현은 이 글을 위한 한국어 옮김이며, 공식 자막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세 얼간이》의 마지막에, 사라졌던 그 학생이 푼수크 왕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특허를 400개나 가진 저명한 발명가, 서명 하나로 차투르의 가장 큰 계약을 성사시킬 수도 무산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다. 더없이 절묘한 농담이다. 대학의 잣대를 거부했던 사람이, 바로 그 잣대가 성공을 예측하려 했던 세상을 정복했다.
이때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란초가 옳았던 이유가 결국 가장 크게 이겼기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경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결승선을 마지막 장면까지 숨겨 두었을 뿐이다.
1. 졸업장의 주인이 따로 있는 학생
‘란초’는 원래 초테라고 불리던 아이였다. 부유한 란초다스 집안에서 일하던 정원사의 아들로, 아버지를 여읜 고아였다. 그는 도련님이 더는 입지 않는 교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갔고, 숙제를 대신 해 주고 시험까지 대신 치렀다. 도련님의 아버지는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거래를 제안했다. 초테는 아들의 이름을 빌려 ICE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졸업장은 진짜 란초다스의 것이다. 졸업한 뒤에는 자취를 감추고, 대학에서 만난 누구와도 다시 연락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 모순 속에서 공부한다. 교실과 장비, 교수라는 좀처럼 얻기 힘든 배움의 기회를 누리지만,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자기 것이라고 할 권리는 없다. 제도는 그의 지성을 길러 주면서도, 그 지성의 주인으로서 그의 이름은 법적으로 지워 버린다.
성적이 그를 좀처럼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증서는 처음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며, 더더욱 아무 위험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교육은 남의 이름을 쓰는 일과 비밀 유지, 언제든 이 약속을 끝낼 수 있는 후원자에게 달려 있다.
2. 같은 자유에도 사람마다 다른 값을 치른다
란초의 처지는 두 친구와 뚜렷하게 다르다. 파르한은 사진가의 길로 돌아서기 전에, 가족이 여러 해 동안 그의 엔지니어 진로에 쏟아부은 투자를 마주해야 한다. 라주는 졸업장을 가지고 취업 시장에 들어가야 하며, 여러 식구의 생계가 거기에 걸려 있다. 란초도 거래를 유지할 만큼 뛰어나야 한다. 그러나 취업이나 졸업장의 소유권이 그의 미래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이 비대칭이 란초의 생각이 틀렸다는 증거는 아니다. 소득이 얼마이든, 두려워서 외우는 것보다 궁금해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성공을 좇지 말라’는 조언에 치러야 할 값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결국 그 대가를 감당하는 쪽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임을 인정해야 조언도 정직해진다.
3. 란초는 도덕의 마스코트가 아니다
영화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면 란초가 넘는 모든 선을 쉽게 용서하게 된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는 정체를 숨겼고, 약속에 따라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피아 곁에서 여러 해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연설문을 고쳐 차투르에게 망신을 주었고, 파르한의 개인적인 편지를 동의 없이 부쳤으며, 라주의 시험지를 훔치는 데도 가담했다.
그의 개입 가운데는 생명을 구한 것도 있고 실제 가능성을 연 것도 있으며, 그저 웃음을 주는 것도 있고 명백히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있다. 권위를 견디지 못하는 같은 성향이 잔인한 규칙을 거부하게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동의를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여기게도 한다.
란초를 구호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려면 행동을 하나씩 따로 판단해야 한다. 나중에 얻은 어떤 특허도 과거의 행동을 소급해서 정당화해 주지는 못한다.
4. 차투르는 실제로 성공했다
10년 뒤 다시 만나자는 내기의 날짜가 되자 차투르는 기업의 부사장이 되어 돌아온다. 집과 수영장, 람보르기니가 있고 우월함을 과시할 만한 연봉을 받는다. 영화는 이 성취가 모두 가짜라거나, 속으로는 틀림없이 불행할 것이라고 말할 근거를 주지 않는다.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은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는 내기에서 정한 바로 그 날짜에 돌아와 재산을 비교하고, 란초가 실패해야 자신의 성공도 완성된다고 여긴다. 왕두를 좇는 일조차 지위를 높여 줄 계약을 따내는 일이 된다.
차투르는 대학이 가르친 방법이 통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동시에 외부의 비교 기준이 졸업 뒤에도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 준다. 충분하다는 말은, 내가 다른 누군가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다.
5. 결말에서 거꾸로 판단할 때의 함정
왕두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란초의 공부 방식과 이후의 일 사이에는 의미 있는 연결이 생긴다. 호기심과 이해, 실제로 무언가를 발명하는 일, 시험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그가 특허 400개를 얻고 그 특별한 학교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을 법하다.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 왜곡이다.
그러나 이 결말은 도덕적 논증을 뒤늦게 도착한 시장의 인증으로 바꾸기도 한다. 차투르가 고개를 숙이는 까닭은 반항아가 자신에게 필요한 사업상의 힘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란초는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더 큰 점수판에서도 이겼다.
영화의 더 깊은 주장을 시험하려면 그 점수판을 치워 보면 된다. 란초가 명성도 특허도 없는 평범한 교사에 머물렀다면? 이슈트반이 제안한 일이 오래가지 못하고, 라주의 솔직한 면접도 불합격으로 끝났다면? 그렇다고 호기심이 외운 것을 내보이는 공부보다 나을 것이 없어지는가? 자기 이름으로 서명한 인생은 그때 틀린 인생이 되는가?
나중의 성공은 란초의 생각이 실제로 풍성한 결실을 맺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의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 선택들을 내리던 때에는 아무도 결말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6.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도 무죄도 되지 않는다
란초는 결과를 모른 채 행동한다. 조이의 카메라 헬리콥터를 완성하는 일을 도울 때는 렌즈에 무엇이 잡힐지 몰랐다. 졸업장을 넘겨줄 때는 훗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될지 몰랐다. 파르한의 편지를 부칠 때는 어떤 답장이 올지 몰랐다. 폭풍우 속에서는 그 자리에서 방법을 찾아 출산을 도왔다. 시험지를 훔칠 때도 라주가 거절할 줄은 몰랐다.
확신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행동이 용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무모한 행동이나 남에게 강요하는 행동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의 근거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예견할 수 있는 피해를 책임지는지, 나중에 잘못으로 드러난 부분을 기꺼이 바로잡으려 하는지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긴급한 출산을 도운 일에 감탄하면서도 절도를 칭찬하지 않을 수 있다. 그 편지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이 애초에 없었던 척하지 않을 수 있다.
7. ‘알 이즈 웰’이 정직한 말이 되려면
란초는 밤에 마을을 순찰하던 사람에게서 이 말을 배웠다. 순찰자가 밤마다 ‘알 이즈 웰’, 다 괜찮다고 외치면 마을 사람들은 안심하고 잠들었다. 란초는 나중에야 그가 밤에는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외침이 위험의 부재를 증명해 준 적은 없었다.
란초도 이 말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겁먹은 마음을 달래, 문제를 마주할 힘을 줄 뿐이다. 보장보다 작은 말이지만 보장보다 쓸모 있는 말이기도 하다. 시험에 반드시 붙는다거나, 아버지가 반드시 허락한다거나, 환자가 반드시 살아난다거나, 발명가가 반드시 인정받으리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이 말의 뜻은 이렇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거꾸로 얻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행동을 미룰 수는 없다. 사람은 미래가 아직 열려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지금 자기 이름을 걸 수 있는 이유를 내놓고, 뒤따르는 결과에 답할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란초는 자신이 왕두가 될 줄 몰랐다. 영화가 용기를 말하기 시작하는 자리는 바로 여기다. 특허 400개가 아니다.
이 글은 라지쿠마르 히라니가 연출한 2009년 영화 《세 얼간이》를 다룬다. 영화는 체탄 바갓의 소설 『Five Point Someone』을 참고한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의 줄거리 분석은 영화와 정식으로 출간된 각본을 기준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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