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째 글. 플랫폼과 데이터 경제: 예측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상품이다
플랫폼은 광고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확률을 판다. 관심과 행동의 흔적이 가격이 되면서, 측정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사람을 더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 글의 목차
1. 정보가 넘쳐나는 순간
1971년, 조직을 연구하던 한 학자가 훗날 거듭 인용될 말을 적었다. 정보가 넘쳐나면 주의력이 빈곤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정보가 풍부한 세계에서 정보가 실제로 소모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의력이며, 정보에 드는 비용의 대부분도 사실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치른다고.
당시 이 말은 하나의 진단이었다. 그런데 더 눈여겨볼 것은 그가 바로 이어서 한 일이다. 그는 이 희소한 자원을 잴 단위를 찾을 수는 없는지, 제대로 배분할 수는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주의력은 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미 셈에 넣을 준비가 된 것이었다.
이 점에서 앞선 열아홉 편의 출발과는 사뭇 다르다. 그 글들에서 구축이 통약하려던 것은 이미 세상에 놓여 있었다. 땅 한 조각이 거기 있었고, 배 한 척에 실린 화물이 거기 있었고, 하루의 노동시간이 거기 있었다. 다만 공통 단위가 없었을 뿐이다. 주의력은 다르다.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옮길 수도 없고, 내일 쓰려고 쌓아둘 수도 없다. 쓰는 순간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런 것을 잴 자를 만들려면 먼저 그 흔적부터 만들어야 한다.
흔적을 만드는 일은 뒤의 모든 절에서 되풀이된다. 그 모양도 갈수록 잘게 나뉜다. 처음에는 보았는지, 그다음에는 눌렀는지, 이어서는 얼마나 머물렀는지, 어디까지 화면을 내렸는지, 어디서 왔고 다음에는 어디로 갔는지, 누구와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쳐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지다. 항목을 하나 더할 때마다 자의 눈금은 한층 촘촘해진다. 눈금이 촘촘해질 때마다 전에는 셈할 수 없던 것들이 또 한 무리씩 셈 안으로 들어온다.
23년 뒤인 1994년 10월, 한 웹사이트가 배너광고를 내걸었다. 보통 인터넷 배너광고의 시작으로 꼽히는 광고다. 훗날 이 광고가 기억에 남은 것은 클릭률이 44퍼센트에 이르렀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업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돌아보며 강조한 것은 마침내 인터넷에도 광고를 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다른 일이었다. 광고주가 처음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 광고를 몇 명이 보았고, 몇 명이 이 광고에 반응했는지를.
이 차이가 이후 30년을 결정했다. 신문과 텔레비전도 광고를 팔았다. 다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발행부수와 시청률, 추산한 총수뿐이었다. 텔레비전 광고가 나갔을 때 누가 보았는지, 누가 물을 따르러 자리를 떴는지, 누가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광고주가 낸 돈 가운데 절반은 자신이 끝내 확인할 수 없는 수를 사는 데 쓰였다.
바로 여기가 경계선이다.
이 순간부터 광고를 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윤곽 없는 군중이 아니었다. 하나씩 셀 수 있는 사건으로 나뉘었다. 노출 한 번, 클릭 한 번, 반응 한 번이었다.
어떤 것을 셀 수 있게 되면 정산할 수 있다. 정산할 수 있으면 입찰에 부칠 수 있다. 입찰에 부칠 수 있으면 누군가는 그 수를 키울 방법을 찾는다. 앞선 글들에서도 몇 번이나 걸었던 길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 길 끝에 서 있는 것이 땅 한 조각도, 화물 한 무더기도 아니다.
앞선 열아홉 편에서 잔여항은 줄곧 장부 밖으로 넘쳐나오는 것이었다. 풀리지 않는 묵은 셈이었고, 정확히 재어놓고도 자세히 보지 않는 칸이었고, 내놓을 수 없는 증빙이었고, 적을 칸이 없는 연결선들이었고, 시스템 위험이라는 자에 대면 측정값이 0인 사람이었다.
구축은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아홉 가지로 바꾸어왔다. 아홉 가지 모두 방어였다. 느슨하게 풀어주기, 이름 바꾸기, 묻지 않기, 환산하기, 경계 좁히기, 궤도 내주기, 증빙 요구하기, 다시 분류하기, 장부에 올리지 않기였다.
이후 30년 동안 벌어진 일은 그 반대다.
구축은 더 이상 잔여항이 넘쳐나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손을 뻗어 가져간다.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먼저 가져간다는 것이 곧 빼앗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하는 일은 다른 데 있고, 더 근본적이다. 본래 모양이 없던 것에 모양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누군가 오늘은 딴생각을 하고, 어제는 3분 더 머물렀고, 지난달에는 갑자기 무엇을 사고 싶어 했다.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났다. 다만 기록할 수 있는 사건으로 성립한 적이 없었다. 구축이 하려는 첫 번째 일은 이것들을 우선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2. 본질적으로 광고주에게 기울게 된다
1998년, 대학원생 두 명이 대규모 하이퍼텍스트 웹 검색엔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이 훗날 그 회사의 기술적 출발점이 되었다.
논문 완전판의 부록에는 광고 수입으로 운영하는 검색에 분명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 있다. 핵심은 이 문장이다. 광고 수입으로 운영하는 검색엔진은 본질적으로 광고주에게 기울게 된다.
훗날의 비판자들이 그들을 대신해 만들어낸 역설이 아니다. 그들이 창업 초기에 직접 적어둔 판단이다.
이 문장이 놓인 자리는 아홉째 글에서 잘려나간 스미스의 나머지 절반, 열일곱째 글에서 거의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조항이 놓인 자리와 같다. 구축은 자기 문서 속에 자신을 향한 경고를 남겼다. 그 경고는 온전히 보존되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없앤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후의 전환을 더 또렷이 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사업의 압력과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수익모델 사이에서, 자신이 일찍이 경계했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점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에 맞서려면 중요하다. 뒤에 생겨난 체계 전체를 기술이 저절로 자란 결과처럼 말할 때가 많다. 인터넷이 생기면 광고가 생기고, 광고가 생기면 추적이 생기고, 추적이 생기면 프로파일링이 생긴다는 식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처음 적었던 그 문장은 당시에도 적어도 누군가는 다른 길을 보았고, 이 길로 들어서면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도 알았음을 보여준다. 떠밀려간 길이 아니라 선택한 길이었다.
같은 시기, 다른 회사가 먼저 그 길을 달리며 모양을 드러냈다.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한 검색회사가 클릭할 때마다 돈을 내는 검색광고를 뚜렷한 시장으로 만들어냈다. 2001년에는 자신이 성과에 따라 비용을 내는 검색 시장의 창시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해 2분기만 해도 광고주가 겨냥한 이용자를 유료로 연결하는 일을 3억 2,300만 건 성사시켰고, 약 4만 5,000개 광고주가 검색결과의 순위를 놓고 입찰하게 했다.
누군가 클릭했을 때에만 돈을 받았다.
이 한 걸음이 지닌 무게를 쉽게 놓칠 수 있으므로 분명히 짚어둘 필요가 있다.
그전까지 광고의 값은 지면과 시간대에 따라 매겨졌다. 전면 광고 한 장에 얼마인가. 황금시간대 30초에 얼마인가. 발행부수는 얼마이고 시청률은 얼마인가. 사는 것은 자리였고, 노출될 기회였고, 일정한 시간 동안 몇 명에게 보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클릭당 과금이 바꾼 것은 값을 매기는 대상이었다. 광고주가 사는 것은 이제 자리가 아니라 동작 한 번이었다.
겉으로는 값을 더 공정하게 매기도록 고친 것뿐인 듯하다. 아무도 광고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광고주에게 이익인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진짜 결과는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동작만 셈에 들어간다면 기계 전체는 콘텐츠를 더 좋게 만드는 방향이 아니라, 그 동작이 일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자라게 된다. 열셋째 글에서 말했다. 구축이 측정 단위를 한 번 정하면 그 뒤의 모든 힘은 그 단위에 쏟아진다고.
그 동작은 구체적인 한 사람이 구체적인 어느 순간에 해낸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광고주와 그 사람 사이에 확인할 수 있는 선이 생겼다. 예전의 불분명한 장부에서 광고주는 추산된 총수를 돈 주고 샀다. 이제 그가 내는 돈 한 푼 한 푼 뒤에는 누군가 실제로 손을 한 번 움직였다는 사실이 놓였다. 광고업계에서는 이것을 전면적인 진보로 받아들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2000년 4분기, 그 검색회사는 광고주가 직접 등록하는 텍스트 광고를 내놓았다. 처음에는 노출에 따라 돈을 받았다. 2002년 1분기에 이르러서는 광고 전체를 클릭에 따라 돈을 받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여기서부터 기계 하나에 기본 단위가 생겼다. 그 단위는 지면 한 치도, 1초도, 노출 1,000회도 아니었다.
사람 하나가 손을 움직여 한 번 누른 것이었다.
이 단위에는 앞서 나온 어떤 자에도 없던 성질이 있다. 측정되는 바로 그 사람이 직접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무(畝)의 땅은 측량에 동의할 필요가 없고, 배 한 척에 실린 화물은 무게를 재는 데 협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단위는 다르다. 누르는 사람이 없으면 그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계 전체의 원료는 수십억 명이 날마다 제 손으로 생산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이 무언가를 생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 검색 한 번이 경매 한 번을 일으킨다
2004년, 그 회사는 상장을 준비하며 제출한 문서에서 자기 기계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했다.
광고주는 누군가 클릭했을 때에만 돈을 낸다. 그리고 검색 질의가 한 번 들어올 때마다 자동 경매가 한 번 열린다.
광고 순위는 입찰가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클릭률처럼 관심을 나타낸다고 여겨지는 지표에도 달려 있다. 관련성이 높고 대상을 더 잘 겨냥한 광고는 더 자주 클릭되기 때문에 저절로 위로 올라간다.
문서는 가격을 정하는 예를 하나 들었다. 갑은 1달러를 써냈지만 실제로는 61센트만 내면 된다. 을은 60센트를 써내고 실제로는 51센트를 낸다. 병은 50센트를 써냈으나 최저가인 5센트에 낙찰된다.
이 예 앞에서는 잠시 멈출 만하다. 아주 정교한 장치 하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높은 값을 써낸 사람이 꼭 자신이 써낸 만큼 내는 것은 아니다. 얼마를 낼지는 바로 뒤에 선 사람이 얼마를 써냈는지, 그리고 자신의 광고가 클릭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이 써낸 값과 실제로 치르는 값 사이에 예측이라는 한 겹이 끼어 있다.
이 예측의 층이야말로 기계의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광고주가 낼 돈이 얼마를 낼 뜻이 있느냐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그 광고의 클릭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보느냐에도 달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플랫폼은 경매를 여는 쪽이면서 동시에 값을 추정하는 쪽이고, 자신이 추정한 수가 자신이 받을 돈을 직접 결정한다. 예전 시장에는 없던 자리다. 경매회사가 가격 결정에 끼어들지는 않았고, 거래소가 어느 주식이 오를지 점치지는 않았다.
이 기계와 예전의 모든 시장이 갈리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예전 시장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가격이 생겼다. 사는 사람이 값을 부르면 파는 사람이 다시 불렀다. 혹은 경매사가 더는 값을 올려 부르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호가를 받아 외쳤다. 가격은 협상이나 입찰의 결과였고, 참여하는 것은 사는 쪽과 파는 쪽이었다.
여기서는 가격을 만드는 데 제3자가 하나 더 참여한다. 그런데 그 제3자는 그 자리에 없고, 자신이 참여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바로 지금 검색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검색어가 이 경매에 들어간다. 과거의 클릭 습관이 이 경매에 들어간다. 추정된 관심사가 이 경매에 들어간다. 누가 앞에 설지를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고, 앞에 선 사람이 얼마를 낼지도 그 사람이 결정한다.
그 자신은 이 경매가 열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엔터키를 누른 순간부터 화면이 나타날 때까지, 모든 과정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기술상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 체계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다. 사람이 반응해야 하는 단계가 하나라도 있으면 수십억 번을 실행할 수 없을 만큼 속도가 느려진다. 반대로 사람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빠른 것은 의문을 제기할 길도 없다. 예전의 구축은 가림막으로 추궁을 줄여야 했다. 열일곱째 글에서는 그 가림막의 역할이 수고를 더는 데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가림막조차 필요 없다.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모든 일이 끝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1분기, 같은 회사는 이 논리를 검색 밖으로 넓혔다. 광고망에 가입한 웹사이트들은 자기 페이지에 이 광고를 놓을 수 있었고, 광고주는 여전히 클릭에 따라 돈을 냈다.
그리하여 검색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웹을 둘러보는 수많은 순간이 같은 정산 체계에 연결되었다.
웹페이지의 내용, 광고 자리, 광고주의 집행, 보는 사람의 동작이 한데 묶였다.
2007년, 한 연방기관은 그 회사가 광고기술 회사 하나를 31억 달러에 인수하도록 허용했다.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이 거래를 막지는 않겠다고도 분명히 밝혔다. 그것은 자신의 반독점 권한 밖이라는 이유였다. 동시에 온라인 광고시장 전체에 사생활 보호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돌아보면 이 인수의 뜻은 여기에 있다. 검색광고의 경매 논리와, 디스플레이 광고를 보내고 추적하며 제3자가 광고를 집행하는 기반시설이 한층 더 깊이 이어 붙었다.
이렇게 이어 붙이고 나면 한 사람이 인터넷을 돌아다닌 자취는 더 이상 서로 무관한 토막들이 아니다. 이 사이트에서 본 것이 다른 사이트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에 영향을 준다. 어제 검색한 말이 오늘까지 따라온다. 열여덟째 글에서는 그 기계가 마침내 다른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방향이 다르다. 여전히 바깥세상을 기록한다. 다만 바깥의 그 세계를 한 줄로 꿰어 잇는다.
4. 소비자가 어떤 광고도 클릭한 적이 없더라도
행동을 이어 하나의 궤적으로 만들려면 한 가지가 필요하다. 같은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1999년에서 2000년 무렵, 브라우저에 저장하는 식별표지가 광고망과 결합했다. 한 사람이 이 사이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던 데서, 여러 사이트를 오가며 무엇을 했는지를 아는 데로 나아갔다.
2000년, 그 연방기관은 온라인 프로파일링에 관한 문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문서에는 광고망이 수집하는 정보가 특정인의 실명과 곧바로 연결되기보다는, 대개 광고망 자체의 식별번호와 연결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장을 하나 남겼다. 이런 정보는 소비자가 어떤 광고도 클릭한 적이 없더라도 수집된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그전에는 없었던 처지를 보여준다.
앞선 열아홉 편에서 한 사람이 장부 안에 들어가려면 언제나 먼저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돈을 빌리거나, 계약서에 서명하거나, 임대료를 내거나, 공장에 들어가거나, 물건을 사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어떤 명부에 한 번은 이름이 올라야 했다. 장부는 일어난 거래를 기록했다.
여기서는 거래가 필요 없다. 클릭할 필요도 없다. 동의할 필요도 없다.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 짧은 말이 경계 하나를 긋는다. 앞선 열아홉 편에서 사람과 구축 사이에는 언제나 한 번의 접촉이 있었다. 서명을 했고, 돈을 냈고, 등록되었고, 일을 받았고, 한 차례 판정을 받았다. 접촉이 있으면 어느 시점을 짚을 수 있다. 그 시점을 놓고 다툴 수 있고 나중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지나가는 일은 그런 시점을 남기지 않는다.
이 일은 잔여항의 성질도 한 겹 더 보여준다. 앞선 글들에서 잔여항이 모습을 드러내려면 대개 어느 순간을 기다려야 했다. 청산하는 날, 판정이 내려지는 자리, 자원이 모자라 나누어줄 수 없던 몇 주였다. 여기서는 기록이 끊이지 않으므로 그런 순간이 없다. 무언가를 줄곧 기록하면서도 한 번도 장부를 맞추어볼 날이 오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이 기록되었는지 탁자 위에 올려놓을 기회도 끝내 오지 않는다.
그 문서의 수치 몇 가지는 그대로 놓아볼 만하다. 당시 표본에서 방문량이 많은 사이트의 57퍼센트가 제3자의 식별표지 설치를 허용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개인정보처리방침에서 제3자의 표지나 정보 수집을 언급한 곳은 22퍼센트뿐이었다. 가장 큰 사이트 100개 가운데서는 78퍼센트가 제3자의 표지를 허용했고, 공개한 곳은 51퍼센트뿐이었다.
처지를 더 잘 보여주는 수가 하나 더 있다. 당시 컴퓨터 이용자 가운데 이런 식별표지를 들어본 사람은 40퍼센트에 불과했다.
문서는 당시의 우려도 하나 기록했다. 이런 프로파일을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나 조건을 정하는 데 쓸 수 있고, 심지어 생명보험에도 쓸 수 있다는 우려였다. 논자들은 여기에 이름을 붙였다. 예전에 은행이 대출하지 않을 지역을 지도에 선으로 둘러 표시하던 관행에서 말을 빌려, 온라인에 선을 긋는다고 했다.
이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당신을 더 잘 이해한다는 온건한 말에서 이 일을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프로파일에 담긴다는 것은 자신에게 더 잘 맞는 광고를 보게 된다는 뜻만이 아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당신에게는 다른 가격을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보험이 당신에게는 다른 조건을 내걸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기회는 당신 눈앞에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당신은 그런 기회가 원래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는 뜻이다.
열아홉째 글에서 말했다. 구제의 자는 기관은 비추어도 개인은 비추지 못한다고. 여기서는 방향이 반대다. 이 자는 아주 세밀하게 비춘다. 당사자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데까지 비춘다.
두 일의 공통점은 비추어지는 쪽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없다는 말은 앞선 글들에서 줄곧 맴돌았던 물음이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열셋째 글에서 증빙을 대지 못한 사람들은 판정의 현장에 없었다. 열여섯째 글에서 명부 밖의 사람들은 명부를 만드는 현장에 없었다. 열아홉째 글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은 누구를 구할지 정하는 현장에 없었다. 이번에는 더 철저하다. 현장에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이 셈에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5. 친구가 보태는 신뢰
2012년, 또 다른 회사가 상장을 준비했다. 그 회사의 문서에는 다른 종류의 것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게시물에 댓글을 달면 그 동작은 피드를 통해 친구들에게 공유된다. 브랜드는 그 소셜 활동의 도달률과 배포 빈도, 눈에 띄는 정도를 크게 높여주는 상품을 살 수 있다.
일상의 말로 옮기면 이렇다. 당신이 어떤 것을 괜찮다고 여겼다는 사실 자체가 사들일 수 있는 광고 재고가 되었다.
여기서는 공정한 말도 한마디 남겨야 한다. 어떤 물건이 쓸 만하다고 친구에게 알려주는 일은 예전부터 늘 있었다.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첫째 글에서 서로 주고받은 호의를 기억하던 오고 감이 기대고 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플랫폼이 발명한 것은 아니다. 플랫폼이 한 일은 여기에 가격표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 걸음은 클릭당 과금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클릭당 과금에서 사는 것은 당신의 동작이다. 여기서 사는 것은 그 동작이 다른 사람에게 갖는 무게다.
그 무게에 값어치가 있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광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고 하나가 화면에 뜨면 사람은 경계한다. 돈을 주고 산 자리임을 알고, 말하는 쪽이 돈을 받았음을 안다. 하지만 친구가 누른 좋아요에는 그런 신호가 붙어 있지 않다. 같은 피드에 다른 것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미 그 노출에는 돈이 지불되어 있다. 당신의 친구는 광고 하나를 반신반의해도 당신이 좋아요를 눌렀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서 인격에 기대는 신뢰는 우회되지 않았다. 원료가 되었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작은 기술적 차이 하나다. 소셜 플랫폼은 누가 누구와 친구인지 안다. 앞서 본 광고 기계들이 한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 알았다면, 이 기계는 그가 누구를 아는지, 그가 하는 일을 누가 보게 되는지, 누구의 말에 더 쉽게 귀를 기울이는지도 안다. 관계는 본래 당사자들의 기억에만 있었다. 명부도, 번호도, 강약의 구분도 없었다. 기록되고 나자 그 세 가지가 모두 생겼다.
앞선 글들에서 여러 번 말했다. 익명의 가격과 인격에 기대는 신뢰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관계였던 적이 없다고.
여섯째 글의 교자는 사람들이 인정해주어야 설 수 있었다. 열일곱째 글의 공통된 자는 마지막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계속 그 빚을 인정할 뜻이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열여덟째 글에서는 표준계약과 신용등급 아래에서도 모든 이음매에 상대를 믿어야만 하는 곳이 조금씩 묻혀 있었다.
모두 인격에 기대는 것이 밑에서 받쳐 올라와 익명의 기계를 지탱한 경우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익명의 기계가 먼저 손을 뻗어 인격에 기대는 것을 가져간다. 그것을 값을 매길 수 있는 배포 능력으로 환산한다.
신뢰가 기계를 받쳐준 것이 아니다. 신뢰가 기계에 투입되는 원료가 되었다.
둘의 차이는 이렇게 보면 된다. 기계를 받쳐주는 것은 기계가 고장 났을 때에야 떠오른다. 원료로 쓰이는 것은 기계가 날마다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부터 소모된다. 앞의 것은 위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뒤의 것은 평범한 날들 속에서 조금씩 줄어들고, 어느 날에도 사람들은 그것이 줄었다고 알아차리지 못한다.
원료는 쓰면 닳는다. 친구의 추천에 돈으로 산 배포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음에 친구가 누른 좋아요를 볼 때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한 겹의 생각은 곧바로 어떤 숫자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천천히 쌓인다. 그러다 어느 날, 원료로 삼았던 그 무언가는 예전만큼 값어치가 있지 않게 된다. 구축은 여기서 다루기 몹시 어려운 대상을 만난다. 힘껏 캐낼수록 광맥이 얇아지는 대상이다.
6. 예상 행동률
이제 가장 중요한 곳을 볼 수 있다.
디스플레이 광고 쪽에서는 2009년 무렵 실시간 입찰이 등장했다. 한 업계 회고에 따르면, 어느 광고 거래 플랫폼에서 실시간 입찰로 거래된 광고 재고의 비중은 2010년 1월 8퍼센트에서 2011년 5월 68퍼센트로 뛰었다.
1년 남짓한 사이에 10퍼센트 미만에서 70퍼센트 가까이로 바뀌었다.
이 곡선의 모양은 앞선 글들에도 나왔다. 열여덟째 글의 명목원금, 열넷째 글의 준비금과 부채도 늘어날 때는 그랬다. 어느 한 해에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었다. 해마다 그저 전년보다 조금씩 더 했을 뿐인데, 돌아보면 이미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광고는 페이지 구석의 자리에서 한 번 팔리고 끝나지 않는다. 노출 한 번 한 번이 플랫폼을 가로질러 자동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입찰을 일으킬 수 있다.
그 입찰의 순위를 정하는 공식 안에, 따로 꺼내볼 만한 항목이 하나 있다.
그 소셜 플랫폼이 광고주에게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경매는 총가치를 본다. 총가치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입찰가, 예상 행동률, 광고 품질이다.
예상 행동률.
이 말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뜻은 이렇다. 눈앞의 구체적인 이 사람이 이 광고를 보고 그 동작을 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플랫폼이 추정한다는 것이다. 누를 것인가. 설치할 것인가. 양식을 작성할 것인가. 살 것인가.
그 추정이 가격에 직접 들어간다.
분명히 해둘 것은 이 추정이 꼭 들어맞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경쟁자의 추정보다 아주 조금만 더 정확하면 된다. 그것도 대규모로 합쳐놓았을 때 아주 조금 더 정확하면 된다. 한 사람만 놓고 보면 플랫폼의 짐작은 완전히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수억 번의 노출을 평균 내면 그 조그만 우위가 돈이 된다. 이 또한 이 기계가 예전의 자들과 다른 점이다. 어떤 구체적인 한 사람을 정확히 잴 생각은 애초에 없다. 큰 무리를 남보다 조금 더 정확히 재면 그만이다.
앞선 열아홉 편에서 구축이 값을 매긴 대상은 모두 이미 존재하거나 이미 일어난 것이었다. 땅 한 조각에는 면적이 있고, 하루의 노동에는 시간이 있고, 빚 한 건에는 원금이 있고, 계약 하나에는 명목원금이 있고, 집 한 채에는 거래가격이 있었다. 가장 추상적인 옵션, 스와프, 합성상품조차 이미 존재하는 기초자산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값을 매겼다.
여기서 값을 매기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영영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큰 일이다.
당신은 누르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영 누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이 누를지 말지는 이미 수십 밀리초 전에 수 하나로 추정되었다. 그 수가 어느 광고주가 이번 노출을 따낼지, 그 노출에 얼마를 내야 할지도 이미 결정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이 정산되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실현되지 않았고, 실현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잠깐 뒤를 돌아볼 수 있다. 열한째 글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특별했던 것은 이미 끝낸 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팔기 때문이었다. 그것만 해도 한 걸음 앞당겨간 것이었다. 거래하는 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여기서는 거기서 다시 크게 한 걸음 나아간다. 노동력은 적어도 실제로 사용되어야 했다. 고용주는 돈을 냈으면 사람을 불러 일을 시켜야 했다.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당신의 가능성은 팔렸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시대의 공통 척도는 노동시간, 개수, 운임, 가격, 이자율이었다. 모두 이미 끝난 일을 가리켰다.
이 시대에 새로 더해진 공통 척도는 클릭률, 클릭당 비용, 관련성 점수, 품질 순위, 예상 행동률, 광고 한 건의 평균가격, 한 사람의 생애가치다.
이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그리고 한 사람이 얼마나 쉽게 예측되는지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한 사람의 내면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도 당신의 생각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소유하고 거래하는 것은 내면이 바깥에 남긴 흔적, 그리고 그 흔적으로부터 추산한 예측 가능성이다.
이 구분은 지켜야 한다. 과장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당신의 생각을 읽어내지 않았고, 누구도 당신의 의지를 가져가지 않았다. 예측 가능성은 내면이 아니다. 내면이 바깥에 남기는 규칙성이다. 사람은 여전히 언제든 그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로 그 일을 뒤에서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 역사 전체의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예측 가능성 자체가 상품이 되는 순간,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사업이 된다.
이 체계를 연구한 한 학자는 이 말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행동을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동의 근원에 개입해 그 행동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열여덟째 글에서 말했다. 모형은 시장 곁에 서서 시장을 묘사하지 않는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 시장을 바꾼다. 측정 대상은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자가 내놓은 측정값을 따라 움직인다.
여기서는 한 겹 더 들어간다.
자는 더 이상 측정 대상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직접 손을 대어, 대상을 더 재기 쉬운 모양으로 다듬기 시작한다.
더 쉽게 예측되는 사람은 이 장부에서 더 높은 측정값을 얻는다. 그러니 사람을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에는 모두 경제적 이유가 생긴다. 정해진 알림, 당신이 떠나려는 바로 그때 나타나는 추천, 당신의 하루를 같은 길이의 수많은 토막으로 나누는 일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 장부에서는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곧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축의 모습 가운데 가장 맞서기 어려운 형태다. 앞의 아홉 가지는 모두 구축이 잔여항을 다루는 수단이었다. 여기서 열 번째가 나타난다. 유일하게 바깥으로 힘을 쓰는 수단이다. 이미 넘쳐나온 것을 처리하는 대신, 넘쳐나올 근원을 바꾸어 조금 덜 넘치게 만든다. 어떤 것이 애초부터 자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구축은 그것을 수습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7. 너무 새롭다고 말했는가, 충분히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까지의 설명 전체는 한 학자가 내놓은 명제에서 나온다. 이 명제를 둘러싼 논쟁은 거세다. 양쪽을 모두 놓고 볼 만하다.
그녀의 핵심 서술은 이렇다. 그 검색회사는 인터넷 초기에 사람의 행동이 남기는 흔적이 서비스 개선의 부산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추출하고, 가공하고, 팔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뽑아가는 것에 행동잉여라는 이름을 붙였다. 행동잉여는 예측상품으로 가공되어 인간의 미래 행동에 관한 시장에 팔린다. 뒤로 가면 플랫폼은 행동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련의 설계를 통해 행동을 조정하고 유도한다.
그녀는 수치도 하나 제시했다. 그 회사의 매출은 2001년 8,600만 달러에서 2004년 32억 달러로, 35배 넘게 증가했다. 그녀는 바로 이 증가 속도가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발명을 드러냈다고 보았다.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름을 붙여 설명하는 힘이다. 무료 서비스, 개인화, 빨간 알림점, 추천 피드, 스마트홈, 속을 볼 수 없는 경매.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하나의 연속된 역사로 이어진다. 한 평자는 이 책이 서술의 역작이면서 이론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모델, 새로운 추출 방식, 새로운 통제 방식을 실제로 그려냈다는 데에도 동의했다.
비판은 네 갈래이며, 서로 다르다.
이 네 갈래를 그대로 펼쳐놓을 필요가 있다. 같은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것을 너무 새로운 것으로 말했다는 비판이 있다. 오래된 것을 너무 적게 이야기했다는 비판이 있다. 말을 지나치게 세게 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더 근본에 가까이 가서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네 갈래는 저마다 앞선 여섯 절의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성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녀가 이 일을 너무 새로운 것으로 말했다는 비판이다. 앞서 그 평자는 더 오래된 연구 전통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체계를 법이 없는 땅을 차지한 일로 묘사해서는 부족하다고 했다. 법과 맺는 관계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법 자체가 이 체계를 만들어내는 힘도 훨씬 크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새로운 것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법제도와 기반시설, 통치가 이어져온 더 긴 역사 위에 세워졌다고 본다.
두 번째는 감시는 너무 많고 자본주의는 너무 적다는 비판이다. 한 비판자는 날카로운 말을 남겼다. 감시 자본주의는 예상대로 자본주의보다 감시에 더 치우쳐 있다고. 플랫폼을 두둔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행동잉여에만 눈을 고정하면 더 깊은 자본축적의 논리를 배경의 잡음으로 돌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곳에는 장기적인 이윤, 경쟁 압력, 비용의 외부화, 국가의 지원, 세계적 불평등이 있다.
세 번째는 법과 정책을 분석하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한 긴 서평은 그녀가 실제 위험을 포착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논증이 지나친 과장에 가려질 때가 많다고 보았다. 이들은 감시 자본주의보다 감시 경제라는 말을 더 선호했다. 이전 체계와 급진적으로 단절되었다는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겠다고도 명시했다. 여기서 갈리는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이 문제들을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라고 부를 만한가 하는 점이다.
네 번째는 더 오래된 노동 연구의 전통에서 나온다. 어떤 연구자는 소셜미디어를 놀이가 곧 노동이 되는 장으로 묘사하며, 여가시간과 노동시간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연구자는 플랫폼화를 보수가 지나치게 적거나 아예 없는 수많은 과업을 이용자에게 나누어주고, 표준화와 파편화, 과업화를 통해 그 기여를 조율하는 일로 설명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자본주의의 논리가 아니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노동, 소비, 놀이, 사교를 가치증식 속으로 다시 조직해 넣는 일이다.
세계적 불평등을 강조하는 또 다른 갈래는 데이터 관계를 일종의 데이터 식민주의로 이해한다. 오늘날이 옛 식민주의를 그대로 반복한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삶 자체가 축적의 원료로 끊임없이 징발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점을 두고, 디지털 노동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가 남긴 주의도 그대로 적어둘 만하다. 그는 오늘날의 데이터 체계를 노예제,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곧바로 빗대면 이 새로운 체계가 지닌 역사적 고유성을 놓칠 수 있다고 했다.
이 주의는 이 대목의 역사를 쓰는 데 중요하다.
여덟째 글에서는 사람 전체를 가격의 평면에 눌러 넣은 일을 다루었다. 거기에는 법적 권리에 따른 소유와 매매가 있었고, 폭력이 있었고, 사람을 보험증서에 적어 넣은 기록이 있었다. 여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차이는 폭력이 있느냐 없느냐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차이는 거래 대상이다. 그때 가격의 평면에 눌러 넣은 것은 한 사람의 인신 전체였다. 그것은 법에 명시되어 있었고, 담보로 잡힐 수 있었고, 상속될 수 있었고, 보험증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는 누가 누구에게 속한다고 적힌 문서가 하나도 없다. 적을 수도 없다. 거래되는 것이 애초에 소유권의 대상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어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법적으로 당신을 소유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당신의 주의력과 행동을 언제든 값을 매기고, 계산하고, 팔 수 있는 상태에 두려는 노력이 계속된다.
둘을 한 가지로 섞어버리면 역사도 억울해지고, 눈앞의 이 체계만이 가진 고유함도 놓치게 된다.
이 원칙은 앞에서도 한 번 지켰다. 열여섯째 글에서 세 차례의 기근을 함께 읽을 때도, 사람을 배제하는 세 기술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뭉뚱그려 모두 같은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구별하는 것은 무게를 덜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반대다. 어떤 것의 구체적인 모양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
8. 빠져나가는 것들
마지막 논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논쟁 역시 끝나지 않았다.
한쪽은 데이터를 노동으로 보자고 주장한다. 몇몇 연구자는 2018년, 데이터를 적어도 어느 정도는 노동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이 관찰하기만 하면 저절로 생기는 자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논거는 이렇다. 플랫폼은 데이터의 지배적인 구매자로서 수요독점에 가까운 힘을 행사한다. 데이터를 공짜로 여기면 이용자의 기여를 낮춰 보게 되고, 분배의 불평등을 키우며, 지배적 플랫폼이 오랫동안 0이라는 가격에서 이익을 얻게 된다.
이 주장의 강점은 무료라는 말을 해체한다는 데 있다.
무료라는 말은 앞선 글들에도 나왔다. 열두째 글에서 가사노동이 장부상 0인 까닭의 절반은 한 번도 값을 부르라고 요구받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여기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때는 아무도 셈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아주 세밀하게 셈한다. 다만 셈해서 나온 수익이 반대편으로 간다. 플랫폼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 기여 없이 서비스를 공짜로 쓰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 가치의 일부는 그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신호, 선호, 텍스트, 이미지, 클릭, 주석과 피드백에 실제로 의존한다.
반론은 여러 갈래다.
하나는 개념에 관한 것이다. 2024년, 한 학자는 직접 물었다. 데이터를 제공하는 일이 정말 노동인가. 그의 답은 이렇다. 일에 대한 일상적인 관념에 비추어보면, 데이터 제공은 대개 중요성, 노력의 정도, 사람 사이의 인정에 관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규제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데이터 제공을 노동이라 부르면 개념을 너무 멀리 늘리는 셈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는 정치경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데이터는 노동이라는 말보다 데이터는 자본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관심의 초점도 이용자에게 임금을 소급해 지급하는 데 두기보다, 데이터가 어떻게 끝없는 축적의 운동 안으로 들어가는지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더 근본적인 반론도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보수를 중심에 놓으려 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주자는 식으로 문제를 말하면, 모든 것을 보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양 플랫폼이 정한 공통 척도를 너무 서둘러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짚으려는 것은 플랫폼이 당신에게 돈 얼마를 덜 주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플랫폼은 생활세계의 경계를 다시 만들고 있다. 본래 계속 거두어가서는 안 될 것들을, 언제든 뽑아 쓸 수 있는 투입물로 점점 더 많이 바꾸고 있다.
두 입장을 두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한쪽은 묻는다. 사용하는 사람이 가치를 만들었다면 왜 돈을 주지 않는가.
다른 쪽은 묻는다. 왜 삶을 잘라 정산할 수 있는 투입물로 만든다는 전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가.
앞의 입장은 이 사람들을 계약과 분배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려 한다. 뒤의 입장은 계약이라는 언어가 이미 한발 늦은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 전에 경계가 다시 그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양쪽은 같은 사실 하나를 인정한다. 다만 거기서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사람에게 속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 번도 진정한 협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갈리는 것은 협의의 언어로 그것을 되찾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여기서는 판정하지 않는다.
어느 쪽에 서든 자료상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다. 이 자는 한 번도 전부를 재어낸 적이 없다.
2000년의 그 문서에도 이미 적혀 있었다. 당시 그 식별표지를 들어본 사람은 40퍼센트뿐이었고, 프로파일은 그 안에 담긴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다. 식별표지는 지울 수 있고 브라우저 설정도 바꿀 수 있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도 프로파일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뒤의 일은 더 직접적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어느 지역에서 사생활 보호 규칙을 도입한 뒤, 디스플레이 광고가 구매 의향을 바꾸는 효과가 약 65퍼센트 줄었다.
이 수치는 양쪽으로 읽어야 한다.
한쪽으로는 타깃 광고의 가치가 상상 속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있으며, 상당히 크다는 뜻이다.
다른 쪽으로는 내면에 값을 매기는 이 기계가 추적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추적 능력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법이 한 부분을 깎아낼 수 있고, 브라우저가 한 부분을 깎아낼 수 있고, 운영체제가 한 부분을 깎아낼 수 있다.
이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앞선 열아홉 편에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축이 잴 수 있는 범위는 줄곧 바깥으로 넓어졌다. 점토판에서 동전으로, 동전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방정식으로, 방정식에서 수백조에 이르는 계약의 액면금액으로 넓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범위를 사람이 한 토막 밀어 되돌렸다. 밀어낸 것도 위기가 아니라 규칙과 기기였다. 구축의 경계가 처음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밀려 들어왔고, 실제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그 소셜 플랫폼은 2024년 연차보고서에서도 투자자들에게 인정했다. 규제 환경과 제3자의 모바일 운영체제 및 브라우저의 변화가 신호를 얻고, 타깃을 정하고, 측정하는 능력을 제한했으며, 광고 수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예측 가능성을 주력 사업으로 삼는 회사가 공식 문서에 이 말을 적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인정한 셈이다. 그 자의 측정 범위는 측정되는 세계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 뻗어도 되는지가 정한다.
이제 널리 퍼진 그 말로 돌아갈 수 있다. 당신은 고객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거칠고, 정확하지도 않다.
플랫폼은 온전한 사람 하나에 가격 하나를 붙이는 일이 거의 없다. 붙이는 것은 훨씬 잘게 나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일련의 그림자가격이다. 당신의 다음 클릭은 얼마인가. 당신이 3초 더 머무르면 이 광고의 관련성은 얼마나 높아지는가. 친구의 좋아요 하나가 브랜드에 얼마만 한 지렛대가 되는가. 당신의 구매 의향이 높다고 판단되면 광고주는 얼마를 더 써내는가. 당신의 프로파일 때문에 어느 시장에서 고위험으로 분류되어 더 높은 값을 치르게 되는가.
시장의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법적 의미의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그 사람의 예측 가능한 겉모습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제를 누그러뜨리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엇인가가 당신으로 간주되어 거래되는 것과 당신 자신이 거래되는 것은 법적 권리의 차원에서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일상에서 겪는 경험으로 보면 둘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보험을 신청할 때 상대가 보는 것은 그 겉모습이다. 페이지를 열었을 때 당신에게 제시되는 가격은 그 겉모습에 맞추어 계산된다. 일자리를 찾으려 할 때 먼저 읽히는 것도 그 겉모습이다. 당신 자신은 내내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는 당신은 그런 계산에 참여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은 바로 그 사람을 가장 그답게 만드는 부분이다. 마음을 바꾸고, 알림이 가리키는 대로 가지 않고, 휴대전화를 뒤집어놓고, 오늘은 사고 싶지 않다가 내일은 갑자기 사고 싶어진다. 왜 그런지 분명하게 말할 수도 없다.
이 장부에서 그런 것들은 가치가 아니다. 잡음이다.
앞선 열아홉 편에서 잔여항은 장부가 빠뜨려 바깥에 남겨둔 것이었다. 여기서 잔여항은 장부가 잡음으로 판정한 것이다. 빠뜨린 것이 아니다. 측정했고, 빼버렸다. 예측의 정확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측의 정확도를 낮춘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