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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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56장 · 총 81장

나의 전부를 맡기지는 않는다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知者弗言,言者弗知。塞其兑,闭其门,和其光,同其尘,挫其锐,解其纷,是谓玄同。故不可得而亲,不可得而疏,不可得而利,亦不可得而害,不可得而贵,亦不可得而贱,故为天下贵。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칭찬을 듣고도 선택할 수 있을까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거절하려던 일을 맡는다. 반대로 누군가 조금 차갑게 대하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삼킨다. 상대가 힘이 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 인정받는지에 자신의 가치를 통째로 맡겨 둔 부분이 있다.

강하게 보이는 사람에게도 쉽게 끌려가는 자리가 있다. 이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면 승부를 걸어 올 때마다 응해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도 잃는 일을 견딜 수 없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원하지 않는 약속을 거듭할 수 있다. 밖에서 보이는 강함과 스스로 선택할 여지는 반드시 같지 않다.

56장은 그 여지를 ‘玄同’이라는 말로 이끈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재능을 쓰며 이익과 평가도 받되, 그 가운데 하나에 자기 전부를 넘기지 않는 삶이다.

이는 누구도 해칠 수 없는 사람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폭력과 협박, 빈곤과 상실에는 실제 힘이 있으며 마음가짐만으로 물리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약점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여기서 생각하려는 것은 상처의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피할 수 있는 지배를 하나 줄이고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길을 남기는 일이다.

칭찬받아서 기쁘다. 그러면서도 일을 맡을지는 다시 생각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이 서운해할지 모른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다. 그 작은 거리가 이 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2. 말의 양보다 말이 맡은 일

‘知者弗言,言者弗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강한 대구이기에 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격언으로 삼기 쉽다. 그러나 침묵하는 사람이 언제나 깊이 아는 것은 아니고, 교사와 증언자,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여기서는 말을 자기 지위의 증명으로 계속 사용하는 일에 대한 질문으로 읽는다. 회의에 침묵이 생기면 무엇이라도 말해야 내 존재가 흐려지지 않을 것 같다. 모르는 주제에도 곧바로 입장을 밝히고, 결론을 요구받지 않았는데도 결론부터 낸다. 발언을 마친 뒤 문제가 분명해졌는지보다 내가 똑똑하게 보였는지가 신경 쓰인다.

이때 말은 사안에 닿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움직인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체를 부정해도 잘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다만 그 마음이 너무 앞서면 모른다고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바꾸기 어려워진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화제가 나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의견을 가지라는 재촉을 받는다. 이해할 시간보다 나는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보여 줄 기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답을 조금 늦추는 것만으로도 지키려던 평판에서 조사해야 할 사안으로 주의가 돌아올 수 있다.

아는 일을 소중히 여긴다면 발언을 서두르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필요할 때는 길게 설명하고, 잘못을 보면 지적하며, 말할 자리를 빼앗긴 사람의 목소리를 도울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 상태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필요한 말이기에 한다.

23장의 ‘希言’과 이어지는 것은 이런 말의 쓰임이다. 매번 자신을 크게 보이지 않아도 말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는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때 오히려 말과 이해가 가까워진다.

3. 빛을 끄지 않고 눈부심을 줄인다

이어서 여섯 가지 움직임이 나온다. ‘塞其兌,閉其門,和其光,同其塵,挫其銳,解其紛,是謂玄同.’ 입구를 막고 문을 닫으며, 빛을 고르게 하고 먼지 속에 섞이고, 날카로움을 누그러뜨리고 얽힘을 푼다.

처음의 ‘塞其兌,閉其門’은 52장에서도 생각했다. 소식과 욕망에 주의를 끝없이 내주지 않는 일이다. 바깥의 목소리를 모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입구를 언제 열지 정한다. 이해할 시간이 없으면 언제나 반응만 하게 된다.

‘和其光’은 빛을 끄는 일이 아니다. 능력과 지식을 쓰되 상대를 초라하게 만드는 데 쓰지 않는 일이다. ‘同其塵’은 특별함을 계속 입증하려 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일이다. 차이를 지닌 채 일상을 함께할 수 있다.

‘挫其銳’는 날카로움을 사람에게 향하기 전에 그것이 필요한지 살피는 것이다. ‘解其紛’은 다툼에서 계속 이기는 대신 얽힌 원인을 푸는 것이다. 마지막 말을 누가 할지 겨루다 보면 처음 해결하려던 문제를 잊을 때가 있다. 그 싸움에서 손을 떼는 데도 판단이 필요하다.

실력 있는 동료를 떠올려 보자. 설명이 명료하고 오류도 잘 찾아낸다. 그렇지만 기초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창피를 주지는 않는다. 성과를 물으면 한 일을 말하고 필요하면 반대 의견도 내면서, 평소의 자잘한 업무에는 다른 사람처럼 참여한다. 그 사람의 능력은 주위를 비출 수는 있어도 주위를 어둡게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현동을 모두와 같아지거나 부정 앞에서 입을 닫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도록 힘을 숨겼다가 나중에 조종하는 기술도 아니다. 가진 것을 없애지 않으면서 그 쓰임에서 불필요한 공격과 과시를 덜어 내는 일이다. 55장의 부드러운 힘이 여기서는 재능과 관계를 다루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4. 세 쌍의 어느 한쪽에도 갇히지 않기

‘故不可得而親,不可得而疏,不可得而利,亦不可得而害,不可得而貴,亦不可得而賤.’ 가까움과 멂, 이익과 해로움, 높임과 낮춤. 여섯 구절은 세 쌍을 이룬다.

이 연재에서는 어느 한쪽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는 모습으로 읽는다. 다만 ‘可’라는 글자 자체가 극한까지라는 뜻이라고 단정하는 독해는 아니다. 왕필의 주석은 가까움으로 붙잡을 수 있다면 멀어짐으로도 붙잡을 수 있다는 식으로 두 항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건네는 친밀함과 평가에 자기 존재를 전부 맡기지 않는다는 질문을 얻을 수 있다.

먼저 ‘親·疏’다. 깊이 사랑하는 일을 피하거나 기대는 일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 친밀함은 살아갈 힘이 된다. 다만 그 사람의 호감을 얻는 일만이 내 판단을 허용하는 조건이 되었는지는 살필 수 있다. 관계가 변하면 서운하고 잃으면 아프다. 그래도 다른 연결과 생활의 기반이 남도록 돌볼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연락을 끊어야 하는 관계도 있으므로 언제나 중간 정도의 거리가 정답인 것은 아니다.

다음은 ‘利·害’다. 이익을 찾고 손실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삶의 일이다. 그러나 큰 보상이 제시되었을 때 무엇을 대가로 요구하는지 읽을 수 있는가. 무언가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움만으로 약속하고 있지는 않은가. 잃어도 괜찮은 것을 가려내는 일은 도움이 되지만 거처나 안전까지 잃어도 된다고 강한 척하는 것과는 다르다. 거절하려면 자원과 지원이 필요한 때도 있다.

마지막은 ‘貴·賤’이다. 존중받으면 기쁘고 모욕당하면 상처받는다. 이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 평가를 자신에 대한 최종 판결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타당한 비판에서 배우고 부당한 대우에는 항의한다. 둘 다 칭찬받은 만큼의 나, 비난받은 만큼의 나로 줄어들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故為天下貴’는 그 자유의 귀함을 힘주어 말하는 결말이다. 이렇게 살면 세상이 반드시 존중하리라는 예측은 아니다. 인기가 없어도 상대의 기분만을 따라 자기를 내주지 않는 데에는 지킬 가치가 있다.

5. 관계 안에서도 내가 남도록

먼저 지금 소중히 여기는 관계 하나를 보면 된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의 모든 바람에 따르는 것을 구별해서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시간과 친구, 의논할 곳을 갖는 일은 친밀함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지지대가 여럿이면 관계 안에서도 더 솔직해질 수 있다.

그다음에는 눈앞의 득실을 본다. 받아들이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가. 두려워하는 손실은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혼자 생각할수록 공포가 커진다면 사정을 아는 사람과 함께 확인해도 된다. 자유는 마음뿐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통해서도 넓어진다.

평가에는 시간을 조금 둘 수 있다. 칭찬을 받으면 기뻐해도 된다. 비판을 받으면 필요한 사실을 조사하면 된다. 그 자리에서 자기 전체의 값을 정하지 않아도 답할 수 있다.

처음의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로 돌아간다. 상대의 기대는 고맙다. 그래도 오늘은 맡을 수 없다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직접 생각한 끝에 맡는다면 그것은 칭찬에 끌려 움직인 것과 다른 선택이다.

누구에게도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이 이 장의 도착점은 아니다. 가까워지고 일하고 때로는 상처도 받으면서, 하나의 평가와 하나의 이익, 한 사람에게 나의 전부를 맡기지 않는다. 빛도 있고 날카로움도 있지만 어떻게 쓸지 선택한다. 현동의 고요함은 세상 밖으로 나간 고요함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아직 자기 대답을 가질 수 있는 고요함이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일곱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