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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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28장 · 총 81장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知其雄,守其雌,为天下溪;为天下溪,恒德不离;恒德不离,复归于婴儿。

知其荣,守其辱,为天下谷;为天下谷,恒德乃足;恒德乃足,复归于朴。

知其白守其黑,为天下式;为天下式,恒德不忒;恒德不忒,复归于无极。

朴散则为器,圣人用之则为官长,夫大制无割。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당신의 명함을 보라

명함이나 링크드인 프로필에 적힌 당신의 직함을 한번 보라.

시니어 엔지니어인가, PM인가, 디자이너인가, 창업자인가, 팀장인가, 이사인가?

이것들이 모두 당신의 그릇(器)이다. 당신의 전문성, 당신이 쓸모를 내는 기능, 어느 구체적인 자리에서 당신이 지닌 쓰임새다.

노자는 『도덕경』 28장에서 전혀 다른 것을 묻는다.

당신은 이 그릇인가, 아니면 이 그릇만은 아닌가?

당신에게 그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능력만이 당신인 적은 없다. 직업이 소중해도 삶의 모든 방향을 다 말하지는 못한다.

여기서는 『논어·위정』의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를 빌려 노자의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된다’와 함께 읽는다. 앞말은 공자의 말이지 『도덕경』 28장의 원문이 아니다. 아홉 권의 해설이 이 이름을 쓴 것은 그 질문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노자가 한 말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장은 두 부류의 사람에게 그림을 한 장씩 그려 준다.

하나는 독자에게 주는 그림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한 가지 그릇으로 굳히지 않을 수 있는가.
다른 하나는 다스리는 사람에게 주는 그림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쓰되 사람을 그릇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는가.

두 그림을 합쳐야 이 장의 명제가 온전해진다.

2. 세 쌍의 맞짝

이 장은 세 쌍의 맞짝으로 시작한다.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시내가 된다.
영광을 알고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본보기가 된다.
(知其雄,守其雌,爲天下溪。知其榮,守其辱,爲天下谷。知其白,守其黑,爲天下式)

칭찬을 기쁘게 받아도 되고 ‘나는 엔지니어다’라고 말해도 된다. 문제는 성과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아니까 듣지 않아도 돼’라는 최종 권한을 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어느 날 회사에서 누군가 당신을 칭찬한다. “정말 잘했어요. 대단하네요.”

영광의 자리에 서서 움직이는 사람은 곧바로 ‘나는 칭찬받는 사람’이라는 자리를 세운다. 다음 회의에서도 칭찬받고 싶어지고, 행동이 ‘칭찬받는 모습을 지키는’ 쪽으로 돌기 시작한다.

욕됨의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는 사람은 칭찬을 들어도 ‘나는 이미 대단하다’는 간판을 세우지 않는다. 다음 일을 할 때도 일 자체의 논리를 따라가고, 또 칭찬받으려고 방향을 틀지 않는다.

24장의 질문을 다시 가져오자. 이 정체성은 행동을 돕는가, 문을 닫는가? 다른 면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거나 모욕을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인정받은 뒤에도 아직 해보지 않은 방향의 자리를 남기는 것이다. 성장하려고 먼저 자신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3. 함육의 자리가 향하는 세 방향

세 쌍의 맞짝 뒤에는 저마다 ‘다시 W로 돌아간다(復歸於 W)’는 끝 구절이 붙는다.

다시 갓난아이로 돌아간다.
다시 통나무로 돌아간다.
다시 무극(無極)으로 돌아간다.

여기서는 영아·박·무극을 세 방향의 열림으로 읽는다. 기본 감각과 필요로 돌아가기, 분류로 전체를 다 설명하지 않기, 지금의 경계를 마지막으로 삼지 않기다. 독해의 지도이지 글자의 기원으로 자동 입증되는 체계가 아니다.

영아로 돌아간다는 말도 몸이 아기가 되거나 호흡법으로 오랜 긴장이 사라진다는 약속은 아니다. 직함 이전에 지치고 보살핌이 필요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없는 오후, 몇 시간째 물도 마시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보니 피곤함조차 인정하기 어렵다. 영아의 이미지는 일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필요가 다시 들릴 자리를 준다. 유능한 사람도 ‘잠깐 쉬어야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

박의 물음은 조금 다르다. 점심에 동료가 음악 이야기를 한다. ‘내 분야가 아닌데’라고 말하려다 사실은 듣고 싶은 자신을 발견한다. 당장 직업을 바꿀 필요는 없다. 전문 영역 밖의 무엇이 들어와도 된다는 뜻이다.

무극은 더 멀리 본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관심을 정해진 자리가 없다고 닫아 버리지 않는다. 다음 성과가 되겠다고 약속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존재하게 둔다. 세 방향은 무한한 성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늘의 모습을 마지막 판결로 삼지 않는 것이다.

4.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된다

28장의 마지막 대목이다.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되고, 성인이 그것을 쓰면 뭇 벼슬의 우두머리가 된다. 무릇 큰 다스림에는 잘라 냄이 없다. (樸散則爲器,聖人用之則爲官長,夫大制無割)

이 대목은 장 전체를 아주 구체적인 명제 하나로 거두어들인다.

통나무는 흩어지는 순간 그릇이 된다.

통나무는 한 덩어리로 아직 갈라지지 않은 전체다.
흩어짐은 착(鑿)을 맞고, ‘비’를 겪고, 쪼개지는 것이다.
그릇은 구체적인 쓰임이 있는 도구다.

칼, 사발, 수레, 의자가 모두 넓은 뜻의 그릇, 곧 기물(器物)이다. 저마다 구체적인 기능이 있지만, 어느 것도 더는 본래의 갈라지지 않은 전체가 아니다.

그릇의 비유는 용도를 보여 주지만 전문 기술 안에는 덕이 없다는 증명은 아니다. 의사의 진료나 엔지니어의 사용자 배려에도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담긴다. 전문적인 일이 온전한 삶보다 본래 낮은 것도 아니다.

위험한 것은 한 가지 일을 유일하게 허용된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십 년간 백엔드 개발을 한 사람은 여전히 그 일을 좋아해도 되고, 음악을 배우거나 가족을 돌보거나 분야를 바꿔도 된다. 바꾸려고 과거를 부정할 필요도, 계속한다고 자기를 잃는 것도 아니다.

제도와 습관은 다른 시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이 실제로 기능만 남는 것은 아니다. 거절하고 경험을 다시 읽고 도움을 찾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상사가 준 선물이 아니다.

5. 성인이 그것을 쓰면 뭇 벼슬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어지는 구절이다.

성인이 그것을 쓰면 뭇 벼슬의 우두머리가 된다. (聖人用之則爲官長)

‘이를 쓴다’를 전문적 협업으로 넓혀 읽는 것은 현대적 해석이다. 대명사 하나가 모든 관리 방식을 승인하지는 않는다. 협업에는 능력뿐 아니라 충분히 알고 동의하기, 협의, 한계, 떠날 여지도 필요하다.

상사는 백엔드 일을 맡기면서 진로 변경이나 휴가의 바람도 진지하게 들을 수 있다. 승진을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지 않는 것이다. 모든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어도 이견은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퇴사가 배신일 필요는 없다.

교사는 수학 재능을 도우면서도 평생 수학자가 되라고 선고하지 않는다. 부모는 기회를 주되 자기의 미완성 인생을 자녀에게 맡기지 않는다.

대화가 늘 ‘너는 내게 무슨 쓸모가 있지?’로 끝나면 상대의 공간이 줄어든다. 무시당하는 것은 사라진 전체성이 아니라 줄곧 거기 있던 사람이다.

평범한 면담을 생각해 보자. 엔지니어가 다음 분기에 다른 방향을 시도하고 싶다고 한다. 관리자는 난감할 수 있다. 지금 프로젝트는 누가 맡는가? 진짜 어려움이니 없는 척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음 말은 달라질 수 있다. ‘네가 빠지면 나는 어떡하니, 그러니 못 가’와 ‘인수인계에 무엇이 필요하고 일정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함께 보자’는 다른 관계를 말한다. 뒤쪽도 당장 답이 없을 수 있다. 그래도 맞은편 사람이 영원히 사용 가능한 기능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정말 조정이 안 된다면 제한을 솔직히 설명하고 상대가 그에 따라 선택하게 할 수 있다. 존중은 모든 소원을 허락하는 일이 아니다. 제한을 설명하고 논의할 수 있게 하며 협력의 거절을 배은망덕으로 부르지 않는 일이다.

6. 큰 다스림에는 잘라 냄이 없다

‘큰 다스림은 자르지 않는다’를 조직의 기준으로 읽는다. 일을 나누되 사람을 그 분담 안에 다 가두지 않는다. 조직의 영속을 보장하는 말이 아니라 효율에 삶을 삼킬 허가를 주지 않는 말이다.

역할에 가두면 신뢰와 시도가 어려워질 수 있다. 전체성을 존중하면 수정할 조건이 남지만 모두의 전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일 수 있다.

채용·평가·승진·업무 배정 때마다 물을 수 있다. 이번 협업에 필요한 것을 말하는가, 이 사람이 평생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정하는가?

7. 이 장이 독자에게 건네는 것

자신에게는 역할 밖의 여지를 남긴다. 기술을 사랑하고 장점을 인정하며 새 성과가 없는 날도 허용한다. 전체성은 계속 발전할 때만 유효한 면허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못 보는 계획이 있음을 기억한다. 존중은 다재다능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 아니다. 한 가지 일만 할 줄 알아도 그 일과 같은 존재로 볼 수는 없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와 함께 읽으며 남기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어떤 용도에 기여할 수 있지만 그 용도에 삶 전체를 넘길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