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적 상수를 정의로 옮겨 적다
정확한 측정값만으로 그 원인까지 알 수는 없다. 0.100초라는 경계는 생리학적 가설을 경기 규칙으로 바꾸고, 잘못된 판정의 위험을 누가 감당할지를 정한다.
이 글의 목차
1 총성 뒤의 측정값과 부정 출발 판정
2022년 유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10미터 허들 결승. 데번 앨런의 공식 반응시간은 0.099초였다.
그는 실격됐다.
이 숫자부터 정확히 보자. 0.099초는 양수다. 총성이 울린 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출발 정보 시스템이 감지 기준에 도달한 블록의 힘 변화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이것만으로 앨런이 총성 전에 어떤 움직임도 시작하지 않았다고, 또는 그 힘 변화가 총성을 들은 결과였다고 입증되지는 않는다. 미리 시작한 동작도 총성 뒤에 감지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 기록된 시점과 움직임의 원인은 서로 다른 질문이다.
그런데도 반칙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세계육상연맹 규칙에 따르면 0.100초 미만의 기록은 먼저 ‘부정 출발 가능성’을 알리는 경보를 울린다. 선수를 다시 불러 세운 뒤 출발 심판이 반응 시간과 그 밖의 가용 정보를 검토하고, 부정 출발에 책임이 있는 선수가 있는지 확인한다. 기계가 울리면 자동으로 실격되는 절차가 아니다. 앨런은 최종적으로 부정 출발 판정을 받았다. 0.099초는 이러한 확인 절차를 요구하는 쪽에 놓여 있었다.
세계육상연맹은 2022년 오리건 대회를 정리한 공식 보고에서 앨런의 0.099초를 두고, 가능한 가장 작은 차이로 규정 위반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 대목에서 잠깐 멈춰 보자. 가능한 가장 작은 차이로 규정 위반이 되었다. 움직임 자체가 없었다는 말도, 시스템 오류 때문에 이런 판정이 나왔다는 말도 아니다. 총성 뒤의 움직임이 시스템에 실제로 기록되었고, 그렇게 기록된 값이 정의에 따라 위반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일을 다룬다. 이 시리즈의 문제의식을 아주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는 사례다. 앞선 글들에서는 규칙에는 맞지만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기록, 측정값이 아니라 법적 기준인 ‘전체적 이점’, 왜 하필 그 자리인지 설명할 수 없는 곳에 그어진 정밀한 선을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얼마나 빨리 반응할 수 있는가에 관한 생리학적 가설이, 무엇을 정당한 출발로 인정할 것인가에 관한 정의로 옮겨 적힌 것이다. 가설과 정의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가설은 증거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 경기 규칙의 정의에는 기관의 공식 개정이 필요하다. 증거는 바로 그 개정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말장난이 아니다. 생리학적 가설이라면 0.100초는 새로운 증거로 검증받아야 한다. 반면 경기 규칙은 연구 하나가 발표될 때마다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공식적인 개정 절차가 필요하다.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보이는 것은 기준을 재검토할 이유가 되지만, 그것만으로 앨런의 개별 판정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그 출발의 원인과 측정 조건은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인간이 얼마나 빨리 반응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과 경기에서 어떻게 판정할지를 정하는 일은 다르다. 그렇다고 규칙이 증거를 영원히 외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2 가설과 정의는 어떻게 다른가
먼저 이 차이부터 분명히 해 두자. 이 글 전체가 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가설은 세계에 관해 무언가를 주장한다.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증거가 결정한다. 사람이 총성을 들은 뒤 가장 빠르게 반응하려면 얼마나 걸리는가. 생리학의 질문이다. 사실로서의 답이 있고, 실험을 통해 그 답에 다가가야 한다. 새로운 실험에서 사람이 더 빨리 반응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원래의 가설을 고친다. 가설은 언제나 증거를 향해 열려 있다.
정의는 말의 용법을 정하고, 경기 규칙은 그에 따라 판정하는 방법까지 정한다. 심판은 새 연구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유효한 규칙을 독단적으로 다른 선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규칙의 효력과 타당성은 별개다. 전자는 적법한 제정 절차에서 나오지만, 후자는 생리학적 증거와 측정 조건, 오판 위험에 응답해야 한다. 증거가 바뀔 때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공식적으로 개정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0.100초도 처음에는 가설이었다. 인간의 반응시간에 어떤 하한이 있는지에 관한 경험적 추정이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총성이 울린 뒤 0.1초도 지나기 전에 그 소리에 실제로 반응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보다 빠른 움직임은 모두 예측에서 나온 것이다. 총성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총성이 울릴 순간에 내기를 건 것이다.
그것이 계속 가설로 남았다면 증거와 함께 달라져야 했다. 새로운 실험이 사람은 더 빠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숫자도 내려가야 했다.
규칙에 들어간 숫자를 갱신하는 일은 실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실험은 0.100초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경기에서의 적용은 공식 개정을 기다린다. 숫자는 몸에 관한 증거와 연결되는 일과, 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을 유지하는 일을 함께 맡는다. 뒤의 필요를 앞의 진리로 바꾸면 규칙과 지식을 혼동하게 된다.
이 전환이 글의 중심에 있다. 증거에 열려 있어야 하는 생리적 가설이 제도가 유지하는 규칙이 된 것이다. 심판이 그것을 적용한다고 과학이 규칙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준은 잠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어도 사실과의 연결까지 끊어서는 안 된다. 정하는 것은 현재의 판정 절차이지, 몸이 지닌 가능성 전부가 아니다.
증거가 곧바로 판정이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리적 가설에는 사실의 뒷받침이 필요하고, 경기 판정에는 공통 규칙도 필요하다. 새 증거가 가설을 흔들어도 그 자리에서 규칙이 효력을 잃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효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최종 증명되었다는 뜻도 아니다. 기준을 어디로 옮길지는 측정 방법, 예측과 반응의 구분, 두 종류의 오판 위험을 누가 떠안을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정의가 증거의 바깥으로 달아난 것은 아니다. 증거가 현장에서 쓸 다른 선이 되려면 제도의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3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찾을 수 없다
0.100초가 그 값을 확립한 실험에서 나왔다면, 적어도 경험적 출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출처를 찾을 수 없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메로와 코미의 1990년 논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은 절대적인 최솟값을 확립한 대규모 규준 연구가 아니었다.
남자 단거리 선수 여덟 명을 측정한 연구였다. 각 선수는 최대한 힘을 내는 출발을 세 차례 하며 지면반력 측정판을 통과했고, 일부 선수에게서는 다리 근육의 근전도를 기록했다. 이후 이 논문을 소개한 문헌에 따르면, 힘이 준비 자세에서 가해지던 힘의 약 110%를 넘는 시점을 반응으로 잡았을 때 평균 반응시간은 앞다리가 약 121밀리초, 뒷다리가 약 119밀리초였다.
121과 119. 두 숫자를 보자. 둘 다 120밀리초 부근이다. 100밀리초가 아니다.
그러니 메로와 코미가 인간의 최소 반응시간을 100밀리초로 측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실험에 맞지 않는다. 힘을 기준으로 삼은 주요 평균값은 120밀리초에 가까웠다. 표본은 여덟 명이었다. 측정을 위해 정한 기준은 힘의 변화였다. 최초의 신경 반응도, 처음 눈에 보이는 움직임도, 집단 수준에서 확립한 생리적 하한도 아니었다. 이 연구가 인간이라는 종의 정확한 상수 0.100초를 발견했다고 여기는 것은 서로 다른 몇 가지 개념을 하나로 눌러 넣는 일이다.
그렇다면 0.100초라는 구체적인 숫자는 어느 논문에서 제안됐고, 어느 회의에서 채택됐는가.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1990년까지는 120밀리초라는 기준을 썼고, 이후 100밀리초가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기준이 되었다. 후대의 일부 기록은 이 수치가 규칙에 들어간 시점을 1991년 무렵으로 잡는다. 그러나 0.100초를 채택한다고 명시하면서 동시에 그 증거가 되는 특정 실험을 지목한 국제육상경기연맹 총회 기록이나 기술위원회 결의는 디지털 자료에서 찾을 수 없다.
이런 사료의 빈틈은 앞에서도 나왔다. 2편에서는 최초기 기록 신청서 원본을, 11편에서는 창 규격 변경의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10편은 더 정확히 말해야 한다. 1974년 Athletics Weekly의 당시 보도로 공중제비 금지 결정을 IAAF 로마 총회에 연결할 수 있다. 찾지 못한 것은 원래 결의문과 토론 기록이지, 회의 자체에 관한 단서가 아니다. 이번 편에서 확인하지 못한 것은 0.100초를 처음 규칙에 넣은 결정이다. 지금의 결론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그 결론이 만들어진 과정을 모두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이 공백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숫자가 정말 그 값을 확립한 실험에서 나왔다면, 거슬러 올라가 확인할 수 있는 경험적 근거를 지닌다. 그런데 이 숫자는 어느 논문, 어느 회의에서 나왔는지조차 찾을 수 없으면서 과학적으로 확립된 상수로 쓰이고 있다. 그 권위는 출처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다.
이 시리즈에서 처음 보는 일은 아니다. 제3편의 아마추어 원칙은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를 끌어와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 고대가 허구였다는 사실도 원칙의 효력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0.100초는 과학적으로 확립된 상수처럼 쓰이지만, 그것을 규칙에 넣은 결정은 근거를 확인할 수 없고, 출처로 흔히 지목되는 논문이 측정한 값은 120밀리초에 가까웠다. 규칙이 작동할 때 기대는 정당화의 이야기와 규칙이 실제로 발휘하는 효력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이야기는 모호해도 되고, 확인할 수 없어도 되며, 심지어 부정확해도 된다. 규칙은 그래도 정확하게 작동한다. 여전히 앨런을 실격시킨다. 사람들은 규칙의 효력을 따르지, 그 출처를 좀처럼 대조해 보지 않는다.
4 구축이 의뢰한 연구는 바꾸라 했지만 구축은 바꾸지 않았다
이 대목의 근거는 특히 단단하다. 외부 비판자의 의문 제기가 아니라 구축 자신이 의뢰한 연구의 결론이며, 구축이 그 결론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직접 연구를 의뢰했다. 질문도 직접적이었다. 자신들이 쓰는 100밀리초의 한계는 여전히 유효한가.
연구에는 핀란드 국내 정상급 단거리 선수 일곱 명이 참여했다. 남자 네 명, 여자 세 명이었다. 각자 다섯 차례에서 여덟 차례가량 출발했고, 연구진은 팔과 다리의 힘, 근전도, 운동학적 측정을 함께 사용했다. 신호는 초당 2,000회 표본화했다. 다리의 힘이 변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평균 약 98밀리초였고, 개별 시도 중 가장 빠른 값은 훨씬 낮았다. 팔의 힘과 근전도는 그보다 더 이른 시점에 변하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힘에 관한 판정 기준을 더 높게 잡으면 시스템이 내놓는 반응시간도 늦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제안은 놀라웠다.
100밀리초를 생리학의 공리로 취급하지 말 것. 계속해서 스타팅 블록에 가해지는 힘을 측정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문턱을 약 80~85밀리초로 낮출 것.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자기 돈으로 의뢰한 연구자들이, 그 연맹이 직접 발표한 연구에서 그 기준을 낮추라고 제안한 것이다.
세계육상연맹은 이 제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0.100초는 규칙에 남았고, 2026년의 기술 규정 체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문서로 남은 이 대목은 각별히 중요하다. 그 의미를 끝까지 짚을 필요가 있다. 구축은 자신이 의뢰해서 얻은, 더 낮은 한계를 권하는 증거를 가지고도 기존의 법적 기준을 유지했다. 이는 0.100초가 과학에 의해 고정된 상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과학에 근거한 값이라면 과학이 수정을 권할 때 함께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기관이 유지하기로 선택한 정의다. 구축은 자신이 마련한 증거 앞에서 그 선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이 일 자체가 가설과 정의의 차이를 입증한다. 0.100초가 아직 가설이었다면, 값을 낮추라고 권하는 증거 앞에서 수정되어야 했다. 수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것이 더는 가설이 아니라 정의임을 보여 준다. 정의는 증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기관의 결정으로만 바뀐다. 이 기관은 바꾸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는 다음 제17편과 통하는 모양도 보인다. 구축은 바꿀 수단을 마련해 놓고, 증거까지 손에 쥐고도 그것을 쓰지 않곤 한다. 거기서는 구축이 마무리할 수단을 마련했는데 사람이 쓰지 않는다. 여기서는 구축이 수정할 증거를 마련했는데 자신이 쓰지 않는다. 바꿀 능력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바꾼다는 것은 다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바꾸지 않는 데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판정 기준을 자주 바꾸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서로 다른 시대의 기록을 비교하기 어려워지고, 선수와 심판은 갈피를 잡지 못하며, 새로운 논란도 생긴다. 결함이 있어도 여러 해 작동해 온 기준을 남겨 두는 데에는 안정성을 고려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이 글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구축이 0.100초를 유지하는 근거는 안정성, 집행 가능성, 행정적 편의다. 그 숫자가 생리학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다. 옳아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바꾸기가 번거로워서 남긴다. 바꾸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숫자는 이미 생리적 상수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그것은 행정상의 정의다. 그 숫자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이 얼마나 빨리 반응할 수 있는지와 더는 관계가 없다.
5 생리적 사실 쪽에는 애초에 안정된 숫자가 없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구축이 0.100초를 유지하는 것은 아직 과학의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인간의 진짜 한계를 아직 모르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이 변호 자체가 다른 한 가지를 드러낸다. 그 생리적 하한은 애초에 안정된 상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과학은 아직 그 숫자를 찾지 못한 정도가 아니다.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동시에 뻗어 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0.100초가 너무 엄격하다고 말한다.
2007년 페인과 힙스는 압전식 힘 센서를 단 스타팅 블록을 출발 신호와 동기화해 선수 아홉 명을 측정했다. 다섯 명은 적어도 한 가지 시험 조건에서 평균 반응시간이 100밀리초 미만이었다. 첫 두 조건에서는 출발의 약 20%가 100밀리초보다 빨랐다. 반응의 생리적 성분은 85밀리초 미만일 수 있었고, 근전도 신호가 나타나는 시점은 60밀리초보다 이를 수도 있었다. 연구진은 뻔히 예상되는 반론, 곧 총성이 울릴 때를 찍은 것 아니냐는 반론에도 대비했다. 관련 시험에서는 출발이 이루어지는 시간 구간 안에서 신호가 나오는 시점을 무작위로 정했다. 고속 촬영 영상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최초의 생리적·기계적 반응보다 훨씬 나중에 나타났다. 다만 연구진은 신중하게 선을 그었다. 이 결과가 국제육상경기연맹 인증 경기 장비에서도 똑같이 100밀리초 미만의 값이 나온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장비의 감지 기준 자체가 측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는 0.100초가 너무 느슨하다고 말한다.
브로스넌, 헤이스, 해리슨은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최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한 선수권대회의 반응시간 분포를 분석해, 보정한 하한을 남자 약 115밀리초, 여자 약 119밀리초로 추정했다. 통계에 근거한 논증이었다. 실제 경기에서 관찰된 분포를 볼 때, 이 하한보다 짧은 값은 자극에 의해 실제로 촉발된 반응보다 예측에서 나온 움직임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성별과 힘의 기준을 둘러싼 세 번째 방향도 있다. 립스, 갈레츠키, 애슈턴밀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공식 반응시간 자료를 분석했다. 이들은 동일한 힘 감지 기준을 적용하면 여성의 반응이 체계적으로 늦게 기록될 수 있다고 논증했다. 여성은 절대적인 힘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낮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형은 여성에게 적용하는 힘의 문턱을 약 22% 낮추면 관찰된 성별 차이의 대부분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했다.
이 세 방향을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연구 문헌은 0.100초로 수렴하지 않는다. 동시에 두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 하나는 어떤 생리적 사건을 반응으로 셀 것인가다. 최초의 신경 신호인가, 최초의 힘 변화인가, 처음 눈에 보이는 움직임인가.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시점에 일어난다. 다른 하나는 인증된 스타팅 블록이 그 사건을 어떻게 화면에 표시되는 반응시간으로 옮기는가다. 힘의 기준을 달리하면 옮겨진 값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정의로 적힌 0.100초의 뒤에서 그 숫자에 대응해야 할 생리적 상수에는 합의된 값이 없다. 구축은 과학조차 하나로 모이지 못한 것을 밀리초 단위까지 정확한 정의로 얼려 놓았다. 정의의 정밀함과 그 뒤에 있는 생리적 사실의 불확실성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다시 한번 정밀함이 근거의 부재를 가린다. 이번에는 새로운 형태다. 정밀한 문턱값이, 그 뒤에서 한 번도 안정되게 확립되지 않은 상수를 감추고 있다.
이 간극은 앞선 글들보다 한 겹 더 깊다. 제7편의 채점 계수, 제12편의 40밀리미터, 제14편의 테스토스테론 기준. 그 정밀한 선들 뒤에는 도출되지 않은 숫자가 있었다. 문제는 도출 과정이 빠져 있다는 데 있었다. 여기서는 더 깊이 들어간다. 0.100초 뒤에 대응해야 할 것, 곧 인간 반응의 생리적 하한은 단지 도출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도출해 낼 확정된 값 자체가 없다. 과학은 수렴까지 한 걸음만 남겨 둔 상태가 아니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 누군가는 더 빠르다고 하고 누군가는 더 느리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선에 빠진 것은 도출 과정만이 아니다. 애초에 확정된 답이 없는 곳에 선을 긋고, 그 선을 확정된 답으로 삼은 것이다.
더 최근의 증거는 이 간극을 한층 선명하게 만든다. 앨런의 사례를 다룬 2025년 통계 연구는 여러 대회의 반응시간을 모아 분석했다. 2022년 세계선수권의 분포는 다른 대회들과 유의하게 달랐고, 0.100초 미만의 반응은 드물지만 생리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의 기준 시점에서 이 연구는 아직 사전 공개 논문이다. 과학의 최종 판결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연구를 2007년과 2009년의 실험과 함께 놓고 보면, 자신은 정말 총성에 반응했다는 앨런의 주장을 ‘인간의 한계는 100밀리초’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물리칠 수는 없다.
6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이 아니다
출발과 관련한 유명한 실격 사건 두 가지가 자주 함께 거론된다. 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건이다. 이들을 떼어 놓는 것이 이 글을 이해하는 열쇠다.
첫 번째는 우사인 볼트다.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 남자 100미터 결승이었다.
공식 결과에 볼트는 실격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응시간은 음수, 약 −0.104초였다. 음수란 총성이 울리기 전에 움직였다는 뜻이다. 신호보다 앞서 출발한 부정 출발이었다. 총성이 울린 뒤 0.099초라는 경계 사례가 아니었다. 그는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무관용 규칙에 따라 실격됐고, 결승에서는 요한 블레이크가 우승했다.
그러므로 볼트 사건은 이 글의 문제를 시험하지 않는다. 이 글이 묻는 것은 총성이 울린 뒤 0.100초보다 빠르게 나온 실제 반응을 인정해야 하는가다. 볼트의 움직임은 총성보다 앞섰다. 그의 사건은 이 질문과 관계가 없다.
두 번째는 글머리의 앨런이다. 시스템은 총성이 울린 뒤 0.099초를 기록했다. 그 값 자체가 규칙의 금지된 쪽에 있었다.
이 글을 대표하는 사례는 앨런이다. 정확히 측정된 양의 반응시간, 총성 뒤에 일어났고 기준보다 불과 1,000분의 1초 짧다는 이유로 정의가 거부한 반응. 이것이 진짜 경계다.
2011년 볼트 사건을 가져와 100밀리초보다 빠른 실제 반응이 금지당했다고 논증하면 서로 다른 두 문제를 뒤섞게 된다. 기록에 남은 볼트의 움직임은 총성보다 앞섰다. 측정된 양의 반응시간이 100밀리초에 살짝 못 미쳐 규정에 의해 거부된 전형적인 사례는 2011년 볼트가 아니라 2022년 앨런이다.
볼트 사건에서는 또 하나, 제기된 의혹과 공식 판정을 구분해야 한다. 경기 뒤에는 블레이크나 다른 선수의 움직임 때문에 볼트가 출발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 해석은 있었지만 공식 판정은 줄곧 볼트의 부정 출발이었고, 공식적으로 뒤집힌 적은 없다. 누군가 볼트를 자극했다는 의혹과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에 관한 판정은 별개다. 앞의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로 끌어올려서는 안 된다.
앨런 자신의 입장도 ‘경기 임원이 규칙을 잘못 읽었다’는 주장보다 미묘하다. 그는 규칙상 0.099초가 부정 출발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장비와 기준값은 측정의 불확실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신은 총성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듣고 반응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이 주장들이 겨냥한 것은 규칙과 시스템의 타당성이지, 성문 규칙에 무엇이 적혀 있는가가 아니다. 규칙을 잘못 읽었다는 말이 아니다. 이 규칙과 장비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앨런의 입장은 이 글이 구별하려는 바로 그 선 위에 놓여 있다. 그는 0.099초가 규칙상 부정 출발이 아니라고 다투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면 규칙의 문언을 두고 다투는 셈이지만, 문언은 분명하다. 0.099는 분명히 0.100보다 작다. 그가 다투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규칙 자체, 그 규칙을 받치는 생리학적 가설, 측정 장비를 함께 다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정의를 잘못 적용했다는 말이 아니라 정의 자체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가 정의를 흔들기 가장 어려운 자리다. 정의는 자신의 틀 안에서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0.099가 0.100보다 작다는 것은 그 틀 안에서 다툴 여지가 없다. 이를 문제 삼으려면 정의 바깥으로 나가, 애초에 정의가 이렇게 생겨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7 정의가 거꾸로 사람을 바꾸다
이 정의는 판정 자체를 넘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거꾸로 선수들의 행동을 바꾼 것이다.
무관용 규칙은 2009년 8월 12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제47차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문구는 복합종목을 제외하고 부정 출발을 한 모든 선수를 실격시킨다는 것이었다. 시행일은 2010년 1월 1일이었다. 당시 보도된 총회 표결 결과는 97 대 55였다.
이전 규칙은 좀 더 느슨했다. 2003년 전까지는 선수마다 한 번씩 부정 출발이 허용되었고, 두 번째에 실격됐다. 2003년부터는 한 경주 전체에 한 번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 뒤 부정 출발을 한 선수는 누구든 실격이었다. 첫 부정 출발을 일으킨 선수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출발을 되풀이하면서 경기가 지연되는 일을 줄이자는 것이 정책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는 무관용 규칙이 채택되었다.
규칙이 엄격해지는 이 과정은 선수들의 출발 방식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바꾸어 놓았다.
규칙이 차례로 바뀌어 온 시기의 최정상급 선수 경기를 비교한 연구들은 부정 출발의 제재가 무거워질수록 기록된 평균 반응시간이 점점 길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수들이 더 보수적인 출발 전략을 택했다는 설명과 들어맞는다. 탈락할 위험을 지느니 조금 늦게 출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잠시 멈춰 볼 만하다. 이 정의의 가장 깊은 층이기 때문이다. 0.100초라는 선은 출발이 끝난 뒤 규칙에 맞는지를 판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출발하기 전부터 선수가 어떻게 출발할지를 바꾼다. 0.100초 아래로 내려가면 실격되고, 장비의 측정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선수는 그 선을 건드리지 않도록 안전 여유를 두고, 스스로 출발을 조금 늦출 것이다.
정의가 한 일은 이렇게 드러난다. 출발을 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출발의 모양을 빚었다. 선수는 정의가 금지하는 쪽에 놓이지 않으려고 자기 동작을 바꾼다. 행동을 판정하려고 그은 선이 거꾸로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된다. 사람이 정의에 양보한다. 자신의 실제 반응 속도를 정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으로 눌러 넣는다.
제9편에서 본 일과 정확히 반대다. 그 글에서 구축은 결과를 재고 과정은 재지 않았다. 포환이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는 따졌지만 어떻게 던졌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측정은 결과에서 멈췄고 과정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서는 다르다. 구축의 정의가 과정 안으로, 선수가 출발하는 바로 그 순간으로 들어와 동작 자체를 바꾼다. 판정을 위해 그은 선이 행동을 빚는 선이 되었다. 구축의 정의는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경계해야 할 전환이다. 측정과 측정되는 것의 관계를 바꾸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측정은 수동적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기록하되 그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자로 어떤 길이를 잰다고 그 길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0.100초라는 선은 다르다. 실격이라는 결과가 붙는 순간 수동적 기록을 벗어나, 자신이 재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빚기 시작한다. 선수는 그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맞춰 자신을 조정한다. 측정이 개입이 되고, 자가 자신이 재는 대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측정된 숫자도 더는 사람의 실제 능력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실제 능력과 그 선을 피하려는 행동이 한데 섞인 값이다. 구축이 측정하는 반응시간이 점점 길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의 반응이 느려진 것은 아니다. 안전을 위해 사람이 스스로 한발 물러선 결과일 가능성이 더 크다.
8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판정한 실제의 일들
이제 이야기를 모아 보자.
0.100초는 생리적 가설을 담으면서 판정 기준으로도 작동한다. 의뢰된 연구는 80~85밀리초를 검토하라고 권했지만, 관련 연구의 측정 조건과 결론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글이 다루는 규칙은 기존의 선을 유지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연구와 규칙 개정 사이의 거리이지, 증거가 무효가 되었다거나 정의를 영원히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제도가 이 선을 계속 쓰는 이유를 어떻게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그 선택이 나누어 준 오판 위험에 어떻게 책임질지가 문제다.
여기서 이 글의 잔여항이 나온다. 이번에는 새로운 모습이다.
앞선 글들의 잔여항은 명단에 들지 못한 이름, 끝내 가려낼 수 없는 원인, 비교할 수 없는 기록, 존재하지 않는 몸, 자리를 찾지 못한 연속성, 성공의 서사 바깥에 남겨진 대조군이었다. 이 글의 잔여항은 실제로 기록된 움직임들이다. 총성 뒤에, 0.100초보다 빠르게 나온 움직임들이다. 또 하나는 그 움직임이 총성에 대한 진짜 반응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규칙은 이미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기록은 실제로 존재한다. 앨런의 0.099초는 인증 장비가 내놓은, 총성이 울린 뒤의 측정값이다. 볼트처럼 총성 전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된 움직임이 아니다. 앨런은 총성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듣고 반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숫자 하나만으로 그가 예측하지 않았다고 입증할 수도, 장비에 측정 오차가 없었다고 입증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시스템이 그 선보다 정확히 1,000분의 1초 짧은 값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의는 말한다. 그 반응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이 ‘인정하지 않는다’의 성격을 보자. 발이 구름판 선을 넘은 멀리뛰기처럼, 동작이 일어났다는 것은 인정한 뒤 규칙을 어겼다고 판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정의 뒤에는 생리학적 가설도 숨어 있다. 사람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진정으로 반응할 수 없으므로, 선보다 빠른 움직임은 반드시 예측에서 나왔다는 가설이다. 그렇게 규칙에 맞는지에 관한 판정이, 무엇이 불가능한지에 관한 단언을 빌려 온다. 그러나 앨런에게 반칙을 선언했다고 해서 그가 총성에 반응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기록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 움직임이 예측에서 나왔는지는 선 자체가 답할 수 없다.
이 글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이다. 구축은 하나의 정의로 아직 판명되지 않은 가능성의 일부를 불가능의 편에 놓았다. 0.100초라는 선은 출발을 정당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선을 뒷받침하는 생리학적 설명에서는 총성에 대한 사람의 반응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갈린다. 이 경계를 그으면서 사용한 것은 한 번도 안정되게 확립되지 않은 생리적 상수, 과학조차 하나로 모이지 못한 숫자다. 그리하여 인증 장비에 분명히 기록되었으나 기록만으로는 원인을 판명할 수 없는 총성 뒤의 움직임들은, 이 정의에 의해 진정한 반응일 가능성에서 미리 배제된다.
여기서 잔여항은 이미 일어났고 기록되었지만 자극에 의해 일어난 진짜 반응이었는지는 여전히 확정할 수 없는 움직임들이다. 정의가 미리 닫아 버린 가능성도 거기에 남는다. 구축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생리적 하한 앞에서,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남겨 두지 않았다. 정밀한 선 하나를 긋고 선 밖의 모든 움직임을 진정한 반응일 수 없는 쪽에 놓았다. 불확실한 가설을 확실한 정의로 바꾸었다. 그 확실함은 아직 판명되지 않은 가능성의 일부를 내보내는 대가로 얻은 것이다.
불확실성을 마주했을 때 구축이 택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여기서 선명해진다. 인간 반응의 하한을 확신할 수 없으니 판정에 충분한 여유를 두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선수에게 유리하게 남겨 두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확실한 선을 긋기로 했다. 선을 그으려면 구체적인 숫자 하나를 골라야 하고, 그 숫자를 고르는 순간 선 너머의 기록은 인정하지 않게 된다. 확실성을 얻기 위해 진짜 반응까지 배제할 위험을 떠안는 거래다. 명료하고 집행할 수 있는 선을 얻는 대신, 선 밖에 있을지도 모르는 진짜 반응도 내보내야 한다. 경기장에서 즉시 판정해야 하는 구축에는 피할 수 없는 거래일지도 모른다. 출발할 때마다 경기를 세우고 인간이 도대체 얼마나 빨리 반응할 수 있는지 토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쓸 수 있는 숫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쓸 숫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 숫자가 참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구축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그 자리에서 쓸 수 있는 정의로 바꾸어 놓았다.
구축은 앨런의 반응시간을 0.099초로 기록하고 1,000분의 1초 단위까지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 하나만으로 정말 총성이 촉발한 반응이었는지에는 답할 수 없다. 답하려면 인간이 얼마나 빨리 반응할 수 있는지, 장비는 그 반응을 어떻게 측정값으로 바꾸는지 알아야 한다. 관련 연구들은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고, 과학은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나뉘었다. 구축은 확정된 하한을 모르지만 선은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를 그었다. 0.100. 선을 그은 뒤에는 더는 그것을 틀릴 수도 있는 가설로만 보지 않는다. 정의로 삼는다. 그리고 선 너머의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앨런의 0.099초 기록과 함께 정의상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간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