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난제, 두 가지 결론
슈퍼 러닝화와 폴리우레탄 수영복은 모두 경기 성적을 바꾸었다. 그런데 육상도 수영도 기존 기록을 남겨두었다. 규정으로 그은 선은 미래를 가로막을 수 있지만,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쳐 쓰지는 않을 수 있다.
이 글의 목차
1 먼저 허물어야 할 대비
이 글은 원래 아주 깔끔한 대비 하나를 다루려 했다. 러닝화 쪽은 기록을 유지했고, 수영복 쪽은 기록을 무효로 했다. 구조가 똑같은 두 장비 논란에 내려진 정반대의 판정.
그 대비는 틀렸다. 먼저 허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글 전체가 모래 위에 세워진다.
실제 사정은 이렇다. 2009년의 폴리우레탄 수영복으로 세운 세계기록들은 무효가 되지 않았다. 국제수영연맹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대회에서, 해당 수영복의 승인이 유효할 때 세운 성적이라면 그대로 남겨두었다.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나온 세계기록 43개도 대부분 지금까지 세계기록의 변천사에 남아 있다.
러닝화도 마찬가지다. 세계육상연맹은 나중에 제한을 받거나 새로운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된 러닝화로 거둔 도로경기 성적이라도 공인 요건을 갖췄다면 유지했다. 두꺼운 밑창에 카본 플레이트를 넣은 신발로 달린 성적을 기록부에서 지우지 않았다.
그렇다면 킵초게가 빈에서 달린 1시간 59분 40.2초는 어떤가. 흔히 무효가 된 세계기록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세계기록이었던 적이 없다. 특정 목표에 맞춰 설계한 도전이었고, 기록 공인 대상이 아닌 시범 주행이라는 사실이 사전에 공표되어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기록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신발과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그 깔끔한 대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쪽은 유지하고 다른 쪽은 무효로 한 것이 아니다. 둘 다 유지했다. 진짜 물음은 이 제도적 구축이 왜 똑같은 두 사안에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느냐가 아니다. 구조가 같은 장비 논란을 마주하고 왜 무효로 하지 않는 쪽을 택했느냐는 것이다. 그 선택은 반대일 수도 있었다.
앞의 두 글에서는 장비의 정의를 넘어서는 일이 생기면 구축이 규정을 다시 쓰고 기록을 새로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다. 1986년의 창던지기가 그랬다. 옛 규격의 장부를 닫고 새 규격의 장부를 열었다. 이번 글은 반대 방향의 이야기다. 구조적으로 똑같이 경계를 넘어선 장비 앞에서 구축은 기록을 새로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옛 장부와 새로운 것을 한 장부 안에 남겨두었다. 이 선택도, 창던지기에서 내린 정반대의 선택도 저마다 옹호할 수 있다. 어느 쪽을 뒤집어도 역시 옹호할 수 있다.
이 글에는 답이 없다. 이 연작에서 지금까지 쓴 글 가운데 처음으로, 정말로 답이 없는 글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답이 없다는 사실이 이 글의 주제다.
왜 하필 이 글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앞서 기술을 다룬 글들에서 구축이 마주한 물음에는 그래도 사실의 핵심이 얼마간 남아 있었다. 비먼의 그 도약에서 고도가 기여한 몫은 얼마나 되는가. 답은 없지만 적어도 사실에 관한 물음이다. 다만 그 사실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뿐이다. 이번 물음은 사실이 아니라 가치에 관한 것이다. 유지할 것인가, 무효로 할 것인가는 데이터를 더 모은다고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험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규정에는 맞지만 비교할 수 없는 성적을 기록으로 쳐줘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그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애초에 데이터가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의 문제와 사실의 문제 사이의 구별이 여기서 처음으로 글 전체의 중심이 된다. 가치의 문제야말로 이 구축이 가장 서투르고, 끝내 닫아 마무리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2 분명히 존재하지만 과장되기도 한 이점
먼저 러닝화를 둘러싼 사실부터 세워두자. 양쪽의 논쟁이 모두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꺼운 밑창의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에는 측정할 수 있는 이점이 실제로 있었다. 여러 통제 실험이 이를 거듭 확인했다. 초기의 첨단 러닝화들은 전통적인 경기용 러닝화에 비해 최대하 운동 강도에서의 대사 에너지 소모를 대략 2~4퍼센트 줄였다.
이는 집단의 평균이다. 그 효과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숫자를 잘못 읽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곧바로 덧붙여야 한다.
첫째, 대사 에너지 소모가 4퍼센트 줄었다고 경기 시간이 4퍼센트 단축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에는 피로, 커브, 경사, 노면, 날씨, 보급, 전술이 있다. 산소 소비량의 4퍼센트 절약이 기계적으로 4퍼센트 더 빠른 마라톤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관찰 연구에서 추정한 마라톤 시간 단축 효과는 성별과 모형의 가정에 따라 0.6~2.8퍼센트였다. 대체로 실험실의 4퍼센트보다 작았다.
둘째, 개인차가 엄청나다. 가정 속의 차이가 아니라 실제로 관찰된 차이다. 세계 정상급 케냐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대조 실험에서 같은 첨단 러닝화들을 시험했는데, 개인별 반응은 11.3퍼센트의 손해부터 11.4퍼센트의 이득까지 벌어졌다. 같은 신발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짐이 된다는 뜻이다. 반응이 큰 선수도 있고, 거의 나아지지 않는 선수도 있다. 특정 모델을 신으면 오히려 더 느려지는 선수도 소수나마 있다.
이 두 번째 사실은 뒤에서 논쟁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무거운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된다. 지금 기억해두자.
이 이점이 평범한 러닝화 개선인지, 아니면 연속성을 끊어놓은 변화인지를 두고 양쪽은 갈린다. 한쪽은 단절이라고 말한다. 유난히 반발력이 높은 폼을 훨씬 많은 부피로 쓸 수 있게 된 것은 카본 플레이트와 신발의 형상이 받침 구조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며, 그 결과 대사 효과도 전통적인 경기용 러닝화들 사이에서 보통 관찰되는 작은 차이보다 몇 배나 커졌다는 것이다. 다른 쪽은 연속적인 혁신이라고 말한다. 모든 경기용 러닝화는 쿠션, 강성, 접지력, 형상을 바꿔왔고, 이 장비에는 모터도 외부 에너지원도 없으며, 그 이점은 여전히 선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널리 퍼진 설명 하나도 허물어두자. 카본 플레이트 하나가 되돌려주는 에너지만으로 이점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조건이 비슷한 신발에서 길이 방향의 굽힘 강성을 없애거나 줄여도 에너지 절약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카본 플레이트만 따로 떼어낸 기여와 시스템 전체의 효과가 같지 않다는 뜻이다. 이점은 폼의 에너지 반환, 밑창 높이, 구름 동작을 유도하는 로커 형상, 질량, 관절 역학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생긴다. 그 판 한 장에서 전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대목은 제5편에서 살핀 비먼의 도약과 이어진다. 여러 요인이 서로 작용해 하나의 효과를 만들어내면, 그중 하나를 따로 집어내어 얼마를 보탰다고 말할 수 없다. 카본 플레이트는 모터가 아니다. 고도가 비먼의 도약을 만든 유일한 원인이 아닌 것처럼.
3 40밀리미터라는 선에는 도출 과정이 없다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도로경기 성적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좋아졌다. 마침 첨단 러닝화가 급속히 보급된 시기와 겹친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상위 100위권 성적 1만 1,400건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2017~2019년은 지난 20년 동안 평균 향상 폭이 가장 컸던 3년 구간이었다. 이 3년의 향상분이 2001년 이후 여자 마라톤 전체 향상분의 약 44퍼센트, 남자 마라톤의 약 35퍼센트를 차지했다.
성적 향상이 가속된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학계의 논쟁거리다.
신발을 중심에 놓는 설명은 시기, 단계적인 보급 양상, 실험실에서 확인된 효과, 개별 선수에게 나타난 변화, 유난히 가파른 이 3년의 도약이 서로 뒷받침하는 인과적 패턴을 이룬다고 말한다. 여러 요인을 함께 보는 설명은 더 빠른 코스, 더 두터워진 동아프리카 선수층, 개선된 페이스 조절과 보급, 날씨를 고려한 경기 선택, 출전료, 훈련, 원래 더 빠른 선수들이 먼저 신발을 채택했다는 사실이 모두 기여했다고 말한다. 관찰 연구에서 누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는 무작위로 배정된 조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느 설명도 입증할 수 없다. 최정상급 선수의 절반에게는 새 신발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옛 신발을 신고 10년 동안 달리게 하는 무작위 대조 실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가속의 얼마가 신발 덕분이었는지는 영원히 계산해낼 수 없다. 또다시 제5편의 구조다. 하나의 효과를 그 원인별로 깔끔하게 나눌 수 없다.
이런 가속 앞에서 세계육상연맹은 2020년 1월 31일 행동에 나섰다. 도로경기용 신발의 밑창은 40밀리미터를 넘을 수 없고, 내부에 넣는 단단한 판도 한 장을 넘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의 40밀리미터라는 숫자에는 공개된 도출 과정이 없다.
세계육상연맹은 내부 보조행위 검토그룹(Assistance Review Group)의 평가에 기대어 독립적인 연구를 인용하며, 우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확인되었다고 했다. 이어 추가 연구와 평가, 장기적인 규제를 이끌 새로운 전문가 실무그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20년 1월의 발표에는 왜 35나 30, 45가 아니라 40밀리미터인지를 설명할 정식 근거표도, 모형도, 임계값 검증 연구도, 계산도 공개되지 않았다.
법적 분석의 결론은 이렇다. 이 선은 규제를 위한 예방적 선이다. 어느 한 실험이 직접 증명해낸 선이 아니다.
앞의 글들과 이어지는 지점이 여기서는 유난히 또렷하다. 제7편에서 보았듯 10종경기 점수표의 현행 계수에는 완전하게 공개된 도출 과정이 없다. 여기서 40밀리미터라는 임계값도 마찬가지다. 구축은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없이 정확히 40밀리미터에 선을 긋는다. 그런데 왜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그었는지는 적어두지 않았다. 정확함과 근거 있음은 또다시 별개의 일이다. 선은 밀리미터까지 정확하지만 왜 하필 40인지를 거슬러 확인할 근거는 없다.
한 겹 더 들어가면, 이런 선에 도출 과정이 거의 필연적으로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인다. 40밀리미터의 경계가 해야 할 일은 허용할 신발과 허용하지 않을 신발을 가르는 것이다. 그러나 신발이 주는 이점은 연속적이다. 밑창 높이, 폼, 형상이 달라짐에 따라 매끄럽게 늘거나 줄어든다. 이점이 어느 순간 합리적인 것에서 불합리한 것으로 돌변하는 자연적인 단절점은 없다. 이점이 연속적인 이상 어떤 경계선이든 사람이 잘라내는 선일 수밖에 없다. 40에서 자르는 것과 39에서 자르는 것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니 실험 하나로 이 선을 증명할 수는 없다. 선으로 나누려는 대상 자체에 자연적인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어야 하지만 증명할 수는 없는 선. 그런 선은 구축이 결단으로 제시할 수 있을 뿐, 도출해낼 수는 없다.
확보할 수 없는 것은 더 있다. 30밀리미터 같은 더 엄격한 수치안이나 전면 금지안이 정식으로 제안되었다가 표결에서 부결되었는지, 확인할 회의록을 찾을 수 없다. 처음 검토그룹의 구성원 이름은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후 실무그룹이 거친 모든 단계의 전체 실명 명단은 확보할 수 없다. 이런 공백은 앞의 글들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이다. 결론은 남았고, 과정은 흩어졌다.
4 빈에서 나온, 애초에 기록이 아니었던 성적
이제 가장 자주 잘못 전해지는 성적을 다루자. 킵초게가 빈에서 달린 1시간 59분 40.2초다.
흔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킵초게가 2시간 벽을 깨며 기록을 세웠는데, 세계육상연맹이 그 신발 때문에 기록을 무효로 했다고.
기록이 성립하고 무효가 되었다는 이 설명은 고리마다 틀렸다.
그것은 무효가 된 기록이 아니다. 애초에 기록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록부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도 신발이 아니라 행사 전체를 운영한 방식에 있었다.
어떻게 운영했는지 보자. 40명이 넘는 정상급 페이스메이커를 교대조로 나누었다. 한 조가 킵초게를 둘러싸고 공기역학적으로 설계한 대형으로 달리다가 약 4.8킬로미터마다 다음 조로 바뀌었다. 대형은 전산유체역학과 풍동 연구를 이용해 설계했다. 음료는 선수가 고정된 급수대에서 직접 집는 대신, 달리는 자전거에서 건네주었다. 선도 차량은 페이스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 표시를 투사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통상적인 마라톤 기록 공인 조건에서 벗어나 있었다.
세계기록을 공인받으려면 성적이 실제 경쟁 경기에서 나와야 한다. 정당한 절차로 편성되고 공고와 승인을 거쳐 규정에 따라 치러진 경기여야 한다. 특정 선수 한 명의 목표를 위해 맞춤형으로 꾸린 시도는 기록 공인에 필요한 통상적인 경쟁의 틀을 충족하지 않는다. 규정에 맞는 페이스메이커는 처음부터 경기에 출전하고 참가하는 내내 경기 규정의 적용을 받는 경쟁자다. 출전하지 않은 사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사람, 또는 경기 참가자가 아닌 채 단지 선수의 페이스를 맞춰주기 위해 배치된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금지된다. 지치지 않은 새 조가 번갈아 들어오고 나가는 방식은 정상적인, 규정에 맞는 페이스메이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빈의 도전에는 신발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기록 공인을 막는 이유가 여럿 있었다. 교대하며 공기저항을 줄여준 페이스메이커나 이동식 보급처럼 규정에 어긋난 보조만으로도 공인이 불가능했다. 이상적인 페이스 조절, 코스 선택, 유리한 날씨를 고르는 일도 최적화된 환경의 일부였지만, 그런 조건이 하나하나 그 자체로 공인 자격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그 신발의 규정 적합성을 정확히 밝혀도 이 성적이 공인 가능한 기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신발 자체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덧붙일 말이 있다. 빈에서 사용한 시제품의 정확한 설계 사양은 확보할 수 없다. 제조사의 완전한 설계 사양도 찾지 못했고, 킵초게가 빈에서 신은 그 신발을 해체해 조사한 결과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나중에 나온 시판 제품은 신발 전체 길이에 걸친 카본 플레이트 한 장을 넣었다고 공개적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빈의 시제품도 같은 구조였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밑창이 40밀리미터를 넘었고 판이 세 장까지 들어갔다는 추측이 언론에 널리 퍼졌지만, 추측일 뿐 확증은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빈의 도전은 이렇게 말해야 정확하다. 실제로 이루어진 놀라운 시범 주행이었다. 기록 공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사전에 분명했던 시도였다. 경기와 보조 행위에 관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기록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지금까지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신발 구조와 별개의 것이다.
빈의 성적을 무효가 된 기록으로 다루는 것은 두 가지를 하나로 뒤섞는 일이다. 하나는 그 성적에 기록 공인 자격이 없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신발에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격이 없다는 것과 신발에 논란이 있느냐는 별개다. 신발이 완전히 규정에 맞았더라도 빈의 성적은 기록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5 수영도 기록을 남겼다
이제 수영으로 가보자. 이쪽 역시 널리 알려진 이야기처럼 기록을 무효로 한 것은 아니다.
2008년, 한 수영복이 촘촘히 짠 탄성 섬유, 폴리우레탄 패널, 몸을 압박하는 구조, 발수 표면, 초음파로 접합한 이음매를 한데 묶었다. 개발 시험에서는 기존 소재보다 표면 마찰저항이 약 24퍼센트 낮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제조사의 개발 시험에서 나온 주장이다. 경기 성적이 24퍼센트 좋아졌다는, 독립적으로 검증된 결과가 아니다.
2009년에는 경쟁 제품들이 불투수성 폴리우레탄 피복, 신체 압박, 공기를 가두는 작용과 부력 효과를 한층 끌어올렸다. 2009년의 선도적인 설계 가운데 일부는 직물 수영복에 제한된 패널을 붙인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전체가 폴리우레탄인 전신 수영복이었다.
그해 로마 세계선수권에서는 세계기록이 43개 나왔다.
43이라는 숫자는 평소의 척도 옆에 놓아야 얼마나 이례적인지 보인다. 세계선수권 한 대회에서 세계기록 몇 개만 나와도 대단한 일인데 로마에서는 43개가 쏟아졌다.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며칠 사이 기록부의 넓은 부분을 다시 쓴 것이다. 과거 자료를 분석한 연구들은 일부 종목의 성적 개선 효과를 몇 퍼센트로 추정했다. 100분의 1초를 다투는 수영에서 몇 퍼센트는 거의 터무니없을 만큼 큰 수치다. 이 숫자의 이례성이 훗날 무효화를 주장하는 쪽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단번에 기록 43개를 무너뜨린 기술적 변화를 그저 장비의 정상적인 진화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자 국제수영연맹이 나섰다. 2009년 7월 24일 총회는 직물 수영복으로 돌아가고 신체를 덮는 범위를 제한하는 안을 승인했다. 이미 세운 기록은 소급해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 7월 31일에는 기존 승인 목록이 그해 12월 31일까지 계속 유효하고, 새 요건은 2010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고 확인했다.
이 점에서 국제수영연맹이 한 일은 세계육상연맹과 같았다. 앞을 향해 제한하되 뒤로 소급하지 않는다. 옛 기록은 기록의 계보에 남는다. 이후의 선수가 넘어서지 못했다면 공식 현행 기록에도 계속 오른다.
국제수영연맹이 공개적으로 내놓은 이유는 이랬다. 이 기록들은 당시의 규정과 당시 적용되던 조건 아래에서 수립되었으므로, 연맹은 이를 재검토하지 않는다.
여기서 또 하나의 통념을 허물어야 한다. 모두가 동등한 수영복을 입었기 때문에 국제수영연맹이 이 기록들을 공정하다고 판정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다. 공개된 공식 이유의 범위는 훨씬 좁다. 이 성적들은 당시 규정에 맞았다는 것이다. 장비에 접근할 기회가 말 그대로 평등했던 것도 아니다. 계약, 국가대표팀의 협약, 수영복 공급, 몸에 맞는 정도, 승인 시점, 모델별 성능은 제각각이었다. 이 구축이 말한 것은 규정에 맞는다는 것이었다. 공정하다는 것도,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도 아니었다. 규정 적합성과 공정성은 서로 다른 판단이다. 이 구축은 앞의 판단만 했다.
6 양쪽 모두 성립한다
이제 진짜 문제가 분명해졌다. 러닝화와 수영복 가운데 한쪽은 유지하고 다른 쪽은 무효로 한 것이 아니다. 둘 다 유지했다. 그리고 유지라는 선택에는 강력하게 반대할 수도, 강력하게 옹호할 수도 있다. 이 절에서는 양쪽을 모두 펼쳐놓는다. 이 글은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유지를 주장하는 쪽의 가장 강한 이유를 보자.
첫째, 규정 적합성과 기관의 책임이다. 선수는 관리 기관의 규정과 승인 목록을 신뢰할 권리가 있다. 국제수영연맹은 그 수영복들을 승인했고, 그 승인을 12월 31일까지 유효하게 두었다. 세계육상연맹은 공인 도로경기에서 규정에 맞는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를 신도록 허용했다. 선수에게 소급해서 불이익을 주면, 당시 규정을 지킨 경쟁자들에게 규제 기관의 지연이나 잘못을 떠넘기는 셈이다.
둘째, 기록은 처음부터 기술적으로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트랙, 수영장, 계시 장치, 레인 로프, 출발대, 훈련 과학, 영양, 자전거, 라켓, 신발은 늘 변해왔다. 기록 하나가 재는 것은 그 날짜에 인정된 조건 아래에서 나온 최고의 성적이다. 보조 수단이 전혀 없는 추상적인 인간 상수가 아니다. 폴리우레탄이나 두꺼운 폼에서 소급적으로 선을 그으려면, 이 혁신들이 그동안 수용한 모든 개선과 왜 종류 자체가 다른지 설명할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셋째, 과학적으로 유효한 뺄셈이 없다. 평균 효과를 개인의 성적에서 뺄 수는 없다. 실험실에서 확인된 신발의 효과는 손해부터 두 자릿수 퍼센트의 이득까지 벌어진다. 수영복의 효과는 몸에 맞는 정도, 체형, 영법,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한 선수의 기록을 가상의 직물 수영복이나 전통적인 러닝화로 냈을 성적으로 신뢰성 있게 환산할 수 없다. 여기서 제2절의 막대한 개인차가 정확히 제 역할을 한다. 같은 신발이 사람에 따라 그렇게 다르게 작용한다면, 그것을 신은 모든 사람이 일정한 양만큼 가산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양을 도로 빼낼 수도 없다.
넷째, 선택적 무효화는 증거의 불균형을 피할 수 없다. 사진과 남아 있는 제품 자료만으로 신발이나 수영복의 모든 변형 모델을 확실히 식별할 수는 없다. 시제품은 변하고, 맞춤형 제품이 몸에 맞는 정도는 제각각이며, 승인 상태도 빠르게 달라진다. 사용 사실이 명확히 확인된 선수의 성적만 무효로 한다면, 같은 이점을 얻고도 식별되지 않은 성적은 남아 있을 수 있다. 오히려 덜 정확한 기록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네 가지를 합치면 기록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한 이유가 된다. 맞은편도 그만큼 강하다.
이제 무효화하거나 재분류해야 한다는 쪽의 가장 강한 이유를 보자.
첫째, 기록은 비교 가능성의 제도다. 단지 규정에 맞는 경기 결과가 아니다. 선수권대회는 그날의 규정 아래에서 누가 이겼는지를 정한다. 기록은 역사를 가로지르는 최고를 주장한다. 그러므로 관리 기관은 메달과 순위를 유지하면서도, 기술적 연속성이 끊어진 성적을 실질적으로 더 느린 장비를 쓸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기준으로 세우지는 않을 수 있다.
둘째, 관리 기관은 자신의 범주 설정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 적도 있다. 사이클의 아워 레코드, 즉 한 시간 주행 기록이 선례다. 국제사이클연맹은 기술적 도움을 받은 성적을 ‘인간의 최선의 노력’이라는 범주로 옮기고, 더 이른 시기의 통상적인 장비로 세운 기준 기록을 복원했다. 성적이 수립될 당시에는 환호를 받았더라도 제도적으로 소급 재분류는 가능하다. 이 점은 중요하다. 무효화하지 않은 것이 불가능해서는 아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 한 적도 있다. 무효화하지 않는 것은 선택이지 능력의 한계가 아니다.
셋째, 성적의 단절이 너무 크다. 로마에서는 세계기록이 43개 나왔고, 사후 연구들은 일부 종목에서 몇 퍼센트의 개선 효과를 추정했다. 달리기에서는 2017~2019년 상위 100위권 성적의 가속이 20년치 자료 가운데 가장 큰 3년간의 향상이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인 도약은 기록이라는 범주가 실질적으로 이미 달라졌는데 규정이 뒤따라오지 못했다는 증거로 읽힐 수 있다.
넷째, 승인 자체에 결함이 있다면 형식적으로 규정에 맞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009년 국제수영연맹의 승인은 거듭 바뀌었다. 부력, 투수성, 소재의 성분을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세계육상연맹의 옛 규정은 불공정한 도움을 금지했을 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사전 검사는 없었다. 규제 기관의 잠정적인 승인이 그 결과 나온 기록이 같은 역사적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하지는 않는다.
다섯째, 접근 기회의 불평등은 우연한 주변 현상이 아니라 문제 안에 들어 있다. 초기 첨단 러닝화는 후원받는 선수 가운데 선별된 이들에게 우선 공급되었다. 폴리우레탄 수영복을 구할 수 있는지는 계약, 협회, 공급, 막판 승인에 따라 달랐다. 기술이 주는 이점이 실질적일 때, 배타적이거나 불안정한 접근 기회는 선수 사이의 경쟁과 기록의 서열에 동시에 영향을 준다.
이 다섯 가지를 합쳐도 기록을 무효로 해야 한다는 강한 이유가 된다.
유지 쪽과 마찬가지로 무효화 쪽도 선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과격한 입장이 아니다. 똑같이 진지한 원칙 위에 서 있다. 기록의 의미는 비교할 수 있다는 데 있으며, 뒤에 오는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기록은 기록으로서 핵심 기능을 잃는다는 원칙이다. 규정에 맞는 장비를 쓰는 후대 선수가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기록은 우러러볼 기념비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아무리 애써도 닿을 수 없는 높이 아래에 모든 후대 선수를 영구히 가둔다. 그 높이의 일부는 그들에게 더 이상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물건에서 왔다. 무효화를 주장하는 쪽이 지키려는 것은 이것이다. 기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교 가능한 기준이어야 한다. 장비가 남겨놓아 후대가 다시는 따라갈 수 없는 눈금이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소급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만큼이나 정당하다.
양쪽 모두 성립한다. 그리고 어떻게 성립하는지가 이 글의 핵심이다.
7 왜 판정하지 않는가
어느 한쪽은 옳고 다른 쪽은 틀린 것이 아니다. 한쪽만 설 수 있고 다른 쪽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양쪽 모두 설 수 있다. 다만 서 있는 자리가 서로 다르다.
유지 쪽이 딛고 있는 것은 당시의 규정 적합성과 결정의 확정성이다. 이 토대에서는 규정에 맞는 장비로 정식 경기에서 세운 성적은 유효한 기록이다. 나중에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부당하다.
무효화 쪽이 딛고 있는 것은 기록 범주의 시대 간 비교 가능성이다. 이 토대에서는 세대 사이의 비교를 불가능하게 하는 성적은 후대의 기준이 될 자격이 없다. 당시에는 완전히 규정에 맞았더라도 그렇다.
두 토대는 모두 참이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론을 가리킨다. 어느 쪽을 고를지는 무엇이 더 옳으냐에 달려 있지 않다. 이 구축이 무엇을 첫자리에 놓느냐에 달려 있다. 당시 결정의 확정성과 규정 적합성인가, 아니면 기록 범주의 장기적인 비교 가능성인가.
그래서 이 글에는 답이 없다.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증거는 매우 충분하고, 양쪽의 논거도 온전하다. 문제 자체에 객관적인 판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일차 자료는 제도적으로 자기모순 없는 선택지 세 가지를 보여준다. 새 규정은 앞으로만 적용하고 과거 기록을 유지하는 방식, 과거 기록을 소급해 재분류하는 방식, 장비의 시대별 기록을 나란히 두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중 하나가 보편적으로 더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규칙은 내놓지 못했다.
다른 스포츠들이 내놓은 답은 서로 다르다. 바로 그 사실이 유일한 답은 없음을 보여준다. 골프와 테니스는 새 규정을 앞으로 적용하면서 과거의 적법한 성적을 보존하는 편이다. 사이클은 장비 때문에 역사 속 성적을 견주는 시험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면 기록을 재분류한다. 양궁은 기술에 따라 정의한 기록 범주를 병렬로 유지한다. 둘 다 양궁이라는 이유만으로 컴파운드 보우의 기록이 리커브 보우의 기록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이 종목들에 걸쳐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그런데 어느 방식이 옳은지를 정하는, 종목을 넘어서는 원칙은 없다.
이는 제9편과 통한다. 그 글에서 구축은 글라이드와 회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판정하지 않았다. 그런 최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유지할 것인지 무효로 할 것인지 판정했고, 유지를 골랐다. 하지만 이 판정에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반대일 수도 있었다. 제9편에서는 구축이 판정을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판정을 한다. 그리고 그 판정은 모두 성립하는 두 토대 사이에 매달려 있다.
이 차이는 한 겹 더 짚어볼 만하다. 제9편에서 구축은 글라이드와 회전 앞에 개입하지 않았다. 두 기술을 함께 놓고 비교할 척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정직했다. 스스로 판정할 근거가 없음을 인정했다. 이번에는 구축이 개입하여 유지를 골랐다. 그러나 그때 딛고 선 토대, 당시의 규정 적합성이 맞은편의 토대인 시대 간 비교 가능성보다 더 큰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판정은 근거가 답을 정해주는 판정이 아니다. 동등한 두 근거 가운데 하나를 고른 판정이다. 다른 것을 고를 수도 있었다. 구축의 침묵과 구축의 선택은 여기서 공통점을 드러낸다. 객관적 기준이 없을 때 침묵은 정직하게 고르지 않는 것이고, 선택은 임의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둘 다 근거에 따라 재현할 수 있는 그런 판정은 아니다.
제7편과도 이어진다. 그때 10종경기 점수표는 서로 양립하지 않는 여러 공정성의 정의를 마주했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조차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여기도 같다. 유지와 무효화가 모두 성립하는 것은 그 뒤에 기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서로 다르고도 합리적인 두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기록이 당시 조건 아래에서 나온 최고의 경기 결과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시대를 가로질러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제7편의 여러 공정성 정의와 마찬가지로, 이 두 이해 중 어느 하나도 유일하게 옳다고 증명할 수 없다.
8 강요된 결론이 아니라 선택한 결론
이제 이 글을 한데 모아보자.
러닝화와 수영복은 구조가 대단히 비슷한 두 장비 논란이다. 둘 다 마법 같은 부품 하나에 기대는 대신, 서로 작용하는 여러 특성을 결합했다. 둘 다 측정 가능한 평균 향상을 가져왔고, 동시에 막대한 개인차를 보였다. 둘 다 초기에 경기에서 성공을 거둔 뒤 빠르게 확산되었다. 두 관리 기관은 처음에는 공정성이나 장비에 관한 폭넓고 정성적인 규정 아래에서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수치나 소재의 제한을 채택했다. 두 기관 모두 새 제한은 앞으로 적용했고, 규정에 맞게 치러진 공인 대회에서 나온 성적은 유지했다.
거의 같은 이 두 사안 앞에서 구축은 같은 선택을 했다. 유지.
이 선택은 뒤집을 수 있다. 유일하게 옳은 방식도, 증거가 강요한 결론도, 달리 도리가 없던 결정도 아니다. 모두 타당하게 설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지 가운데 구축이 하나를 고른 것이다. 무효화나 재분류 대신 유지를 택한 결정의 맞은편에는 똑같이 강한 이유가 서 있다. 실제로 정반대의 선택을 했던 선례, 사이클의 한 시간 주행 기록도 서 있다.
이렇게 이번 글과 앞의 두 글이 하나의 온전한 모양으로 이어진다.
제10편에서 구축은 누군가 경계를 넘어서고 나서야 그 경계를 발견했고, 지킬지 열어둘지를 결정했다. 나는 그 결정이 반대일 수도 있었다고 했다. 제11편에서는 장비의 정의를 넘어서는 순간 구축이 기록을 새로 시작했고, 창던지기의 옛 장부는 닫혔다. 두 글 모두에서 구축은 선택하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선택이 자연스럽고, 거의 떠밀린 결과처럼 보였다. 이번 글은 ‘반대일 수도 있었다’는 한 줄의 곁말을 글 전체로 펼쳤다. 구조가 같은 장비 논란 앞에서 구축은 창던지기처럼 기록을 새로 시작할 수도 있고, 러닝화와 수영복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 글은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두 선택 모두 완전한 이유가 있고, 둘 모두 선례가 있다. 이 구축은 후자를 골랐다.
따라서 이번 글의 잔여항은 또 다른 새로운 형태다.
앞의 글들에서 잔여항은 제외된 이름이었고, 계산할 수 없는 원인이었고, 판정되지 않은 기술이었다.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동작이었고, 규정에는 맞지만 비교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었다. 이번 글의 잔여항은 선택받지 못한 선택지 자체다. 무효화, 재분류, 시대별 기록의 병렬 유지. 모두 실제로 가능하고 선례도 있는 처리 방식이다. 그러나 구축은 유지를 골랐고, 그 결과 이것들은 가지 않은 길이 되었다. 틀린 길이 아니다. 선택받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잔여항은 유난히 가리켜 보이기 어렵다. 장부 어디에도 올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부가 가질 수도 있었던 다른 모습이다. 당시 구축이 무효화를 골랐다면 오늘의 기록부는 달랐을 것이다. 로마의 세계기록 43개에는 다른 표시가 붙었거나, 별도의 시대별 계열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기록부가 생길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했다.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그 갈림길에서 구축이 다른 길로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림길에는 표지판이 없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구축에 알려주는 객관적 원칙은 없다. 구축은 온전한 이유를 가지고 유지 쪽으로 갔다. 무효화 쪽으로 갔어도 온전한 이유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두 길은 모두 자기모순 없는 기록 제도로 이어진다. 다만 그 두 제도는 서로 다르다. 구축이 하나를 고르자 다른 하나는 갈림길 건너편에 영원히 남았다. 똑같이 성립할 수 있었으나 구축이 가지 않은 방향으로.
이 잔여항은 앞의 모든 잔여항과 다르고, 가리켜 보이기도 가장 어렵다. 다른 잔여항 옆에 나란히 놓아볼 만하다. 명단에 들지 못한 이름은 그 이름을 말할 수 있다. 계산되지 않는 원인은 그것들이 실제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 비교할 수 없는 창던지기 성적은 옛 장부 안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잔여항들에는 모두 가리킬 대상이 있다. 이번 글의 잔여항에는 없다. 한 번도 현실이 된 적 없는 기록부다. 당시 구축이 무효화를 골랐다면 오늘 존재했을 장부다. 현실의 무엇을 가리켜 바로 이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확히 현실이 되지 않은 판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길의 부재이고, 한 선택의 이면이며, 갈라져 나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가능성이다. 구축이 닫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이 잔여항은 가장 가볍다. 장부에조차 오르지 않을 만큼 가볍다. 그러나 가장 철저하기도 하다. 장부 전체가 가질 수도 있었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구축은 신발 한 켤레가 에너지를 얼마나 아꼈는지 잴 수 있다. 수영복 한 벌이 저항을 얼마나 줄였는지 잴 수 있다. 성적 하나하나를 100분의 1초까지 잴 수 있다. 하지만 이 성적들을 기록으로 쳐줘야 하는지는 잴 수 없다. 그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측정 가능한 양이 아니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에는 유일하게 옳은 답이 없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