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옛 장부를 파기하다
혼의 104.80미터는 ‘지워진’ 기록이 아니다. 창의 규격이 바뀌면서 옛 장부 안에 봉인되었다. 비교 가능성을 지키려면 제도는 연속성이 이미 끊어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 글의 목차
1 먼저 바로잡아야 할 이야기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부터 바로잡자. 그 이야기에서 출발하면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다.
흔히 이야기는 이렇게 전해진다. 우베 혼이 1984년에 던진 104.80미터는 영원한 기록이자 무효가 된 투척이다. 너무 멀리 던지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그 기록을 한 줄 그어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거의 모든 말을 고쳐야 한다.
혼의 그 투척은 무효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세계육상연맹의 공식 자료에 구규격 창던지기로 표시되어 남아 있다. 정식으로 공인받은 성적이고, 여전히 혼의 개인 최고기록이며, 구형 기구라는 표시와 함께 세계기록의 변천사에도 들어 있다. 그 투척이 규정 위반으로 선언된 적은 없다. 나중에 나온 어떤 기술적 판정도 혼이 쓴 창을 소급해서 규정에 어긋난다고 판정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것은 혼의 성적이 아니라 새 규격 기구의 세계기록 계열이었다. 1986년 4월부터 창의 규격이 바뀌었고, 이 제도적 구축은 새 규격의 기구를 위해 새 기록부를 열었다. 혼의 투척은 옛 규격의 기구로 이루어졌으므로 옛 기록부에 남았다. 현재 남자 창던지기 세계기록은 얀 젤레즈니의 98.48미터다. 혼의 104.80미터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104.80미터는 구규격 종목의 마지막 세계기록이다. 무효 처리된 투척이 아니다.
‘영원한 기록’이라는 표현은 공식적으로 쓰인 적이 없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나 세계육상연맹의 규정, 총회 결의, 공식 기록표 어디에서도 혼의 투척을 영원한 기록, 영구적인 기록, 깨뜨릴 수 없는 기록이라고 부른 문서를 찾을 수 없다. 그런 말은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 과거를 돌아보는 영상에서 나온다. 이 구축이 스스로 쓰는 말은 기능적이다. 구종목 표시, 기록 변천사.
이 글이 다루려는 것은 그보다 정확하고, 그보다 기묘한 사실이다. 어떤 성적이 규정에 맞고 유효하며 역사 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데, 그것을 현행 기록으로 성립시켰던 종목 범주를 구축이 제 손으로 없앴다. 없애는 방식도 그 성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담은 장부를 닫는 것이었다.
앞 글에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벌어진 뒤에야 구축이 자신의 경계를 발견하고, 그 경계를 지킬지 열어줄지 결정하는 과정을 보았다. 이번 글의 질문은 그다음이다. 구축이 지키기로 결정할 때, 그 대가는 무엇인가.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앞 글에서 구축이 지킨 것은 멀리뛰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였다. 공중제비를 멀리뛰기에 포함하기를 거부했다. 이번에 지키는 것은 다른 것이다. 하나의 기록 계열 안에서 성적들이 서로 비교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같은 계열에 속한 성적이라면 어느 것이든 다른 성적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새 기구가 등장해 그것이 불가능해지자, 비교 가능성을 지키는 방법은 옛 기구로 낸 성적과 새 기구로 낸 성적을 서로 다른 두 장부에 나누어 적는 것이 되었다. 비교 가능성을 지키는 대가로 비교 불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바로 그 문장을 이 글에서 풀어보려 한다.
2 한 번에 5미터 넘게
혼이 104.80미터를 던진 날은 1984년 7월 20일이었다. 동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얀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올림픽 육상의 날 대회였다. 세계육상연맹 자료에 따르면 그날 혼의 두 번째 시기였다.
이전 세계기록인 페트라노프의 99.72미터보다 5.08미터 멀었다. 구규격 남자 종목에서 100미터를 넘긴 성적이 공인된 것은 이 한 번뿐이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5.08미터라는 간격을 보자.
혼 이전에 기록이 나아간 경로는 이랬다. 1980년 파라기의 96.72미터, 1983년 페트라노프의 99.72미터. 미터 단위로 높아지던 기록이었고, 이 두 기록의 차이는 3미터였다. 그런데 혼은 한 번에 5미터를 넘게 보탰다. 센티미터 단위의 연장이 아니라 도약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 흔히 떠올리는 인상도 바로잡아야 한다. 1980년대 창던지기 성적이 해마다 더 멀어졌다는 인상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시즌별 세계 최고성적을 순서대로 놓으면 1980년은 96.72미터, 1981년은 92.48미터로 내려갔다가 1982년에는 95.80미터로 올라온다. 1983년은 99.72미터, 1984년은 104.80미터였다. 그리고 1985년 시즌을 이끈 선수도 혼 자신이었지만, 그해에는 96.96미터에 그쳤다. 자신의 104.80미터에 한참 못 미쳤다.
정확한 설명은 이렇다. 공기역학의 발전과 최정상 선수들이 기록의 상한선을 힘껏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모든 시즌이 이전 시즌보다 더 멀었다고 그려서는 안 된다. 여러 성적의 최외곽을 잇는 상한선은 확장되고, 개별 시즌은 오르내린다. 혼의 투척은 그 확장되는 상한선 위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한 점이었다. 매끈하게 상승하는 곡선의 꼭대기가 아니었다.
그 투척에 관해서는 오늘날 구할 수 없는 자료가 몇 가지 있다. 그리고 그 자료가 없다는 사실 자체를 적어둘 필요가 있다.
혼이 쓴 창의 정확한 브랜드와 모델은 확인할 수 없다. 훗날의 많은 서술이 당시 유명했던 구형 창 몇 가지를 지목한다. 하지만 특정 모델과 혼의 그 투척을 묶어줄 기구 검사 증명서도, 제조사 일련번호도, 권위 있는 대회 기구 목록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어느 브랜드였다거나 어느 비거리 등급으로 표시된 제품이었다는 말을 확정된 사실처럼 쓰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그 투척 당시의 정확한 날씨와 풍속도 확인할 수 없다. 창던지기 기록에는 단거리 달리기나 수평 도약 종목에 적용되는 초속 2미터의 풍속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바람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창의 비행은 풍속과 공기 밀도, 받음각, 기구의 자세에 크게 좌우된다. 혼의 그 한 차례 투척에 관한 풍향·풍속 벡터, 기온, 기압, 공기 밀도의 권위 있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날씨를 가정해놓고 정밀한 환산값을 내놓는다면, 그 값은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이 점에서는 제5편의 비먼이 처했던 상황과 같다. 극단적인 성적이, 그 조건이 온전히 기록되지 않은 어느 순간에 나왔다. 그 성적 중 얼마가 그 사람에게서 왔고 얼마가 그날에서 왔는지는 영원히 계산해낼 수 없다. 차이는 비먼의 도약을 둘러싼 조건 중에는 규정을 고쳐 손댈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데 있다. 바람은 규정 안에 있었고, 해발고도는 지리였다. 반면 혼의 투척을 둘러싼 변화에서는 기구 자체가 다시 정의되었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비먼의 도약 앞에서 구축에는 규정으로 붙잡을 만한 손잡이가 없었다. 원인을 다 계산할 수 없는 성적을 그대로 받아 기록표에 넣고, 23년 동안 맨 위에 걸어둘 수밖에 없었다. 혼의 투척 앞에는 손잡이가 있었다. 바로 그 창이었다. 창은 기구이고, 기구는 규격을 다시 정할 수 있다. 지나치게 먼 성적 앞에서 비먼에게는 손쓸 수 없던 구축이 혼에게는 손을 뻗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혼의 성적이 나온 원인을 더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에는 바꿀 수 있는 물건을 찾았기 때문이다. 해발고도는 옮길 수 없어도 창은 바꿀 수 있었다.
3 제안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인과관계를 거꾸로 놓는 설명 하나는 부정해야 한다. 혼의 그 한 번의 투척이 홀로 규격과 기록의 재설정을 강제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다.
국제육상경기연맹 기술위원회에 참여했던 브레미커(Bremicker)는 그런 시간 순서를 명확히 부인했다. 변경 작업은 혼의 투척보다 훨씬 전에 진행되고 있었다. 기술위원회는 1982~83년에 실험했고, 새 제작 규정안은 1983년에 완성되었다. 1984년 초에는 로스앤젤레스 총회의 안건에 올랐고, 같은 해 5월에는 각 회원 연맹에 회람되었다. 혼이 104.80미터를 던진 7월 20일은 총회 개막을 약 2주 앞둔 때였다.
따라서 혼의 투척이 몇 달 전에 이미 회람된 제안을 낳았을 리는 없다. 그 투척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변경의 이유에 정치적·상징적 힘을 보태는 것이었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104.80미터가 이미 기술적 절차를 밟고 있던 결정의 오래 남는 대중적 이미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앞 글과 이어진다. 다만 정확하게 이어야 한다.
앞 글의 앞공중제비 멀리뛰기에서는 누군가 경계를 넘어선 순간에야 선이 그어졌다. 1974년 이전 멀리뛰기 규칙에는 공중제비 금지 조항이 없었다. 델라미어가 몸을 한 바퀴 돌리고서야 그 금지 조항이 생겨났다. 거기서는 정말로 경계를 넘은 뒤에 경계가 나타났다.
창던지기는 달랐다. 여기서는 누군가 경계를 넘기 전부터 선을 그리고 있었다. 기술위원회는 1982년에 실험을 시작했다. 당시 세계기록은 아직 100미터에 못 미쳤고, 아무도 그 선을 넘지 못했다. 이 구축은 혼이 104.80미터를 던진 뒤에야 허둥지둥 반응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몇 년 앞서 거리가 지나치게 길어질 것을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혼의 투척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미 무르익고 있던 결정에 붙은 가장 강력한 주석이었다. 기술위원회 안에서 논의되던 일에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유를 주었다. 한 번에 5미터 넘게, 104.80미터. 그 숫자가 가장 좋은 논거였다. 결정의 원인이 아니라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던 셈이다. 증거와 원인은 서로 다르다.
여기서는 앞의 글들과 다른 양상이 보인다. 앞에서 구축은 대개 한발 늦었다. 일이 벌어진 뒤에 반응하고, 그제야 규칙을 세웠다. 이번에는 먼저 움직였다. 극단적인 성적이 나오기 전에 준비하고 있었다. 왜 이번에는 앞설 수 있었을까. 이번 문제는 어느 기술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추세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거리는 장기적으로 늘어나는 방향이었고, 그 추세는 바깥으로 연장해볼 수 있었다. 특정 성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언젠가는 너무 먼 거리가 나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구축은 추세에는 앞서 대응할 수 있지만, 개별적인 돌발 사건에는 뒤따를 수밖에 없다. 거리의 증가는 추세였고, 앞공중제비의 등장은 돌발 사건이었다.
이 차이를 한 겹 더 생각해보자. 추세를 바깥으로 연장해볼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이어지는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마다 오르내려도, 긴 시간에 걸쳐 기록의 상한선이 넓어지는 방향은 선으로 그려볼 수 있다. 돌발 사건은 그렇게 연장할 수 없다. 띄엄띄엄 생기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동작을 갑자기 떠올리는 일에는 미리 그어볼 선도, 예고도 없다. 그래서 구축은 추세 앞에서는 밀물이 높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듯 미리 둑을 쌓을 수 있다. 돌발 사건 앞에서는 일이 벌어져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그제야 반응한다. 창던지기의 거리는 밀물이고, 앞공중제비는 갑자기 떨어진 운석이다. 밀물에는 대비할 수 있지만 운석에는 떨어진 뒤에 수습할 수 있을 뿐이다. 같은 구축이 한쪽에서는 앞서고 다른 쪽에서는 뒤처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창끝을 아래로 누르다
이 구축이 한 일은 선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창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었다.
1982~83년 국제육상경기연맹 기술위원회와 제조사들은 무게중심을 각각 2센티미터, 3센티미터, 4센티미터, 5센티미터 앞으로 옮긴 시험용 창들을 만들었다. 수백 차례 던졌는데, 대부분은 발사 장치를 썼고 일부는 선수가 던졌다. 창끝이 먼저 땅에 닿게 하는 데에는 3센티미터 이동이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위원회 다수는 4센티미터를 택했다. 비거리를 더 줄이고, 나중에 다시 큰 비용을 들여 규격을 고쳐야 할 가능성도 낮추기 위해서였다.
주요 치수 변경은 다음과 같았다. 무게중심을 창끝 쪽으로 4센티미터 옮겼다. 꼬리 부분에 허용되는 최소 지름을 늘려, 양력을 크게 만드는 매우 가느다란 꼬리 형상을 제한했다. 그렇다고 더 가벼운 기구로 바꾼 것은 아니다. 종목은 여전히 남자 800그램 창던지기였다.
이 변경들 뒤에 있는 공기역학이 이번 글에서 조금 기술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대목이다. 그래도 제대로 짚을 가치가 있다. 이 사건 전체의 논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옛 고성능 창에서는 받음각이 달라지면 압력 중심이 무게중심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덕에 기수를 올리는 양의 피칭 모멘트와 지속적인 양력이 생길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옛 창은 날아가는 도중 스스로 머리를 들었다. 활공하는 날개처럼 평평하게, 멀리 날아간 뒤 눕듯이 떨어졌다. 이것이 수평 착지다. 수평 착지는 두 문제를 낳았다. 창끝이 먼저 닿지 않으니 유효인지 무효인지 판정하기가 어렵고 논쟁이 생겼다. 그리고 너무 멀리 날아갔다.
새로운 무게 배분에서는 압력 중심이 무게중심 뒤에 놓여, 양의 받음각에서 음의 피칭 모멘트가 생겼다. 쉽게 말하면 새 창은 계속 활공하거나 수평으로 떨어지는 대신, 비행 중 스스로 머리를 아래로 눌렀다. 머리를 숙여 떨어지며 창끝이 먼저 땅에 닿으니 판정이 분명해졌다. 또 예전처럼 활공하지 않으므로 비거리도 짧아졌다.
구축은 수평 착지와 비거리라는 두 문제를 같은 방법으로 풀었다. 비행 중에 창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변화로 두 가지를 얻었다. 판정 논란과 지나친 비거리가 똑같은 무게중심 이동으로 함께 해결되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은 두 문제의 성격이 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수평 착지는 판정의 문제다. 구축이 어떤 투척을 유효하다고 할지 무효라고 할지 명확히 가려낼 수 있느냐, 곧 측정 자체에 관한 문제다. 지나치게 먼 비거리는 경기장의 문제다. 경기장이 그 거리를 담아낼 수 있느냐, 곧 물리적 공간의 문제다. 둘 사이에는 본래 필연적인 연관이 없다. 하나는 장부 안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장부 밖의 문제다. 그런데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기는 한 가지 변경이 마침 둘을 함께 눌렀다. 판정을 위해 고안한 변경이 덤으로 경기장 문제까지 풀었으니, 조금은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게 두 문제를 한꺼번에 풀었기에, 나중에는 둘 중 어느 쪽이 주목적이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가 이 글의 주제다. 새 창과 옛 창은 서로 다른 두 기구다. 비행의 물리가 다르다. 하나는 머리를 들고 활공하고, 다른 하나는 머리를 숙여 아래로 꽂힌다. 이 두 기구로 얻은 성적을 하나의 기록 계열에 넣어 비교할 수는 없다.
5 한 장부를 닫고 다른 장부를 열다
규칙의 시간 순서는 분명하다. 제작 규정은 1983년에 완성되었고, 1984년 5월 회원 연맹에 회람되었으며, 그해 로스앤젤레스 총회에서 채택되어 1986년 4월 1일 발효되었다. 거의 2년의 간격은 대회와 선수, 제조사들이 전환을 마칠 시간을 주었다.
규칙이 발효된 순간, 벌어진 일은 이러했다.
서로 다른 두 기구로 낸 성적은 더 이상 하나의 세계기록 계열 안에서 자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성적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1986년 9월 21일 타펠마이어가 새 규격의 창으로 85.74미터를 던졌고, 그것이 새 규격 계열에서 처음 공인된 기록이 되었다.
혼의 104.80미터는 타펠마이어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목표가 되지 않았다.
이 한 문장이 이 글의 핵심이다. 타펠마이어의 85.74미터는 혼의 104.80미터에 도전한 것이 아니다. 숫자로만 보면 104.80미터가 85.74미터보다 훨씬 크지만, 두 숫자를 낳은 기구의 범주가 이미 실질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타펠마이어의 기록이 자리할 곳은 옛 계열이 닫힌 뒤, 새 계열이 처음부터 출발하는 그 출발점이었다.
‘처음부터’, 곧 ‘0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정확히 해야 한다. 새 계열의 첫 기록인 85.74미터가 0미터에서 시작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히 먼 투척이다. 0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그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앞서 공인된 새 창의 기록을 넘어설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첫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구축이 새 기구를 위해 연 장부의 첫 페이지는 비어 있었고, 타펠마이어의 투척이 첫 줄을 썼다. 옛 장부의 더 큰 숫자들, 99.72미터와 104.80미터를 새 장부의 첫 줄에서 갈라놓은 것은 기록의 격차가 아니라 두 장부의 경계였다. 85.74미터는 104.80미터보다 작다. 그런데 85.74미터는 새 세계기록이 되었고, 104.80미터는 더 이상 현행 세계기록이 아니었다. 두 성적이 같은 장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주 기묘한 상황이 생겼다. 세계육상연맹은 오늘날 서로 모순되지 않는 세 가지 처리를 동시에 하고 있다. 젤레즈니의 98.48미터를 현행 남자 창던지기 세계기록으로 둔다. 혼의 개인 자료에서는 104.80미터를 구규격 창던지기 항목에 올려둔다. 공식 기록 변천사에는 옛 성적들을 구형 기구 표시와 함께 보존한다.
이것은 기록 계열 하나를 닫고 분리한 일이다. 그 바탕에 있는 역사 자체를 파기한 일이 아니다.
이 구분은 끝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규정에 맞는 성적이라는 판단과 현행 기록이라는 판단은 서로 다르다. 혼의 투척은 여전히 규정에 맞는 성적이며, 역사적으로 공인된 사실도 그대로다. 다만 그 세계기록의 지위를 지탱하던 종목 범주가 다른 범주로 대체되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은 생긴다. 관리 기관이 종목의 거리나 점수표, 체급, 기구의 범주를 바꾸면, 옛 성적은 여전히 공식 성적일 수 있으면서도 후속 종목의 기록을 지배하지는 않게 된다.
제7편의 10종경기 점수표는 같은 원리를 공유하는 친척 같은 사례다. 거기서는 환산표가 바뀌었다. 소프가 그 대회에서 남긴 열 개의 성적은 그대로인데 총점이 달라졌다. 여기서는 창이 바뀌었다. 혼이 던진 거리는 그대로인데 그 성적이 속하는 기록 계열이 달라졌다. 두 경우 모두 사건 자체는 움직이지 않았고, 구축이 부여하는 자리가 바뀌었다. 차이는 점수표의 경우 새 총점과 옛 총점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둘은 같은 대회를 계산한 값이기 때문이다. 창던지기에서는 옛 성적과 새 성적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두 기구로 던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6 그 결정의 원문은 구할 수 없다
이번 재설정에 관해 정직하게 밝혀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을 결정한 원문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검토한 자료에서는 1984년 총회의 전체 동의안 스캔본, 기명 표결 내역, 수정 이력, 기록 재설정 조항의 정확한 문구 가운데 공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발효 날짜와 결정의 실질적인 내용은 기술위원회 관계자의 증언, 그리고 이후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실제 처리로 강하게 뒷받침된다. 하지만 총회가 정확히 어떤 동사를 썼는지, 무효화인지 폐지인지 폐쇄인지 보관인지 이전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원기록을 구할 수 없다면 그 말들에 따옴표를 붙여 원문처럼 제시해서는 안 된다.
세계육상연맹이 나중에 쓴 ‘새로운 기록 계열’이라는 표현은 이 제도적 결과를 정확히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을 1984년 총회 자체의 발언을 인용한 것처럼 제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빈자리는 이 연작에서 여러 번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 빈자리가 놓인 자리가 특별하다.
제2편에서는 최초 기록 신청서의 원본을 찾을 수 없었다. 제3편에서는 소프가 스스로 인정한 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제4편에서는 1928년 종목 삭제를 둘러싼 세부 토론이 기록되지 않았다. 제10편에서는 앞공중제비 금지의 원래 결의문과 논의 기록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 종목에서 가장 유명한 성적 가운데 하나의 지위를 바꾼 재설정인데도, 그 원래 조항을 구할 수 없다.
매번 같은 모양이다. 구축은 결론을 남긴다. 닫힌 장부, 새로 시작된 기록 계열은 남는다. 그러나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자료에는 그 과정이 남아 있지 않다. 장부를 닫기로 결정한 그 토론을 들여다볼 수 없다. 이번에는 대비가 유난히 크다. 그 결정의 영향을 받은 104.80미터가 이 종목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숫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언급되는 성적인데, 그 성적의 신분이 바뀌던 순간의 원기록은 구할 수 없다. 결과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자료로는 그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 들여다볼 수 없다.
이렇게 거듭 나타난 모양을 이제 한번 정리해볼 수 있겠다. 구축은 결론을 생산하는 기계다. 그 제품은 규칙에 적히고, 기록표에 올라가고, 자료실에 보관되는 것들이다. 이 제품들은 정성껏 보존된다. 그것을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구축이 존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만들어낸 과정, 곧 토론과 논쟁, 저울질과 투표를 그만한 정성을 들여 보존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제품이 아니라 제품의 제조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장은 완성품을 소중히 보관하지만, 모든 완성품이 생산 라인에서 어떤 작업을 거쳐 나왔는지까지 보관하지는 않는다. 이 구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후세는 그 결론들을 하나하나 구할 수 있으면서도, 어느 한 번의 추론조차 복원하기 어렵다. 구축은 판단을 세상에 남겼다. 판단의 이유는 흩어져 사라진 회의들 속에 남겨두었다.
관련해서 또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혼을 구형 기구의 세계기록 보유자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 명단을 만들자고 명시적으로 제안한 당시의 동의안, 회원 연맹 제안서, 선수 청원, 총회 수정안은 찾을 수 없다. 그런 제안이 공식적으로 부결되었다거나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부결 이유를 발표했다는 문서상의 증거도 마찬가지로 찾을 수 없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최종적으로 실현된 결과가 바로 그 가상의 보존 제안과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 옛 기록의 변천사는 공식 기록의 역사 안에 보존되었고, 혼의 성적도 계속 구종목의 성적으로 분류되었다. 1999년 여자 창던지기가 새 규격으로 전환될 때 국제육상경기연맹의 한 대변인은 더 명확하게 설명했다. 옛 성적에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 표시가 붙는다는 것이었다. 이 보관 방식은 제출되었다고 전해지는 보존 제안과 매우 가깝다. 다만 옛 성적에 아무런 단서도 붙지 않는 ‘현행 세계기록’의 칭호를 더는 주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구축이 한 일은 통속적인 이야기처럼 비교 가능성을 지키려고 모든 옛 성적을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의미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두 기구의 성적은 하나의 현행 기록 계열 안에서는 비교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옛 기록의 흐름은 역사로 남겼다. ‘지웠다’는 말은 현행 기록의 칭호를 잃었다는 비유로 쓸 때만 성립한다. 통계 자료에서 실제로 지워졌다는 뜻으로는 쓸 수 없다.
7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숫자와 두 가지 진실
이제 가장 눈길을 끌면서도 가장 쉽게 잘못 말하게 되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104.80미터는 정말로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가.
답은 두 갈래로 나누어야 한다. 어느 쪽도 흔히 말하는 ‘영원한 기록’과 같지 않다.
첫째, 현행 세계기록으로서의 104.80미터는 끝났다. 더 이상 누구도 넘어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현재 남자 창던지기 세계기록은 젤레즈니의 98.48미터이고, 새 성적이 도전할 숫자는 이것이다. 혼의 숫자가 아니다. 현행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104.80미터는 이미 물러났다. 구종목 자료 속으로 물러났다.
둘째, 104.80미터라는 숫자에 영원히 다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스포츠 기관도 사실로 확정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미래의 선수가 현행 기구로 104.80미터를 던질 수 있다. 아직 아무도 하지 못했고 현행 최고성적이 젤레즈니의 98.48미터라는 것과는 별개다. 공인된 옛 기구 대회에서도 현행 규격의 세계기록을 바꾸지 않은 채 그 숫자를 재현할 수 있다. 영원하다는 것은 예측이지, 공인의 범주가 아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기록’이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두 일을 하나로 섞는다. 현행 기록으로서 104.80미터가 끝났다는 사실과, 104.80미터라는 숫자는 재현할 수 없다는 주장을 같은 것으로 만든다. 앞의 것은 사실이다. 현행 기록으로서의 생명은 분명히 끝났다. 뒤의 것은 확정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숫자에 다시 도달하는 일이 영원히 없으리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둘을 갈라놓아야 하는 까닭은 섞는 순간 부정확할 뿐 아니라, 실은 이 사건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104.80미터를 영원한 기록이라고 부르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념비로 높이는 듯 들린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고, 틀린 방식 때문에 진짜 기묘한 지점이 가려진다. 기묘한 것은 그 숫자에 영영 도달하지 못한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숫자를 낳은 조건이 현행 경기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원한 기록’은 시선을 숫자에 붙잡아두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은 그 창이다. 사건의 핵심은 숫자가 얼마나 큰가가 아니다. 그 성적을 낸 투척에 쓰인 기구를 구축이 제 손으로 경기에서 없앴다는 것이다.
정말 정확하면서도 기묘한 설명은 이렇다. 혼은 지금의 경기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구로 그 성적을 냈다. 옛 규격의 창은 1986년 4월 이후 현행 대회에서 쓸 수 있는 적법한 기구가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정상적인 현행 대회에서는 누구도 그 창으로 어떤 성적도 낼 수 없다. 그 창 자체가 경기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글의 잔여항이다. 이 연작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날카로운 형태 가운데 하나다.
앞의 글들에서 잔여항은 명단에 들지 못한 이름이었고, 계산해낼 수 없는 원인이었으며, 판정을 받지 못한 기술이거나 받아들일 수도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은 동작이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장부 밖에 남았다. 그런데 혼의 투척은 장부 밖에 있지 않다. 당당히 장부 안에 있다. 공식 기록 변천사에 분명한 표시와 함께 들어 있고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규정에 맞고, 유효하며,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도 영원히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새 창으로 낸 어떤 성적과도 같은 계열에 넣어 비교할 수 없다. 그 성적을 낳은 기구와 이후 성적을 낳은 기구는 서로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다. 규정에 맞고 유효하며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뒤에 오는 성적들과는 영원히 공통의 척도로 통약할 수 없는 성적이다.
이 잔여항은 앞의 어느 것보다도 깨끗하다. 흠이 없기 때문이다. 이 투척의 공정성에 이의가 제기된 것도, 부정행위가 의심된 것도 아니었다. 초과 풍속 문제도 자격 문제도 없었다. 자신의 장부 안에서는 완벽한 성적이다. 유일한 문제는 그 장부가 닫혔다는 것이다. 장부를 닫은 까닭도 그 성적에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뒤에 오는 장부 안에서 비교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구축은 앞의 장부에 더 이상 새 항목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장부 하나가 닫혔다. 그 안의 것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혼의 투척은 여전히 그 페이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다만 누구도 그 페이지에 새 글자를 쓸 수 없다. 글을 쓰던 펜, 104.80미터를 만들어낸 그 창을 구축이 거두어갔기 때문이다. 장부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동시에 닫혀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8 환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혼의 투척을 새 창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얼마일까.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답이 없는지가 이 글의 마지막 주제다.
먼저 계산되어 나온 숫자들을 보자. 10퍼센트를 줄이면 94.32미터가 된다. 12~13퍼센트를 줄이면 약 92.22~91.18미터가 된다. 정상급 선수들에게 나타난 평균 감소 폭 7미터를 빼면 97.80미터가 된다.
이 숫자들은 91.18미터에서 97.80미터까지, 6미터가 넘게 벌어진다. 어느 것도 공식 환산값이 아니다. 어느 것도 혼의 바로 그 한 차례 투척에만 해당하는, 이제는 구할 수 없는 바람과 릴리스 변수, 새 기구에 적응하는 과정까지 반영하지 않는다.
환산이 불가능한 기술적 이유는 충분하다. 공력 계수는 창의 모델에 따라 다르다. 받음각이 변할 때 압력 중심이 이동하는 방식도 다르다. 바람은 상대 기류의 속도와 유효 받음각을 바꾼다. 창이 손을 떠나는 순간의 속도와 자세, 피칭과 요잉, 자체 회전은 제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과거 시험에서는 명목상 같은 릴리스 조건과 대기 조건에서도 브랜드가 다르면 비거리가 10미터 넘게 차이 날 수 있었다. 게다가 기구가 바뀌면 선수는 던지는 기술도 바꾼다.
이 이유들을 합치면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새 창과 옛 창 사이에는 보편적인 환산 방정식이 없다. 아직 계산해내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런 방정식 자체가 기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환산하려는 두 기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너무 많은 차원에서 다르고, 그 차원들을 하나의 곱셈 계수로 압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솔깃한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104.80미터는 혼의 본질적인 능력이 젤레즈니보다 6.32미터 앞섰음을 증명한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은 104.80미터에서 98.48미터를 빼 6.32미터를 얻고, 그 값이 두 선수의 투척 능력 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거리는 서로 다른 기구 체계에서 나왔다. 그 숫자들이 확정하는 것은 원래의 미터 수치로 누가 더 멀리 던졌느냐이지, 기구 규격과 무관한 투척 능력의 순위가 아니다. 현대 생체역학은 이 비교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널리 인정된 단일 수치 보정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혼 본인이 새 창을 썼더라면 젤레즈니를 넘어섰을지조차 확정할 수 없다. 옛 창을 던지던 능력과 그의 체격, 104.80미터를 던진 그 한 번의 릴리스만으로는 여러 시즌에 걸쳐 새 기구에 기술적으로 어떻게 적응했을지 결정할 수 없다. 새 창으로 장기간 의미 있는 비교를 해볼 수 있기 전에 그의 선수 생활은 끝났다. 반대로 젤레즈니의 98.48미터 역시, 그가 혼의 창을 썼다면 얼마나 멀리 던졌을지에 관한 믿을 만한 수치로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은 두 겹의 불가능성에서 끝난다.
첫 번째, 104.80미터는 닫힌 옛 기록 계열 안에서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다. 그 성적을 낸 투척에 쓰인 창이 현행 경기의 기구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구 쪽의 불가능성이다.
두 번째, 104.80미터는 환산할 수 없다. 새 창과 옛 창 사이에 성립하는 환산 방정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교 가능성 쪽의 불가능성이다.
두 겹의 불가능성이 합쳐져 이 성적의 처지를 온전히 이룬다. 뒤에 오는 성적은 닫힌 그 계열 안에서 그것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다. 성적은 닫힌 장부 안에 홀로 서 있다. 그 장부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 투척이다. 그리고 그 장부와 다른 모든 장부 사이에는 환산으로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골이 나 있다.
이 구축은 투척이 얼마나 멀리 갔는지를 센티미터까지 잴 수 있다. 104.80미터. 그러나 그 투척을 오늘의 창 앞에 놓으면 얼마에 해당하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런 값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계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숫자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앞 글은 구축이 선 하나를 긋는 순간, 자신이 갈 수도 있었던 길 하나를 통째로 지운다는 말로 끝났다. 이번 글은 그 말이 더 철저하게 실현된 경우다. 구축은 새 창의 장부 안에서 성적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옛 창의 장부를 닫았다. 옛 장부 안의 것은 아무것도 파기하지 않았다. 혼의 투척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그 안에 남았다. 다만 장부를 멈춰 세웠다. 장부가 멈추자 그 안의 가장 먼 숫자도 영원히 거기에 매달렸다. 규정에 맞고 유효하지만, 그 계열 안에서는 더 이상 따라잡을 수도, 다른 계열로 환산할 수도 없는 채로. 호박(琥珀) 속에 봉인된 무언가처럼, 또렷이 보이지만 만질 수도 꺼낼 수도 없는 채로.
호박이라는 비유를 쓰는 까닭은 이 잔여항의 양면을 한꺼번에 붙잡기 때문이다. 호박 속의 것은 온전히 보존된다. 깃털 하나, 벌레 한 마리는 수천만 년이 지나도 세부까지 선명하다. 이는 혼의 투척이 규정에 맞고 유효하며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응한다. 동시에 호박 속의 것은 영원히 격리된다. 분명 거기에 있지만 지금의 세계와 그 사이에는 투명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층이 있다. 볼 수는 있어도 다시 살아 있는 세계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이는 그 투척을 더 이상 그 기록 계열 안에서 따라잡을 수도, 새 기구의 성적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대응한다. 구축은 이 성적을 파괴하지 않았다. 더 기묘한 일을 했다. 성적을 봉인해 완벽하게 보존되고 격리된 상태로, 닫힌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 영원히 멈춰 세웠다. 여기서 보존과 격리는 같은 동작의 두 얼굴이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