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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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육상 · 한국어 독립 재구성판
제 09 편 / 전23편

기술은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포환던지기의 글라이드와 회전 기술은 반세기가 넘도록 공존해 왔다. 같은 규칙, 같은 목표, 하나의 세계기록 계보가 있다고 해서 기술까지 저절로 단 하나의 최적해로 모이는 것은 아니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같은 결승에 나란히 선 두 기술

2016년 리우 올림픽 남자 포환던지기 결승.

크라우저가 금메달, 코바치가 은메달, 월시가 동메달을 땄다. 세 사람 모두 회전 기술을 썼다.

그런데 같은 결승에 마예프스키와 슈토를도 서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글라이드 기술을 썼다.

1위부터 3위까지는 회전. 그러나 결승에는 글라이드를 대표하는 두 선수도 있었다.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밀어낸 장면이 아니다. 두 기술이 같은 투척 서클 옆에 서서, 같은 날, 같은 금메달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는 배면뛰기가 엎드려뛰기를 어떻게 대체했는지 살폈다.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이번에는 반대 이야기다. 포환던지기의 두 기술, 글라이드와 회전은 반세기가 넘도록 공존했고 지금껏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한 것이 아니다. 줄곧 나란히, 같은 대회들에서 서로 다른 선수들의 몸을 통해 이어졌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퇴장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이 구축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기술이 더 낫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점은 처음부터 분명히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앞선 여덟 편과 이번 글을 가장 크게 가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앞선 글들에서는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 구축은 언젠가는 어떻게든 처리할 방법을 찾았다. 하나를 고르거나, 각각의 영역을 정해 주거나, 둘을 담아낼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 늘 무언가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두 기술이 반세기 넘게 함께했는데도 꼼짝하지 않았다. 고르지 않았고, 영역을 나누지 않았고, 범주를 만들지 않았다. 그냥 나란히 있게 두었다. 그토록 판정하기를 좋아하던 것이 여기서는 판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 판정하지 않음 자체를 물어야 한다.

앞선 글들에서 이 구축은 끊임없이 판단했다. 어떤 성적을 인정할 것인가, 어떤 성적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누가 자격이 있고 누가 없는가. 어느 성적에 몇 점을 줄 것인가. 줄곧 판정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세기 넘게 공존한 두 기술 앞에서 판정하지 않았고, 판정할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세계육상연맹의 종목 소개는 포환던지기에 글라이드 또는 회전 기술을 쓴다고 설명한다. 기술 규칙은 회전 기술을 쓰는 선수에게 반칙과 우발적인 접촉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명확히 할 뿐이다. 규칙이 다루는 것은 적법성과 안전이지, 우열이 아니다. 두 기술은 모두 적법하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이 말하지 않음은 그 자체로 눈여겨볼 태도다. 이 구축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투척 서클의 지름부터 포환의 무게, 반칙의 정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을 규정해 놓았다. 입을 열 줄 몰라서가 아니다. 이 문제에서는 열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까닭은 관대해서가 아니라 말할 근거가 없어서다. 회전이 글라이드보다 낫다고 하려면 두 기술을 함께 올려놓고 견줄 척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척도가 없다. 두 기술은 같은 길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축에는 성적을 재는 척도는 있지만 기술을 재는 척도는 없다. 그래서 성적에는 끊임없이 판정을 내리고, 기술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한쪽은 곧게 가고 한쪽은 돈다

먼저 두 기술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하자. 그 차이가 이 글의 나머지 논의 전체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오브라이언 이전에 남자 포환던지기의 표준 자세는 정면이나 옆을 향하는 더 오래된 방식이었다. 한 다리로 버티며 몸을 뒤로 기울였다가, 앞으로 한 걸음 뛰어나가 포환을 밀어냈다.

오브라이언은 이 동작을 바꾸었다. 서클 뒤쪽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시작해 약 180도 몸을 돌린 다음, 앞쪽에서 힘을 집중해 쓰는 자세로 들어갔다. 그는 1952년 올림픽에서 우승했고, 1953년에는 최초로 18m를 던졌다. 그의 방식은 훗날 글라이드 선수들의 본보기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글라이드의 기본 역학은 직선 가속이다. 자세를 낮춰 서클을 가로지르고, 재빨리 몸을 돌려 힘을 쓰는 자세를 잡은 뒤, 길고 정밀하게 제어된 마지막 밀어내기로 이어진다. 뒷다리에 미리 하중을 싣는 것, 몸의 위아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빠르게 이동하는 것, 포환이 손을 떠나는 순간 앞쪽에서 단단히 버텨 주는 것이 중요하다.

회전 기술은 다르다. 공식 올림픽 인물 소개는 회전식 포환던지기의 창안자를 알렉세예프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첫 사용자를 바리시니코프로 꼽는다. 바리시니코프는 1970년대 초부터 이 기술을 썼다. 1976년에는 22m로 공식 세계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회전 기술이 역학적으로 매력적인 까닭은 가속 경로가 더 길고, 마지막으로 밀어내기 전에 더 큰 선운동량과 각운동량을 만들어 낼 여지가 있다는 데 있다. 회전은 사전 가속을 더 높이고, 포환의 속도를 끌어올릴 잠재적 폭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두 기술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렇다. 글라이드는 직선이다. 선수가 곧은 경로를 따라 서클을 가로지른다. 회전은 원을 그린다. 원반던지기 선수처럼 서클 안에서 돈다. 글라이드가 추구하는 것은 제어되고 안정된 힘의 발휘다. 회전이 추구하는 것은 더 긴 가속 경로다. 그 길이로 더 빠른 릴리스 속도를 얻을 가능성을 산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해 하나를 풀어야 한다. 오브라이언의 혁신을 회전 기술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180도 몸을 돌리는 동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역학적으로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경기단체와 코치들은 오브라이언의 동작을 글라이드, 곧 직선적인 방식으로 분류한다. 뒤에 등장한 완전한 회전 기술과는 다르다. 오브라이언의 180도 회전은 글라이드 안에 포함된 몸 돌리기이지, 회전 기술에서처럼 이어지는 회전 운동이 아니다. 둘을 섞어서는 안 된다.

이 구분은 용어를 깐깐하게 따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글의 시간 순서가 걸려 있다. 오브라이언의 180도 몸 돌리기를 회전 기술로 치면, 회전의 시작도 1952년이 된다. 글라이드와 회전이 거의 동시에 등장한 두 기술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실제로 오브라이언의 글라이드와 뒤이은 바리시니코프의 회전 사이에는 이십여 년이 놓여 있다. 글라이드가 먼저 이십 년을 홀로 지배한 다음 회전이 등장했다. 두 출발점을 혼동하면 이 비수렴의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 한 기술이 이십 년을 지배한 뒤 다른 기술이 나타나 맞선 이야기가, 처음부터 두 기술이 어깨를 나란히 한 이야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록 계보를 거쳐 간 두 기술

공식 세계기록 보유자들을 따라가 보면 두 기술이 차례로 이 종목의 정상에 어떻게 올라섰는지 보인다.

오브라이언 이전의 기록은 더 오래된 기술 계열의 것이었다. 로즈, 히르슈펠트, 쿠크, 도우다, 그리고 푹스까지. 이들은 오브라이언 이전의 옛 기술을 썼다. 글라이드도 회전도 아니었다.

1953년부터 1973년까지 공식 세계기록의 계보를 이끈 것은 글라이드였다. 오브라이언, 롱, 니더, 맷슨, 포이어바흐는 모두 오브라이언에게서 발전한 글라이드를 썼다. 이 종목의 공식 성적이 닿은 최전선을 대략 이십 년 동안 글라이드가 지배한 셈이다.

그 뒤 회전이 들어왔다. 바리시니코프가 1976년에 던진 22m는 회전 기술로 세워 공식 인정을 받은 첫 세계기록이었다. 이후 공식 기록 계보에는 두 기술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글라이드 쪽에는 베이어, 티머만, 안드레이가 있었고, 회전 쪽에는 바리시니코프, 반스, 그리고 오늘의 크라우저가 있었다.

여기서 한 사람은 따로 다루어야 한다. 그가 중요한 두 가지를 갈라 놓았기 때문이다.

올드필드는 1975년에 22.86m를 던졌다. 회전 기술의 발전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성적이지만, 공식 세계기록으로 승인받지는 못했다. 프로 선수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이 대목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올드필드는 초창기 회전 기술을 이끈 가장 두드러진 두 사람 중 하나였다. 1968년부터 회전을 실험했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그 기술을 널리 알렸다. 그의 22.86m는 당시 놀라운 거리였다. 그런데도 공식 기록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술에 문제가 있어서도, 충분히 멀리 던지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올드필드가 프로 선수였기 때문이다.

제3편에서 이 구축의 자격 경계를 살펴보았다. 측정하기 전에 누구의 성적을 장부에 올릴 수 있는지부터 가르는 선이다. 올드필드의 그 한 번은 선 바깥에 떨어졌다. 그는 실제로 시도했고 포환을 밀어냈다. 포환은 분명히 그 거리까지 날아갔다. 그러나 장부는 그의 신분을 이유로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회전 기술이 확산된 역사와 세계기록의 공식 진전은 올드필드라는 지점에서 갈라진다. 기술로서의 회전은 1975년에 이미 22.86m를 던질 수 있었다. 공식 기록으로서의 회전은 1976년 바리시니코프의 투척을 기다린 뒤에야 장부에 들어갔다. 두 계보는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이 구축이 그 기술의 어떤 성취를 인정하는가는 별개의 일이다. 올드필드는 정확히 그 둘 사이의 틈에 서 있었다.

이 틈은 이번 글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기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과 공식 장부에 드러난 그 기술의 능력은 완전히 어긋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식 기록만 보면 회전은 1976년에야 22m에 도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전을 쓰는 사람이 1975년에 벌써 22.86m를 던졌다. 단지 그의 신분 때문에 장부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공식 기록 계보는 기술의 발전을 충실히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 자격 요건을 충족한 기술 발전만 기록한다. 어떤 기술은 장부 밖에서 이미 아주 멀리 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장부는 자격 있는 사람이 그것을 되풀이하고서야, 그 기술이 거기 도달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회전을 누가 발명했느냐는 질문에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두 답이 있다. ‘발명’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식 올림픽 참고 자료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경기 방식의 공을 알렉세예프와 바리시니코프에게 돌린다. 반면 미국 코치들의 기억에서는 올드필드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 방법을 널리 알리고 초기에 직접 보여 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두 이야기가 전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같은 주장도 아니다. 공식 기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발명하는 일과, 아주 멀리 던질 수 있지만 기록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을 발명하는 일은 애초에 그 자격 경계에 의해 둘로 나뉘어 있다.

이 때문에 누가 최초의 발명자인가 하는 문제도 겉보기보다 복잡해진다. 보통 무엇을 발명했다고 하면 맨 처음 그것을 해낸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자격 경계가 있는 구축 안에서는 발명이 두 가지로 갈린다. 맨 처음 해낸 것과, 해냈다고 맨 처음 인정받은 것. 올드필드는 전자에 속할 수 있고, 바리시니코프는 후자에 속한다. 역사가 누구를 기억하느냐는 어느 의미의 발명을 말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공식 기록은 자연히 후자를 향한다. 장부에 들어온 것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제로 일어난 일에 더 가까이 붙어 있는 기억은 전자를 남겨 둔다. 두 기억 모두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자격 경계의 서로 다른 편에 서 있을 뿐이다.

정상급 선수들은 회전으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날 정상급 남자 선수들만 보면 인상은 뚜렷하다. 다들 회전 쪽으로 가고 있다.

기술별로 분류한 자료도 그 인상을 뒷받침한다. 살리네로와 델 코소의 세계선수권 자료에서는 남자 선수들의 회전 사용 비율이 대회를 거듭하며 급격히 높아졌다. 2003년 파리에서는 열 명 중 일곱 명이 글라이드를 썼지만, 2019년 도하에서는 열두 명 중 한 명도 쓰지 않았다. 하타세 등의 연구는 주요 대회 우승자들을 보았다. 2000년대에는 우승 64건 중 37건이 회전이었고, 2011년 이후에는 64건 중 52건이었다. 2021년의 지역별 상위 8명 표본에서는 48명 중 46명이 회전을 썼다.

숫자만 보면 하나로 모여 가는 과정 같다. 회전이 글라이드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종목도 마침내 승부가 나려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연구들에서 나온 결론은 정반대였다.

살리네로와 델 코소는 글라이드의 비율이 급락했다고 기록하면서도 결론은 분명히 했다. 기존의 역학 분석은 회전만 써야 한다고 정당화할 만큼 뚜렷한 우위를 보여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정상급 선수들이 회전으로 향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회전이 역학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입증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선수들의 선택과 과학의 결론은 여기서 갈라진다.

이 갈라짐이 이번 글의 핵심이다. 잠시 멈추어 볼 필요가 있다.

점점 더 많은 정상급 선수가 어떤 기술을 택하면, 보통은 그 기술이 더 좋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선수야말로 최적의 기술을 고를 유인이 가장 큰 사람들이다. 모두 회전으로 간다면 회전이 더 낫다는 뜻 아닌가. 자연스러운 추론 같지만 구멍이 하나 있다. 선수가 어떤 기술을 고르는 데에는 절대적인 우열과 무관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가르치기 쉬워서, 코치들이 더 익숙해서, 훈련 체계가 더 잘 갖춰져 있어서. 또는 주변의 정상급 선수가 다 쓰다 보니 하나의 흐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용 비율이 올라간다는 사실은 이 이유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를 기록한다. 기술 자체의 우열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분은 포환던지기 밖에서도 쓸모가 많다. 어떤 것이 널리 쓰인다는 것과 그것이 옳다는 것은 나누어 물어야 한다. 널리 쓰이는 것은 늘 옳아 보인다. 옳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쓰겠느냐고 묻게 되니까. 하지만 널리 퍼지는 이유는 옳음과 무관할 수 있다. 전파가 빠르거나 배우기 쉽거나,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따라갈 수도 있다. 유행을 옳음의 증거로 삼는 것은 흔하면서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오류다. 포환던지기는 이 오류를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마침 두 기술이 실제로 어떤 성적을 내는지 측정한 사람들이 있었고, 점점 더 널리 쓰이는 쪽이 성적에서는 실제로 이기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기술의 역학적 성능을 재 보자, 결과는 어느 한쪽의 압승이 아니었다.

하나의 공식으로 접히지 않는 종목

2009년 세계선수권 남자 포환던지기를 역학적으로 비교한 자료가 있다. 이 글에서 가장 단단한 증거다.

글라이드 선수들의 평균 릴리스 속도는 초속 13.73m로, 회전 선수들의 초속 13.90m보다 낮았다. 포환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손을 떠나는 순간의 속도다. 이 항목에서는 회전이 앞섰다.

그런데 평균 거리는 글라이드 쪽이 조금 더 길었다. 글라이드는 21.34m, 회전은 21.18m였다.

더 느리게 손을 떠났는데 더 멀리 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더 큰 릴리스 각도와 더 높은 릴리스 지점이 보완해 주었다. 같은 연구에서 기록한 릴리스 높이 차이는 최대 0.29m에 달했다. 글라이드 집단 쪽이 높았다.

이 숫자들을 함께 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포환던지기 성적을 결정하는 요소는 셋이다. 릴리스 속도, 릴리스 각도, 릴리스 높이. 회전은 속도에서 앞서고, 글라이드는 각도와 높이에서 앞선다. 서로 강한 부분이 다르고, 그 장점들이 다른 부분의 부족함을 메워 최종 거리는 거의 같아진다.

이 종목이 하나의 공식으로 접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누구에게나 최적인 조합이 하나 있다면 정상급 선수들은 결국 모두 그 조합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면 두 기술 중 하나는 세 요소 모두에서 다른 하나에 뒤처지고, 끝내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요소에서 앞서는 기술이 없다. 회전은 각도와 높이의 손실을 대가로 속도를 얻고, 글라이드는 각도와 높이로 속도의 부족을 메운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내주는 관계다.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는 관계가 아니다.

이 맞교환과 압도의 차이가 비수렴을 이해하는 열쇠다. 두 기술이 압도 관계에 있다면, 곧 어느 한쪽이 성적을 결정하는 모든 요소에서 다른 쪽보다 적어도 뒤지지 않는다면, 열세인 기술은 언젠가 밀려난다. 수렴이 일어난다. 반면 맞교환 관계라면, 곧 양쪽 모두 어떤 요소에서는 앞서고 다른 요소에서는 손해를 본다면, 두 기술은 오래 공존한다. 전체적으로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환던지기의 두 기술은 정확히 이 맞교환 관계에 있다. 회전이 속도에서 얻은 이점은 각도와 높이의 불리함에 상쇄되고, 반대쪽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계는 비수렴이 자라는 바탕이다. 두 방법이 저마다 잘하는 영역을 지닌 한,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밀어낼 수 없다.

2017년 세계선수권 역학 분석은 체형만으로 간단한 법칙을 세우는 일이 왜 위험한지도 보여 준다. 코바치는 키가 1.81m인데도 대회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2.22m의 릴리스 높이를 만들어 냈다. 키의 122%다. 릴리스 각도도 39.9도로 가장 큰 축에 속했다. 반면 그 분석에서 언급된 최장신 선수는 키 대비 릴리스 높이도, 각도도 더 낮았다. 체격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체격과 기술 선택이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연구 문헌은 이 문제에서 갈라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갈라짐을 이 글은 기록하려 한다.

회전을 지지하는 쪽에는 가토 등의 연구가 있다. 이들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 국제 수준 남자 선수들의 성적 176건을 분석했다. 회전 선수들의 최고 성적 평균과 시즌 최고 성적 평균이 모두 더 높았다. 최근 국제 수준 남자 선수들이 더 높은 성적을 내는 데에는 회전 기술이 더 우수하다는 결론이었다.

수렴에 반대하는 쪽에는 살리네로와 델 코소가 있다. 기존의 동역학 및 운동학 분석은 회전이 글라이드보다 명확히 우월하다는 결과를 보여 주지 못했고, 정상급 선수들은 어느 기술로든 비슷한 투척 거리를 낼 수 있다고 논증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토의 바로 그 자료가 다른 방향에서는 글라이드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각 라운드 성적을 시즌 최고 성적과 견준 평균 유지율은 글라이드가 97.31%, 회전이 96.42%로 글라이드 쪽이 유의하게 높았다. 연구진은 이를 각 라운드 사이에서 안정된 투척 동작을 더 잘 유지한 결과로 해석했다. 한편 대회 최고 성적이 시즌 최고 성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파울 비율에도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회전이 더 낫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쓰인 자료가 동시에 글라이드의 안정성이 더 낫다는 것도 입증한 셈이다. 기술 변동성을 따로 살핀 연구들도 안정성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기술 동작의 변동성이 작을수록 투척 거리가 더 긴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회전 선수가 가득한 시대에도 일부 코치가 여전히 글라이드를 중시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것들을 함께 놓았을 때 나오는 결론은 회전의 승리도, 글라이드의 승리도 아니다. 두 기술은 저마다 장점이 있고 저마다 치르는 대가가 있다. 그 장점과 대가가 대체로 서로를 상쇄하므로,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눌러 버리지 못한다.

코치들에게도 하나의 정답은 없다

두 기술이 성적에서 비긴다면 코치는 눈앞의 한 선수에게 어떤 기술을 골라 줄까. 답은 이렇다. 모두에게 통하는 방법은 없다.

기술 선택은 주로 체형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동료심사를 거친 근거로 확고히 입증되지 않았다. 신체적 특성이 크게 다른 선수들도 회전 기술을 성공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요즘의 일부 코칭 자료는 어떤 체형과 근력 수준의 선수든 회전을 쓸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동시에 코치들의 경험에는 강한 경향도 있다. 키가 크고, 지렛대처럼 작용하는 팔다리가 길고, 정적인 힘이 강한 선수는 글라이드에 잘 맞으며, 리듬감과 민첩성이 좋은 선수는 회전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문헌은 여기서 하나로 모이는 과학적 법칙을 보여 주지 못한다.

실제 훈련에서 가장 흔한 지도 순서는 이렇다. 초보자는 제자리 던지기부터 시작한다. 더 단순하고 안정시키기 쉬운 글라이드를 먼저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다음 선수가 타고난 리듬감과 운동 능력을 살피고, 일부 선수는 회전으로 옮겨 간다. 코치들이 흔히 택하는 경로이지, 누구나 따라야 하는 교리는 아니다.

이 경향 속에는 앞선 글과 통하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글라이드를 먼저 가르치는 까닭은 더 쉽게 안정되기 때문이다. 배면뛰기가 엎드려뛰기를 대체할 때 보았던 ‘배우기 쉬움’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결론은 정반대다. 높이뛰기에서는 배우기 쉬운 배면뛰기가 끝내 엎드려뛰기를 밀어냈다. 포환던지기에서는 안정시키기 쉬운 글라이드가 회전을 밀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상급 무대에서는 회전이 늘고 있다.

똑같은 배우기 쉬움의 논리가 왜 두 종목에서 반대 결과를 낳을까. 높이뛰기에서는 높이 하나가 전부다. 더 배우기 쉬운 기술이 성능에서도 뒤지지 않으면 전면적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포환던지기의 두 기술은 성적에서 비기고, 저마다 장점이 있다. 그래서 배우기 쉬움은 초보자가 무엇부터 익힐지를 정할 뿐, 정상급 선수가 끝에 가서 무엇을 쓸지는 정하지 못한다. 글라이드로 시작한 초보자가 나중에 회전에 필요한 리듬감을 드러내면 회전으로 옮겨 간다. 여기서 배우기 쉬움은 입구일 뿐, 종착지가 아니다.

이 대조는 더 일반적인 사실을 말해 준다. 같은 요소도 어떤 구조 안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을 한다. 높이뛰기에서 배우기 쉬움은 결정적이다. 기술 사이에 우열이 있으므로, 배우기 쉬운 쪽이 성능에서도 뒤처지지 않기만 하면 전면적으로 이긴다. 포환던지기에서 배우기 쉬움은 과도기적인 요소다. 두 기술이 맞교환 관계에 있으므로 초보자의 출발은 돕지만 정상급 선수의 최종 선택을 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배우기 쉬움이 중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뭉뚱그려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수렴하는 구조 안에 놓이는지, 수렴하지 않는 구조 안에 놓이는지를 보아야 한다. 앞에서는 종착지이고 뒤에서는 출발점일 뿐이다. 한 요소가 갖는 무게는 그 요소가 놓인 구조가 정한다.

그래서 포환던지기에는 모든 선수가 회전을 해야 한다거나 키 큰 선수는 모두 글라이드를 해야 한다는 식의 코칭 합의가 없다. 오늘날 주류의 입장은 조건을 더 따진다. 그 선수에게 가장 좋은 릴리스를 반복해서 만들어 줄 기술을 고르라는 것이다. 지도에 쓸 수 있는 시간, 리듬, 힘의 특성, 실수를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주 정직한 입장이다. 보편적인 답은 없고, 답은 구체적인 사람에 달려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이 구축이 닫힐 수 없는 자리다.

크라우저가 두 기술 사이에 다시 틈을 내다

오늘날 최고의 포환던지기 선수 크라우저가 이 문제를 한층 더 밀고 나갔다. 2023년 언론과 코치들이 ‘크라우저 슬라이드(Crouser Slide)’라고 부르기 시작한 기술 변화 때문이다.

공개된 보도는 이를 회전의 목적은 유지하면서 서클을 가로지르는 경로를 바꾼 방식으로 설명한다. 뒤쪽 기준선과 완전히 평행하게 서서 시작하는 대신 약 60도의 각도에서 출발해 더 곧장 건너간다는 것이다. 크라우저 자신은 정통 회전으로 이미 정상을 차지한 뒤, 거기서 조금 더 거리를 얻으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공개된 설명의 요지는 회전을 버리고 글라이드로 갈아탔다는 것이 아니다. 더 직접적인 경로와 힘을 쓰는 자세에 들어갈 더 좋은 타이밍을 얻기 위해, 진입 동작을 혼합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는 반드시 분명히 해 둘 점이 있다. 크라우저나 그의 코치가 발표한 공식 기술 논문 중 ‘크라우저 슬라이드’라는 말을 정식 역학 범주로 표준화한 것은 없다. 공개적인 논의에서 이 말은 확립된 과학적 분류라기보다 코치와 언론이 붙인 이름에 가깝다. 어떤 설명은 글라이드라 부르고, 어떤 설명은 개선된 회전 스타트라 부른다.

그러므로 크라우저 슬라이드를 제3의 기술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글라이드와 회전 사이에 다시 틈을 낸 무언가에 더 가깝다. 온전히 이쪽 것도, 온전히 저쪽 것도 아니다. 심지어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지조차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층위는 오히려 이 글의 주제를 강화한다. 두 기술이 어느 한 최적의 기술로 이미 수렴했다면, 지금 최고의 선수는 그 최적의 기술을 극한까지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두 기술 사이에 새 틈을 낼 이유가 없다. 크라우저의 시도는 이 종목의 가장 높은 곳에서도 최적의 경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충분히 성숙한 두 기술의 중간지대를 여전히 탐색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회전으로 이미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 더 나은 길을 찾고 있다. 그 사실 자체가 가장 좋은 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탐색이 왜 끝나지 않는가에 관한 뜻도 한 겹 더 있다. 최적의 기술을 이미 찾았다면 모두가 거기에 다가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굳이 새 길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런데 기존 기술로 이미 세계 정상에 선 크라우저는, 성숙한 두 기술 사이에서 여전히 새 길을 찾는다.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기존 기술들이 아직 그 상한에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종목 최고의 선수가 계속 탐색한다는 것보다 그 종목의 형태가 아직 굳지 않았음을 더 강하게 알리는 신호는 없다. 언젠가 모든 정상급 선수가 같은 기술을 쓰고 세부만 다듬는 날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이 종목이 정말 수렴한 것이다. 포환던지기는 아직 그날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 구축이 크라우저 슬라이드에 보인 반응은 글라이드와 회전에 보였던 반응과 같다. 아무 반응도 없다. 크라우저 슬라이드가 새로운 기술인지, 더 우수한지, 따로 분류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 투척이 적법한지, 반칙이 없는지, 포환이 유효 구역에 떨어졌는지만 따진다. 어떤 경로로 던졌는지, 그 경로의 이름은 무엇인지, 다른 경로보다 무엇이 나은지는 일절 묻지 않는다.

규칙이 입을 열면 갈래는 생기지 않는다

다른 투척 종목과 나란히 놓으면 포환던지기의 비수렴이 어디에서 오는지 더 분명해진다.

원반던지기의 공식 지도 자료는 약 한 바퀴 반을 도는 회전 투척을 설명한다. 글라이드 대 회전처럼 정상급 무대에 오래 남은 두 갈래는 없다.

해머던지기의 공식 지도 자료 역시 회전을 말한다. 세 바퀴에서 네 바퀴를 돈다. 규칙이나 공식 종목 지도 자료에도 서로 다른 기술 계열이 오랫동안 맞서 온 비슷한 구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창던지기는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해머던지기와 모두 다르다. 규칙이 적극적으로 기술을 제한한다. 세계육상연맹 기술 규칙은 창이 손을 떠나기 전에 선수가 몸을 완전히 돌려 투척 한계선인 원호에 등을 향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

이 규칙 하나가 포환던지기에서처럼 회전과 직선으로 갈라지는 구조의 출현을 곧바로 가로막는다.

이 글이 도달하려는 지점이므로 끝까지 풀어 보자. 창던지기에서도 원래는 회전하는 투척법이 발전할 수 있었다. 포환던지기처럼 몸을 돌려 가속 경로를 길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규칙은 투척 방향으로 등을 돌리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한다. 어떤 회전 투척법이든 투척 방향으로 등을 향하는 순간을 반드시 거친다. 그러므로 규칙이 입을 여는 순간 회전이라는 갈래는 생겨날 수 없게 된다. 창던지기의 기술이 큰 틀에서 언제나 한 방향인 것은 직선 투척이 최적이라고 입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방법을 규칙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창던지기와 포환던지기를 함께 보자.

포환던지기 규칙은 기술 앞에서 침묵한다. 글라이드를 쓸지 회전을 쓸지 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기술이 모두 적법하고, 모두 존재하며, 저마다 장점을 지닌 채 반세기가 넘도록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창던지기 규칙은 기술 앞에서 입을 열었다. 투척 방향으로 등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회전이라는 갈래는 시작부터 잘렸다. 창던지기에는 비수렴의 문제가 없다. 애초에 갈라지는 것부터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종목을 함께 보면 규칙과 기술에 관한 일반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기술이 하나로 수렴할지는 부분적으로 규칙이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규칙이 침묵하면 기술은 제 논리를 따라간다. 보편적으로 최적인 방법이 있다면 높이뛰기처럼 그쪽으로 수렴하고, 없다면 포환던지기처럼 계속 갈라진다. 반면 규칙이 입을 열면 결과를 곧바로 결정한다. 창던지기처럼 어떤 기술의 갈래를 가능성 자체에서 지워 버린다.

이 대목은 앞선 글과 이번 글을 이어 붙인다. 두 글 모두 규칙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다. 앞선 글에서는 규칙이 침묵한 덕에 배면뛰기가 마침내 엎드려뛰기를 대체했다. 그 뒤에서 물질적 조건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폼 매트가 보급되었고, 부드러운 매트의 시대에는 배면뛰기가 확실히 배우기 쉽고 퍼지기도 쉬웠다. 이번 글에서는 규칙의 침묵 속에 글라이드와 회전이 줄곧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 뒤에는 모두가 모여들 보편적인 최적해가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침묵인데 결과는 다르다. 침묵은 다른 무언가에 결정권을 넘길 뿐이고, 그 다른 무언가가 두 종목에서 서로 달랐다.

규칙의 침묵을 여기서 조금 더 온전하게 말할 수 있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다. 결정권을 넘겨주는 행위다. 규칙이 기술에 관해 침묵할 때, 사실은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이 일은 내가 관여하지 않겠다. 다른 힘이 결정하라. 그런데 그 다른 힘이 무엇인지는 규칙이 통제하지 않는다. 높이뛰기에서는 물질적 조건과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의 논리였다. 둘이 함께 수렴을 이끌었다. 포환던지기에서는 역학적 맞교환 관계였다. 그것이 비수렴을 낳았다. 규칙의 침묵은 두 곳에서 같지만, 넘겨진 결정권은 서로 다른 힘의 손에 들어갔다. 그래서 반대 결과가 나왔다. 침묵 자체가 수렴 여부를 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정할지를 정할 뿐이다.

심판이 없는 질문

이 글의 실마리들을 모아 보자.

포환던지기의 두 기술은 반세기가 넘도록 공존해 왔다. 글라이드는 1952년의 오브라이언에게서, 회전은 1970년대의 바리시니코프와 올드필드에게서 이어졌다. 앞서 본 2016년 리우 올림픽 결승에서도 두 기술은 같은 무대에 섰고, 그 공존은 오늘까지 계속된다. 이것은 하나로 모여들며 곧 승부를 가릴 과정이 아니다. 반세기 넘게 지속된 안정적인 공존이다.

그리고 그 반세기가 넘는 동안, 어느 공식 기구도 어떤 기술이 더 우수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질문을 딱 이 범위로 좁혀 보자. 어느 공식 기구든 어떤 포환던지기 기술이 더 낫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은 없다. 세계육상연맹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 그에 준하는 기구의 문서에서 그런 선언을 찾을 수 없다. 공식 문서가 규정하는 것은 적법성과 안전이지 우열이 아니다. 이 구축의 종목 소개는 글라이드 또는 회전을 쓴다고 설명하고, 기술 규칙은 회전 기술 사용자에게 반칙과 우발적 접촉의 적용을 명확히 해 줄 뿐이다.

이 점이 이번 글의 핵심이며, 연작 전체와 이어 놓고 보아야 한다.

앞선 글들에서 이 구축은 줄곧 판정했다. 어느 성적을 인정할지는 규칙에 기대어, 누가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자격 경계에 기대어, 어느 성적에 몇 점을 줄지는 점수표에 기대어 판정했다. 매번 근거가 있었다. 규칙 한 묶음, 표 한 장, 선 하나. 끊임없이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글라이드와 회전 중 어느 쪽이 더 우수하냐는 질문 앞에서는 판정하지 않았다. 판정할 근거도 없다. 회전이 글라이드보다 얼마나 나은지 계산할 표가 없다. 두 기술은 하나의 척도 위에 찍힌 두 눈금이 아니라, 비슷한 종점에 닿는 서로 다른 두 경로이기 때문이다. 판정할 필요도 없다. 이 종목의 규칙은 포환이 멀리 날아갈 것을 요구할 뿐, 어느 기술로 던져야 하는지는 요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여기서는 앞에 없던 것이 나타난다. 앞선 글들의 잔여항은 이 구축의 판정으로 장부 밖에 놓인 것이거나, 구축이 명확히 판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 잔여항은 이 구축이 애초에 판정하려 들지도 않고, 판정할 능력도 없는 질문이다. 어느 기술이 더 우수하냐는 질문은 장부 밖으로 배제된 것도 아니고, 장부의 계산이 맞지 않는 경우도 아니다. 처음부터 이 구축의 판정 범위에 들어 있지 않다. 이 구축은 성적을 관할한다. 성적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관할하지 않는다.

이 글의 뜻이 가장 압축된 문장이므로 조금 풀어 보자. 이 구축은 결과를 잰다. 과정을 재지 않는다. 포환이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는 측정하지만, 어떻게 던져졌는지는 측정하지 않는다. 손을 떠날 때의 자세, 서클을 가로지르는 경로, 몸을 돌리는 방식은 과정에 속하고, 과정은 장부에 들어가지 않는다. 장부에는 칸이 하나뿐이다. 거리를 적는 칸. 따라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결과가 있다. 오직 과정에만 관계하고 결과를 바꾸지 않는 차이는 이 구축이 기록할 수도, 판정할 수도 없다. 글라이드와 회전의 차이가 바로 과정의 차이다. 서로 다른 두 길이 비슷한 거리로 이어진다. 이 구축은 그 거리는 보지만 두 길의 차이는 보지 못하고, 어느 길이 더 옳은지는 더더욱 말하지 못한다. 그 측정은 정확히 결과에서 멈춘다. 과정은 통째로 시야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 판정하지 않음이 정확히 이 구축의 경계 하나를 드러낸다. 구축이 원하는 것은 수렴이다. 하나의 최적해, 어느 한 가지를 유일한 기준으로 세우는 일이다. 성적에서는 그렇게 한다. 한 종목에는 세계기록 계보가 하나뿐이고, 가장 큰 숫자가 기록이다. 그러나 기술에서는 그럴 수 없다. 최적의 기술이 존재하지 않고, 두 기술이 성적에서 비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기술을 나란히 둘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인정하지도 못하고, 둘을 하나로 합칠 방법도 없다.

이것이 이번 글에서 드러나는 구축의 닫힐 수 없음이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이 닫히지 못한 것은 담으려는 것이 너무 크거나, 너무 많거나, 서로 맞지 않아서였다. 이번에는 수렴시키려는 것에 애초부터 향해 갈 유일한 답이 없어서다. 글라이드와 회전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똑같이 유효한 두 길이다. 구축은 똑같이 유효한 두 길 가운데 유일하게 옳은 하나를 고를 수 없다. 그 유일하게 옳은 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우의 그 결승으로 돌아가자.

크라우저는 회전으로 금메달을 땄고, 슈토를은 글라이드로 같은 경기장에 섰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기술로 같은 일을 했다. 7.26kg짜리 포환을 가능한 한 멀리 밀어 보내는 일. 어느 쪽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들의 코치들도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수십 년의 과학 연구도 어느 쪽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이 종목의 규칙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를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두 기술은 그렇게 나란히 있다. 각자 던지고, 각자의 거리에 닿는다. 어느 쪽도 다른 쪽보다 더 옳지 않다.

이 구축은 매번 얼마나 멀리 던졌는지 센티미터 단위까지 잴 수 있다. 그러나 포환을 그만큼 멀리 보낸 두 방법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런 옳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