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은 누군가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그 경계를 발견한다
앞공중돌기 멀리뛰기는 금지되었고, 유리섬유 장대는 받아들여졌다. 비슷한 두 혁신이 정반대의 판정을 받았다. 그 둘을 가른 것은 기록이 얼마나 좋아지느냐가 아니라, 종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였다.
이 글의 목차
1 같은 질문에 돌아온 정반대의 답
생김새가 거의 똑같은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멀리뛰기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일이다. 앞공중돌기였다. 이 기술은 금지되었다.
다른 하나는 장대높이뛰기에 새로운 재료가 들어온 일이다. 유리섬유 장대였다. 이 장대는 금지되지 않았고, 그것으로 세운 기록도 모두 남았다.
둘 다 육상에 새로운 것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둘 다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똑같이 논란을 일으켰고, 똑같이 불공정하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런데 이 구축은 둘에게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다. 하나는 막고, 하나는 통과시켰다.
앞의 두 편에서는 규칙의 침묵을 이야기했다. 높이뛰기 규칙은 가로대를 어떻게 넘으라고 정하지 않았다. 배면뛰기는 그 침묵 속으로 파고들어 살아남았다. 포환던지기 규칙은 글라이드로 던질지 회전으로 던질지 정하지 않았다. 두 기술은 그 침묵 속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공존했다. 이번에는 그 침묵이 언제 끝나는지 묻는다. 하나의 구축이 모든 일에 영원히 침묵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입을 열어야 한다. 말하는 쪽과 말하지 않는 쪽을 가르는 선은 어디에 있는가. 정반대의 결말을 맞은 이 두 사건에서 그 선을 찾아보려 한다.
이 둘을 나란히 놓은 것은 아무 사례나 집어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조건은 거의 모두 같은데 결과만 반대다. 그러니 결과를 갈라놓은 원인을 따로 떼어내기가 쉬워진다. 둘 다 육상에서 일어났고, 둘 다 성적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것이었으며, 둘 다 공정성에 대한 의문과 안전에 대한 논의를 불러왔다. 이토록 많은 조건이 같은데 결과가 반대라면, 실제로 작용한 변수는 남아 있는 작은 차이 속에 숨어 있다. 이번 글에서 찾아내려는 것이 바로 그 차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마지막에 한 단어로 모인다. 정의.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이 정반대의 답을 단순히 안전 문제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앞공중돌기를 금지한 이유는 안전이었지만, 그 이유를 뒷받침할 부상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유리섬유 장대를 받아들였을 때도 안전 문제를 금지로 해결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안전은 둘을 가르는 선이 아니다. 진짜 분기점은 다른 곳에 있다. 각각의 새로움이 어떤 선을 넘었는가, 넘지 않았는가. 그 선은 종목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의다.
이렇게 해서 이번 글은 앞의 두 편과 하나의 흐름을 완성한다. 앞에서는 규칙의 침묵을, 여기서는 침묵이 끝나는 지점을 다룬다. 구축이 모든 일에 끝없이 입을 다물 수는 없다. 넘어서는 순간 반드시 말해야 하는 마지막 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선은 규칙을 읽는 것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 정작 규칙은 그 선 너머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침묵을 깨는지 지켜본 다음, 거꾸로 그 선의 위치를 짚어야 한다. 앞공중돌기는 구축의 입을 열게 했고, 유리섬유 장대는 그러지 않았다. 두 사건을 겹쳐놓으면 바로 그 선이 드러난다.
2 실제로 더 멀리 뛸 수 있었던 기술
1974년, 델러미어는 미국 대학 육상의 주요 대회에서 앞공중돌기 멀리뛰기를 선보였다.
1974년 7월 29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따르면, 그는 오스틴에서 열린 전미 대학선수권대회에서 이 기술을 사용했지만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3주 전 태평양 8개 대학 리그 대회에서는 같은 기술로 25피트 6¾인치를 뛰어 올림픽 챔피언 윌리엄스와 동률을 이루었다. 같은 기사는 델러미어가 일반적인 자세로, 뒷바람을 받으며 뛴 최고 성적도 전한다. 25피트 9½인치였다.
그러니 서커스에서나 볼 눈요깃거리가 아니었다. 그는 앞공중돌기로 올림픽 챔피언과 같은 거리를 뛰었다. 실제로 통하는 기술이었다.
이 점부터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사건 전체의 성격이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공중돌기가 멀리 가지도 못하는 곡예였다면, 금지하든 말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축이 위협적이지도 않은 기괴한 묘기 하나를 가볍게 치워버린 일에 무슨 경계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올림픽 챔피언과 같은 기록을 냈고, 아직 한계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여겨졌다. 정말 멀리 뛸 수 있었기에, 그것을 금지하는 일은 구축이 무게를 달아보아야 할 진짜 결정이 되었다. 효과가 큰 것일수록 금지하는 결정도 무거워진다. 앞공중돌기는 마침 효과가 상당한 것이었다.
그 혼자만 쓰던 기술도 아니었다. 같은 1974년 기사는 초기 시범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아이오와대학교의 닐슨을 꼽는다. 그는 몸을 앞으로 돌리는 이 기술로 개인 최고 기록을 22피트 6인치까지 끌어올렸다. 기사에 따르면 닐슨은 라게르크비스트에게 이 기술을 보여주었고, 이후 서독의 슈티를레가 이를 받아들여 7.5미터를 뛰었다. 또 기술에 대한 정보 요청이 몰리는 양상으로 보아, 1974년 중반에는 이미 수백 명이 시험하고 있었으며 그 대부분은 학령기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류 하나를 바로잡아야 한다. 콴드는 앞공중돌기 멀리뛰기를 시도한 선수 명단에 들어가지 않는다.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속 콴드는 포스베리 이전의 높이뛰기 이야기에 등장한다. 몬태나에서 더 일찍 등을 가로대 쪽으로 향해 넘는 동작을 시험했던 높이뛰기 선수다. 이 연작의 두 편 전 글에서 다루었다. 그를 1974년 앞공중돌기 멀리뛰기 이야기에 끼워 넣은 것은 훗날 잘못 전해진 이야기가 거듭 옮겨진 결과다.
이 기술로 왜 더 멀리 뛸 수 있는가에 대해 당시 제시된 근거는 역학적인 것이었다. 그저 보기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1974년 기사는 에커의 논증을 이렇게 정리한다. 앞공중돌기는 앞으로 도는 힘에 맞서지 않고 그 회전을 이용한다. 웅크린 몸은 저항을 줄인다. 더 유리한 각도에서 더 빠르게 도약할 가능성도 있다. 델러미어 자신도 부상에서 회복하고 기술을 다듬으면 28피트까지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잡지에 말했다.
더 큰 주장 하나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앞공중돌기 멀리뛰기라면 30피트를 넘길 가능성이 높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돌아다닌다. 후대의 논평에서 거듭 언급되지만, 경기에서 증명된 적은 없으므로 부풀려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개설과 대중적인 물리학 설명에서도 30피트의 가능성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과 시뮬레이션 위에 쌓인 추정이지, 기록을 공인받을 수 있는 조건에서 거둔 결과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이 기술로 실제로 아주 멀리 뛸 수 있었고, 올림픽 챔피언과 같은 기록을 낸 적도 있다. 그러나 30피트는 계산으로 예상한 거리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 둘은 자주 뒤섞이므로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기술 하나가 금지되었다는 사실과, 그 기술이 도달했을지도 모를 수준에 대한 추정을 포개면, 구축이 30피트를 돌파할 수 있었던 기술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로 바뀌기 쉽다. 마치 그 30피트가 확실한 성취였는데 금지령이 목을 졸라버린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그런 도약이 일어난 적이 없다. 시뮬레이션과 추정 속에만 있었다. 구축이 금지한 것은 이미 올림픽 챔피언과 같은 기록을 냈고 앞으로도 잠재력이 있어 보이는 기술이었다. 30피트를 뛰었다는 사실을 금지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 금지된 것을 부풀려도, 얕잡아보아도 정확한 역사는 되지 않는다.
3 넘어서는 일이 벌어져야 그어지는 경계
이 기술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금지에 이르는 과정은 이 글의 제목을 그대로 보여준다.
먼저 규칙의 문구를 보자. 문구는 명확하다. 이후 국제육상경기연맹과 세계육상연맹의 규정은 오늘날까지 분명하게 정하고 있다. 멀리뛰기 선수가 도움닫기나 도약 동작 중 어떤 형태로든 공중돌기를 하면 실패로 판정한다. 현행 세계육상연맹 기술규칙에도 이 내용이 있으며, 이전 국제육상경기연맹의 문구와 뚜렷한 연속성을 갖는다.
1974년에는 이미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규칙에도 같은 취지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선수가 착지 구역에 닿기 전, 시기 도중 어떤 형태로든 공중돌기를 하는 경우다. 그러므로 저작권 연도가 1974년인 주요 규정집에 공중돌기 금지가 이미 명문화되어 있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1974년 10월 5일자 《애슬레틱스 위클리》는 로마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총회가 기술위원회의 결론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회의는 이 동시대 보도로 확인할 수 있지만, 원래의 결의문과 회의록은 현재 확보한 자료에서 찾을 수 없다.
기록 문서의 이런 빈자리 역시 이 연작에 거듭 나타나는 문제다. 금지 규정이 있었다는 것, 1974년 무렵 명문화되었다는 것, 이후 규정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동시대 보도는 어느 회의였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원래의 결의문과 회의록,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오간 논의는 여전히 현재 확보한 자료에 없다. 앞선 글들에서 찾을 수 없었던 회의록, 신청서, 결론을 끌어낸 과정과 같은 종류의 빈자리다. 구축은 결론을 남겼다. 규정집에 적힌 금지 조항이다. 하지만 그 과정, 금지를 결정하던 논의는 현재 확보한 자료에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후대 사람들은 금지했다는 사실은 볼 수 있어도, 어떻게 금지하기로 했는지는 볼 수 없다.
이제 그 금지가 언제 등장했는지 보자.
앞공중돌기 멀리뛰기가 큰 대회에 등장한 해는 1974년이다. 그것을 금지하는 규칙이 명문화된 해도 1974년이다. 두 시점이 거의 겹친다.
여기가 이 글의 핵심이다. 1974년 이전 멀리뛰기 규칙에는 공중돌기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었다. 왜 없었을까. 이런 실험이 시작되기 전에는 멀리뛰기를 하면서 몸을 한 바퀴 뒤집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규칙은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일을 굳이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델러미어와 그 수백 명이 공중돌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경계가 명시적인 성문 규정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선을 먼저 그어놓고 누가 와서 부딪치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부딪쳐오는 순간, 서둘러 선을 그었다.
두 편 전 글에서 다룬 높이뛰기와는 정확히 거울처럼 마주 보는 장면이다.
배면뛰기는 높이뛰기 규칙의 침묵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을 막았을 조항이 1936년에 삭제된 뒤, 규칙은 등을 가로대 쪽으로 향해 넘는 동작에 대해 침묵했다. 배면뛰기는 그 침묵 속에서 살아남았다. 마침 푹신한 매트라는 물질적 조건이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앞공중돌기도 멀리뛰기 규칙의 침묵 속으로 파고들었다. 1974년 이전 멀리뛰기 규칙은 공중돌기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말이 반대였다. 규칙은 침묵을 이어가지 않았다. 곧바로 입을 열어 막 고개를 내민 기술을 금지했다.
똑같이 규칙의 침묵 속으로 들어갔는데, 배면뛰기는 물질적 조건이 통과시켰고 앞공중돌기는 규칙이 따라잡았다. 무엇이 달랐을까. 배면뛰기는 침묵 속으로 들어갈 때 구축을 놀라게 하지 않았다. 푹신한 매트가 필요했고, 매트는 서서히 보급되었다. 배면뛰기도 조용히 자라났다. 다 자랐을 때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앞공중돌기는 달랐다.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수백 명이 쓰고 있었고, 올림픽 챔피언과 같은 기록을 냈고, 30피트를 넘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너무 눈에 띄었다. 구축이 받아들일지 말지를 당장 결정해야 할 만큼 눈에 띄었다.
그래서 구축이 입을 열었다. 입을 여는 순간, 이전에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던 경계가 선명한 규정으로 그어졌다.
여기서 눈에 띈다는 것이 구축의 작동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볼 수 있다. 새로운 것이 규칙의 침묵 속으로 파고들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어느 정도는 얼마나 눈에 띄느냐에 달려 있다. 조용히 자라나 다 자랐을 무렵 이미 현실이 된 것은 구축이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금지하려면 이미 얻어놓은 수많은 기록과 굳어진 습관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자리를 잡기 전에 눌러놓을 시간이 있다. 똑같이 침묵을 파고들어도 빠르냐 느리냐가 운명을 가른다. 배면뛰기는 느렸기에 위험한 시기를 견뎌냈다. 앞공중돌기는 빨랐기에 구축이 가장 경계하는 순간과 맞부딪쳤다. 이것은 어느 기술이 더 나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기술이 더 소리 없이 자라났는가의 문제다.
4 금지는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금지의 이유는 안전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떠받칠 증거의 자리는 비어 있다.
당시 공식적인 반대 이유는 분명 안전 문제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좀 더 개념적인 반대도 있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따르면 국제육상경기연맹 기술위원들은 이 기술이 선수의 목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기존 동작과 너무나 달라서 전통적인 멀리뛰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서로 다른 두 이유다. 하나로 합쳐서는 안 된다.
이 두 이유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는 안전이다. 목을 다칠까 봐 걱정한다. 둘째는 안전이 아니다. 동작이 너무 달라서 멀리뛰기 같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선수가 다치느냐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것도 여전히 멀리뛰기라고 할 수 있느냐를 묻고 있다. 후대의 설명은 흔히 두 이유를 ‘안전 때문에 금지되었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서 두 번째를 버린다. 그런데 이 글에서 찾으려는 경계선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은 바로 그 두 번째 이유다.
이제 안전이라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보자.
금지 결정에 첨부된 당시의 부상 자료, 의학적 부록, 수치로 위험을 분석한 연구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197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 벌어진 논쟁은 거의 모두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수가 몸을 웅크리는 타이밍을 놓치면 어떻게 되는가. 발목이 버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목을 다치면 어떻게 되는가. 반면 에커와 워싱턴주립대학교의 보조 코치 슬론은 이 기술이 특별히 위험하다는 주장을 분명히 부정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자체적인 부상 통계는 없었다.
그러니까 안전을 이유로 내린 금지인데, 어느 쪽에도 데이터가 없었다. 위험하다는 쪽은 부상 통계를 내놓지 못했고, 위험하지 않다는 쪽도 부상 통계를 내놓지 못했다. 안전을 둘러싼 논쟁 전체가 양쪽의 가정 위에 서 있었다. 숫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 대목은 앞선 글들과 연결해서 볼 만하다. 이 구축은 성적에 관해서는 지극히 엄격하다. 어떤 성적이 공식 기록에 들어가려면 정확한 계시, 정확한 거리 측정, 규정에 맞는 풍속, 인증된 용구가 필요하다. 숫자에 대한 요구가 가혹할 만큼 높다. 그런데 기술 하나를 금지할 때는 아무 숫자도 내놓지 않았다. 남에게 숫자를 요구하는 구축이 정작 자기 결정을 내릴 때는 숫자 하나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비대칭 자체에 의미가 있다. 구축이 숫자를 요구하는 정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기록을 공인할 때는 극도로 높은 정밀도를 요구한다. 그것이 핵심 업무이며 권위가 나오는 곳이므로 모호함을 용납할 수 없다. 기술을 금지할 때는 숫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측정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측정에는 숫자가 필요하지만 판단에는 필요하지 않다. 판단에 필요한 것은 이유다. 그 이유가 한낱 불안일지라도 그렇다. 따라서 같은 구축이 기록에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기술에서는 느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구축에게 두 행동은 모순이 아니다. 애초에 서로 다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금지가 반드시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앞공중돌기가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고, 금지하는 것이 옳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그 결정이 증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너무나 낯선 것에 대한 불안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불안의 진짜 내용은 안전이라는 첫 번째 이유에 있지 않다. 두 번째 이유에 있다. 너무 다르다. 멀리뛰기 같지 않다.
5 더 솔직한 이유
너무 다르다. 전통적인 멀리뛰기가 아닐 수도 있다.
이 말이 더 솔직한 이유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 글이 찾는 경계선이 있다.
멀리뛰기 선수가 달려와 발을 구른다.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앞으로 돌리고 모래밭에 내려앉는다. 뛴 거리를 멀리뛰기 규칙대로 잰다. 규정에 맞고 유효하다. 그런데 기술위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멀리뛰기 같지 않다고 느낀다. 왜 같지 않을까. 사람들이 함께 이해해온 멀리뛰기는 달려와 도약한 사람이 공중에서 몸을 어느 정도 뻗은 자세를 유지하다 착지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 이해 속에는 공중돌기가 들어 있지 않다.
여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나타난다. 규정집에 적힌 선이 아니다. 규칙은 발구름판과 착지 구역, 측정 방식과 풍속을 정했을 뿐이다. 멀리뛰기에서 공중돌기를 하면 안 된다고 쓴 적은 없었다. 1974년 이전에는 굳이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선은 이 종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된 이해 속에 적혀 있었다. 전통 속에, ‘멀리뛰기’라는 말이 떠올리는 장면 속에 적혀 있었다.
앞공중돌기는 그 선을 넘었다. 성문 규정은 어느 것 하나 위반하지 않았고, 거둔 성적도 규정에 완전히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 종목이 무엇인가를 정하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섰다. 그 선을 넘는 일이 벌어지자 구축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공중돌기도 멀리뛰기라고 인정하고 선을 바깥으로 밀어 앞공중돌기를 안에 들이거나, 선을 지키고 앞공중돌기를 바깥에 세워두거나.
구축은 지키는 쪽을 골랐다. 늘 보이지 않던 선을 하나의 성문 규정으로 바꾸었다. 공중돌기 금지.
누군가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구축이 그 경계를 발견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경계는 줄곧 있었다. 사람들이 멀리뛰기를 이해하는 방식 속에 있었다. 다만 아무도 넘지 않는 한 드러나지 않았고, 글로 쓸 필요도, 심지어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앞공중돌기가 나타나고서야 구축은 자신에게 이런 경계가 있음을 처음 알아차렸다. 알아차리게 된 방식은 누군가 그 너머로 건너가는 일이었다. 그전 기술위원들에게 멀리뛰기를 하면서 공중돌기를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그런 문제를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델러미어의 공중돌기가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고, 그 경계도 처음으로 명시적인 선으로 그어졌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구축은 누군가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그 경계를 발견한다’이다. ‘발견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설정하거나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구축은 먼저 자기 경계를 생각해둔 다음 집행할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무언가 부딪쳐오는 그 순간, 여기에 경계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전까지 경계는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공통된 이해 안에는 있었지만 말로 꺼낸 적도, 심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 경계를 넘는 동작이 잠을 깨웠다. 구축은 처음으로 경계를 똑바로 마주하고, 지킬지 물러설지 결정해야 했다. 경계는 늘 있었다. 다만 누군가 넘어설 때가 되어서야 구축 자신의 눈에도 보였다.
두 편 전 글에서 1936년에 배면뛰기를 막았을 조항이 폐지된 것은, 구축이 쓸모없다고 여긴 낡은 규칙을 정리한 일이었다. 그 규칙이 하나의 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기서는 반대다. 구축은 원래 없던 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문을 만들었다. 하나는 무심코 문을 헐어낸 일이고, 하나는 떠밀려 문을 만든 일이다. 둘 다 같은 것을 보여준다. 구축은 자신의 경계가 어디인지 미리 알지 못한다. 누군가 경계에 이를 때가 되어서야, 그곳에 문이 있어야 하는지 없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6 또 다른 새로움에는 규칙이 이미 문을 열어두었다
이제 정반대의 사건을 보자.
장대높이뛰기의 장대는 재료가 몇 차례 바뀌었다. 세계육상연맹 자체의 역사 개설은 다음과 같은 흐름을 제시한다. 기록에 남은 대나무 장대의 최초 사용은 1857년이다. 강철 장대는 1940년대에 도입되었다. 이어 유연한 유리섬유 장대, 그다음 탄소섬유 장대가 현대의 표준이 되었다.
유리섬유 장대가 가져온 변화는 거대했다. 그런데 금지되지 않았고, 그 장대로 세운 기록도 단 하나 지워지지 않았다.
유리섬유 장대로 처음 세계기록을 세우며 돌파구를 연 선수는 1961년의 데이비스였다. 1962년에는 율세스가 뒤따랐다. 1963년이면 이 종목은 유리섬유 장대로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는 일이 일상이 된 상태였다. 같은 해에는 최정상급 선수 대부분이 이미 장대를 바꾸었다.
변화의 크기는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오리건대학교의 한 혁신 연구는 대략 이렇게 정리한다. 대나무 장대 시대인 1899년부터 1944년까지 세계기록은 3피트 9인치 높아졌다. 유리섬유와 관련 고분자 소재 시대의 혁신이 찾아온 뒤에는 1960년 이후 약 4피트 6인치 높아졌다. 어떤 기술 혁명에도 뒤지지 않을 변화였지만, 그 때문에 기록을 새로 시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규칙이 오래전부터 문을 열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장대 재료에 관한 규칙은 유난히 폭이 넓었다. 현행 세계육상연맹 규칙은 장대를 어떤 재료 또는 재료의 조합으로도 만들 수 있고, 길이와 지름도 제한하지 않되, 기본 표면은 매끄러워야 한다고 정한다. 유리섬유 장대높이뛰기를 다룬 1966년의 한 역사 연구도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유리섬유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연맹 자신의 규칙이 이미 어떤 재료, 어떤 길이, 어떤 지름으로든 장대를 만들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 문장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유리섬유 장대를 금지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공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규칙에 들어 있던 ‘어떤 재료로든’이라는 표현이 이미 유리섬유 장대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섬유 장대는 어떤 선도 넘지 않았다. 규칙이 처음부터 선을 충분히 넓게 그어두었다.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재료까지 들어갈 만큼 넓었다.
유리섬유 장대가 등장했을 때도 논란은 있었다. 여기서는 논란과 판정을 구분해야 한다.
논란 쪽을 보면 이렇다. 당시 사람들은 유리섬유 장대를 속임수 같은 잔재주라거나 불공정한 기계적 보조 수단이라고 불렀다. 잡지 지면에서는 이 혁신이 공정한가를 놓고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판정 쪽은 이렇다. 이 용구는 처음부터 열려 있던 장대 규칙 안에 들어갔으므로 계속 허용되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유리섬유 장대 사용자만을 위한 별도의 세계기록 명단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1차 사료는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유리섬유 장대와 앞공중돌기의 차이는 한쪽에는 논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없었다는 데 있지 않다. 둘 다 논란이 있었다. 앞공중돌기는 멀리뛰기의 정의라는 선을 넘었고, 유리섬유 장대는 원래부터 넓게 그어져 있던 장대 규칙의 선 안에 들어갔다는 것이 차이다. 하나는 경계를 넘었고, 하나는 넘지 않았다. 그 경계의 폭도 새로움이 나타나기 전부터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장대 쪽에는 오래전부터 폭넓게 쓰인 규정이 있었고, 멀리뛰기 쪽에는 사람들이 공유해온 이해가 있었다.
놓치기 쉬운 대목이 하나 있다. 유리섬유 장대가 경계를 넘지 않은 것은 앞공중돌기보다 온건하거나 얌전하게 규칙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다. 유리섬유 장대가 장대높이뛰기 성적을 바꾼 폭은 앞공중돌기가 멀리뛰기를 바꾼 폭보다 더 컸을 수도 있다. 기록을 4피트 6인치나 높였다.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었다. 경계를 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그것이 마주한 선을 구축이 예전에 너무 넓게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규칙에 장대는 반드시 대나무로 만들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면 유리섬유 장대는 곧바로 경계를 넘었을 것이다. 앞공중돌기처럼 금지되거나, 창던지기처럼 기록을 새로 시작하게 했을 것이다. 그 운명은 혁신 자체가 얼마나 급진적인가에 달려 있지 않았다. 혁신이 마주한 선을 과거에 어디 그어두었는가에 달려 있었다.
7 사례들 속에서 자라난 원칙
이 두 사건에 몇 가지 다른 사례를 더해 한데 놓으면 하나의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 다만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원칙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언제 기록을 새로 시작하고 언제 기존 기록을 유지하는지 한곳에서 설명한 국제육상경기연맹이나 세계육상연맹의 성문 총칙은 찾을 수 없다. 세계육상연맹의 기록 규정은 규칙에 맞게 치러진 경기의 성적을 어떻게 공인하는지 설명하며, 의문이 있는 사안은 연맹 지도부나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모든 기술 변화에 적용할 보편적인 철학적 판정 기준까지 마련해놓지는 않았다.
따라서 아래 원칙은 실제로 내려진 결정들에서 귀납한 것이다. 그 결정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증거에 기대어 가장 잘 종합해본 설명이다. 추론이지, 어딘가에서 찾아낸 교리가 아니다.
원칙은 이렇다.
구축이 허용되는 용구 자체를 다시 정의하여 종목의 적법성 조건을 바꿀 때에는 기록을 재설정하고 새로운 기록 체계를 만든다. 1986년 남자 창 규격의 재설계가 그랬고, 1991년 톱니 꼬리 창을 금지하며 기록을 되돌린 일도 그랬다.
혁신이 이미 허용된 용구의 정의 안에 들어가거나, 규칙이 앞으로 적용할 인증 요건만 추가하는 경우에는 기록을 재설정하지 않는다. 유리섬유 장대, 합성 트랙, 출발 정보 시스템이 그런 경우다.
창던지기는 좀 더 자세히 볼 만하다. 기록 재설정의 가장 선명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세계육상연맹 자체의 역사 개설에 따르면, 남자 창은 1986년에 다시 설계되었다. 창이 평평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늘어 유효한 시기인지 논란이 생겼고, 혼이 104.80미터를 던진 뒤로는 경기장 안쪽 공간에 위험할 수 있는 비거리도 문제가 되었다. 연맹은 1986년의 재설계로 새로운 기록 체계가 필요해졌다고 명시한다. 재설정의 폭은 거대했다. 남자 기록은 사실상 구형 용구의 104.80미터에서 새 용구의 85.74미터로 옮겨갔다. 19.06미터가 낮아졌다. 앞으로의 공인 요건을 조금 손본 정도가 아니었다. 새로운 용구 규격에 새로운 기록부를 붙인 일이었다.
창던지기에는 기록을 되돌린 두 번째 사례도 있다. 제조사들이 꼬리에 톱니를 더해 항력을 바꾸자, 줄어들었던 비거리가 일부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런 창은 1991년에 금지되었고, 그것으로 세운 최고 성적도 취소되었다. 기록은 1986년 이후의 일반적인 규격 창으로 세운 최고 성적으로 돌아갔다.
이제 창던지기와 장대높이뛰기를 나란히 보자. 창던지기가 1986년에 기록을 재설정한 것은 창이라는 용구 자체를 다시 정의하고 허용 규격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장대높이뛰기가 기록을 재설정하지 않은 것은 장대를 다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재료든 쓸 수 있다는 규칙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 똑같이 용구가 달라졌는데 하나는 기록을 새로 시작하고 하나는 이어갔다. 경계선은 구축이 그 용구의 적법한 정의를 건드렸는가에 있다.
이 경계선이 낳는 아주 실제적인 결과를 짚어둘 필요가 있다. 새로운 용구가 기록 재설정을 부르는지는 성적을 얼마나 높여주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예전 규칙의 정의가 우연히 얼마나 넓게 쓰였느냐에 달려 있다. 창 규칙은 구체적이다. 무게중심의 위치와 무게의 분포를 정한다. 이 값들을 바꾸면 새로운 용구가 되고, 기록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장대 규칙은 포괄적이다. 어떤 재료든 된다고만 한다. 그러니 재료가 어떻게 바뀌든 정의 안에 머물고, 기록을 재설정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 같은 기술 발전이라도 촘촘히 쓰인 규칙 위에 내려앉으면 기록 재설정을 부르고, 넓게 쓰인 규칙 위에 내려앉으면 그러지 않는다. 기록을 다시 시작하느냐 마느냐의 절반은, 옛날 규칙을 만든 사람이 말을 얼마나 세세하게 했는지, 얼마나 넓게 했는지에 달려 있다.
이 원칙은 합성 트랙과 스타팅 블록도 설명해준다. 합성 트랙이 석탄재 트랙을 대체한 것은 경기장의 거대한 변화였다. 그런데도 기록은 재설정되지 않았다. 세계육상연맹이 종목을 더 좁은 종류의 경기장에 묶어 새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은 인증된 경기장에서 세워야 한다는 요구를 했을 뿐이다. 앞으로 적용할 공인 조건이지, 옛 기록을 소급해서 폐기하는 조치가 아니다.
8 한 번도 글로 쓰지 않았던 선
이제 이 글의 이야기를 모아보자.
구축은 같은 종류의 질문에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다. 그 둘을 가르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정의였다. 안전이라는 이유를 뒷받침할 증거는 양쪽 모두 비어 있다. 앞공중돌기를 금지할 때 부상 자료가 없었고, 창 규격의 재설계도 부상 통계에 기대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작동한 것은 다른 선이다. 혁신이 종목 스스로의 정의를 넘어섰는가.
앞공중돌기는 멀리뛰기의 정의를 넘어섰다. 너무 달라서 전통적인 멀리뛰기가 아닐 수도 있었기에 금지되었다. 창의 재설계는 허용되는 용구의 정의를 넘어섰다. 104.80미터를 날아간 창과 85.74미터를 날아간 창은 서로 다른 용구였으므로 기록을 재설정했다. 반면 유리섬유 장대는 장대의 정의를 넘지 않았다. 어떤 재료든 된다는 규칙이 원래부터 그것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흡수되었고, 기록도 남았다. 정의를 넘어가면 다시 쓰고, 정의 안에 들어오면 흡수한다.
하지만 이 원칙 속에는 더 깊은 문제가 숨어 있다. 그 경계들은 대부분 미리 그어둔 것이 아니었다.
멀리뛰기에서 공중돌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선은 1974년 이전에는 명문화된 경계로 존재하지 않았다. 델러미어가 공중돌기를 하자 비로소 그 선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축은 멀리뛰기에 대한 자기 정의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미리 알지 못했다. 누군가 그 선에 다가오고서야 처음으로 거기에 선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제야 선을 그었다. 장대 쪽의 선이 일찍부터 있었던 것도 구축이 유리섬유 장대를 예견했기 때문은 아니다. 정반대다. 옛날 그 선을 너무 넓고 무심하게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재료든’이라고 써버릴 만큼 무심했고, 앞으로 나타날 모든 재료를 자기도 모르게 안에 들여놓을 만큼 넓었다.
그러므로 이 구축의 경계에는 두 가지 존재 방식이 있다. 하나는 장대처럼 오래전에 그어졌고, 나중에 나타난 것들이 부딪치지 못할 만큼 넓은 경계다. 다른 하나는 멀리뛰기처럼 아예 그리지 않은 경계다. 이 종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된 이해 속에 줄곧 숨어 있다가, 누군가 넘어서는 순간 서둘러 선으로 그려진다. 둘 다 구축이 깊이 숙고해서 설계한 경계가 아니다. 넓은 쪽은 무심결에 넓게 그었고, 숨은 쪽은 애초에 그리지도 않았다.
여기서 이번 글의 잔여항이 나온다.
두 편 전 글에서 배면뛰기는 물질적 조건에 막혀 있던 가능성이었다. 물질의 빗장이 풀리자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앞공중돌기는 달랐다. 물질이 막고 있지 않았다. 푹신한 매트는 이미 있었고 모래밭도 있었다. 공중돌기를 해서 모래밭에 내려앉는 일은 물질적으로 가능했다. 앞공중돌기를 가로막은 것은 물질이 아니라, 이 종목이 무엇인가를 정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었다. 그 선은 움직일 수 있었다. 물리 법칙이 아니라 공통된 이해이며 하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구축은 선을 밖으로 밀어 공중돌기도 멀리뛰기라고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리하여 앞공중돌기는 특별한 종류의 잔여항이 되었다. 물질적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도 이미 보여주었는데, 하나의 약속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밖에 남겨진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델러미어의 공중돌기, 수백 명의 학령기 실험자들이 했던 공중돌기, 슈티를레의 7.5미터는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가능했고, 규칙에 맞게 거리를 잰 성적이었다. 그것들이 밖으로 밀려난 것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구축이 그들이 넘어오는 바로 그 순간, 이전에는 한 번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 선을 지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영원히 문밖에 남았다. 이후 앞공중돌기 멀리뛰기는 공식 경기에 다시 나타나지 못했다. 규칙이 금지했기 때문이다. 도달했을지도 모를 28피트, 나아가 누군가 말하던 30피트는 끝내 추정으로만 남았다. 구축은 선 하나를 그으면서, 갈 수도 있었던 길 하나를 통째로 지웠다. 그 길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규칙이 누구에게도 그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에 막힌 이런 잔여항은 앞에서 다룬 종류들과 다르므로 따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판정으로 장부 밖에 놓인 이름은 구축이 적극적으로 배제한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성적의 원인들은 구축이 분리해낼 능력이 없는 것이었다. 판정을 내리지 않는 기술의 우열은 구축이 들어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반면 앞공중돌기는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구축의 능력 범위 안에 있었다. 정의의 선을 조금 밖으로 밀어서 안에 들이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공중돌기도 멀리뛰기라고 인정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래된 이해를 지키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잔여항은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선택의 산물이다. 밖에 남은 이유는 구축이 밖에 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은 정반대일 수도 있었다.
11편에서는 이 문제를 더 따라간다. 혼의 104.80미터는 유효한 역사적 기록이다. 다만 규격이 바뀌면서 옛 규격의 기록 계보에는 새 기록을 더할 수 없게 되었다. 닫힌 것은 특정 조건 아래에서 비교하는 장부이지, 인간의 몸이 같은 거리에 도달할 가능성이 아니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