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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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육상 · 한국어 독립 재구성판
제 03 편 / 전23편

누구에게 기록될 자격이 있는가

아마추어 자격, 짐 소프, 파보 누르미의 이야기는 한 가지를 보여 준다. 기록은 숫자에 문을 열기 전에 먼저 사람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턱의 유래와 효력,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저마다 다른 시간표를 따른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한 문장에 놓인 네 개의 문

1866년, 아마추어 육상 클럽은 회칙에 아마추어의 정의를 적어 넣었다. 당시 널리 쓰이던 문구에 따르면 아마추어란 다음과 같은 신사였다. 공개 경기에 나선 적이 없고, 대중이 내놓은 돈이나 입장료 수입을 위해 경기한 적이 없으며, 평생 어느 시기에도 스포츠를 가르치거나 스포츠 활동을 도와 생계를 꾸린 적이 없는 사람; 또 기능공이나 수공업자, 노동자로 일한 적이 없는 사람.

이 한 문장 안에 문이 네 개 있다.

앞의 세 문은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어떤 경기에 나갔는가, 어떤 돈을 받았는가, 무엇으로 먹고살았는가. 네 번째는 다르다. 네 번째 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 기능공, 수공업자, 노동자. 이 세 단어는 스포츠와 아무 관계가 없다. 직업상의 신분이다. 경기 대가로 한 푼도 받아 본 적 없는 목수라도 이 문장대로라면 들어올 수 없다.

네 개의 문을 한 문장에 놓으면 한 가지 사안의 네 측면처럼 읽힌다. 실은 서로 다른 두 종류다. 앞의 세 문이 다루는 것은 행위다. 행위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증인이 있을 수 있고 장부가 있을 수 있다. 네 번째 문이 다루는 것은 신분이다. 신분은 따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의 일상에 쓰여 있고, 같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안다. 그러니까 이 정의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판정 방식을 한꺼번에 쓴다. 하나는 증거를 대야 하고, 하나는 누구인지만 알아보면 된다. 둘은 나란히 적혀 있고, 그 사이를 세미콜론 하나가 잇는다.

따로 떼어 볼 만한 표현이 하나 더 있다. 평생 어느 시기에도.

현재의 상태를 정한 규정이 아니다. 지나온 삶 전체를 거슬러 덮는다. 스무 살에 먹고살려고 몇 달 복싱을 가르쳤다면 마흔이 되어도 아마추어가 아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아닐 것이다. 이 문에는 출구가 없고, 복귀를 기다리는 기간도 없고, 어떤 형태의 만료도 없다.

눈여겨볼 것은 당시 프로 선수에게는 그와 대칭을 이루는 규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프로 달리기 선수가 몇 년 동안 돈을 받지 않는다고 아마추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는 명문화되어 있었다. 반대편에서도 아마추어가 어떤 경우에 영구적으로 자격을 잃는지 정했을 뿐, 그 밖의 처리 방식을 알려 주는 규정은 없었다. 이 구축에는 한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이 있었다. 들어온 사람을 내쫓을 수는 있지만, 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범주 사이의 이동은 일방통행이다. 그렇게 정해진 범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보면 이 구축의 모양이 드러난다. 판정하려는 대상은 한 번의 경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지금 모습도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력 전부다. 측정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 절차는 벌써 끝나 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기록이라는 구축이 처음 쓴 장부는 신문 한 부였다. 그것이 제일 먼저 배운 일은 장부에 더하는 일이었다. 이번 글은 다른 명부를 다룬다. 그 명부는 장부 앞에 놓여 있다. 성적이 기록표에 오르려면 먼저 누군가 달려서 그 성적을 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달리러 나설 수 있는지는 저 정의가 정한다. 두 책의 분업은 처음부터 그랬다. 뒤의 책은 숫자를 적고, 앞의 책은 사람을 적는다.

2 한 구절을 지운 뒤

1880년, 아마추어 육상 협회가 창설되었다. 세계육상연맹이 스스로 정리한 연혁에 따르면, 협회가 생기면서 기능공과 수공업자, 노동자를 배제하던 구절은 아마추어의 정의에서 빠졌다.

이 사실은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너무도 손쉽게 이어 갈 수 있는 서술 하나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원칙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급을 가르는 문에 불과했다면, 생긴 지 불과 14년 만에 가장 노골적인 구절을 스스로 지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삭제는 실제로 일어났고 시기도 매우 이르다. 게다가 이 종목을 관장하는 기구가 막 관할 범위를 넓혔을 때였다.

범위가 넓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클럽은 자기 회원만 관리하면 되지만, 협회는 전국의 경기를 관리해야 한다. 전국 조직이 세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전부를 문밖에 세워 둔다면, 그 조직이 관할하는 것은 전국의 육상이 아니라 전국의 일부 사람만 하는 육상이다. 참가 신청자 수와 대회의 영향력에 당장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구절을 지운 일을 도덕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운영의 관점에서는 설명이 하나다. 전국을 관할하려는 조직이 극히 일부 사람만 인정할 수는 없다.

지우고 나니 무엇이 남았을까. 1911년에 나온 한 백과사전에 실린 협회의 정의는 이렇다. 아마추어란 상금이나 내깃돈을 얻으려고 경기한 적이 없으며, 어떤 상을 두고도 프로 선수와 함께 또는 맞서 경기한 적이 없으며, 스포츠를 가르치거나 직접 하거나 그 활동을 돕는 일을 생계 수단으로 삼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직업상의 신분을 따지던 조항은 사라졌다. 보수를 금지하는 조항은 남았다. 그 사이에는 자세히 볼 만한 조항 하나가 더 들어와 있다. 프로 선수와 함께 또는 맞서 경기한 적이 없을 것.

이 조항은 그 사람이 돈을 받았다는 말이 아니다. 돈을 받은 사람과 함께 달렸다는 말이다.

일종의 전염 논리다. 자격은 접촉만으로도 사라질 수 있다. 당사자가 직접 무언가를 잘못할 필요도 없다. 어느 시골 대회에서 우연히 프로 달리기 선수와 함께 뛰었다고 하자. 돈을 받은 적도, 누군가를 가르친 적도, 스포츠로 생계를 꾸린 것과 관련된 일도 없다. 그런데 이미 아마추어 신분에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 구축이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결백이 아니라 그 범주의 순도다.

그러므로 이 문은 사실 성질이 바뀌지 않았다. 판정의 근거만 바뀌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보던 데서, 당신이 누구 옆에 있었는지 보는 쪽으로.

이 변화가 낳은 현실적인 결과는 따로 짚을 필요가 있다. 누구인지 판단하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보면 안다. 누구 옆에 있었는지 판단하려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지난 경기 기록을 찾아야 하고, 함께 출전한 사람들이 어떤 신분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정보가 꼭 남아 있으라는 법도 없다. 새 기준은 문구상으로 더 공정해졌지만, 집행하려면 문서에 더 의존해야 했다. 그리하여 한 가지가 정해졌다. 이제부터는 예전처럼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따지는 것보다 그 이력을 찾아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이 선은 뒤에 나올 소프에게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양쪽을 모두 펼쳐 놓아야 한다. 양쪽 모두에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보면 이 제도의 핵심은 계급적 배제다. 1866년의 정의는 세 가지 직업을 대놓고 지목했다. 어떤 연구는 빅토리아 시대의 아마추어리즘 전체를 통제와 배제의 이데올로기로 설명하면서, 그 부상이 노동계급의 참여 확대와 맞물렸다고 지적한다. 같은 시기 조정에도 비슷한 배제 관행이 있었다. 크리켓에서는 신사와 프로 선수가 숙소도 이동편도 따로 썼다. 당시 엘리트 계층이 노동자들에게 압도될 것을 걱정한다고 실제로 밝힌 적도 있다. 드문드문 묻어 있는 계급적 색채가 아니다. 입구를 겨냥한 제도 설계다.

다른 쪽에서 보면 이를 모조리 계급적 배제로 환원하는 것 역시 단순화다. 보수에 대한 반대, 공정한 경쟁, 도박과 공공연한 프로화에 대한 거부는 실제로 존재했다. 배제라는 해석을 내세운 연구자 본인도 그렇게 본다. 그의 주장은 그런 요소들이 배제의 논리 속에 새로 포장되었다는 것이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1880년의 삭제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노골적인 조항은 이후의 체계에 계속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쪽도 전부 맞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이 말이 처음부터 도덕적 주장과 사회적 문턱을 함께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은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다. 어느 하나만 남기려는 사람은 자료와 싸워야 한다.

더 말끔한 설명도 있다. 영국의 아마추어리즘이란 그저 운동을 사랑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자료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처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의가 규정한 것은 사회적 신분과 직업이었다. 윤리나 금전 문제가 아니었다.

3 존재하지 않는 조상

이 구축은 자기 기원을 하나 찾아냈다. 고대 그리스였다.

1910년, 한 고전학자가 그리스의 경기와 제전에 관한 책을 펴냈다. 그는 그 책에서 경기가 한 계급의 독점물이 되었고, 옛 제전은 프로들의 공연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썼다. 1930년에는 고대 세계의 경기를 다룬 책을 다시 냈다. 지나치게 잦은 경기와 프로화는 진정한 아마추어 정신에 치명적이라고 했고, 더 이른 시대의 경기를 순수한 아마추어 경기로 묘사했다. 같은 책에서 프로화가 낳는 가장 큰 해악은 부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후기 그리스와 로마 시대 경기의 전개를 공연, 뇌물, 과도한 전문화, 시민 경기의 붕괴와 연결했다.

모두 그가 직접 쓴 표현이다. 후대의 비판자가 옮겨 전한 말이 아니다.

이 설명을 읽으면 19세기 아마추어리즘의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때 순수한 시대가 있었다. 나중에 돈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타락했다. 아마추어 원칙을 되살리는 것은 그 시대로 돌아가는 일이다.

1984년, 다른 학자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을 출간했다. 제목을 직역하면 『그리스 아마추어 경기의 올림픽 신화』다. 그의 반박에는 네 층위가 있다.

첫째는 개념이다. 고대에는 현대적 의미의 아마추어 이상 자체가 없었다. 고대 올림피아의 우승자들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상품을 놓고 겨루곤 했고, 경기 기량으로 이익을 얻었다. 아마추어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데 필요한 어휘와 이데올로기 또한 없었다.

둘째는 그가 유독 강조한 부분이다. 자신이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증거의 부재가 아니라고 그는 역설했다. 압도적인 반대 증거가 있고, 애초에 아마추어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논증이 약하다. 그래서 이 구별은 그에게 중요했다.

셋째는 경제다. 그리스 선수들은 상당한 보상을 놓고 겨뤘고, 자기 폴리스에서도 실질적인 대가를 받았다. 이 대목은 앞선 글에 나온 솔론의 포상 규정과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넷째는 구조다. 그리스의 경기 제도는 애초에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중심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이 두 범주로는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후의 연구는 가디너 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2020년 무렵 나온 한 종합 검토는 이 분야의 연구 현황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그리스 선수들은 아마추어도 아니었고 프로도 아니었다. 절충안이 아니다. 그 범주 자체를 엉뚱한 곳에 적용했다는 선언이다.

확인할 수 있는 학술 문헌 가운데 1984년 이후 가디너의 논지 전체를 실질적으로 복권한 연구는 없다. 범위가 더 좁은 몇몇 명제는 부분적으로 다시 받아들여졌다. 가령 초기 경기가 어떤 경우에는 분명 귀족적 성격을 띠었다는 것, 화관을 주는 제전과 상금을 주는 제전을 한데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 프로화는 처음부터 한 가지 형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발전했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인 수정이지 총론의 복권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절에서 하려는 말이 분명해진다. 그 말은 폭로가 아니다.

하나의 구축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로 자신을 정당화했다. 1866년에서 1930년 사이 수많은 사람이 그 과거를 진심으로 믿었다. 저 문장들을 쓴 고전학자 자신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이야기를 꾸며 낸 것이 아니다. 당시의 학문적 도구로 고대 자료를 읽었고, 자신이 살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결론을 읽어 냈다. 오늘날 그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겹 더 정리할 것이 있다. 당시 그의 독법이 말이 되었던 데는 고대 자료 자체가 여러 독법을 허용했다는 이유도 있다. 화관 제전에서 주는 것은 정말 화관 하나뿐이었고, 폴리스의 보답은 정말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 문헌에서는 이 두 사실이 같은 대목에 함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대의 순수함을 믿고 싶은 사람이라면 앞부분만 읽고 멈추면 된다. 고의로 무엇을 빠뜨릴 필요조차 없다. 구축이 자기 기원을 찾을 때는 대개 자료를 위조할 필요가 없다. 진짜 자료들 가운데 쓸 만한 것만 고르면 된다.

도움이 되는 것은 다른 사실이다. 그 기원이 뒤집힌 해는 1984년이다. 이 구축에서 가장 노골적인 배제 조항이 삭제된 해는 1880년이다. 이 구축의 정의에서 내용이 완전히 비워진 해는 1981년이다. 그러니까 학계가 마침내 그 조상이 허구임을 밝혔을 때, 규칙은 이미 제풀에 해체된 뒤였다. 해체된 이유는 참과 거짓에 아무 관계도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 규칙이 효력을 발휘한 100년 동안 근거가 거짓이라는 사실은 단 하루도 그 효력을 약하게 만들지 못했다. 이 규칙 때문에 자격을 잃은 사람이 잃은 것은 온전히 현실의 것이었다. 규칙의 기원이 허구인지 아닌지는 그 문밖에 선 사람에게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았다.

이 대목은 시리즈 내내 되풀이될 것이므로 여기서 분명히 해 두자. 구축이 정당성을 설명하는 이야기와 그 구축이 실제로 발휘하는 효력은 서로 독립된 두 체계다. 이야기는 반박해 무너뜨릴 수 있다. 대개 학자들이 책에서 하는 일이다. 효력은 다른 구축만이 해제할 수 있다. 대개 다른 이해관계가 회의실에서 하는 일이다. 둘은 각자의 시간표를 따르며 서로를 기다리지 않는다. 1984년에 그 책이 나왔을 때, 책이 허물려던 것은 다른 이유로 이미 무너진 지 3년이 지난 뒤였다.

4 30일

1912년 스톡홀름에서 소프는 5종경기와 10종경기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 대회의 공식 문서에는 오늘 읽어도 무척 구체적인 규칙이 하나 있다. 참가자의 자격에 관한 이의는 서면으로 제기해야 하며, 시상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소프가 돈을 받고 야구를 했다는 사실이 처음 공개적으로 보도된 것은 1913년 1월의 한 지역 신문이었다. 스톡홀름의 시상식으로부터 이미 6개월가량이 지난 뒤였다.

저 규칙을 문구 그대로 따르면 기한은 한참 전에 지났다.

나중에 복권을 추진한 사람들은 이 대목을 거듭 내세웠다. 다만 이것이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논쟁거리다. 규칙은 실제로 있었고, 기한도 실제로 있었으며, 그 기한을 넘긴 것도 사실이다. 논쟁의 대상은 당시 미국 아마추어 체육연맹과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이 사안을 그 규칙에 따른 정식 이의 제기로 다뤘는가 하는 점이다. 두 기구가 늦게 들어온 이의가 아니라 더 일반적인 자격 및 시상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했다면, 30일 규정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30일이 강력한 논거라는 점이다. 당시 사람들이 그것만으로 결론이 난다고 널리 인정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의견 차이에는 기록해 둘 만한 구조가 있다. 절차 규정이 실제로 제약이 되려면 사안을 처리하는 기구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바로 그 규정에서 말하는 일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기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의 제기가 아니라 자격 심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규칙을 적용할 사안이 아니라 더 일반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명목이 바뀌면 기한은 허공에 뜬다. 절차적 보호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보호받는 쪽의 손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 야구 경력을 맨 처음 들춰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이제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처음 기사를 낸 신문이 어디인지는 확실하다. 후대의 대중적 설명은 흔히 야구계와 관련된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만, 그 지목을 확증할 당대의 1차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대목은 미결인 채로 남겨 두어야 한다.

처리는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먼저 미국 아마추어 체육연맹이 그의 아마추어 신분을 취소했다. 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두 개의 우승 타이틀을 취소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소프 자신이 돈을 받고 야구를 했음을 인정하는 편지를 썼다. 이 사건이 전환점을 맞은 데에는 그가 직접 인정한 사실도 한몫했다. 제삼자의 고발만으로 방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 편지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그의 코치가 주고받은 내부 문서가 어디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미국 아마추어 체육연맹과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그때 주고받은 문서 전체가 어디 있는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소재가 확인되고 목록까지 작성된 것은 칼라일 인디언 산업학교 시절의 학생 기록철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되어 있으며, 편지와 금전 거래 내역, 사진이 들어 있다.

여기 나타난 모양은 앞선 글에서 만난 빈칸과 같다. 모든 사람에게 증빙을 남기라고 요구하는 제도가 정작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자기 증빙의 행방을 모른다. 이번 빈칸은 사람에게 더 가깝다. 남은 것은 학교가 한 학생에 대해 작성한 행정 기록이다. 남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변호하려고 쓴 편지다.

누군가 일부러 없앴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학교의 학생 기록은 계속 작동하는 행정 체계에 속한다. 체계는 문서를 분류해 보관하고, 수십 년씩 간직한다. 그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한 사안을 두고 주고받은 문서는 그런 지속적인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한 사안의 처리가 끝나면 그 일을 위해 모였던 사람들도 흩어진다. 문서는 일을 맡았던 사람을 따라 개인 서랍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사라진다. 남느냐 사라지느냐는 중요도와 상관없다. 대신 분류하고 보관해 줄 기계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이 더 쉽게 사라질 수 있다. 중요한 일은 임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도 바로잡아 두자. 소프가 스톡홀름 현장에서 타이틀을 박탈당한 것은 아니다. 그 일은 대회가 끝난 지 몇 달 뒤에 일어났다. 신문 지면에서, 두 위원회의 회의에서 일어났다.

5 본명을 썼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가 훗날 펴낸 역사 설명에 이 글의 중심을 이루는 한 문장이 있다.

그 시절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야구를 하며 돈을 버는 대학 운동선수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가명을 썼다. 소프는 본명을 썼다. 그래서 과거가 드러났을 때 남들보다 처벌하기 쉬운 사람이 되었다.

우선 이 문장의 뜻을 끝까지 밀고 가 보자.

규칙이 금지한 것은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 일이었다. 가명으로 돈을 받고 야구를 해도 같은 규칙을 어긴 것이다. 거기에 고의적인 은폐가 한 겹 더해진다. 조문에 따른 위반의 무게를 따지자면 가명을 쓴 쪽이 더 무거워야 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다. 가명을 쓴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고, 본명을 쓴 사람은 올림픽 우승 두 개를 취소당했다.

집행이 느슨해서가 아니다. 이 장치는 이렇게밖에 작동할 수 없었다.

구축이 위반을 처리하려면 먼저 위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볼 수 있는지는 일이 어떤 형태로 종이에 남아 있는가에 달려 있다. 본명으로 뛴 경기는 팀 명단에 남고, 급여 명세에 남고, 지역 신문의 경기 기사에 남는다. 누구든 지난 신문을 뒤지면 확인할 수 있다. 가명으로 뛴 경기는 똑같은 종이 위에 다른 사람으로 남는다. 구축이 후자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치가 실제로 골라내는 것은 규칙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두 집단은 대체로 겹친다.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감추기 시작하는 순간 둘은 갈라진다. 그러면 구축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감추지 않은 사람을 처리한다. 손에 쥔 것이 그 사람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오독을 막아야 한다. 가명을 쓴 사람들이 더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말도, 소프가 처벌받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보이는 것을 따라 작동하는 장치는 통계적으로 솔직한 사람을 처리하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무도 편견을 품지 않아도 이 쏠림은 나타난다. 장치의 구조적 성질이지 집행자의 인품 문제가 아니다. 이를 어느 한 번의 불공정한 집행 탓으로 돌리면 오히려 진짜 문제를 놓치게 된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 경기는 열릴 때부터 종이 위에 실릴 준비를 하고 있다.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하는 일이 경기 현장의 배치에 이미 들어가 있다. 거기서 기록될 수 있음은 장부에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여기서는 장부에서 쫓겨나는 조건이다. 같은 성질이 두 방향으로 작용한다.

한 층 더 내려가 보자. 기록될 수 있다는 성질이 양쪽 모두에서 작용하는 까닭은 실은 같은 필요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구축은 대조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구축의 모든 권위가 나오는 곳이다. 앞선 글에서 표준으로 선택된 신문, 시계 세 개, 트랙 안쪽 경계에서 12인치 떨어진 측정선이 모두 그 일을 했다. 하지만 대조와 확인은 본래 흔적이 남은 부분에만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구축이 확인 능력을 더 충실히 갖출수록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들과의 거리는 좁아지기는커녕 더 벌어진다.

이제부터는 이 절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다.

이 사건에서 인종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 자료는 한 가지 해석을 뒷받침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뒷받침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 해석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이렇다. 소프는 사크 앤드 폭스 부족 출신 원주민 선수였다. 칼라일 인디언 산업학교에서 교육받았고, 그 학교는 광범위한 동화 정책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훗날 원주민의 시각에서 나온 논평은 아마추어 체제 자체가 엘리트주의적이었으며, 소프에 대한 처벌이 원주민 스타 한 사람을 가리는 역할도 했다고 보았다. 19세기 아마추어리즘이 계급적 위계 속의 배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그 규칙이 원주민 선수에게 적용될 때 인종적 성격을 띠며 집행될 가능성을 남긴다.

그러나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에서는 당시 미국 아마추어 체육연맹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그가 원주민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한 원문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인종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는 논증은 주로 제도적 맥락, 선택적 집행에 대한 의문, 후대의 해석적 연구에 기대고 있다. 인종주의적 내용이 명백히 담긴 판정 문서가 발견되어 그것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두 해석은 증거의 형태가 다르다. 규칙이 기계적으로 적용되었다는 해석에는 조문과 사실, 본인의 인정이 있다. 인종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해석에는 맥락과 구조, 후대의 분석이 있다. 그 문서는 없다.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모형은 하나 있다. 결론은 아니다. 세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그 규칙은 분명히 존재했고 보수를 받는 야구에 분명히 적용될 수 있었다. 집행의 시점과 선택성은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동화 정책과 배제적 체제 속에 놓인 원주민 스타는 다른 사람들이 때때로 누리던 참작과 관용, 절차적 보호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세 문장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동시에 참일 수 있다는 것이 어느 하나라도 입증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피해야 할 것은 두 가지 단일 원인론이다. 이 일을 인종차별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중립적인 규칙 적용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전자는 존재하지 않는 문서 한 장을 필요로 한다. 후자는 가명을 쓴 사람들이 왜 모두 무사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손대지 않은 채 남겨 두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당시 가명을 썼던 사람들이 누구이며 몇 명인지,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 명단이 없다. 아무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정의상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비교 집단의 전체 모습은 끝내 볼 수 없다. 선택적 집행이 얼마나 심했는지 추산하려 해도 언제나 분모가 빠진다. 이는 이 사건을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에 한계를 긋는다. 더 힘 있게 들리는 결론을 내놓는 것보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편이 정직하다.

6 아마추어란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1932년 4월,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아마추어 규정 위반을 이유로 누르미의 출전 자격을 정지했다. 그는 결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당시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스웨덴 출신 수장이었다.

이 사례를 여기에 놓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소프의 일이 그 유형에서 유일한 사례는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그 수십 년 동안 아마추어 자격을 문제 삼아 제재하는 일은 흔했다. 당대에 가장 유명한 선수들도 대상에 들어 있었다.

둘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누르미의 출전 정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두고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핀란드 쪽의 설명과 후대의 민족주의적 서술은 이를 흔히 스웨덴인들이 주도한 보복에 가까운 일로 묘사한다. 반면 다른 연구들은, 핀란드 자체의 기념 서술까지 포함해, 더 깊은 문제는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당시 프로화의 침투를 막는 방어선을 강화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이 의견 차이의 가치는 어느 쪽이 옳은가에 있지 않다. 보편적인 사실 하나를 드러낸다는 데 있다. 아마추어 규칙의 집행은 조문상 정당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곧잘 논쟁의 대상이 된다. 한 규칙이 정당하게 적용되는 것과, 왜 하필 이번에 적용되었는지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둘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누르미 사건에는 소프 사건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견주어 볼 만하다. 소프는 성적을 낸 뒤 소급해서 처분을 받았다. 빼앗긴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었다. 누르미는 경기 전에 가로막혔다. 빼앗긴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앞의 손실은 잴 수 있다. 두 개의 우승이 어디 있는지는 분명하다. 뒤의 손실은 잴 수 없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어떤 성적을 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경우에 구축이 한 일의 형식은 같다. 하지만 남은 잔여항 가운데 하나에는 모양이 있고, 다른 하나에는 모양조차 없다.

이제 그 말 자체의 결말이다.

1976년에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스포츠 정신과 연결된 구식 아마추어 관념을 여전히 쓰고 있었다. 동시에 각국 협회가 선수의 소득 손실과 제한된 범위의 여비를 보전해 주는 것은 이미 허용하고 있었다.

1981년, 총회는 정의를 바꾸었다. 새 정의는 이랬다. 아마추어란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자격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 앞에서는 잠시 멈춰야 한다.

이 문장 이전의 아마추어는 내용이 있는 말이었다. 그 내용은 고대 그리스에서 올 수도, 도덕적 주장들에서 올 수도, 어떤 계급의 생활 방식에서 올 수도 있었다. 어디에서 왔든 이 조직의 바깥에서 왔다. 바로 그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조직에 물을 수 있었다. 당신들의 규칙은 아마추어 정신에 맞는가.

이 문장 이후에는 그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추어란 우리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 규칙이 아마추어 정신에 맞는가 하는 질문은 우리 규칙이 우리 규칙에 맞는가 하는 질문이 된다.

여기서 닫힘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 질문을 더는 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다만 당시 사람들이 이 새 정의를 자기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일로 이해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실무적인 정리에 가까웠다. 옛 정의는 실제 관행과 너무 멀어져 집행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누구나 피해 가는 기준을 유지하느니 집행할 수 있는 기준으로 고치자는 것이다. 운영의 관점에서는 책임 있는 처사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책임 있게 처리하는 일과 자기 안으로 닫히는 일이 하필 같은 동작이었다는 점이다. 구축은 월권으로 닫힘을 완성하지 않는다. 흔히 일을 제대로 정리하면서 완성한다.

1982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신탁기금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연맹의 통제 아래 돈이 선수에게 흘러갈 수 있게 하면서도 이 종목이 프로화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게 했다. 어떤 연구는 이를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넘어가는 완만한 이행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초가 되면 육상은 명백히 프로화되어 있었다. 제도의 언어가 바뀌는 속도는 그보다 느렸지만.

아마추어 조항이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규칙에서 완전히 사라진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두고는 널리 합의된 날짜는 없다. 확실한 것은 1976년에서 1982년 사이 그 내용이 비워진 과정과 1990년대 초의 프로화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여러 층위의 정관과 규칙에서 아마추어라는 마지막 표현이 각각 언제 삭제되었는가다. 이 과정은 하나가 아니다. 정의의 변화, 보상 장치, 상업적 확장, 프로화가 널리 받아들여지는 일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다.

그러므로 통용되는 설명도 고쳐야 한다. 육상의 아마추어 시대는 누군가 처음 돈을 받는 순간 끝난 것이 아니다. 돈을 지급하는 통로가 먼저 연맹의 관리 아래 들어왔고, 프로화는 그 뒤에야 공개적으로 인정되었다. 구축은 무언가를 포기하기에 앞서 먼저 그것을 넘겨받아 관리했다.

7 빼지 않고 바로잡는 방법

1982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복권 조치를 승인했다. 1983년 1월에는 기념 메달이 소프의 유족에게 전달되었다.

조치의 내용은 이랬다. 복제한 금메달을 주고 그를 기록에 다시 올린다. 단독 우승자가 아니라 공동 우승자로.

공동 우승이라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나중에 승격되었던 두 선수의 순위는 건드리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비에와 스웨덴의 비슬란데르는 그대로 남았다.

여기서는 잘못을 바로잡으려 할 때 현실의 저항이 몇 겹이나 나타나는지 뚜렷이 보인다. 첫 겹은 그 두 이름이다. 두 사람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것을 거두려면 별도의 이유가 필요하다. 둘째 겹은 각국의 올림픽위원회다. 두 금메달은 두 나라의 기록 속에 70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셋째 겹은 기록 자체다. 70년간 그 성적표를 인용한 모든 책과 명부, 통계가 함께 부정확해진다. 항목 하나를 바꾼다고 그 항목 하나만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

더없이 선명한 사례다. 마침 앞선 글의 결말과 이어진다.

그 구축이 1913년에 받은 권한은 심의와 등록이었다. 줄을 그어 지우는 일에 관해서는 권한을 부여한 문서가 침묵했다. 70년 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마주한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소프를 다시 넣으려면 이미 적어 넣은 다른 두 사람을 빼내야 한다. 그런데 장부는 더할 줄만 안다.

그래서 범주 하나를 발명했다. 공동 우승자라는 말 덕분에 정정을 온전히 덧셈만으로 끝낼 수 있었다. 소프를 더하되 아무도 빼지 않는다. 그 뒤로 1912년의 두 종목에는 각각 우승자가 두 명씩 생겼다. 당시 경기 방식에는 존재하지 않던 결과였다.

이 방법은 장부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 일 자체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한 사람의 성적을 취소했다가 복구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사람과 우승을 반씩 나누는 것으로 인정했다. 산술로는 말이 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맞지 않는다. 그해 두 종목에는 공동 1위가 없었다. 그가 이겼고 다른 사람들은 졌다. 공동 우승자라는 범주는 장부가 자기 작업상의 제약 때문에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경기 자체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 새 범주가 만들어지는 순간 실재하는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후의 성적표에는 두 종목 모두 정말로 우승자가 두 명씩 있다. 후대의 사람이 검색해서 얻는 것은 그 결과다. 어떻게 생겨난 결과인지는 보지 못한다. 구축이 자기 기술적 난제를 풀려고 임시로 발명한 명목도 다른 항목과 정확히 같은 형식으로 장부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원래 있던 것이고 무엇이 덧댄 조각인지 더는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첫 글에 나온, 나중에 소급해 인정된 우승자 명단도 그렇게 시간 자체가 되었다.

공정하게 말해 둘 것도 있다. 당시에는 이 방법이 정말 유일하게 통과될 수 있는 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두 사람의 타이틀을 취소하려면 다른 두 나라의 올림픽위원회가 걸리고, 70년 된 기록이 걸리고, 당사자 두 명에게 아무 잘못도 없었다는 사실이 걸린다. 덧셈은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이었다.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은 흔히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가능하다고 해서 말끔한 것은 아니다.

8 바깥에서 온 권한

2022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소프를 1912년 스톡홀름 5종경기와 10종경기의 유일한 금메달리스트로 등재하겠다고 발표했다.

110년.

이번 조치와 1983년 조치의 차이는 단어 하나다. 그런데 그 단어가 전부다. 1983년에는 복권했지만 독점적인 자리는 주지 않았다. 그는 공동 우승자였다. 2022년에 돌려준 것은 그 독점성이다. 그는 유일한 우승자였다. 다시 말해 1983년에는 덧셈을 했고, 2022년에는 이 구축이 거의 40년 전에는 할 줄 몰랐던 일을 했다.

뺄셈은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진전에는 이 일을 꾸준히 추진해 온 한 단체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한 사람의 지원이 기여했다. 관련 보도에는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스웨덴 올림픽위원회와 비슬란데르의 생존 유족은 비슬란데르가 그 금메달을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소프만이 정당한 우승자라고 줄곧 생각했음을 확인했다. 노르웨이 측도 비에에 관해 그에 상응하는 확인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뺄셈이 가능해진 까닭은 구축에 나중에 말소 권한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장부의 두 항목에 적힌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은 무효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정확히 말해야 한다. 그들의 의사 표명이 어떤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구속을 받아 기록을 바꾼 것도 아니다. 그 확인이 한 일은 마지막 저항을 걷어 내는 것이었다. 이제 우승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쪽이 애초에 그 금메달을 받아들인 적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 현 상태를 고수할 때 내세울 이유가 사라진다. 구축에 필요한 것은 권한 부여가 아니라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은 기다려야 한다.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이 일은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다.

구축은 그들을 끌어내릴 수 없었다. 그들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이 일의 모양은 분명히 볼 필요가 있다. 시리즈 전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더하기와 빼기는 처음부터 난도가 같지 않았다. 더할 증거는 현장에 있고, 뺄 증거는 벌써 흩어져 있다. 이 비대칭은 시간의 방향에서 온다. 여기서는 예외가 나타났다. 예외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 일의 바깥에서 누군가 줄곧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슬란데르가 그 금메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명부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한 가족 안에서 110년 동안 전해지다가, 필요할 때 꺼내졌다.

구축은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없다. 이는 그 구축의 직무 유기가 아니라 그 짜임새다. 어떤 사실을 확정할 때 사용한 절차로 동시에 그것을 뒤집을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그 절차로 확정한 어떤 사실도 성립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뒤집는 힘은 바깥에서 와야 한다. 그런데 바깥에서 올 수 있는지는 누군가 기억하고 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는지, 그 사람이 입을 열 의향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셋 다 우연이다.

맨 처음의 정의로 돌아가 보자.

1866년의 그 문장이 판정하려 한 것은 한 사람이었다. 지나온 삶 전체를 덮었고 출구도 만료도 없었다. 1913년의 절차는 두 개의 성적 뒤에서 한 사람을 빼냈다. 그 성적 자체가 가짜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달리고 뛰어오르고 던진 것은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이름만 뽑혀 나갔다. 앞선 글에서 남겨 둔 이야기가 정확히 여기에 닿는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첫 10종경기 세계기록은 1922년에야 승인되었다. 그런데 당시의 점수표로 따지면 소프가 1912년에 올린 총점은 1926년이 되어서야 누군가 넘어섰다. 십수 년 동안 가장 높은 숫자는 명단에 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숫자는 남고 사람은 빠졌다.

그런데 그 문은 나중에 스스로 허물어졌다. 1880년에 한 구절을 지웠고, 1981년에 내용을 전부 비웠으며, 1990년대 초에는 그 말이 더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았다. 2022년 그 이름이 유일한 우승자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가 어겼다고 지목되었던 규칙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 시리즈에서는 앞으로도 이 순서를 거듭 만나게 될 것이다. 구축이 먼저 작동하고 대가를 남긴다. 그 대가가 인정되는 것은 대개 구축 자체가 바뀌거나 사라진 다음이다. 인정이 가능해지는 데는 그 규칙을 더는 지켜 내야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그렇다고 그 인정의 무게가 줄어들거나 그것이 위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바로잡는 일이 늘 이렇게 늦게 오는지 설명해 준다. 규칙이 아직 돌아가는 동안 그것이 틀렸음을 인정하려면, 그 비용은 지금 그 규칙을 쓰는 사람들이 치러야 한다.

자는 아직 제대로 재지 못한다. 그런데도 계속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