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논지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풀어 쓴 글이다. 중국어 원문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바꾸어 읽을 수 있다.
2화가 시작되면 그는 다시 시계탑 앞에 서 있다.
같은 봄, 신입 부원을 모집하는 같은 게시판이다.
이번에는 테니스 동아리 대신 영화 동아리를 고른다.
3화가 되면 또 그 앞에 선다. 이번에도 다른 곳을 고른다.
그다음은 4화. 그리고 5화.
그가 골랐던 길들
작품이 그를 보내 보는 길은 대략 이렇다.
영화 동아리 ‘미소기’.
소프트볼 동아리 ‘혼와카’.
스승 모시기. 대학에 8년째 다니면서 스승을 자처하는 히구치의 제자가 되는 길이다.
사이클링 동호회.
비밀 조직 ‘후쿠네코 반점’.
도서관 경찰.
영어 회화 동아리.
그 밖에도 더 있다.
서로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 모임들이다. 창작을 하는 곳도 있고 운동을 하는 곳도 있다. 순전히 장난질을 하는 곳도 있고, 대체 뭘 하는 조직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황당한 곳도 있다.
대학 생활이 1학년 때 어느 동아리에 가입했는가에 달려 있다면, 이 길들은 저마다 전혀 다른 인생으로 이어져야 한다.
작품이 억지로 만들어 낸 가설도 아니다. 주인공 자신의 이론이다. 갈림길에서 한 선택이 앞으로의 여러 해를 결정한다는 생각.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믿는 이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두 같은 길이다
결과는 이렇다.
어느 길에서든 그는 오즈를 만난다.
어느 길에서든 시모가모 유스이소의 그 넉 장 반짜리 방에 들어가 산다.
어느 길에서든 아카시와 제대로 말을 나누지 못한다.
어느 길에서든 그 2년은 똑같이 공허하게 지나간다.
어느 길의 끝에서든 그는 그 방에 앉아 같은 말을 한다. 그때 다른 길을 골랐더라면.
모든 갈림길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갈림길을 골라도 돌아오는 것은 같은 인생이다.
왜 그런가
이유에 무슨 신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바꾼 변수가 실제로 작용하고 있던 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는 바뀌었다. 그는 바뀌지 않았다.
작품은 이것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화면으로 입증한다.
같은 숏, 같은 구도, 같은 방, 같은 대사, 같은 독백의 리듬을 되풀이한다. 여러 변주가 거의 같은 시작과 비슷한 끝으로 돌아온다. 가운데 내용은 통째로 갈아 끼우지만, 양 끝은 용접이라도 한 듯 고정되어 있다.
관객은 4화쯤 되면 웃기 시작한다. 이번 화가 어떻게 끝날지 벌써 알기 때문이다.
그 웃음 자체가 논증이다.
중요한 것은 이 논증이 대사 한 토막에 실려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은 누구에게도 주인공을 붙들고 ‘문제는 바로 너야’라고 말하게 하지 않는다.
관객이 스스로 알아보게 한다. 4화에 이르면 관객은 이미 주인공보다 먼저 결론을 안다. 주인공은 거기 닿으려면 아직도 다섯, 여섯 갈래 길을 더 돌아야 한다.
그는 매번 무엇을 하는가
각각의 길에서 그가 하는 일을 자세히 보면 같은 행동들이 되풀이된다.
어떤 조직에 들어간다. 이곳이 생각했던 곳과 다르다는 걸 곧 알아차린다. 속으로 흠을 잡기 시작한다.
오즈를 만난다. 자기 일이 풀리지 않는 원인으로 오즈를 지목한다.
아카시를 만난다. 괜찮은 아가씨라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많은 일을 하고, 엄청난 기운을 쏟고, 온갖 황당한 상황에 휘말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그러다 2년이 흐른다. 그는 그 방에 앉아 결론을 내린다. 문제는 처음에 했던 그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결론 덕분에 다음 길에서도 정확히 같은 행동을 한다.
그 결론이 그를 지켜 준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문제는 처음에 했던 그 선택이었다.’ 이 말에는 아주 편리한 성질이 있다.
원인을 과거로 옮겨 놓는다. 그것도 이미 손댈 수 없게 된 지점에 놓는다.
원인이 과거에 있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후회할 수 있을 뿐이다. 후회에는 아무 행동도 필요하지 않다.
원인이 현재에 있으면 지금 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런데 행동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말을 꺼내야 하고, 거절당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그는 매번 앞의 것을 고른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는 이것이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정확한 진단으로 보일 뿐이다.
작품은 그에게 이 일을 일곱 번 여덟 번 시킨다. 그는 매번 확신에 차서 진단한다.
더 중요한 점은 진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매번 새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동아리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고, 다음에는 스승이 너무 믿음직하지 못하고, 그다음에는 조직 자체가 장난질이다.
그는 매번 구체적이고 그럴듯하며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이유를 하나씩 찾아낸다.
그런데 그 이유들을 모두 모아 놓으면, 바로 그 이유들 가운데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님이 드러난다.
어느 길에도 그 사람들은 있다
작품이 이 몇 화 동안 줄곧 펼쳐 놓고 있는데도, 관객이 마지막에 가서야 뒤돌아보며 알아차리는 것이 또 있다.
어느 길에서든 등장하는 사람들이 같다.
오즈. 아카시. 스승 히구치. 하누키. 조가사키. 아이지마.
동아리를 바꾼다고 이 사람들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어느 삶에나 다들 나타나고, 위치와 역할만 달라진다. 이번 화의 오즈는 영화 동아리 부원이고, 다음 화에서는 스승의 제자이며, 그다음에는 후쿠네코 반점 소속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늘 이 사람들이 있었다.
동아리를 바꾸어도 그의 곁에 누가 있는지는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어느 삶에서나 이 사람들을 자신의 ‘장밋빛 대학 생활’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긴다.
아주 간단히 대조해 볼 수 있다. 동아리를 바꾸면 곁에 있는 사람도 달라지는 것이라면, 일곱 번 여덟 번 바꾸는 동안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났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타나는 것은 줄곧 이 몇 사람이다.
그 2년은 정말로 비어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놓아 보자. 평가는 덧붙이지 않겠다.
주인공은 그 2년 동안 실질적으로 쓸모 있는 일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관객이 본 2년은 이렇다. 그는 누군가와 내기를 했고 영화를 만들었다. 전설의 솔을 찾아다녔고 대리 전쟁에 참가했다. 비밀 조직에 휘말렸고 가모강 변에서 누군가와 다퉜다. 황당한 일 하나 때문에 도시 전체를 뛰어다녔으며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쓸모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 말은 맞다.
그런데 ‘실제로 쓸모가 있는가’라는 잣대를 누가 주었는지 작품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줄곧 그 잣대를 쓰게 할 뿐이다.
이 길들이 입증한 것은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는 명제가 아니다. 동아리와 사건은 당연히 생활의 내용을 바꾼다. 다만 다른 과제까지 대신 해 주지는 못한다. 무엇을 자신의 삶으로 인정할 만한 것으로 여길지는 그가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거듭 나타나는 그 사람들이 유난히 중요하다. 그는 줄곧 삶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삶 안에 있었다. 다만 곁에 있던 사람들을 미리 ‘이상적인 삶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칸에 넣어 두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