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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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구의 생명을 거의 전멸시켰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내용과 논지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판본이다. 원문 사이트에서는 중국어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젠트라디군 제118기간함대의 총사령관은 보돌 저(Boddole Zer)다.

그가 지휘하는 것은 제118기간함대다. 모든 젠트라디의 유일한 지배자는 아니다. 작품에 나오는 그의 함대 규모는 함선 수가 수백만에 이른다.

그가 명령 하나를 내린다.

그 명령이 집행된 결과, 지구 표면은 거의 완전히 파괴된다. 후대의 설정에서는 보통 ‘생명체의 약 99퍼센트가 사라졌다’고 정리한다. 극중에서 전쟁이 끝난 뒤 남은 생존자는 극소수다.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가

먼저 동기를 분명히 하자. 이 글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모두 여기에 있다.

그는 브리타이가 데려온 지구인 포로를 보고,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본다.

의문이 생긴다. 이 지구인들이 자신들을 만들어 낸 그 문명은 아닐까.

그래서 요새에 첩자를 보낸다.

첩자들의 보고에 브리타이가 지구 측과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이 더해지자, 그는 판단을 내린다.

그 문명의 문화에 오염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지구 인류와 브리타이의 함대를 함께 지워 버리기로 한다.

죽이려는 대상에는 적만이 아니라 자기 부하도 들어 있다.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브리타이의 함대는 그의 부대이고 그의 휘하 편제이며, 여전히 복무 중인 군대다. 그는 그 함대를 제거 대상 명단에 올렸다.

이미 접촉했다는 이유다.

잔혹함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제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말할 차례다.

이 결정을 ‘잔혹하다’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현존하는 군사 체제를 유지하려는 전략적 계산이기도 하다.

그의 체계 안에서는 충분히 말이 되는 논리다. 어떤 것이 퍼져 나가고, 그것이 퍼진 뒤에는 원래의 형태가 사라진다면, 접촉한 부분을 전부 없애야 한다.

방역의 논리다.

그에게는 ‘문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한 기록이 충분하다. 정찰병 셋은 접촉한 뒤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져온 인형 하나로 병사 한 무리가 달라졌다. 브리타이는 접촉한 뒤 적과 협정을 맺었다.

전염 경로도, 전염원도 분명하다. 잠복기, 발병 양상, 전파 방식까지 관찰 기록이 있다.

오직 전투라는 기능 하나로 수천 년 동안 안정되게 작동해 온 체제, 곧 이 종족의 존재 방식이 그것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패배해서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전투에서 진 적도 없다. 병사들이 하나둘 싸우고 싶어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가 적용하는 것은 오염을 격리하는 논리다. 하지만 ‘접촉한 부분’으로 취급해 없애려는 대상은 병원체가 아니다. 생각하고 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판단은 맞았다

이 대목은 충분히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은 도덕적 비난으로 끝난다.

그의 판단은 한정된 사실의 차원에서는 성립한다.

그것은 실제로 퍼지고 있다. 실제로 접촉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병사가 더는 병사로 살지 않게 만든다. 실제로 이 종족을 더는 이전과 같은 종족이 아니게 만든다.

그는 계산을 틀리지 않았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정말로 그것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문제는 그의 판단이 정확한가에 있지 않다.

그가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에 있다.

그가 지키려는 것

싸우는 것 말고는 삶의 방식이 없는 종족.

가족도, 음악도, 이야기도, 아이도 없다. 전투와 관계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 사람이 생겨나 죽기까지 겪는 일의 전부가 편제에 속하고, 임무를 수행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된 데에는 누군가 무언가를 빼 버린 일이 있었다. 첫 번째 글에서 보았듯, 이들을 만든 문명이 문화와 비군사적 생활을 설계에서 배제했다는 것이 작품의 설정이다.

다시 말해 보돌 저가 필사적으로 지키는 상태 자체가, 누군가 이들을 대신해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 작품도 그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수십억 명을 죽여 가며 지키려는 것은, 그가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고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삶의 틀이다.

그것을 지키는 방식은 처음 그 틀을 만들던 방식과 똑같다. 어느 자리에 앉은 한 사람이 모두를 대신해, 그들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이 글에서는 그 문장을 여기까지만 말한다.

곁들여 하나 적어 두자. 제거 대상 명단의 첫머리에는 자기 부하가 있다. 체제는 자신이 흔들린다고 느낄 때, 대개 바깥의 그것보다 이미 그것과 접촉한 내부 사람들부터 처리한다.

받아들이는 일과 소멸하는 일

그들 모두에게 관계되는 문제가 한 겹 더 있다.

젠트라디 한 사람이 ‘문화’를 받아들일 때 치러야 하는 값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평생 해 온 모든 일이 필요 없는 일이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편제, 수행했던 명령 하나하나, 죽였던 사람 하나하나,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까지 전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자신을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에게 다른 삶을 받아들이는 일은 소멸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미 살아 버린 한평생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다시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받아들이는 쪽은 살아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뿐이다.

작품은 이 점을 잘 다룬다. 거부하는 젠트라디를 어느 누구도 어리석게 보이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들의 거부에 내용을 부여한다. 평생을 헛살았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반응이며, 어느 종족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그 전투

마지막으로 명령이 집행되는 과정을 보자.

궤도에서 공격이 쏟아진다. 지구 표면에 거듭 포격이 가해진다. 작품은 아주 짧게 보여 준다. 도시, 바다, 구름.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알래스카의 지하 지휘부는 전멸한다.

지구 표면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고, 생명체와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사라진다.

인간 쪽의 반격은 이른바 ‘린 민메이 작전’이다. 적 함대 전역에 그녀의 노래를 방송해 혼란을 일으키고, 그 틈을 타 기함으로 돌입한다.

기함이 파괴되고 보돌 저는 죽는다.

이것은 인류의 승리가 아니다

이 글의 끝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인간 문명이 야만적인 종족을 이긴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 쪽도 떳떳하지 않다. 군은 처음부터 계산하고 있었다. 배 안의 민간인 수만 명은 여러 차례 의사결정에서 하나의 조건으로 쓰였다. 지구통합군이 이 배를 어떻게 취급하고, 포기할지 말지를 어떻게 저울질하는가는 그 자체로 이야기의 한 줄기를 이룬다.

마지막 전투가 끝났을 때, 지구에 남은 생존자는 극소수였다.

이 전쟁에서 이긴 쪽은 이 행성 인구의 대부분을 잃었다. 생명 전체의 손실을 나타내는 수치를 인구의 사망 비율과 그대로 같은 통계로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승리는 깔끔하게 묶이는 하나의 ‘인류’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 브리타이 측의 젠트라디는 마크로스와 나란히 싸웠고, 지구는 이미 거의 텅 비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종족의 경계를 넘어, 폐허 속에서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27화는 전쟁 이야기의 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작품은 아홉 화를 더 이어 간다. 카메라는 2년 뒤의 일자리와 관계, 섞여 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구했지만 가수 자신까지 구해 주지는 못할지도 모르는 노래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