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내용과 논지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판본이다. 원문 사이트에서는 중국어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정찰정 한 척에 젠트라디 병사 세 명이 타고 있다.
임무는 저 요새에 접근해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이들은 함내 방송을 수신한다.
미인대회 방송이다.
대체 어떤 광경이었는가
이 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짚어 보자.
요새 안에는 수만 명이 살고 있다. 태양계 외곽의 명왕성 궤도 부근까지 내던져진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언제 공격받아 죽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 할 법한 일을 한다. 내부를 도시로 꾸민다. 가게를 열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행사를 연다.
그 행사 중 하나가 ‘미스 마크로스’라는 미인대회다. 무대와 조명, 진행자와 관객이 있다. 한 소녀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이 행사는 군사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전투력을 보태지도, 지표를 개선하지도,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지도 않는다. 갇혀 버린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일 하나일 뿐이다.
군사 정보를 모으러 온 젠트라디 병사 세 명이 포착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우연이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누가 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준비한 것이 아니다. 군사 임무를 수행하다가 함내 오락 방송을 우연히 잡은 것이다.
한 종족이 전혀 다른 범주와 처음 만난 계기는 정보 수집 과정의 부산물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그때 이들의 반응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몇 분을 이룬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편해하는 정도가 아니다. 무언가를 처리하는 체계 안에 이 범주 자체가 없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일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오락’이라는 말이 없다. ‘공연’이라는 말도 없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그렇게 쓰는 법도 없다. ‘사람들이 모여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이라는 개념이 없다.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저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그것은 전쟁이 아니다.
이들의 체계에서 ‘아주 중요하다’와 ‘전쟁’은 동의어다.
그러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자신들이 모르는 병기라는 것.
그들의 언어로는 그 결론만이 가능하다. 사람들을 모으고 흥분시키며 함선 전체의 주의를 끌 수 있는데 무기가 아니라니. 그들의 분류 체계에는 그런 조합이 없다.
그들이 붙인 이름
이들은 나중에 이런 것들을 통틀어 ‘문화’라고 부른다.
이 이야기에서 그 말은 특별한 뜻으로 쓰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 곧 예술이나 전통, 한 민족의 생활양식과는 다르다.
젠트라디에게 문화는 분류표의 이름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데 상대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모두 이 항목에 넣는다.
그리하여 ‘문화’라는 범주 안에는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이 잔뜩 들어간다. 노래, 입맞춤, 요리, 인형을 안고 있는 일, 두 사람이 다투는 일, 누군가 다른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일.
이들은 이런 것들을 병기 연구하듯 연구한다. 분석하고 기록하며 작동 원리를 찾아내려 하고, 위협 수준을 평가한다.
그들이 문화에 관해 처음 만든 자료는 무기 분석 보고서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아니라,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체계든 분류할 수 없는 것을 만나면 이미 가진 틀 가운데 가장 가까운 것에 넣어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틀이 하나뿐이다.
엉뚱한 틀에 넣었다고 탓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틀이 그것 하나뿐인데.
정찰정은 어떻게 되었는가
세 사람이 탄 정찰정은 뒤에 격추된다.
격추한 사람은 이치조 히카루다.
세 사람은 탈출하지만 수신 기록은 잃어버린다. 제출할 영상이 없으니 말로 보고할 수밖에 없다. 브리타이를 따라 최고사령관을 만나, 자신들이 본 것을 입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군사 용어밖에 쓸 줄 모르는 병사 셋이 군사 용어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상관에게 미인대회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보고가 된다. 최상층 지휘부는 그 일을 통해 알게 된다. 자신들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노래는 왜 효과가 있었는가
이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일을 보자. 이 절의 목적은 어떤 식으로는 읽지 말아야 하는지 분명히 하는 것이다.
나중에 결전에서 인간은 린 민메이의 노래를 적 함대 전체에 내보낸다. 적 함대는 혼란에 빠지고, 인간은 그 틈을 타 기함을 파괴한다.
이 장면은 자칫 ‘사랑과 평화가 적을 감화했다’고 쓰기 쉽다.
작품이 보여 주는 작동 방식은 다르다.
감화가 아니다. 어떤 범주를 갖고 있지 않은 체계가, 그 범주 바깥의 무언가를 입력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마음이 움직여 싸움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 아니다. 기존 처리 과정 어디에도 대응 항목이 없는 것을 만나자, 처리 과정 자체가 멈춰 버린 것이다.
작품이 이 일을 가리키는 말은 ‘혼란’이지 ‘감동’이 아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잠시 멈춰 생각한다. 그러나 전투라는 처리 방식만 가진 체계가 그런 것을 만나면 전체가 멎는다. 거기에는 ‘생각해 보기’라는 동작이 없기 때문이다. ‘수행’과 ‘수행 불가’만 있다.
정작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여기서 또 하나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뒤의 글들이 모두 이 사실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린 민메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남쪽의 작은 섬에서 온 소녀다. 이 배에 들어와 미인대회에 나갔고, 우승한 뒤 가수로 데뷔한다. 유명해지고 싶고, 노래하는 것이 좋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즐겁다.
작품이 그리는 민메이의 전쟁에 대한 태도에는, 얼마쯤 남의 일처럼 여기는 구석이 있다.
반전 운동에 몸을 바친 사람이 아니다. 노래로 무언가를 구하려는 사람도 아니다. 노래하는 소녀일 뿐인데, 그 노래가 우연히 함대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지점에 닿았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일인지, 왜 효과가 있는지 그녀는 모른다.
그런데 모두가 그녀를 그렇게 이용한다. 군도, 지휘부도, 훗날의 역사도.
민메이의 노래가 나중에 작전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목적부터 전쟁이었다고 거꾸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군이 파악한 것은 노래가 적의 체계 안에서 일으키는 효과다. 가수에게는 여전히 다른 물음이 남는다. 자신에게 이 일은 무엇인가.
그 생활을 접하고 가장 먼저 달라진 정찰병 세 명은 곧 몸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고, 직접 그 도시로 숨어든다. 문명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들에게 보여 주려고 연출하지 않은 일상 속으로 들어가 머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