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내용과 논지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판본이다. 원문 사이트에서는 중국어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전쟁을 하도록 만들어진 종족이 있다.
싸움을 잘한다거나 전쟁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 아니다. 만들어질 때부터 그 용도가 새겨져 있었다.
몸은 대단히 강하고 무기는 정교하다. 함대는 함선 수가 수백만에 이른다.
그런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사회에는 무엇이 있는가
먼저 이 종족의 일상을 펼쳐 보자. 이 글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모두 그 안에 있다.
남성과 여성은 따로 부대를 편성해 각자의 군대를 이루며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 가족이 없다. 아이도 없다. 이들은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도, 그림도, 이야기도, 축제도 없다. 전투와 관계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먹는 것은 보급품이고 사는 곳은 함선 내부다. 하는 일은 훈련과 전투다. 젠트라디 한 사람이 생겨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일은 이것으로 끝난다. 편제 안에 속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라지는 것.
키는 10미터쯤 된다. 함선도 무기도 그 몸집에 맞춰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스스로 설계한 물건은 아니다. 그 기술들은 이들이 만들어질 때 함께 넘겨진 것이다.
사용할 줄은 알지만 만들 줄은 모른다. 싸울 줄은 알지만 왜 싸워야 하는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이 사회가 메마른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는 기능이 하나뿐이다.
메마르다는 말은 다른 무언가도 있기는 하되 부족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애초에 다른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언어에는 그런 말이 없고, 함선에는 그런 공간이 없고, 시간표에는 그런 칸이 없다.
그들은 왜 싸우는가
이제 더 중요한 문제를 보자. 이들은 왜 지구를 공격하는가.
작품의 설명은 이렇다. 그들은 배 한 척을 쫓고 있다.
아주 오래전의 문명이 남긴 배다. 지구에 추락한 것을 인간이 발견해 수리하고 개조했고, 그 배가 저 요새가 되었다. 젠트라디는 그것을 회수하려 한다.
명령은 위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 ‘위’가 누구인지, 왜 이 배를 원하는지, 대체 어떤 배인지,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은 모른다.
출처조차 모르는 지시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지시가 효력을 갖는 데 이해는 필요하지 않다. 동의를 얻을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믿음을 얻을 필요도 없다. 수행되기만 하면 된다.
싸우는 것 말고는 살아가는 방식이 없는 종족에게는 ‘왜’라고 물을 장치도 없다.
그 질문을 하려면 설 자리가 있어야 한다. 명령 바깥으로 나가 설 자리다. 그런 자리가 생기려면 우선 명령을 수행하는 일과 무관한 일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 임무에 속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이들은 셋 중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없는 것
여기서 설정을 한 겹 더 짚어야 한다. 이 설정이 이야기의 모양을 결정한다.
작품의 설정을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오래된 문명이 이들을 전투 병력으로 만들면서 문화와 가족,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설계에서 배제한 것이다. 병사들이 저마다 한때 그런 삶을 직접 누리다가 나중에 빼앗긴 것은 아니다. 미리 막혀 있었던 것은 그런 삶을 접하고 자기 안의 가능성을 펼칠 조건이다.
따라서 뒤에 일어나는 변화는 앞선 문명이 뒤처진 문명을 교화하는 일도 아니고, 모두가 기억하는 옛 생활을 되찾는 일로 쓸 필요도 없다. 인간의 삶이 비교할 대상이 되었다. 젠트라디 자신의 반응은 창조자가 정해 놓은 용도가 피조물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 종족은 무엇이 없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그것 없이 수천 년을 살 수 있다.
그 결핍은 내부에서는 발견할 길이 없다.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려면, 먼저 다른 곳에서 그것을 본 적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껏 만난 상대 역시 공격하는 자와 공격받는 자였다. 그들의 우주 전체에는 견주어 볼 두 번째 삶의 방식이 없었다.
그들의 지휘관
이제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겨 보자.
브리타이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젠트라디 지휘관이다. 이름이 있고 성격이 있다. 생각하고, 부하와 논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의아해한다.
그는 잔혹한 사람이 아니다. 전투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고, 포로를 잡으면 학대하기보다 연구하며, 모르는 것이 생기면 조사한다.
그런데 그가 평생 해 온 일은 모두 이 체제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작품은 이 인물을 잘 다룬다. 젠트라디를 내면 없는 괴물 무리로 그리지 않는다. 인간처럼 의문을 품고 논쟁하며 셈을 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다만 그들에게 허용된 삶의 방식은 단 하나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간과 처음 만났을 때
첫 접촉 당시, 양쪽은 상대를 전혀 몰랐다.
인간 쪽에는 급히 짜 맞춘 부대와 외계 잔해를 개조한 배가 있었다. 자신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젠트라디 쪽에는 물건 하나를 회수하러 온, 통상 임무 중인 함대가 있었다.
그 접촉 끝에 조작 실수 한 번으로 배와 그 안의 수만 명이 태양계 외곽, 명왕성 궤도 부근까지 날아가 버린다.
이제 그 수만 명은 목숨을 노리는 추격을 받으며 돌아갈 길을 가야 한다.
배 안에서는 먹고 지낼 곳을 마련해야 하고, 학교에 가고 일해야 하며, 무언가 할 일도 찾아야 한다.
전쟁을 위해 만든 요새 안에,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도시가 들어선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엄청난 골칫거리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이후 이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조건이 된다.
젠트라디 병사들이 저마다 가족과 예술을 누리다가 나중에 빼앗긴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는 창조자가 이들을 군대로 설계하면서 문화와 남녀의 공동생활을 제도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뒤이은 접촉은 그 설계가 이들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전부 규정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 설계를 처음으로 실제 뒤흔든 것은 인간이 정성껏 준비한 문명 소개가 아니었다. 군사 정보를 수집하던 정찰병 세 명이 우연히, 군사적 용도라고는 없는 미인대회 방송을 포착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