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글이다. 원문 사이트에서는 중국어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다툼이 벌어졌을 때, 마도카는 사야카가 더 싸우지 못하게 하려고 손에 들린 소울 젬을 빼앗아 고가도로 아래로 던진다. 보석은 멀어져 가는 트럭에 떨어진다.
사야카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다쳐서 쓰러진 것이 아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풀리고, 아무리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아케미 호무라가 트럭을 쫓아가 보석을 찾아 사야카 곁에 돌려놓는다. 사야카가 깨어난다.
곁에 있던 큐베가 설명을 보탠다. 아, 100미터를 넘게 떨어지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의 정체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분명히 해 두자.
소울 젬은 장비가 아니다. 단순히 마력을 공급하는 물건이나 도구가 아니다.
그 사람의 영혼 자체다.
계약할 때 큐베가 하는 일은 이렇다. 소녀의 몸에서 영혼을 꺼내 압축한 다음, 보석 속에 봉인한다.
그때부터 몸은 껍데기가 된다.
이 껍데기는 수리가 가능하다. 마법소녀가 중상을 입고도 스스로 몸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더는 자기 몸이 아니라 원격으로 조작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통증은 꺼 버릴 수 있다. 끊어진 곳은 다시 맞춰 붙이면 된다.
쓰기에 아주 편리하다.
여기서는 ‘쓰기에 편리하다’는 말이 정확하다. 누군가를 전투에 투입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방법은 육체라는 가장 큰 제약을 해결해 준다.
큐베의 설명
큐베가 이 일을 설명하는 말에는 거짓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마법소녀는 마녀와 싸워야 하니 육체가 다친다. 그런데 핵심이 육체 밖에 있다면 몸이 아무리 크게 다쳐도 상관없다. 언제든 수리하면 된다.
너희가 이기게 하려는 조치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영혼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도 아니고, 바로 여기 멀쩡하게 있지 않느냐고.
큐베의 계산에서는 개선이다.
그 계산 안에서는 맞는 말이다. 영혼은 줄지 않았고, 기능은 좋아졌으며, 생존율도 올라갔다. 이 항목들만으로 평가한다면 누구라도 이 방안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심지어 숨긴 적도 없다. 누가 물으면 말해 준다. 그전에는 아무도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큐베에게는 아무도 물어볼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묻지 않은 사실까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계약에도 그런 조항은 없고, 큐베 종족의 소통 방식에도 그런 항목은 없다.
한 사람을 둘로 나누다
이제 이 글의 판단을 말하겠다.
큐베가 한 일을 구조로 그려 보면 이렇다.
한 사람을 ‘쓸모 있는 부분’과 ‘나머지’로 나눈 뒤, 쓸모 있는 부분만 따로 꺼내 관리한다.
쓸모 있는 부분은 마법을 작동시키는 핵심이다. 보석에 담으면 가지고 다닐 수도, 보호할 수도, 얼마나 탁해졌는지 측정할 수도 있다.
나머지는 그 사람의 몸이다. 이 부분은 도구로 격하된다. 부서지면 고쳐 쓸 수 있는 도구다.
그런데 이 조치의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소녀에게 그 ‘나머지’는 자기 자신이다.
그 몸으로 먹고, 자고, 걷는다. 다른 사람의 손길을 느끼고, 누군가를 좋아한다. 내가 나라는 모든 감각은 도구로 격하된 그 부분에 뿌리내리고 있다.
사실을 알게 된 사야카가 맨 먼저 한 생각은 전투력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몸에 어떻게 그가 손을 대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큐베가 빼앗아 간 것은 큐베의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가치를 낮게 매긴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항목이 없다.
일을 끝낸 뒤의 반응
진실을 알게 된 쿄코는 격분해 큐베에게 달려들며 따진다.
큐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대답의 요지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너희는 왜 이해를 못 하느냐는 것이다.
어떤 변명보다 다루기 어려운 반응이다.
변호하는 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자신을 변호하는 사람은 상대가 무엇을 추궁하는지 안다. 큐베는 그 추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네가 저 아이의 영혼을 꺼냈다’는 말과 ‘네가 부품 하나의 위치를 옮겼다’는 말이 큐베에게는 같은 말이다.
누군가 무엇이 다른지 알려 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작품 속 누구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한다. 소녀들은 소리치고, 울고, 큐베에게 무기를 겨눌 수밖에 없다.
보석은 탁해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한다.
소울 젬은 탁해진다.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법을 사용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미움, 질투, 분노, 절망이 보석을 조금씩 더 흐리게 한다.
마법을 쓰면 소울 젬이 소모되고, 절망에 빠져도 탁해진다. 그러니 싸움을 그만두는 것만으로는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까지 이미 보석의 변화에 들어와 있다.
끝까지 탁해지면 보석은 그리프 시드가 된다.
소녀는 마녀가 된다.
소녀들이 싸우는 상대
여기서 이 글을 맺을 수 있다.
마법소녀의 끝에는 마녀가 있다.
그러니까 큐베가 대량으로 만들어 온 것은 ‘마녀를 토벌하는 마법소녀’가 아니다. 장차 마녀로 자랄 마법소녀다.
마법소녀들이 날마다 나가서 싸우는 존재는 자신들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사람들이다.
그 마녀들도 한때는 십 대 소녀였다. 소원을 하나 빌었고, 싸움의 나날을 보냈다. 결계 안에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형상들은 저마다 마음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들이다.
작품은 뒤에 가서 한 인물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한다. 자신이 죽인 마녀가 친구였다.
소녀들이 싸우는 것은 자기 삶의 뒷부분이다.
이 말이면 이 글은 끝난다. 더 평가할 필요는 없다.
이 모든 장치의 용도도 큐베는 말해 준다. 왜 이렇게 하는지, 무엇을 거두어 어디에 쓰는지. 엔트로피에 맞서 우주가 더 오래 버티게 하려는 것이라고.
필요한 에너지는 한 소녀의 희망이 절망으로 뒤집히는 바로 그 순간에 생긴다.
그러므로 그 순간이 이 시스템의 제품이다.
나머지는 전부 생산 공정이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하나 있다. 여러 번 알게 된 사람이다.
몇 번이고 같은 달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한다.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