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 읽기
이 다섯 글은 신지가 기계에 타는 이유에서 출발한다. 교체할 수 있는 사람, 계속 떨어지는 아스카의 숫자, 이카리 겐도가 되찾으려는 단 한 사람, 그리고 고통을 만들면서도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벽을 읽어 나간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흔히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이 연작에서는 구조에 관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이들에게 어떤 연결을 마련해 주는가. 그 연결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는 일은 언제 또 다른 이용으로 바뀌는가.
TV판과 《The End of Evangelion》(1997)을 주요 텍스트로 삼는다. 신극장판의 설정과 이야기는 이 논의에 포함하지 않는다. 결말을 포함해 작품 전체의 스포일러가 있다.
- 1 / 5신지가 기계에 타는 이유열네 살 소년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도시로 불려 온다. 부른 사람은 아버지다. 소년이 아주 어릴 때 남에게 맡겨 버린 뒤로 거의 연락도 없던 사람이다. 도시는 공격받고 있다. 소년이 도착했을 때 경보가 울리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하늘에는 무언가가 날아다닌다. 손에는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과 어느 여자의 사진 한 장이 들려 있다.
- 2 / 5여분이 있는 사람거대한 수조 하나. 옅은 색의 액체 속에 몸들이 줄지어 잠겨 있다. 전부 같은 소녀의 모습이다. 전부 알몸이고, 전부 입을 벌리고 있다. 얼굴에는 뭐라고 말하기 힘든 표정이 떠 있다. 아카기 리츠코가 신지와 미사토를 아래로 데려가 보여 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소녀는 지금 위층에서 멀쩡히 살아 있다. 두 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료다.
- 3 / 5그 숫자조종석에는 싱크로율이라는 수치가 뜬다. 파일럿과 기체가 얼마나 잘 맞는지를 재는 값이다. 높으면 기계가 잘 움직이고, 낮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 선 아래로 내려가면 아예 기동하지 않는다. 이 숫자는 매번 측정되고, 기록되고, 비교된다. 하지만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에게 이 숫자는 단순한 지표가 아니다.
- 4 / 5그가 원한 것은 한 사람한 남자가 책상 뒤에 앉아 있다. 얼굴 앞에 두 손을 포개고, 장갑을 끼고, 색이 들어간 안경을 썼다. 이 조직의 최고 책임자다. 전쟁에 관한 모든 정보를 쥐고 있고, 몇몇 아이를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하며, 인류의 미래를 다루는 계획까지 쥐고 있다. 아들을 버린 뒤 십 년 동안 연락하지 않다가, 필요해지자 불러들여 “타라”고 말한 사람이기도 하다.
- 5 / 5그 벽이 작품에는 처음에는 군사용어로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다. AT 필드. 사도도 펼치고, EVA도 펼친다. 총알을 막고, 포탄을 막고, 다른 필드를 막는 장벽이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상대의 AT 필드를 중화해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이 말은 새롭게 정의된다. 마음의 벽. 영혼의 빛. 그리고 사도만 지닌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