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전환해 읽을 수 있다. 대사와 인용의 한국어 표현은 이 판본의 번안이며 공식 자막이나 정식 번역을 옮긴 것이 아니다.
한 여자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름은 사쿠라 치호. 카와모토 히나타와 같은 반이다. 반 아이 몇에게 표적이 된 뒤 한동안 버텼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히나타는 그 아이 곁에 섰다.
그러자 같은 일이 히나타에게 옮겨 갔다.
그 일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먼저 일이 돌아가는 방식부터 보자. 작품이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대목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괴롭히는 학생은 몇 명뿐이다.
나머지 반 아이들은 모두 지켜본다. 가담하지도, 막지도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 차례가 되고 싶지 않다.
이 구도에서 행동하는 쪽은 소수다. 그 소수가 계속 행동할 수 있는 까닭은 다수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가 가만히 있는 것은 찬성해서가 아니다. 움직이면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지금 교실 한가운데 있다. 이름과 성이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다.
히나타는 움직였다. 그러자 정해진 순서처럼 대가가 히나타에게로 옮겨 왔다.
이 이동에는 거침이 없다. 히나타가 치호 곁에 선 순간, 치호가 당하던 일이 히나타에게 넘어오기 시작한다. 누가 새로 결정할 필요도, 모여 의논할 필요도, 이유를 댈 필요도 없다. 그 자리에는 누군가 있어야 했고, 히나타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이 방식의 효율은 여기서 드러난다. 특정한 사람을 겨누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를 겨눈다.
그 선생님
담임 교사는 못 본 척한다.
이 대목은 분명히 써야 한다. 못 본 척한다는 행동은 악의보다 훨씬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는 학생들의 괴롭힘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중립적으로 서 있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히나타에게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나무랐다. 깊이 알아보거나 실효성 있게 개입하지 않은 채, 일이 저절로 지나가기를 바랐다.
이 방식은 많은 경우 효과가 있고, 수고도 가장 적게 든다. 학생들 사이의 마찰은 대개 저절로 잦아든다.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일을 키우기 쉽고, 커지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번에는 잦아들지 않았다.
수학여행 뒤에는 가해 학생들이 그녀까지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 선생님을 끝내 무너뜨린 것은 압박이었다. 책임을 추궁당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멈춰 볼 필요가 있다. 누가 그녀를 조사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 왜 개입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서도, 공식적인 문책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도 아니다. 사태 자체의 무게에 짓눌린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마지막에 떠안은 것은 책임이 아니라 결과였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 책임은 져야 할 사람에게 가지만, 결과는 그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떨어진다.
이 일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그 아이들이었다.
이 대목이 가장 괴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생님이 쓰러졌다는 사실은 벌도 아니고, 무슨 해명이나 수습도 아니다. 상처 입은 아이 누구도 그 일로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이후 코쿠부가 개입하면서 괴롭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지만, 그녀가 쓰러진 일 자체는 직무 태만에 책임을 묻는 일도, 아이들에게 보상하는 일도 아니었다.
하야시다가 한 말
레이는 고등학교의 전 담임인 하야시다를 찾아가 상의했다.
하야시다가 한 말은 빠짐없이 짚어 볼 만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작품이 내놓는 답이 모두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첫째, 괴롭힘에 관한 정보는 많지만 어느 것도 백 퍼센트 효과가 있지는 않다. 처지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얽힌 사람들이 이루는 관계도 다르다.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완벽한 답은 없다.
둘째,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에게 어떻게 해결되기를 원하는지 묻는 일이다.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들여 들어야 한다.
셋째, 괴롭힘이 잦아들더라도 그 아이가 더는 그곳에 있을 자리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넷째, 가족에게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크다. 최악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떠안는 것이다.
그가 맨 먼저 권한 것은 원하는 해결이 무엇인지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대신 정해 주라는 말이 아니었다.
이 방향은 이 연작의 앞선 글들에 등장한 모든 행동과 정반대다.
코다는 쿄코 대신 그만두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제도는 누가 무엇에 적합한지 대신 결정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길을 정해 줄 때 내세우는 이유는 대개 너에게 무엇이 좋은지 내가 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는 경우도 많다.
하야시다가 한 말은, 먼저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레이가 한 일
그 말을 듣고 돌아온 레이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오래,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돈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자기 대국료에서 이 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댈 수 있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기세로 그 한 판을 두러 갔다.
처음으로 쇼기와 관계없는 일을 위해 쇼기를 두었다.
정확히 짚어야 한다. 그전까지 레이가 쇼기를 둔 이유는, 그것이 집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고,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판 위의 승패가 판 밖에 있는 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따내려는 것은 순위가 아니었다. 분명한 용도가 있는 구체적인 돈이었다.
이 장면에는 조금 우스운 구석도 있다. 작품은 계산기를 끌어안고 카와모토의 집으로 달려들려는 레이를 보여 준다. 열의가 엉뚱한 데로 향했다. 레이가 생각한 해결책은 돈을 계산하는 것이지만, 돈으로는 히나타가 날마다 교실에서 버텨야 하는 그 몇 시간을 해결할 수 없다.
작품은 레이를 비웃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고 하지도 않는다. 다소 어긋난 열의를 그대로 놓아둔다.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뿐인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일을 만났다. 그가 궁리하는 것은 아는 것 하나를 써서 모르는 일에 어떻게든 손을 뻗는 방법이다.
히나타가 한 일
이 무렵 히나타는 몇 가지 일을 했다.
전학하지 않았다.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계속 학교에 갔다.
수학여행에도 갔다. 떠나기 전에는 위가 심하게 아팠다. 아카리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히나타는 가겠다고 했다. 꼭 가야 한다고. 가지 않으면 앞으로 오랫동안, 어른이 되어서도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갔다. 그 여행에서 거의 내내 혼자 지냈다.
히나타가 댄 이유를 보자. 다른 누구를 위해 간 것도, 오기를 부리려고 간 것도, 무엇을 증명하려고 간 것도 아니다. 수십 년 뒤의 자신을 위해 갔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그 일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중학생 한 명이 위가 아픈 와중에 마흔 살의 자신에 관한 판단을 내렸다.
같은 시기 레이는 오사카에서 신인왕전 결승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떠났다
이제 이 글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대목이다.
치호, 히나타가 처음에 곁에 서서 지키려 했던 아이는 결국 떠났다.
마음에 남은 상처는 또래 여자아이들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으로 이어졌고, 치호는 시골 학교로 전학했다.
히나타가 한 일은, 구하려던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작품은 치호의 전학을 없었던 일로 돌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히나타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레이와 가족은 그 행동을 긍정한다. 나중에는 치호의 편지도 도착한다. 하지만 지지받고 다시 연결되는 일이 지난 상처를 거슬러 올라가 지워 주지는 않는다.
그 아이는 상처를 입고 떠났다. 히나타가 치른 것들, 한 학기 전체의 나날과 위통, 고립, 혼자 보낸 수학여행으로도 바라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작품에는 그 행동을 긍정하는 말이 분명 있다. 다만 그 긍정을 성공의 보증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세 가지는 여전히 나란히 남는다. 히나타는 그 곁에 섰다. 대가를 치렀다. 그 아이는 그래도 떠났다. 히나타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세 번째 사실을 지우지 않는다.
곁에서 지켜본 사람
끝으로 이 이야기 전체에서 레이가 서 있던 자리를 보자.
중학생 때 레이도 그 자리에 있었다.
프로 기사가 된 뒤, 반에서 그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따돌림을 당했고 표적이 되었다. 그때 레이가 택한 방법은 피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맞받아치지 않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누구의 곁에 서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히나타를 바라볼 때 그가 본 것은 소중한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만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때 하지 못했던 일을 십 대 소녀가 해내는 모습도 보고 있었다.
히나타의 결심은 과거의 레이 자신까지 구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그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야시다를 찾아가고, 꼼꼼히 필기하고, 돈을 계산하고, 그 한 판을 두게 한다.
열 살 때부터 자기가 남을 수 있는 이유를 계산해 온 사람이 처음으로 다른 것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레이에게 쇼기는 대체 무엇일까?
쇼기는 남아 있게 해 주는 대가였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가 자기를 거두어 줄 필요가 없다.
마지막 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