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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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말 그의 것일까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한국어판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전환해 읽을 수 있다. 대사와 인용의 한국어 표현은 이 판본의 번안이며 공식 자막이나 정식 번역을 옮긴 것이 아니다.

열 살짜리 아이가 모든 것을 잃은 뒤 어느 집의 규칙을 알아보았다. 그러고는 자기 손에 있는 유일한 것을 내놓았다.

그렇게 살 곳을 얻었다.

9년이 지나 아이는 열아홉 살이 되었다. 혼자 사는 프로 기사다. 여전히 같은 쇼기를 두고 있다.

이 글은 이 이야기의 진짜 질문을 다룬다. 쇼기는 과연 레이 자신의 것일까.

왜 이 질문을 해야 하는가

먼저 이것이 왜 말꼬리를 잡는 질문이 아닌지부터 분명히 하자.

레이가 이 길에 들어선 과정은 앞선 글들에서 모두 살펴보았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요구하지 않았고,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 그것이 집에 남을 수 있는 이유라고 레이가 스스로 계산했고, 스스로 내놓았다.

그러나 스스로 계산했다는 것과 스스로 원했다는 것은 다르다.

달리 갈 곳이 없을 때 내린 선택도 맑은 정신으로 한 올바른 선택일 수 있고, 분명히 자기가 내린 선택일 수 있다. 그래도 다른 길이 열려 있었다면 했을 선택과는 다르다.

더 곤란한 문제가 있다. 레이 스스로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열 살로 돌아가 다른 집에 들어간 뒤, 그곳의 자신이 무엇을 할지 볼 수는 없다. 비교할 대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정말 쇼기를 좋아하는가, 하고 물어도 답할 수 없다. 쇼기를 통하지 않고 자신을 알아 온 또 다른 자기를 곁에 놓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남아 있게 해 준 일을 자신도 정말 원하는가. 이 질문은 그렇게 답을 얻지 못한 채 남는다.

작품은 44화 동안 그 질문을 열어 둔다.

세 사람을 곁에 놓고 보면

작품은 레이 주변에 세 사람을 놓는다. 저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니카이도 하루노부.

레이의 경쟁자이며, 스스로 영원한 숙적을 자처한다. 어릴 때부터 신장병을 앓았다. 건강 문제는 늘 따라다니고 언제든 탈이 날 수 있다. 오랫동안 그를 돌봐 온 집사가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니카이도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쇼기를 두지 않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몸이 허락하지 않고, 집안 살림에 필요한 일도 아니다. 얼마든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누가 그에게 이 일을 맡긴 적도 없다.

그런데 둔다. 누구보다 맹렬하게 둔다.

작품은 그를 다룰 때 봐주지 않는다. 몸 상태를 거듭 보여 주고, 입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곁에서 마음을 졸이는 집사를 보여 준다. 병을 슬픔을 짜내는 장치로 쓰지 않는다. 날마다 맞닥뜨려야 하는 구체적인 한계로 그린다.

그는 그 한계 안에서, 자기가 먹고사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코다 쿄코.

쿄코는 그 일을 빼앗겼다. 원했지만 닿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신 결정해 그 길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 뒤 쿄코는 파견직으로 일하고, 아내가 있는 남자와 얽히고, 한밤중에 레이의 아파트에 들이닥쳐 물건을 부수고 어지르고 떠난다. 작품은 이것을 쇼기를 잃어서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여 준다.

어떤 일에서 물러나게 된 사람에게는 그 일이 있던 자리가 빈다. 쿄코는 그 자리에 지금껏 다른 것을 채워 넣지 못했다.

그 뒤 붙잡은 것들, 그 관계와 그 깊은 밤들은 무언가를 구멍 속에 밀어 넣는 모습과 닮았다. 작품은 이것이 보상인지 말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그런 모습으로 남겨 둔다.

시마다 카이.

명인 소야와 동갑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한참 벌어졌고, 이제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다. 그래도 시마다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올라간다.

아마 따라잡지 못할 것임을 자신도 잘 안다. 그래도 간다.

이 세 사람에 레이까지 더하면, 같은 질문의 네 가지 상태가 된다. 아무도 맡기지 않았는데 하는 사람, 빼앗긴 사람, 닿을 수 없는데 쫓는 사람, 그리고 살 곳을 얻으려고 내놓은 사람.

작품은 이들을 한 작품 안에 놓고 순서를 매기지 않는다.

소야

한 사람이 더 있다. 작품은 그를 가장 먼 곳에 놓는다.

명인 소야 토지. 그 세계의 꼭대기에 있으며 거의 모든 타이틀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런데 작품이 보여 주는 그의 상태는 조금 무섭다. 사람 전체가 그 안에 들어가 버려서, 바깥에 남은 부분은 거의 없는 듯 얇다.

작품은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 말하지 않는다. 소야에게 고독에 관한 독백을 시키지도 않고, 누군가 그를 구하러 오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게 한다.

한 가지 일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른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 이 작품이 내놓는 대답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쇼기 밖에도 몇 가지가 있다

레이에게 돌아오자.

그 몇 년 사이, 그의 삶에 무엇이 더해졌는지 보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 그 집 사람들은 레이의 쇼기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경쟁자이자 친구가 있다. 함께 연구하자며 끌어내고, 함께 밥을 먹고, 순위와 무관한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가 상의할 수 있는 전 담임 선생님이 있다. 그가 해 주는 조언은 쇼기와 관계가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것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쇼기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위해, 전에 없던 기세로 처음 한 판을 두었다.

나중에 히나타는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며 레이의 학교를 목표로 정했다. 시험 날 아침에는 레이가 히나타를 데리러 갔다. 두 사람은 함께 시험장으로 향했다.

애니메이션 2기의 마지막 화면에는 봄빛 속에서 학교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

작품이 답하지 않은 것

이제 이 연작을 마무리할 수 있다.

쇼기는 과연 레이 자신의 것인가.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이제야 왜 쇼기를 두는지 알겠다고 레이가 나서서 말하는 회차를 마련하지 않는다. 어떤 인물도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대신 선언하지 않는다. 쇼기를 떠나 다른 일을 해 보게 한 뒤 다시 돌아오게 하지도 않는다. 그런 귀환이라면 하나의 답이 되었을 것이다.

작품이 하는 일은 따로 있다. 레이가 계속 두게 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레이다운 쇼기를 두게 한다. 자기 기풍이 생기고, 구체적인 일을 위해 두기 시작한다. 졌을 때도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는 대신, 그 패배 때문에 구체적으로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변화는 모두 작다. 어느 것도 선언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거두어질 필요가 없어진 뒤에도 그는 둔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집이 생긴 뒤에도 둔다. 쇼기와 무관한 더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그 일을 위해 쇼기를 쓴다.

이것들은 모두 사실이다. 그 사실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작품은 말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내놓았던 것은 훗날에도 여전히 그의 손에 있다. 그것이 언제부터 그의 것이 되었는지, 혹은 그의 것이 된 적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문장에는 뒷부분이 없다.

두 장면

끝으로 두 장면을 나란히 놓자. 그사이에 말을 보태지 말고.

첫 번째. 가족을 모두 잃은 열 살짜리 아이가 낯선 집에 서 있다. 그 집의 규칙을 알아보고, 자기 손에 있는 유일한 것을 꺼내 놓는다. 그때 아이 곁에는 아무도 없고,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두 번째. 열아홉 살 청년이 아침에 시험을 치를 여자아이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이 봄빛 속에서 학교로 걸어간다.

그사이에는 9년과 44화,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일이 있다. 딸 하나는 여전히 아내가 있는 남자와 얽혀 있다. 아들 하나는 아직 방에 틀어박혀 있다. 전학 간 여자아이는 아직 또래 여자아이들이 두렵다. 스물세 살 언니는 여전히 밤이면 또 다른 일터로 나간다.

작품은 이 일들을 해결하지 않았다. 학교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와 함께, 나란히 존재하게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