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공각기동대 SAC》 읽기
2 / 5

만들어진 자발성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논의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풀어 쓴 글이다.

열두 사람이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생방송 중이다. 그들은 난민 문제를 두고 연설한다. 규탄하고, 동참을 촉구한다. 그러더니 집단 자결에 들어간다. 서로의 목을 베어 버린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간다.

그들은 스스로를 ‘개별의 11인’이라고 부른다.

먼저 알아야 할 것

그때 이 나라가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부터 분명히 해 두자. 이 대목을 빼면 뒤의 이야기는 한바탕 부조리극처럼 읽히게 된다.

이 나라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외국에서 약 300만 명의 난민을 불러들였다. 이른바 초위 난민이다.

그들은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이 사회에서 갈수록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국가의 고립을 주장하는 세력과의 대립은 깊어졌고, 테러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난민들의 처지는 실제다. 초청받아 왔고, 노동력으로 쓰였고, 지정된 지역에 배치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들 자체를 문제로 취급했다.

여기에는 순환이 있다. 나라에 노동력이 필요해서 그들을 불러들였다. 막상 들어오고 나니 그들은 이 나라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그 문제의 해법이라며 ‘내보내자’는 이야기가 오간다.

불러들이기로 한 결정도, 쫓아내자는 주장도 같은 사회에서 나왔다.

대립 또한 실제다. 걱정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분노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분노한다.

누가 조작해서 만들어 낸 것들이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의 재료다.

고다가 한 일

고다 카즌도는 내각정보청 소속이다.

그가 한 일은 이렇다. 사상 유도 바이러스를 만들고, ‘개별의 11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은 논문 한 편에서 왔다. 이야기 속에서 그 논문 자체도 유령 같은 존재다. 인용되고, 퍼져 나가고, 어느 조직의 강령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정작 그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작동 방식이다. 천천히 풀어 볼 필요가 있다.

‘개별의 11인’이라는 조직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고다는 먼저 그런 조직이 있다는 말을 퍼뜨렸다. 인터넷에서 이름도, 주장도, 형상도 갖추게 했다. 사람들은 그런 집단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감염이 늘기 시작했다.

먼저 선구자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그 모습을 통해 추종자를 생산한 것이다. 직접 누구를 모집할 필요도, 조직을 세울 필요도, 나중에 행동에 나설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날 필요도 없었다.

그가 한 일은 그 자리에 무언가를 놓아두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비용이 극히 적게 드는 수법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편이 사람을 모아 집단을 꾸리는 것보다 훨씬 싸다. 운영 자금도, 장소도, 기밀 유지도, 사람 관리도 필요 없다. 소탕할 수 있는 핵심부도 없다. 애초에 핵심부라는 것이 없으니까.

위험도 거의 없다. 행동하는 사람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으니, 그에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연결선도 남기지 않는다.

이 방식이 가장 많이 아끼는 것은 돈이 아니다. 사건에 그 자신이 등장해야 하는 횟수다.

바깥에서 보면 똑같다

이제 이 글의 핵심 판단에 이르렀다.

당신이 관찰자라고 해 보자. 사람들이 저마다 독립적으로, 같은 일에 분노하고, 같은 이름을 쓰며, 같은 종류의 행동에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앞선 글의 경우일 수 있다. 각자가 같은 일을 보고 스스로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조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글의 경우일 수도 있다. 누군가 무언가를 만들어 그 자리에 놓아두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보면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과 만들어진 운동은 똑같다.

‘똑같다’는 말은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관찰할 수 있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어느 경우든 참여자들의 분노는 진짜다. 이유도 자신이 생각해 낸 이유다.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도 자신이다.

차이는 오직 누군가가 어느 시점에 그 자리에 무언가를 놓았느냐에 있다. 그 일은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다의 구상은 이런 현상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 입증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그 뒤로는 어떤 운동도 자신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다.

고다 쪽에서 보면

고다를 충분히 살펴야 한다.

그는 세상이 불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공작을 수행하며, 구체적인 정치적 결과를 노린다. 그에게는 난민 폭동이 필요하다. 그 폭동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밀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수단은 이렇다. 분노를 만들지 않고, 이미 있는 분노를 이용한다. 난민들의 처지도, 사회의 대립도, 사람들의 불만도 실제다. 그가 하는 일은 거기에 형태와 이름을 부여하는 것뿐이다.

효율은 대단히 높고, 나중에 책임을 묻기는 대단히 어렵다. 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모두 자기 손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작품도 그를 광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말에는 조리가 있고, 판단은 정확하며, 누구보다 또렷하게 판세를 읽는다. 9과를 상대할 때면 거의 매번 상대보다 한 수를 더 생각해 둔다.

그 자신이 쓰는 말로 하면, 이것은 통치다.

한 사람의 예외

열두 사람이 생방송에서 자결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 의지를 지켜 낸다.

쿠제 히데오. 보통 쿠제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작품이 제시하는 설명은 구체적이며, 두 가지다.

첫째, 그가 품은 혁명 구상은 이타적이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하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유도하려는 것이 그에게는 완전히 맞물리지 않았다.

둘째, 그는 어린 시절 비행기 사고를 당한 뒤 의체화되었다.

그렇게 그는 바이러스를 자신에게서 분리해 내는 데 성공하고, 현장에서 빠져나간다.

고다의 계획에서 빗나간 계산 하나다.

그는 이미 그 일을 본 적이 있다

쿠제가 어디에서 왔는가. 이 글에서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대목이다.

2024년, 그는 평화유지군 대원으로 한반도에 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정보에 조종당한 난민들이 제 손으로 자기 나라를 무너뜨리는 모습이었다.

그 일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니까 고다가 만들어 낸 운동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온 사람은, 만들어진 운동이 한 나라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이었다.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한 번 성공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 높은 덕성도, 더 강한 의지도 아니다. 경험이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비교의 기준이 하나 있었다.

빠져나온 뒤 그가 한 일

쿠제가 탈출한 뒤 하는 일은 이 글의 질문을 한 발 더 밀어붙인다.

그는 300만 난민의 지도자가 된다. 실제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지도자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며, 그를 위해 일한다.

만들어진 운동에서 벗어난 사람이, 이번에는 스스로 하나의 운동의 중심이 된 것이다.

작품은 그 때문에 쿠제가 고다와 같아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동기는 분명하다. 그는 그 사람들을 구하려 한다. 난민의 기억과 영혼을 네트워크로 옮겨, 네트워크와 융합한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시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정신 나간 생각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생각이다.

타치코마는 의문을 하나 제기한 적이 있다. 기억을 네트워크에 저장한다고 해서 영혼까지 거기에 깃든다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당시 이 질문에 답한 사람은 없었다.

쿠제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구상대로 밀고 나간다. 끝까지 간다.

바깥에서 보면 쿠제를 따라가는 사람들과 고다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다.

작품은 여기서도 둘을 가려낼 방법을 내놓지 않는다. 쿠제를 그 자리에 두고, 하려는 일을 하게 한다. 그리고 9과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각자의 판단으로 그를 상대하게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애초에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들이 있다.

그렇게 되도록, 매일 밤 기억을 한 번씩 동기화한다.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