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론 보론 · 01
“당신이 맡은 일이잖아요”라는 말의 출처
월말까지 내야 할 목록, “원래 그렇게 해 왔다”는 설명,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자리. 책임감이 부족한가 자책하기 전에, 그 일이 어떻게 내 몫이 되었는지부터 물어볼 수 있다.
한 부서의 업무를 새로 맡았다고 해 보자. 책상에는 컴퓨터와 열쇠, 그리고 월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목록이 놓여 있다. 누가 정한 목록이냐고 묻자 전임자는 늘 그렇게 해 왔다고 답한다. 그런데 이 두 항목까지 왜 내가 해야 하느냐고 다시 묻자, 그는 조금 의아해한다. “이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당신이잖아요.”
더 이야기할 여지가 없는 말처럼 들린다. 나도 곧 자신을 돌아볼지 모른다. 내가 너무 따지는 걸까. 누가 일을 하나 부탁했는데 뭘 그렇게까지 캐묻는 걸까. 하지만 지금 묻는 것은 일을 성실하게 할지 말지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이 요구는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맡아야 하는 일이 되었을까.
실제로 내 몫이 된 일은 있을 수 있다. 다만 무거운 단어 하나를 붙였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전임자가 남긴 일, 동료의 바람, 회사가 원하는 일이 모두 같은 종류의 요구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이를 구분하는 이유는 일을 덜 하려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지금 무엇을 맡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일을 피하려는 것이다.
기대받는 모든 일이 직책상의 책무는 아니다
동료가 내친김에 묵은 자료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바쁜 것도 사실이고 내가 도울 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능력과 필요, 기대만으로는 아직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동료가 내게 그 일을 요구할 근거가 있는가. 내가 이번에 맡은 업무에 실제로 포함된 일인가.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언제 끝냈다고 볼 수 있는가.
다른 인계 사항은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이번에 자리를 맡으면서 월말까지 재고를 대조하는 업무를 분명히 넘겨받았다. 누가 요구하는지, 목록에는 무엇이 들어가는지, 이견이 생기면 어디에 다시 물을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남들이 해 주기를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출처를 설명할 수 있는 요구가 이번 업무에 실제로 연결된 것이다. 그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요구 자체가 아무 근거 없이 상상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요구가 이렇게 실제로 연결되는 일을 ‘등록’이라고 부르려 한다. 반드시 서류에 적었다는 뜻은 아니다. 종이에 이름만 올리면 다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의 실제 행동 조건에 그 요구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서류는 그 사실을 기록해 놓았을 뿐일 수도 있고, 아직 효력을 얻지 못한 내용을 적어 놓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요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았느냐이다.
여기서 작게나마 구분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요구가 실제로 내게 미친다는 사실과 그 내용에 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은 다르다. 등록이 언제나 본인의 자발적 동의에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절차가 어리석다고 느껴도 내게 적용된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며, 실제로 적용된다고 해서 아무 문제 없는 절차라는 뜻도 아니다. ‘내가 원했다’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칸만 남겨 놓으면 그 사이에 놓인 수많은 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
판단을 종이 위에서 끝내서도 안 된다. 직무 안내서에는 이번 재직에 한 번도 적용되지 않은 옛 규정이 인쇄돼 있을 수 있다. 멋진 제도 이름만 남았을 뿐 실제로는 그에 맞는 인정도, 절차도, 뒷받침도 없는 조직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평소 처벌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요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살펴야 할 것은 실제 관계다. 문서가 얼마나 격식을 갖추었는지, 상사가 요즘 화를 낸 적이 있는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협박까지 모두 책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납치범도 분명한 요구를 내놓고 상대가 행동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때문에 인질에게 직무상의 책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권리상의 지위, 현실의 뒷받침, 등록 관계가 갖추어진 사회적 요구다. 복종시킬 힘이 있는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점잖은 이름으로 바꿔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구분을 했다고 강요가 마법처럼 없어지지는 않는다. 명령에 그런 출처가 없다고 설명할 수 있어도, 위협받는 사람이 당장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동 하나를 더 얹지 않을 수는 있다. 이미 억압받는 사람에게 책무마저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일을 막는 것이다. 개념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해 준다. 사람을 보호하려면 여전히 현실에서 통할 길과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자리는 옛 잘못을 통째로 넣어 두는 상자가 아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부터 다시 보자. 이는 재무 책임자라는 기능을 가리킬 수도 있고, 눈앞의 당신이라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고, 이 회사에서 이번에 맡은 임무와 재직 관계를 가리킬 수도 있다. 셋은 가까이 붙어 보이지만 서로 대신할 수는 없다. 자리는 남아 있어도 사람이 바뀔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여러 해 뒤에 돌아오더라도 이번 재직은 이전과 다른 한 차례의 관계일 수 있다.
그래서 전임자가 누락한 보고가, 내가 그의 의자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에 내가 누락한 보고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역사의 당사자를 바꿀 수는 없다. 다만 회사가 지금 내게 예전 기록을 확인하는 새 업무를 맡겼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옛 사건이 새로운 요구의 내용이 될 수는 있다. 옛일에 관한 요구라는 이유만으로 근거가 반드시 있다고, 혹은 반드시 없다고 미리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반대 방향의 바꿔치기도 조심해야 한다. 회사 이름과 주주가 바뀌고 사무실까지 옮겼더라도, 간판만 보고 모든 일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고 할 수는 없다. 원래의 재직 관계와 그 안의 약정이 이어지는지는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맡음은 그것을 받치는 조직 같은 틀과 관련이 있지만, 겉모양이 바뀔 때마다 기존 재직 관계가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재직 안에서도 요구마다 가는 길이 다를 수 있다. 목록 대조는 기한에 맞춰 제출하면 끝나는 한 가지 일이다. 어떤 자료를 계속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어떻게 이행하고 언제 끝나는지는 각각의 내용을 따라 살펴야 한다. 그중 하나를 마쳤다고 그 직책에 남은 일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직책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이미 마친 요구까지 영원히 미완료 상태로 걸어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출처를 묻는 일은 거절을 잘하는 요령이 아니다. 근거 없는 요구에 끼워 넣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도 있고, 현재의 배치가 실제로 어떤 일을 내게 맡겼음을 확인하게 될 때도 있다. 이 질문이 나를 편하게 해 준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하나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근거로, 어떤 관계 안에서, 이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말이다.
요구를 맡고 있는 것과 해낸 것은 다르다
회사가 재고 대조를 지시하는 것은 요구를 내보내는 쪽의 일이다. 그 요구가 이번 재직 관계에 실제로 연결되는 것은 내가 받아 안는 쪽의 일이다. 나중에 목록을 제출해야 비로소 이행이 이루어진다. 뒤의 두 가지는 모두 내 쪽에서 일어나지만 같은 사건은 아니다. 아직 마쳐야 하는 요구를 갖고 있는 상태와 이미 마친 상태 사이에는 실제 행동 한 번이 놓여 있다.
일을 잘 끝냈을 때에는 이 차이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끝내지 못했을 때 드러난다. 월말이 되었는데 목록을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행동이 없었으니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먼저 성립한 요구가 있으므로 왜 이행되지 않았는지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추론을 거꾸로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실망했다는 사실만으로 애초에 내가 그에게 그 일을 해 줄 빚이 있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이행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동작인 것도 아니다. 자료에 관한 어떤 요구는 오히려 밖에 알리지 않음으로써 이행될 수 있다. 반대로 요구를 내놓는 일 자체도 행동일 수 있다. 여기서 구분하는 것은 하나의 요구가 제기되고, 실제로 연결되고, 이행되는 서로 다른 상태다. 바쁘게 움직이거나 결과물을 내놓아야만 행동이라고 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책상의 목록을 다시 펼쳐 볼 수 있다. 먼저 나를 게으르다고 판정할 필요도, 모든 요구에 도장을 찍어 줄 필요도 없다. 어떤 항목은 이번 업무에 분명히 속하지만 일정은 다시 협의해야 한다. 다른 항목은 동료의 바람이므로 내가 도울 의향이 있는지 따로 생각하면 된다. 전임자의 잘못과 관련된 항목은 당시의 과실과 지금의 확인 업무를 나누어야 한다. 서로 다른 세 문제가 더는 “당신이 맡은 일이잖아요” 한마디에 몰려 있지 않게 된다.
그제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말 하나로 일을 밀어낸 것도 아니고, 한 직책에 나 자신을 통째로 맡겨 버린 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어떤 경로를 따라 나를 찾아왔는지 먼저 확인했을 뿐이다.
원 논문과 이 글의 범위
이 세 편은 『On Accountability · Wei』를 일반 독자를 위한 산문으로 다시 쓴 글이다. 논문의 스물여섯 명제를 차례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다. 직장과 아이에 관한 장면은 모두 가상의 예시다. 원 논문은 accountability, liability, duty를 특정한 범위 안에서 구분하며, 그 구분으로 일상 언어나 법률에서 쓰이는 책임과 의무의 모든 의미를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요구를 분류했다고 정당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현실의 강제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실제 근로 조건, 퇴직 뒤에도 유지되는 비밀유지 약정, 구제 수단, 미성년자의 법적 책임을 판단하지 않는다. 한국어판은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