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죽음을 찾는 일은 용기가 아니다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는 흔한 인상보다 삶을 훨씬 무겁게 다룬다. 죽음을 재촉하거나 일부러 찾는 것은 비겁하고, 죽을 가치가 없는 일에 죽는 것은 개죽음이라고 쓴다. 살아야 할 때 살아 내는 일이 전장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
다만 근거는 생명 자체의 가치보다 명예와 천명에 있다. 값싼 죽음은 견뎌야 할 의무에서 도망쳐 손쉬운 명예를 사는 일이기에 비겁하다. 여기서는 무엇을 위해 죽을 가치가 있는지를 개인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의무가 결정한다.
대신 죽도록 놓인 아이
갈림은 니토베 자신이 전하는 한 이야기에서 생긴다. 쫓기는 주군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얼굴이 닮은 소년이 대신 목숨을 내놓는다. 니토베는 독자가 잔혹하다고 느낄 것을 알면서도, 소년이 사정을 알고 스스로 나선 희생자였다고 답한다.
하지만 동의만으로 사람이 목적이라는 자리가 복구되지는 않는다. 이 배치에서 소년의 모든 역할은 “다른 아이와 닮은 얼굴”이라는 기능으로 압축된다. 니토베 자신이 아이에게 수치심을 가르치는 힘도 기록했다. 외부 시선으로 형성된 자발성이라는 말에 논증보다 큰 무게를 맡길 수 없다.
전통 전체를 재판하지 않는다
이 비판은 무사도나 일본 문화 전체에 대한 판결이 아니다. 같은 저자에게 SAE가 깊이 동의할 생사 기준도 있다. 문제는 이 한 배치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 한 논증이다.
동시에 니토베는 담지자를 지키라는 말이 비겁한 굴복의 구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선은 희생의 크기가 아니라 양보 뒤에도 스스로 판단하고 거절하고 계속할 자리가 남는지에 있다. 수치심 없이 아이에게 규범을 전할 방법은 아직 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