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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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 · Nicomachean Ethics · 한국어 재구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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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을 하고, 그런 사람이 되다

Han Qin (秦汉)

겉으로 보이는 순환

“정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 이 말은 순환처럼 들린다. 정의로운 사람만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다면 초보자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반대로 겉으로 옳은 일만 하면 충분하다면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행동과 덕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가.

해답은 결과와 행위자의 상태를 나누는 데 있다. 문법에 맞는 문장을 우연히 만들거나 교사의 지시에 따라 썼다고 곧 문법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이 요구한 일을 두려움·무지·보상 때문에 해도 행동의 종류는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덕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다.

결과 안에는 사람이 들어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있게 행동하기 위한 조건을 더한다. 무엇을 하는지 알고, 그 행동 자체를 위해 선택하고, 안정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품성에서 행해야 한다. 놀랍게도 지식의 비중은 크지 않다. 핵심은 선택과 굳어진 상태다. 윤리교육은 정보를 많이 넣는 일과 같지 않다.

두 사람이 같은 돈을 내고 같은 약속을 지켜도 한쪽은 정의 때문에, 다른 쪽은 평판이나 감시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바깥 결과만으로 사람 전체를 재구성할 수 없다. 동시에 선한 마음도 잘못 판단한 행동을 자동으로 옳게 만들지 않는다. 행위의 적합성과 행위자의 상태는 함께 보되 한 칸에 합치지 말아야 한다.

행동 자체를 위해 선택한다는 것

‘그 자체를 위해’가 결과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 이 행동을 바로 이 행동으로 선택했는지 가리킨다. 카메라가 있을 때만 약속을 지키는 사람도 외형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을 구속력 있는 이유로 인수하지는 않았다. 감시가 사라질 때 두 선택의 차이가 드러난다.

SAE는 이 문제를 덕보다 인수와 서명의 언어로 다룬다. 올바른 문장을 반복했다고 그 판단이 자기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근거를 인수하고 질문 앞에서 그 구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서명은 이 판정의 책임자를 표시할 뿐, 그 사람의 전 품성이나 영원한 정체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형성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반복은 기계적 복사가 아니다. 행동은 무엇이 즐겁고 아프게 느껴지는지,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지를 바꾼다. 처음에는 아직 갖지 못한 형식을 교사와 법의 도움으로 수행하고, 거듭된 수행을 통해 다음 행동을 낳는 능력이 안정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쾌락과 고통을 올바르게 길들이는 일이 중요하다.

SAE도 결정의 침전이 다음 길의 비용과 가시성을 바꾼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침전을 곧 품성이라 부르면 너무 멀리 간다. SAE의 주된 단위는 책임질 수 있는 판단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 속에서 형성된 행위자 전체의 상태를 묻는다. 구조가 닿는 지점과 이론의 단위가 갈라지는 지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체크리스트는 옳은 결과를 늘리고도 판단력을 키우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무조건적인 자기표현은 기존 왜곡을 강화한다. 교육에는 과제·피드백·반복·점점 더 커지는 자기 선택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종류의 행동, 덕 있는 방식의 행동, 그런 행동을 안정적으로 낳는 사람을 나눈다. SAE는 어떤 한 결과도 사람 전체를 담지 못한다고 덧붙인다. 행동은 실제이고 형성도 실제지만, 한 행동에서 “이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라는 최종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형성의 첫걸음은 당사자 혼자 만들 수 없다. 아직 좋은 것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교사와 법, 반복되는 관습과 주변 사람의 모범이 먼저 주어진다. 이 외부 조건이 억압이 되지 않으려면, 시간이 흐른 뒤 학습자가 그 조건을 자기 이유로 재검토하고 거부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야 한다. SAE의 언어로 말하면 형성은 미래의 자기 입법 능력을 대신 행사하는 임시적 개입이다. 따라서 교육자는 ‘좋은 사람을 만들었다’고 쉽게 선언할 수 없다. 어떤 행동을 반복시켰는가뿐 아니라, 그 사람이 나중에 이유를 묻고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덕의 순환은 독립된 출발점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도움을 자율적 판단으로 전환하는 긴 과정 속에서 비로소 생산적인 순환이 된다.

그 때문에 좋은 교육은 순종의 안정성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 배운 규칙이 낯선 상황에서 충돌할 때 학습자가 이유를 재구성하고, 필요하면 교사의 판단까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덕은 외부의 형식을 정확히 복제한 상태가 아니라, 그 형식을 자기 선택으로 인수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