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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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는 어디에서 오는가

Han Qin (秦汉)

‘만약’에서 시작하기

한 사람이 조건을 넘어 새로운 목적을 만들 수 있다면 세계 자체가 완전히 닫힌 결정 체계는 아니어야 한다. 그렇다고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을 곧바로 자유의 증거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이 글의 출발점은 단정이 아니라 조건문이다. 미시적 수준에 진정한 비결정성이 있다면 그것이 거시적 주체의 여지와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SAE는 과학의 빈틈에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자유의 물리적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모든 미래가 이미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는 형이상학적 독점을 경계하는 일이다.

미시적 우연에서 거시적 여지로

양자 수준의 비결정성이 존재해도 일상 규모에서는 평균화되어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복잡계에서는 작은 차이가 증폭되어 다른 경로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시적 개방성이 거시적 개방성의 충분조건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완전한 폐쇄를 단정할 근거가 약해진다는 정도다.

생명과 뇌, 사회적 상호작용은 여러 층의 피드백을 가진다. 주체의 ‘아니오’는 하나의 입자 사건에서 튀어나오기보다 이 복잡한 층들이 현재 조건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직될 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무작위는 자유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 곧 자유로운 행동은 아니다. 주사위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책임지는 주체는 아니다. 자유에는 단순한 비결정성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유를 형성하고, 여러 목적을 비교하며, 선택을 자기 역사와 연결하고, 그 선택을 타인 앞에서 설명하고 수정할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물리적 우연은 저자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다만 어떤 저자도 원리상 불가능하다고 미리 선언하는 문을 열어 둘 수 있다. 존재론적 개방성과 윤리적 주체성 사이에는 생명, 인지, 관계, 제도의 긴 다리가 놓여 있다.

형이상학적 방화벽

이 논의의 역할은 증명서가 아니라 방화벽이다. 사람은 결국 유전자, 환경, 알고리즘의 출력일 뿐이므로 목적과 책임은 환상이라는 성급한 환원을 막는다. 동시에 양자라는 단어만 붙이면 자유가 설명된다는 신비주의도 막는다.

SAE가 지키려는 것은 설명이 멈추어야 할 성역이 아니다. 설명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설명을 근거로 한 사람의 미래와 목적을 대신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아니오’가 어디서 오는지 완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올 수 있는 자리를 제도와 관계 속에 남겨 두어야 한다.

이 글은 SAE 기초 논문 4을 일반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했다. 완전한 논증과 학술적 경계는 원 논문에 있다. How Is Subjecthood Possible. 원 논문 ↗ · 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