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SAE 기초: 인간은 어떻게 목적 그 자체가 되는가
4부 · 자유에서 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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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목적이 서로 만난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Han Qin (秦汉)

타인은 또 다른 내가 아니다

두 사람을 모두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한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진짜 목적을 가진다면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같은 도시에서 살 수 없고, 한정된 시간을 서로 다른 일에 써야 하며, 한 사람이 원하는 친밀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상대를 나와 같은 합리성의 복사본으로 보면 갈등은 오해나 미성숙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타인은 내가 더 잘 설명하면 결국 내 결론에 도달할 사람이 아니다. 그의 목적은 내 체계 밖에서 나를 제한하는 현실이다.

서로를 깎아 보는 과정

SAE에서 만남은 두 완성품의 단순한 계약이 아니다. 서로의 이유에 부딪치며 각자의 목적이 과장된 부분을 덜어 내고, 경계를 더 선명하게 하며, 때로는 전혀 새로운 공동 목적을 만든다. 이것을 상호적으로 서로를 깎는 과정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서 ‘깎는다’는 상대를 내 모양으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의 거부와 차이를 받아들여 내 목적을 다시 조각하는 일이다. 좋은 관계는 타인의 저항을 제거하지 않고 자기 수정의 자료로 삼는다. 수정이 패배가 아니라 더 정확한 자기 형성이 된다.

떠남도 정당한 답이 될 수 있다

모든 충돌이 더 높은 조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둘의 목적이 함께 실현될 수 없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떠나는 것이 서로를 목적대로 대하는 방식일 수 있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최고 가치가 되면 사랑이나 협력은 다시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다.

그래서 분기권은 관계 안에도 필요하다. 이별을 배신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상대가 다른 삶을 선택해도 기본적인 인정과 안전이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함께한 시간 전체를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끝내 남는 여지

협상과 공감 뒤에도 상대에게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남는다. SAE는 이 잔여를 해결 실패로 보지 않는다. 한 사람을 완전히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그를 대상화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좋은 공동체는 모든 차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흡수하지 않는다.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되 각자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여지를 남긴다. 두 목적의 만남이 성공했다는 표지는 완전한 합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변화를 받으면서도 어느 쪽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은 SAE 기초 논문 5을 일반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했다. 완전한 논증과 학술적 경계는 원 논문에 있다. How Is the Inter-Ontological Possible. 원 논문 ↗ · 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