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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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 · Buddhist Interfaces · 한국어 재구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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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서로 스며든 뒤에도 타인은 남는가

Han Qin (秦汉)

인드라망은 단순 연결망이 아니다

화엄의 가장 매혹적인 이미지는 인드라망이다. 셀 수 없는 구슬이 서로를 비추고, 한 구슬의 반사 속에 다시 전체 그물의 반사가 끝없이 들어 있다. 이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로 줄이면 너무 약하다. 현대 네트워크의 노드는 정보를 주고받아도 지연과 차단과 사각을 가진다. 인드라망은 모든 사물이 다른 모든 것 안에 나타나며 일과 다, 총과 별의 차이가 사라지지 않으면서 걸림이 없다고 말한다.

SAE와 나란히 놓을 때 질문은 양쪽 모두 관계를 중시하는가가 아니다. 완전한 관계가 내가 거둘 수 없는 타인의 바깥을 남겨야 하는가이다. 가장 높은 관계의 자리에서 두 틀은 만났다가 반대 방향으로 간다.

오교가 갈라지는 자리

화엄 오교인 소승교·대승시교·대승종교·돈교·원교는 교의의 깊이를 분류한 것이지 시간 순서나 인격 등급표가 아니다. DD와의 연결은 엄밀한 대응일 수 없다. 자기 해탈의 구조를 13DD와 14DD 주변에, 구체적 타인을 향한 관계를 15DD 이후에 놓아 볼 수는 있지만 불교 수행위를 DD 칸으로 환원할 수 없다.

갈림은 최고점에서 생긴다. 원교를 곧 16DD라 부를 수 없다. 둘 다 자기 목적만을 넘어 주체 사이의 고차 관계를 다룬다. 화엄은 사사무애의 상즉상입으로 전체를 완성하고, SAE는 쌍방향 비의심 속에서도 타인이 다 파악되지 않음을 지킨다. 높고 낮음이 아니라 종결 위상이 다르다.

바깥이 없음과 바깥은 있으나 외력이 없음

화엄 법계연기는 세계 밖에서 만물을 시동하는 제1원인을 두지 않는다. 만법은 하나의 진법계와 법성 안에서 서로 성립한다. ‘시작 없음’은 근거 없음이 아니라 외부 시동자 없음이다. 화엄은 충만한 현전에서 출발하고 원교의 완성을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SAE는 거의 반대다. 존재 이전의 부정인 Negativa라는 형식적 출발점이 있으나 닫힌 종점은 없다. 모든 구성은 나머지를 밖에 남기고 16DD도 어느 한쪽이 혼자 차지하지 못하는 관계 극한이다. 화엄에는 외부 제1원인이 없지만 말할 수 있는 최고가 있고, SAE에는 형식적 시작이 있지만 전체가 닫히는 끝이 없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의 덜 발전한 버전이 아니다.

상입은 상호 이해와 같은가

SAE가 타인을 목적으로 인정한다고 타인의 목적 내용을 안다는 뜻은 아니다. 15DD에서 다른 목적의 원천이 있음을 확인해도 그를 모의하는 틀은 자기 14DD를 빌린다. 모델이 정교할수록 구조 표지에 닿았을 뿐 타인의 안쪽 내용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16DD도 두 사람을 투명하게 만들지 않는다. 서로를 참 주체로 인정하기 때문에 상대는 일방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나는 너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은 오히려 상대를 내 모델 안의 풍부한 객체로 다시 낮출 수 있다.

화엄은 다른 방향에서 답한다. 사사무애는 내가 상대를 잘 표상한다는 말이 아니라 각 사물이 전체의 상입 속에서 온전히 나타난다는 말이다. 차이는 남지만 일과 다가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화엄은 타자를 전면적 상입으로 완성하고, SAE는 전면적 포섭을 거부함으로써 타자를 완성한다.

인드라망은 절반까지만 맞는다

SAE도 주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관계가 노드에 되먹임되는 그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무한 상호반사에서 대응은 끊긴다. SAE의 반성은 유한하다. 한 노드가 만든 전체 모델은 구성이라 가림이 있고, 그 가림을 표시한 새 구성에도 다시 나머지가 있다. 어느 노드도 손실 없이 전체 그물을 내부화하지 못한다.

화엄은 왜 참 주체가 외부성을 필요로 하느냐고 묻는다. 차이를 지키면서 걸림 없이 함께 현전할 수는 없는가. SAE는 모든 것이 전체에 상입할 때 구체적 해석자가 ‘전체’의 이름으로 다른 노드를 대신 말하지 않는지 묻는다. 화엄의 육상원융과 SAE의 나머지 보존은 각자의 방어지만 상대 공리를 판결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서로 스며든 뒤에도 타인은 남는가. 화엄은 상입이 타인을 지우지 않고 자기 차이로 무애 전체에 들어오게 한다고 답한다. SAE는 일방적 포섭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전혀 없다면 참 주체와 아주 풍부한 객체 모델을 구분할 수 없다고 답한다. 접면의 역할은 이 봉합선을 닫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관계’에 서로 다른 두 완전한 뜻이 있음을 보이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