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력은 어디로 들어오는가
수직으로 나감과 옆으로 건넘
앞의 다섯 접면은 서로 크게 달라도 하나의 전제를 공유했다. 변형은 주체 쪽에서 일어난다. 유식은 전의하고, 선은 머묾을 깨고, 중관은 자성 집착을 풀며, 천태는 근기에 맞추어 가르치고, 화엄은 법계에 들어간다. 외부 조건이 도와도 결정적 변화는 수행자 구조에서 생긴다.
정토는 이 전제를 뒤집는다. 선도 계통의 강한 독법에서 범부는 자력으로 생사를 벗어날 수 없다. 횡초를 성취하는 힘은 수행자가 쌓은 능력이 아니라 아미타불 본원의 타력이다. 신·원·칭명은 수행자의 행위지만 생사를 넘어 보토에 왕생하게 하는 힘은 그 행위에 속하지 않는다.
용수의 『십주비바사론』은 불퇴전으로 가는 난행도와 이행도를 나누고, 담란은 이를 자력과 타력의 구분으로 굳힌다. 난행도는 육로를 걷는 것, 이행도는 배에 실려 가는 것과 같다. 정토는 같은 사다리를 몇 칸 덜 오르는 길이 아니다. 힘의 근원이 사다리 밖에 있어 층별 계산이 건넘을 지배하지 않는 횡초다.
함양은 왜 타력이 아닌가
SAE에서 가장 가까운 개념은 함양이다. 교사·관계·제도·의례는 주체가 보고 견딜 수 있는 것을 바꾸고 이전에 없던 다리를 놓는다. 그러나 함양은 조건을 바꾸며 타인을 대신 구성하지 않는다. 다리는 남이 놓아도 건너는 이는 주체다. 성공한 함양은 외부 조정자가 끝내 필요 없어지게 한다.
타력은 다른 자리에 작동한다. 조건만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건넘 자체를 본원에 돌린다. 수행자가 염불하지만 왕생은 그 행위가 자기 공덕을 축적해 낳은 산출물이 아니다. 정토는 더 좋은 다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원력으로 실어 나른다. 이를 ‘아주 강한 SAE 함양’이라 하면 이미 정토를 자력 이론으로 번역한 것이다.
행은 건넘이 아니다
정토가 수동성만 뜻하지는 않는다. 삼심·오념문·발원·칭명은 실제 행이다. 다만 행위와 성취의 귀속이 다르다. “나무아미타불”을 SAE는 주체 쪽 작동으로 기록한다. 주의와 습관이 바뀌고 다리를 가진 구성이 형성된다. 정토는 같은 칭명을 자기 구성의 공덕이 아니라 명호와 본원 힘을 받아들이는 행으로 읽을 수 있다.
“내가 90퍼센트 자기파기를 하고 부처가 마지막 10퍼센트를 채운다”로 합칠 수 없다. 그러면 정토는 덜 완성된 SAE가 된다. 칭명은 양쪽에서 각각 완전하다. SAE에서는 완전한 주체 작동이고 정토에서는 완전한 수용의 행이다. 현상이 아니라 효력의 근원이 갈린다. 임종의 십념왕생은 자력 공을 극도로 얇게 하여 타력을 가장 선명하게 만든다.
SAE가 순수 수용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
SAE에는 강한 발생 공약이 있다. 주체의 상태로 기록 가능한 것은 구성이고, 모든 구성은 이전 구조가 부정과 자기파기를 거쳐 만든 것이다. 외부 관계는 조건을 바꾸지만 주체 쪽 시작점이 전혀 없는 구성을 주체 안에서 완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외력이 건넘을 완성하는 순수 수용은 SAE 안에 자리가 없다. 수용이 주체 상태로 말해지는 순간 이미 구성이고, 구성이면 자력이 0이 아니다. 새 용어 하나가 빠진 문제가 아니라 공리의 부담이다. ‘타력 층위’를 더하면 파기-구성 전체의 발생론이 바뀐다. 반대로 정토도 본원을 수행자 내부의 강력한 심리 기제로 줄일 수 없다. 그러면 구제가 다시 자력에 회수된다.
불가능이 입구가 될 때
선도의 이종심신은 자신이 생사를 벗어날 인연이 없는 죄악생사범부라는 믿음과 아미타불 본원이 중생을 섭수한다는 믿음을 함께 둔다. 여기서 ‘할 수 없음’은 훈련이 모자란 상태가 아니라 타력 구조의 입구다. 자력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본원을 받아들이는 길이 유일한 실제 방향이 된다.
SAE도 ‘할 수 없음’에서 다음 길을 열곤 한다. 구성은 나머지 없이 닫힐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불가능은 형식만 가깝다. 정토는 범부가 자력으로 구제를 성취할 수 없음을 본원으로 잇고, SAE는 어떤 구성도 가린 것을 다 거둘 수 없음을 다음 자기파기로 잇는다. 죄악범부를 ‘나머지가 많은 주체’로 번역하면 두 전통을 모두 오해한다.
화엄은 바깥없는 전체를 말했다. SAE는 바깥은 있지만 힘은 없다고 한다. 나머지는 외부에 남아도 주체 대신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는다. 정토는 바깥도 있고 힘도 있다고 한다. 본원은 수행자 밖에서 건넘을 성취한다. 타력은 정토에서 본원으로 들어오며 바로 그 외부성이 구제다. SAE에는 들어올 자리가 없다. 하나는 “내가 완성하지 않은 완성이 있다”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일어난 완성은 내 구성 없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봉합하지 않을 때 두 주체성의 완전한 차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