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01

생명의 경계: 한 번도 확정된 적 없는 정의

새로운 발견이 거듭 정의를 밀어낼 때,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Han Qin · 읽는 데 약 40분 · 공개일

1. 방향을 바꾸면 더는 뿔이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 무리 가운데 하나는 그린란드 남서부, 이수아 일대에 있다.

그곳에 37억 년 된 암벽이 있다. 다만 암석에 ‘37억 년’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먼저 짚고 가야 한다. 땅속 깊이 묻혔고, 고열에 달궈졌고, 짓눌렸으며, 그러고 나서 다시 지표로 올라왔다는 뜻이다. 이 정도로 시달렸다면 자잘한 형상은 대부분 뭉개지고도 남는다.

그러니 이런 암석에서 센티미터 단위의 반듯한 구조가 보인다는 것부터가 드문 일이다. 2016년, 한 연구팀이 그 암벽에서 새로 드러난 부분을 살피다가 작은 뿔 모양 구조들을 발견했다. 높이는 1~4센티미터. 같은 층 안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연구팀은 이것을 생물이 남긴 흔적으로 보았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이다.

오늘날 얕은 바다에는 해저에 얇은 양탄자처럼 층을 이루는 미생물이 산다. 그 층은 물속에서 가라앉는 모래와 진흙 알갱이를 붙잡는다. 알갱이에 덮이면 그 위로 한 겹 더 자라고, 다시 알갱이를 붙잡고, 또 위로 자란다. 해마다 이 일이 되풀이되면 미생물 층 아래에 겹겹이 쌓인 돌혹이 생긴다.

이 돌혹을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한다.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만에서는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린란드의 작은 뿔들이 정말 이런 식으로 자란 것이라면, 37억 년 전 그곳에는 이미 미생물이 양탄자를 펼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논쟁거리가 되었을까.

현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장 이른 생명 기록은 약 35억 년 전의 것이다. 이 뿔들이 인정되면 그 기록을 단번에 2억 년 앞당기게 된다. 더구나 다른 증거가 거의 없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그 시간이 중요하다. 지구 자체의 나이는 45억 년 남짓이고, 초기에는 격렬한 천체 충돌도 겪었다. 따라서 ‘생명은 아무리 빨라도 언제부터 있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시간의 폭은 애초부터 좁다. 한 걸음씩 더 과거로 갈 때마다 화학적 과정에 허용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연구팀이 내놓은 근거는 모양만이 아니었다. 암석의 화학 성분과 퇴적 무늬에서도 몇 가지 보조 증거를 찾아냈고, 이 암석들은 당시 얕은 바다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얕은 바다는 오늘날 바로 그런 미생물 양탄자가 가장 흔히 발견되는 곳이다.

2년 뒤 다른 연구팀이 옆 암벽으로 가서 같은 구조를 다시 조사했다. 이번에는 표면만 보지 않았다. 세 방향에서 뿔의 입체적인 모양을 살폈다. 결론은 정반대였다.

한 방향으로 자르면 삼각뿔처럼 보였다. 그런데 거의 직각인 다른 방향으로 자르면 똑같은 것이 길게 뻗은 능선으로 바뀌었다. 그 능선이 뻗은 방향은 암석 전체가 과거에 눌려 변형된 방향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 자라서 생긴 것이 아니라 눌려서 생긴 것일 수 있었다. 더 직접적인 문제도 있었다.

어떤 뿔은 끝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생물 양탄자는 위로만 자란다. 아래로 난 끝은 이런 성장 방식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처음 연구팀도 다시 답했다. 두 번의 조사에서 시료를 채취한 위치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암석은 부분마다 받은 힘이 달랐고, 나중에 유체가 스며들어 모습을 바꾼 곳도 있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불규칙한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맞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느냐다. 양쪽 모두 암석의 나이가 37억 년이라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 이 뿔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데에도 의심이 없다. 두 팀이 보고 있는 것은 같은 암벽에서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의 시료다.

갈림길은 그보다 앞에 있다. 어떤 모양이어야 생명이 남긴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생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한 번도 정해진 적이 없다.

2. 123개의 정의

정말로 세어본 사람이 있다. 2011년, 한 연구자가 이미 발표된 생명의 정의를 하나씩 모았다. 모인 것은 123개였다.

그다음 그는 우직하지만 쓸모 있는 일을 했다. 각 정의에서 핵심 낱말을 골라내고, 뜻이 비슷한 것끼리 묶어, 개념이 몇 덩어리로 남는지 살폈다.

어떤 개념들이 자주 함께 등장하는지, 어떤 개념이 다른 개념을 포함하는지도 비교했다. 모든 정의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가장 작은 핵심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자기 복제와 변화.

그는 여기서 아주 짧은 정의를 제안했다. 생명은 변이를 동반하는 자기 복제다. 123개가 한 문장으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이어서 벌어진 일이 문제를 더 잘 드러낸다. 이듬해 같은 학술지가 이 제안에 대한 여러 응답을 모았다. 그런데 응답들마저 한곳으로 모이지 않았다.

역사상 등장한 모든 정의를 똑같은 무게의 표본으로 다루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개념이 자주 나온다고 해서 생명 이론에서 더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낱말의 빈도로 설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짧을수록 좋다’는 목표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나치게 짧은 정의는 조직 방식과 대사를 버리는데, 그것들이야말로 생명의 기원을 연구할 때 가장 필요한 것들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의가 123개다. 거기에 그 123개를 어떻게 다룰지를 둘러싼 이견까지 더해진다. 그렇다면 이 정의들을 펼쳐놓으면 무엇이 보일까. ‘정의가 많다’보다 훨씬 구체적인 것이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는 것을 생명의 최소 조건으로 삼았다. 식물에는 잘 맞는 선이다. 그러나 휴면 중인 포자에 이르면 흐릿해진다. 포자는 수십 년 동안 먹지도 자라지도 않다가 다시 활동할 수 있다. 바이러스에 이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1800년 무렵 비샤는 생명이란 죽음에 저항하는 모든 기능의 총합이라고 말했다. 힘 있는 말처럼 들린다. 문제는 ‘죽음’ 역시 대개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정의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슈뢰딩거는 생명체가 환경에서 질서를 받아들여 평형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피한다고 말했다. 널리 알려진 문장이지만 두 가지 난점이 있다. 하나는 그 자신이 같은 책의 주석에서, 열역학의 언어로 엄밀하게 말하려면 자유 에너지라고 해야 한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불꽃도 그 일을 할 수 있고 허리케인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 다 물질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아들여 내부의 국소적인 질서를 유지한다. 이 말로는 생명만을 가르는 선을 그을 수 없다.

홀데인은 더 직접적이었다. 그는 효소와 박테리오파지와 생명 사이에 연속적인 이행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파지는 효소보다 ‘생명에 한 걸음 더 가깝다’고 했지만, 완전히 살아 있다고 부르는 것은 과장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경계를 긋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일부러 긋기를 거부한 것이다.

다른 부류의 정의는 관점을 바꾼다.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대신 ‘스스로를 어떻게 조직하는가’를 묻는다. 이를테면 공장이 하나 있는데, 그 공장의 생산품이 바로 공장 자신의 기계와 건물인 것이다. 담장까지 스스로 쌓고, 무엇 하나가 망가지면 새것을 만들어 갈아 끼운다.

세포가 바로 그렇다. 막을 스스로 만들고, 막을 만드는 효소도 스스로 만든다. 이 부류의 설명은 생명을 우선 조직상의 닫힌 순환으로 본다.

이 설명은 ‘한 개체가 어떻게 자신을 유지하는가’를 다룰 때 강하다. 그러나 집단 수준의 유전적 변이를 포함하지 않고, 끝이 미리 정해지지 않은 진화도 포함하지 않는다. 세포 하나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세포들의 집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는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나왔다. 생명은 스스로를 유지하며 다윈식 진화를 할 수 있는 화학 체계다. 1992년 이 기관의 한 실무진이 연구의 틀을 잡기 위해 내놓은 정의다. 시료를 앞에 놓고 살아 있는지 아닌지를 판정하려고 만든 정의는 아니었다.

‘진화’라는 말을 읽자마자 노새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노새는 새끼를 낳지 못한다. 이 문장에 따르면 그래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일벌도 마찬가지다. 대다수는 평생 번식하지 않는다.

이 정의가 내놓는 답은 이렇다. 진화하는 것은 한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다. 노새는 말과 당나귀에게서 나온다. 말과 당나귀가 계속 번식하고 변화하는 한, 노새는 생명의 편에 있다. ‘스스로를 유지한다’는 말도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 모든 개체가 원료를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화를 유지하는 정보 체계가 그 체계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비판은 가장 멀리 나아간다. 철학자 캐럴 클리랜드는 물을 비유로 들었다. 화학이 등장하기 전에는 눈에 보이는 성질로 물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투명하고, 흐르고, 무언가를 녹인다.

이 기준에 따라 연금술사들은 질산도 물의 범주에 넣고 ‘강한 물’이라고 불렀다. 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은 더 나은 정의가 아니었다. 하나의 이론이었다.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이루어진다.

생명도 그럴 수 있다. 생명에 관한 보편적인 이론이 나오기 전에 지구 생명의 겉으로 드러나는 성질로 정의를 내리는 것은, ‘투명하고 흐른다’는 특성으로 물을 알아보려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로 새로운 표본은 문밖에 세워두고, 관계없는 것들은 안으로 들여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명이 애초에 물처럼 하나의 종류를 이루는 것인지조차 지금은 판단할 수 없다. 손에 쥔 사례가 지구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8절에서 다시 돌아온다. 정의가 지금껏 닫히지 않은 것은, 누구도 진지하게 닫아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닫으려고 할 때마다 안에 있어야 할 것을 빠뜨리거나,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을 들여놓기 때문이다.

3. 그 선 위는 처음부터 비어 있지 않았다

빠뜨린 것과 잘못 들여놓은 것은 머릿속에서 상상해낸 경계 사례가 아니다. 이름이 있고, 발견된 연도가 있고, 측정된 유전체의 크기가 있다. 그리고 지금 양쪽에서 같은 선을 향해 밀려들고 있다.

먼저 생명의 편에서 아래로 내려가보자. 1892년, 담배 모자이크병의 병원체가 세균을 걸러내는 여과기를 통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균보다 작다는 뜻이었다. 6년 뒤 다른 연구자는 이것을 보통의 세균과는 다른, 전파되는 인자로 이해했다. 이후 한 세기 동안 바이러스는 생명 정의의 가장자리에 걸린 채로 있었다.

바이러스를 생명으로 보자는 근거는 대사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대사는 없다. 근거는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고, 유전되는 변이를 일으키며, 자연선택을 거치고, 오랜 세월 숙주와 함께 진화해왔다는 데 있다.

반대하는 이유도 그만큼 구체적이다. 바이러스 입자에는 스스로 단백질을 만드는 기계가 없고, 독립적인 번역 체계가 없으며, 대다수는 자신을 유지할 에너지 대사도 없다. 알맞은 숙주에서 떨어져 나오면 복제 한 번조차 끝까지 마칠 수 없다.

‘스스로를 유지하는 화학 체계’라는 강한 해석을 따르면 바이러스는 생명 밖에 있다. ‘유전하고 다윈식 진화에 참여한다’는 약한 해석을 따르면 생명 안에 있다. 이것은 사실을 둘러싼 이견이 아니다. 양쪽이 가진 사실은 완전히 같다. 다른 것은 선을 어디에 긋느냐다. 더 아래에는 더 단순한 것이 있다.

1971년, 감자의 한 질병에서 바이러스보다도 단순한 병원체가 발견되었다. 단백질 껍질도 없는 핵산 한 가닥이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고리 모양이었고, 염기는 모두 합쳐 약 359개였다. 바이로이드라고 한다. 자신을 복제할 때 숙주의 효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서열에는 변이가 생기고 선택이 작용한다.

‘복제와 변이’면 충분하다면 생명에 아주 가깝다. 자율적인 대사나 스스로 단백질을 만드는 능력을 요구한다면 분명히 아니다. 더 내려갈 수도 있다.

1982년, 양의 스크래피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성 감염 입자를 가리켜 프리온이라는 말이 제안되었다. 초기 실험에서는 핵산을 파괴하는 처리를 해도 그 감염성이 유난히 잘 버텼다. 애초에 핵산이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생명의 경계를 묻는 문제에서 프리온은 앞의 두 경우보다 더 날카롭다.

프리온에는 틀을 따라 이루어지는 복제가 있다. 잘못 접힌 단백질 하나가 정상적인 단백질을 같은 잘못된 모양으로 접어버린다. 계통에 따른 차이도 있고, 선택도 있고, 적응도 있다.

핵산 유전체는 없다. 막도 없다. 대사도 없다. ‘복제와 변이’를 생명의 전부로 삼으면 프리온은 다루기가 몹시 어려운 반례가 된다.

여기까지는 생명의 편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위로 자라오는 것들이 있다. 오랫동안 바이러스와 세포를 나누는 데에는 편리한 경험칙이 세 가지 있었다.

바이러스는 세포보다 작다.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극도로 단순하다. 둘 사이에는 복잡성의 뚜렷한 단층이 있다. 이 세 가지가 20년 사이에 하나씩 깨졌다.

1992년, 잉글랜드에서 폐렴의 발생을 조사하던 연구자들이 냉각탑 물에서 미생물 하나를 분리했다. 보통 현미경으로도 보일 만큼 컸고, 염색해도 세균처럼 물들었다. 그래서 세균으로 취급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갔다.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아본 것은 2003년이었다.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미미바이러스, 미생물을 흉내 내는 바이러스라는 뜻이다. 2004년에 발표된 전체 유전체는 약 118만 염기쌍,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는 약 911개였다. 세포 안에 기생해야만 살아가는 여러 세균보다도 유전체가 컸다. 예전에는 좀 더 ‘세포다운’ 것으로 여겨지던 유전자까지 지니고 있었다.

2013년에 발표된 판도라바이러스 가운데 하나는 유전체가 적어도 250만 염기쌍이었다. 예측된 유전자의 상당수는 알려진 생물 어디에서도 친척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가장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은 시베리아의 동토에서 되살아난, 항아리 모양의 피토바이러스다.

입자 길이는 약 1.5마이크로미터. 몸집으로는 많은 세균을 넘어선다. 그런데 유전체는 약 61만 염기쌍에 불과해 오히려 판도라바이러스보다 작다. 몸집과 유전자 수는 서로 따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 세균 쪽은 아래로 줄어들고 있었다. 오랫동안 인용된 최소 세균 유전체 기록에는 약 15만 9천 염기쌍인 사례와, 약 11만 2천 염기쌍에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가 137개로 예측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2026년이 되자 기록은 눈에 띄게 더 작아졌다. 멸구 몸속에 사는 공생 세균의 한 균주는 유전체가 5만 141염기쌍에 불과했다. 기능을 식별할 수 있는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는 68개만 남아 있었다. 유전자 68개. 비교해보자. 대장균은 약 4천 개다. 사람의 세포에는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가 약 2만 개 있다.

이 세균에는 68개뿐이다. 그래도 세포 구조가 있고,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세포의 기계가 있다. 다만 대사 기능의 대부분을 숙주에게 맡겼다. 이렇게 한 장면이 펼쳐진다. 바이러스 쪽은 위로 자라고, 세균 쪽은 아래로 줄어든다. 양쪽 모두 같은 선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선 위에는 빈자리가 없다. 단 하나도 없다. 크기, 유전자 수, 자율성, 대사, 번역 체계. 양쪽을 나누어주리라 기대했던 모든 기준은 중간 지대에서 두 편에 걸쳐 있는 실례를 만난다. 이 선은 다 그어놓은 뒤에 침식된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그어낸 적이 없었고, 양쪽의 것들은 줄곧 거기에 있었다.

4. 조건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정의에서 눈을 돌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때를 보자.

태양계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약 45억 6천만여 년 전이다. 지구는 한순간에 생겨나지 않았다. 수천만 년에 걸쳐 덩어리들이 서로 부딪치고 쌓여 만들어졌다. 도중에는 거대한 충돌도 한 번 겪었다. 화성만 한 천체가 들이받았고, 튀어나간 파편들이 모여 달이 되었다.

지구의 맨 처음 5억여 년을 지질학에서는 명왕누대라고 한다.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저승에서 따왔다. 이름을 붙인 사람은 당시 지표를 지옥으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 상상이 맞았을까. 지금도 세 가지 그림이 나란히 존재한다.

첫 번째는 지옥 그 자체다. 달을 만들어낸 거대한 충돌 직후에는 지표가 잠시 녹아 온통 마그마의 바다가 될 수 있었다. 그 위로는 고압의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짓누르고 있었다. 다만 이것은 충돌이 막 지나간 한동안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훨씬 온화하다. 지구에는 일찍부터 바다가 있었다는 그림이다. 주요 증거는 아주 작은 광물에서 나온다. 지르콘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르콘 한 알은 고운 모래알보다도 작지만 몹시 질기다. 모암이 거듭 가열되고, 눌리고, 풍화되고, 산산이 부서져도 지르콘 결정은 온전하게 남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자신이 결정으로 굳던 순간의 화학 정보를 수십억 년 너머로 가져간다. 이미 사라진 암석에서 정보를 건져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인 셈이다.

서오스트레일리아의 잭힐스에서 나온 지르콘들을 측정한 연구가 있었다. 가장 오래된 알갱이의 나이는 44억 년이었다. 그런데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동위원소도 여기서 잠깐 설명해두자. 뒤에서 계속 쓰게 될 개념이다.

같은 원소에도 무게가 다른 종류가 있다. 중성자가 하나 더 많거나 적은 것이다. 화학적 성질은 거의 같지만, 많은 물리·화학적 과정에서 가벼운 쪽이 조금 더 빨리 움직이고 조금 더 쉽게 반응한다. 그래서 어떤 과정을 거치고 나면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비율에 측정할 수 있는 어긋남이 생긴다.

이 어긋남이 그 과정이 남긴 지문이 된다. 지르콘으로 돌아가자. 그 산소 동위원소 비율은 지구 깊은 곳에서 유래한 전형적인 값보다 높다. 설명은 이렇다. 지르콘의 모체가 된 마그마에 지각 물질이 섞였고, 그 지각 물질은 그보다 앞서 낮은 온도의 지표 환경에서 물과 성분을 주고받았다.

이 증거가 뒷받침하는 것은 지르콘이 결정화되기 전에 지표 어딘가에서 이미 낮은 온도의 액체 물이 참여하는 암석 순환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 하나로 44억 년 전에 오늘날 규모의 바다가 지구 전체에 펼쳐져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문은 후대의 변질에 집중된다. 이 지르콘들은 수십억 년 동안 방사선 손상과 균열 속 유체의 영향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동위원소 기록이 다시 쓰였다면 높은 값은 원래의 신호가 아니다. 그러나 뒤이은 미세 영역 분석에서는 높은 값을 보이는 중심부 상당수가 눈에 보이는 변질 영역과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 ‘모두 오염이다’라는 설명으로도 지금의 자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세 번째는 두꺼운 온실가스에 싸인 세계다. 이유는 태양에 있다. 젊은 태양은 지금보다 약 30퍼센트 어두웠다. 그 밝기라면 지구는 원래 얼음덩어리로 얼어붙었어야 한다.

바다가 얼지 않으려면 이산화탄소와 메탄, 혹은 구름이 어떤 식으로든 조합되어 보온을 해주어야 한다. 세 가지 그림은 같은 증거를 공유하며 지금도 공존한다. 대기가 환원성이었는지 중성이었는지를 두고는 이견이 더 직접적이다. 화학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1953년, 시카고대학교의 밀러라는 대학원생이 그 유명한 실험을 했다. 유리병 안에 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를 가두고 전기 불꽃으로 번개를 흉내 냈다. 이 기체들은 강한 환원성을 지닌다. 쉽게 전자를 내어주는 물질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방전 첫날부터 용액에 분홍빛이 돌았다. 일주일 뒤에는 짙은 붉은색이 되었고, 글리신과 알라닌 같은 아미노산이 검출되었다. 단백질을 쌓는 벽돌이 기체 한 병에서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당시에는 이 기체 조합을 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뒤에 다른 연구자들이 명왕누대 지르콘 속 세륨이라는 원소의 산화 상태를 이용해 당시 마그마의 산화 정도를 거슬러 추정했다. 그 결과 후대의 맨틀에 비해 극단적으로 환원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결과가 뒷받침하는 것은 수증기, 이산화탄소, 질소가 주성분인 화산 가스 방출의 그림이다. 훨씬 중성에 가까운 대기다.

그렇다고 중성 대기가 종착점인 것도 아니다.

지구에 더해진 운석 물질의 성분에 따라서는 국지적으로, 또는 잠시 동안 강한 환원성 대기가 생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또 다른 연구팀은 중성에 더 가까운 조건에서 방전 실험을 다시 했다. 방전과 함께 생기는 산화성 물질만 제거해도 검출되는 아미노산이 크게 늘었다. 알고 보니 문제의 일부는 생성물이 자기 반응의 부산물에 의해 파괴된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논쟁은 ‘밀러가 틀렸다, 초기 대기는 절대로 환원성이 아니었다’가 아니다. 지구 전체에 오래 유지된 대기는 그렇게 강한 환원성이 아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충돌과 화산 분연, 국지적인 열수는 시간과 공간이 한정된 환원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그 결과는 수율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산화·환원 상태가 바꾸는 것은 사용 가능한 원료의 목록 전체다. 강한 환원성 대기는 대기 중에서 곧바로 시안화수소 같은 원료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중성에 가까운 대기는 국지적인 환경, 철의 화학, 운석이 들여오는 물질에 더 의존한다. 이 조건들을 나중의 그 모습으로 조합해놓은 누군가는 없었다.

맨틀의 산화 정도는 선택된 것이 아니다. 태양의 밝기는 합의된 것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운석 물질이 쌓일지를 두고 투표한 사람도 없다.

의도는 없다. 선호도 없다. 협상도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런 조건들이 화학적 가능성의 공간에 한 번 칼을 대어, 일부는 남기고 다른 일부는 쳐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이런 가르기를 ‘깎아내기’라고 부른다. 보통 깎아낸다고 하면 끌을 쥔 사람을 떠올린다. 이 한 번의 칼질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생명 자체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뒤에 나올 모든 오래된 기록을 어떻게 읽을지 결정하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1974년, 연구자 세 명이 아폴로가 가져온 월석의 동위원소 연대 가운데 많은 수가 약 39억 년 전에 몰려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를 근거로 당시 달에 짧고 격렬한 충돌의 집중기가 있었다고 제안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 설명이 표준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2005년에는 거대 행성들의 궤도가 재배열되는 모형과도 연결되었다. 이른바 달의 후기 대격변이다.

지난 십여 년 사이 이 설명은 뚜렷하게 약해졌다. 아폴로 시료에는 같은 충돌 분지에서 튀어나온 물질이 여러 곳에 섞여 있었을 수 있다. 반면 달 운석과 연대를 다시 측정한 결과에서 나타나는 연대 분포는 훨씬 넓다.

아폴로가 간 곳은 달의 앞면뿐이었다. 창어 6호가 2024년에 뒷면에서 가져온 시료도, 2026년에 보고된 분석에서 연대가 39억 년 전에 몰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또 다른 모형 연구다.

그 연구는 이렇게 지적한다. 오래전 충돌로 녹았던 물질은 후속 충돌에 계속 파괴되고, 그 안의 동위원소 시계도 거듭 영점으로 돌아간다. 이런 조건에서는 실제 충돌 빈도가 매끄럽게 감소했더라도, 지금 남은 시료의 연대 분포에는 마치 정점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봉우리를 만든 것이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보존될 확률일 수도 있다. 이 문장은 따로 기억해두어야 한다. 충돌 역사의 자잘한 대목이 아니라, 모든 오래된 기록에 통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분포 모양에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와 ‘무엇이 남을 수 있었는가’가 섞여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언제나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기원 문제로 돌아오면 이것은 시간에 여유를 주는 소식이다. 그 정점이 없었다면, 39억 년 전에 모든 것을 백지로 돌려놓은 폭격이 있었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44억 년 전부터 액체 물이 있었다는 지르콘의 이야기를 더하면, 생명에 허용된 시간은 훨씬 길었을 수 있다. 충돌에 가로막힌 적은 있어도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충분했을 가능성을 말해줄 뿐, 그때 이미 생명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5. 갑·을·병, 증거의 세 층위

그 뿔들의 문제로 돌아가자. 어떤 기록이어야 증거로 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가장 이른 생명의 증거를 세 층위로 나눈다. 기준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단단히 버티느냐다.

갑 층위는 논란이 가장 적은 것들이다. 서오스트레일리아의 오래된 지괴에는 약 34억 8천만 년 전의 지층군, 드레서층이 있다. 그 설득력은 어느 한 가지 ‘세균을 닮은 모양’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독립된 여러 종류의 단서가 한데 모인 데서 나온다. 스트로마톨라이트 같은 층리, 탄소를 함유한 물질, 황과 탄소의 동위원소 이상, 미세한 구조들이다. 2017년의 한 연구는 이곳에서 간헐천이 남긴 암석도 찾아냈다. 적어도 일부 환경은 육상의 화산 온천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같은 지괴에는 약 34억 3천만 년 전의 지층군도 있다. 스트렐리풀층이다. 여기서는 옆으로 넓게 펼쳐진 스트로마톨라이트 암초가 나왔다. 이 논증의 핵심 역시 ‘뿔 하나가 현대의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닮았다’는 데 있지 않다.

뿔 모양, 돔 모양, 층 모양을 비롯한 여러 형태가 같은 퇴적 체계 안에 규칙적으로 분포한다는 데 있다. 여러 층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데 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무기적 침전 과정으로 모든 형태와 그 공간적 관계를 동시에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갑 층위를 무리 없이 표현하면 이렇다. 약 35억~34억 8천만 년 전에는 이미 미생물 군집이 퇴적 구조와 탄소를 함유한 기록을 남겼다는 데 강한 합의가 있다. 논쟁은 구체적인 환경과 대사로 옮겨갔다. 당시 지구에 생명이 있었는지 자체를 다투는 것이 아니다.

을 층위는 기록 자체는 존재하지만 생물학적 해석에는 실질적인 이견이 있는 것들이다. 이수아의 37억 년 이상 된 해저 퇴적암에서 지름 약 2~5마이크로미터인 흑연 탄소 미립자를 보고한 연구가 있다. 여기서는 먼저 탄소 동위원소가 왜 생명의 단서가 될 수 있는지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뒤의 이야기는 여기에 달려 있다.

생물은 탄소를 흡수할 때 가벼운 쪽을 더 잘 받아들인다. 그래서 생물이 만든 유기물에서는 탄소의 가벼운 종류와 무거운 종류의 비율이 주변 무기 탄소와 달라진다. 가벼운 쪽이 더 많다.

이 어긋남은 암석에서도 측정할 수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그 탄소가 정말 당시 생물이 남긴 것이어야 한다. 나중에 스며든 것이어서도 안 되고, 비생물적 과정이 같은 어긋남을 만들어낸 것이어서도 안 된다.

그 흑연으로 돌아가자. 탄소 동위원소가 가벼운 쪽으로 치우쳐 있어, 원래의 유기물이 고온에서 변질된 뒤 남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2025년에는 광물 알갱이 안에 싸여 보호된 흑연을 제자리에서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어긋남은 기존에 측정된 것보다 조금 더 컸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그만큼 구체적이다.

초기의 고온·고압 환경만으로도 탄산염의 분해와 환원, 유체에서의 침전, 변성 반응을 통해 탄소 동위원소가 가벼운 쪽으로 치우친 흑연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같은 지문을 비생물적 과정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을 층위에서 더 유명한 사례는 미세한 실 모양 구조들이다. 이 경우는 경과를 처음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3년, 서오스트레일리아의 약 34억 6천5백만 년 된 암석에서 탄소질 실 모양 구조가 보고되었다. 에이펙스 처트다. 연구자들은 이를 11개의 형태군으로 나누었고, 일부를 실 모양 남세균과 비슷한 원핵생물로 해석했다.

그래서 이 구조들은 오랫동안 당시 가장 오래된 미화석으로 불렸다. 9년 뒤, 《네이처》 같은 호에 정면으로 맞서는 논문 두 편이 실렸다.

한쪽은 시료에 레이저를 쏘고 분자 진동을 읽어, 그 구조가 분명히 숙성도가 높은 탄소질 물질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른 쪽은 지질학적 배경을 다시 살폈다. 시료는 교란되지 않은 원래의 퇴적층이 아니라, 나중에 열수가 흘러들어 만들어진 암맥에서 온 것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여러 ‘세포’의 가장자리 모양과 크기 분포가 신뢰할 만한 미화석의 기준에 맞지 않았다.

논쟁은 그 뒤로도 십여 년 더 이어졌다. 2018년, 앞의 연구진은 아주 작은 영역에서 동위원소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개별 구조 11개의 탄소 동위원소를 조사했다. 다섯 형태군은 각각 다른 값을 보였고, 그 차이가 형태 분류와도 맞아떨어졌다. 이를 근거로 서로 다른 대사 유형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래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유는 두 문장으로 쓸 수 있다.

레이저는 그것이 탄소임을 증명할 수 있지만, 그 탄소가 한때 세포였음을 증명할 수는 없다. 동위원소가 가벼운 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은 분별이 일어났음을 보여주지만, 뜨거운 물속의 화학 반응도 가벼운 탄소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병 층위는 하나의 연구 흐름만 주장하고 아직 독립적인 확인이 없거나, 이미 강한 반박을 받은 것들이다. 1절에 나온 이수아의 뿔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 다른 사례는 캐나다 퀘벡주 북부의 누부아기투크에서 나온 관 모양과 실 모양 구조들이다. 2017년 논문은 해저 열수에서 침전된 것으로 해석되는 철이 풍부한 암석 안에서 이 구조들을 보고했다. 현대의 철 산화 세균이 남긴 흔적과 닮았다고 제안했다.

연대의 위아래 한계는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 저자 자신이 쓴 것은 적어도 약 37억 7천만 년 전이며, 약 42억 8천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숫자 사이에는 5억 년이 놓여 있다.

반론은 이렇다. 더 오래된 쪽의 연대가 정말 암석의 형성 시기를 나타내는지부터 논쟁 중이다. 철과 규소가 있는 체계에서는 무기적인 광물 성장만으로도 미세한 관과 가지가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여러 지표가 같은 시료 묶음에서 나왔으므로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세 층위를 펼쳐놓고 나면 그보다 앞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판정 기준 자체는 무엇인가.

탄소 동위원소가 생명이 남긴 것인지 판단하려면 적어도 몇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어긋남의 크기가 알려진 생물학적 동위원소 분별과 양립하는가. 탄소가 원래의 퇴적 구조와 함께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후대의 맥에서 왔는가. 고온의 변질이 동위원소 기록을 다시 쓸 수 있는가. 그리고 같은 조건에서 비생물적 모형도 비슷한 값을 만들 수 있는가.

탄소 동위원소 값 하나만으로는 비생물적 기원을 배제할 수 없다. 실 모양 구조가 생명이 남긴 것인지를 판정하려면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크기에 일정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세포는 일정한 크기로 자라므로, 세포 무리의 지름은 어떤 범위에 모여 있어야 한다. 가장 가는 것부터 가장 굵은 것까지 끊김 없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규칙적인 칸막이와 가지도 있어야 한다. 실 하나가 여러 세포의 연결이라면 그 사이에 가로로 놓인 격벽이 보여야 한다. 탄소는 처음부터 있던 것이어야 한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스며든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구조도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한다. 물에 쓸려 다른 곳에서 온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다른 방향으로 잘라도 형태가 납득되어야 한다. 이 기준은 1절에서 이미 보았다. 이수아의 뿔들이 바로 여기서 걸렸다. 실험실의 순수한 화학 과정으로 똑같은 것을 쉽게 만들 수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 기준 전체를 통틀어, 비생물적 구조를 혼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항목은 하나도 없다.

규산염과 탄산염이 있는 체계에서 놀랄 만큼 그럴듯한 생물 닮은 형상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가지를 치고, 실처럼 뻗고, 영락없이 세포처럼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에이펙스 처트와 이수아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 한 문장이다. 형태가 닮았다고 기원이 같지는 않다.

판정 기준은 하나의 ‘구축된 틀’이다. 판단하고 비교하기 위해 사람이 세운 이런 틀을 이 시리즈에서는 ‘구축’이라고 부른다. 경계가 있고, 항목이 있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점검표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작동한다. 바로 그 기준 덕분에 37억 년 전의 뿔들이 갑 층위 바깥에 멈춰 섰다. 그러나 그것으로 막을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하다. 기각할 수는 있다. 확증할 수는 없다.

6. 일곱 갈래 길, 마지막 줄은 전부 빈칸

지금까지는 ‘생명을 어떻게 알아보는가’를 물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 묻자.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몇 갈래 경로를 살피기 전에 유명한 막다른 고리부터 하나 이야기해야 한다.

오늘날 세포에는 두 부류의 중요한 분자가 있다. 하나는 기록을 맡는다. 정보를 대대로 전달하는 DNA와 RNA다. 다른 하나는 일을 한다. 화학 반응을 촉매하여, 원래는 너무 느린 과정을 쓸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만든다. 단백질, 특히 효소가 그 일을 한다. 그리고 이 두 부류는 서로에게 의존한다.

DNA를 복제하려면 효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효소는 단백질이고, 그 아미노산 순서는 DNA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이 RNA를 통해 전달되어야 효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효소가 없으면 정확한 사본을 만들 수 없고, 정확한 사본이 없으면 효소를 만들 수 없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순환이다.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모든 방안은 먼저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지 밝혀야 한다.

이제 그 경로들을 보자. 하나의 이론을 달리 표현한 판본들이 아니다. 세부 사항에만 이견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첫걸음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답부터 서로를 밀어낸다. 복제하는 분자가 먼저였을까. 스스로 유지되는 반응망이 먼저였을까. 아니면 에너지 기울기가 먼저였을까. 하나를 택하면 나머지 경로는 다시 써야 한다.

첫 번째. 복제할 수 있는 분자가 먼저 있었다. 나중에 RNA 세계라고 불리게 된 경로다. 제안된 방식부터 남달랐다. 과거를 거꾸로 추론해서 나온 생각이었다.

1960년대 말, 몇몇 연구자가 각자 같은 종류의 이상한 흔적에 주목했다. 현대 세포의 유전 암호와 단백질 제조 기계 안에서 RNA가 맡은 역할은, 단순한 전달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컸다.

그들은 이를 근거로 초기에는 RNA가 중심을 이루고 단백질 제조 체계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단계가 있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가상의 단계가 나중에 RNA 세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순서가 중요하다. 이 제안이 나왔을 때는 반응을 촉매하는 RNA를 본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었다.

십여 년 뒤 두 실험실에서 각각 발견이 나왔다. 어떤 RNA는 자기 자신을 잘라 이어 붙일 수 있었다. 또 어떤 효소에서 실제로 촉매 작용을 하는 부분은 RNA였다. 두 연구자는 이 발견으로 1989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렇게 반응을 촉매하는 RNA를 리보자임이라고 한다.

거꾸로 추론한 추측을 실험이 받아주었다. 그러면서 그 고리의 절반이 끊어졌다. 같은 종류의 분자가 원리상 정보를 저장하면서 반응도 촉매할 수 있다. 그러면 단백질이 먼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해결되지 않은 것은 따로 있다. 충분히 길고 복제 가능한 첫 RNA는 어디서 왔는가.

2009년, 이 문제를 크게 앞으로 밀어낸 연구가 나왔다. 서로를 촉매하는 한 쌍의 리보자임을 만든 것이다. 갑은 짧은 두 가닥을 이어 을을 만들고, 을은 거꾸로 짧은 두 가닥을 이어 갑을 만든다. 원료를 계속 공급하면 이 체계는 지수적으로 증식해 약 30시간 만에 1억 배 수준으로 늘어난다. 서로 다른 변이체를 섞어놓으면 그 안에서 선택과 재조합도 일어난다.

실험실에서 ‘분자 수준의 다윈식 진화’에 비교적 일찍 다가간 사례였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개별 원료 분자에서 출발해 염기 하나하나를 붙이며 자신의 전체 서열을 복제한 것이 아니었다. 연구자가 미리 합성해둔 비교적 긴 조각들을 이어 붙인 것이었다.

다른 부류의 리보자임은 더 어려운 길을 간다. 다른 RNA를 염기 하나씩 베껴 쓰는 길이다. 이 부류의 능력은 점점 강해졌다. 2011년의 한 리보자임은 약 95개 염기 길이의 기능성 RNA를 복제했다. 2020년의 한 리보자임은 자기의 진화적 조상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복제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모두 길이가 거의 200개 염기에 이르렀다. 다른 가닥은 복제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자신보다 긴 가닥도 복제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끝내 복제하지 못했다.

2026년에야 첫 틈이 열렸다. 케임브리지의 한 실험실에서 염기가 45개뿐인 리보자임을 찾아냈다. 그것은 얼음 속에서 자기 사본 하나를 조립했고, 자신과 짝을 이루는 가닥도 조립했다. 72일이 걸렸고 생성물은 약 0.2퍼센트에 불과했다. 두 단계 역시 아직 하나의 완전한 복제 고리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원료가 어디서 오는가도 별개의 난제다. 전통적인 생각은 당과 염기를 따로 합성한 다음 둘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연결 단계가 실험에서는 무척 어려웠다. 어떤 연구자들은 그 단계를 우회했다. 더 단순한 전구물질에서 출발해 공통 중간체를 거쳐 곧바로 쓸 수 있는 원료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같은 출발 물질들에서 핵산, 아미노산, 지질의 전구체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망 전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어려움은 지질학에 있다. 실험실에서는 연구자가 단계마다 병을 바꾼다. 먼저 이 반응을 하고, 농축한 뒤, 다음 단계로 간다. 자연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웅덩이와 물의 흐름, 건조와 습윤의 교대가 있어 연구자 대신 병을 바꾸어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 경로가 증명한 것은 화학적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명왕누대의 어느 장소에서 그 길을 실제로 끝까지 통과했다는 것은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두 번째. 스스로 돌아가는 반응망이 먼저 있었다. 이 경로는 첫 문장부터 앞의 경로와 충돌한다. 처음 나타난 것은 복제하는 분자 한 가닥이 아니라, 서로를 촉매하며 스스로 계속 돌아가는 화학 반응들의 무리였다는 주장이다. 정보는 나중에 들어왔다.

구체적인 구상은 이렇다. 황화철, 황화니켈, 황철석 같은 광물의 표면에서 이산화탄소의 환원과 황화물의 산화로 에너지를 얻는다. 먼저 그 표면에 고정되어 스스로를 유지하는 반응망이 생긴다. 유전 분자는 나중에 들어온 세입자다.

실험 쪽에서도 상당히 진전했다. 황화철과 황화니켈이 있는 조건에서 일산화탄소로부터 활성화된 아세트산과 싸이오에스터 계열의 생성물을 만든 연구가 있다. 2018년 이후의 일련의 연구는 금속 철과 니켈·철 광물의 촉매 작용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로부터 아세트산, 피루브산, 시트라말산을 만들었다. 모두 오늘날 세포의 중심 대사에 등장하는 물질이다.

이 실험들이 함께 증명한 것은 상당히 무게 있는 사실이다. 현대의 효소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여러 중심 대사 전환도, 알맞은 광물과 환원 조건에서는 단백질 효소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증명하지 못한 것은 따로 있다. 효소 없이 닫힌 순환을 이루고, 스스로 유지되며, 촉매를 자동으로 재생하는 대사 체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경로가 줄곧 답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대사망의 상태를 어떻게 다음 세대로 복제해 넘길 것인가.

세 번째. 이미 있는 에너지의 낙차를 먼저 빌린다. 얼핏 ‘생명이 뜨거운 물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훨씬 구체적이고 꽤 영리하다. 앞의 두 경로는 에너지를 어디서 구할지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경로는 말한다.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해저에는 원래 있다.

해저의 어떤 암석이 물과 반응하면 수소가 풍부한 알칼리성 열수가 나온다. 이 열수와 그보다 산성인 초기 바닷물 사이에는 구멍이 많은 광물 벽이 놓인다. 그러면 벽 양쪽에 화학적인 높낮이 차이가 저절로 생긴다. 광물의 구멍 벽은 동시에 구획을 나누는 칸막이이자 촉매 표면으로 쓰인다.

최초의 에너지 이용은 이미 있는 이 차이를 빌리는 데서 시작했고, 자체적인 펌프는 나중에 진화했다는 것이다. 2000년 대서양 중앙해령 근처에서 발견된 열수 지대는 현대의 비교 대상을 제공했다. 유체는 알칼리성이고 수소와 메탄이 풍부하며, 굴뚝은 주로 탄산염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스트시티다.

이것은 익숙한 ‘검은 연기 굴뚝’과는 다르다. 검은 연기 굴뚝은 마그마의 힘으로 작동하며, 분출하는 유체는 대개 섭씨 350도 안팎이고 산성을 띤다. 그런 온도에서는 RNA가 금세 끊어진다. 이 경로가 필요로 하는 높낮이 차이는 바로 알칼리성 유체와 상대적으로 산성인 바닷물 사이의 경계에서 나온다.

가장 강한 반론은 희석과 인이다. 해저는 열린 환경이어서 만들어진 작은 분자들이 거대한 바닷물 속으로 쉽게 흩어진다. 또 칼슘이 풍부한 알칼리성 환경에서는 인산염이 잘 침전된다. 그런데 핵산도, 결국에는 막의 화학도, 인에 크게 의존한다.

넘기 특히 어려운 문턱이 하나 더 있다. 이미 마련된 자연의 높낮이 차이를 떠나, 자기 막으로 유지하는 높낮이 차이로 어떻게 옮겨갈 것인가.

네 번째. 마르고 젖기를 반복하는 웅덩이가 먼저 있었다. 이 경로는 무대를 바꾼다. 깊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의 얕은 화산 온천, 그 웅덩이 가장자리다. 이용하는 것도 어떤 특정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이다.

웅덩이에 주기적으로 물이 들어오고, 증발하고, 다시 물이 들어온다. 마르는 단계에서는 묽은 용액이 농축되어 분자들이 사슬로 이어지도록 밀어준다. 다시 젖으면 기름 성질의 분자들이 저절로 작은 주머니를 이루고, 막 만들어진 긴 사슬들을 무작위로 감싼다. 심해 경로와 가장 직접적으로 갈리는 것은 뜨겁냐 아니냐가 아니라 물이 얼마나 있느냐다.

소금이 핵심 쟁점이다. 단순한 지방산 소포는 마그네슘과 칼슘의 농도가 높고 염분이 많으면 쉽게 흩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 마그네슘이 많은 RNA 촉매 반응에 필요하다. 그래서 이 경로는 바닷물보다 염분이 적은 담수 온천이 원시적인 막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구체적이다. 명왕누대에 드러난 육지의 면적은 얼마나 되었는가. 적합한 화산 웅덩이가 오랫동안 충분한 횟수의 건습 주기를 겪을 수 있었는가. 강한 자외선과 완전한 건조 역시 이미 생긴 긴 사슬을 파괴한다는 문제도 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보조 경로가 있다. 각기 어느 한곳에는 강하지만 다른 곳에는 빈칸이 있다. 기름 성질의 분자들이 모인 집합 자체가 ‘조성에 의한 유전’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획과 성장이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장점이 있지만,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은 서열을 가진 분자보다 훨씬 적다.

펩타이드가 먼저였다는 주장도 있다. 아미노산 화학이 풍부하고 금속과 결합한 촉매 작용이 다양하다는 강점이 있다. 문제는 염기쌍처럼 주형을 따라 복제할 수 있는 규칙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점토 광물을 주형으로 삼는 경로도 있다. 광물이 긴 사슬의 형성을 촉진한다는 것은 증명했다. 결정 격자가 충분한 정보 용량을 가진 유전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증명하지 못했다.

범종설은 따로 한마디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이것이 답인 것처럼 오해되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는 부분은 사실이다. 유기물은 우주에서 올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운석에는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고, 왼손형 분자가 조금 더 많다는 사실도 측정되었다. 머치슨 운석이 그 예다.

그러나 논리적인 한계는 줄곧 분명했다. 생명이 다른 곳에서 왔다면, 질문은 처음 그곳에서 어떻게 생겼는가로 바뀐다. 장소는 바꾸지만 전환은 설명하지 못한다.

이 경로들을 나란히 놓으면 가지런한 무늬가 보인다. 각 경로는 어떤 한 문턱에서 가장 강하다. 그리고 그 문턱은 대개 다른 경로에 난 구멍이다.

구획을 만드는 일에서는 알칼리성 분출공에 광물의 미세 구멍이 있고, 온천 경로에는 다시 젖을 때 저절로 생기는 소포가 있다. 에너지원에서는 대사 우선 경로와 알칼리성 분출공이 가장 강하다. 유전 정보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RNA 세계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앞의 두 경로의 핵심 약점이다. 생체 분자들이 왜 모두 같은 손잡이성을 띠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경로도 완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이 표의 위쪽 절반만 보면 경로들을 모두 합쳐서 문제를 거의 덮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마지막 줄에 있다. 그 줄의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잇는 실험’이다. 지질학적으로 타당한 단순 원료에서 출발해 자율적인 복제, 구획, 에너지 결합, 유전을 수반하는 완전한 분열, 그리고 끝이 열려 있는 지속적인 진화까지 한 번에 이어 보여주는 것이다.

RNA 세계, 없음. 대사 우선, 없음. 알칼리성 분출공, 없음. 육상 온천, 없음. 지질 세계, 없음. 펩타이드 우선, 없음. 점토 주형, 없음. 단 하나도 없다. 가장 길게 이어진 사슬들도 저마다 다른 곳에서 멈춘다. 더구나 멈춘 자리끼리 이어지지 않는다.

7. 유전자를 473개까지 깎아낸 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면 방향을 바꿔보자. 하나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간 것은 크레이그 벤터의 연구팀이다. 첫걸음은 화학 시약에서 출발해 세균의 염색체 하나를 통째로 조립하는 일이었다.

복제가 아니라 합성이었다. 짧게 인공 합성한 DNA 조각들을 블록 쌓듯 차례로 이어 붙여, 마침내 마이코플라스마 한 종류의 전체 유전체를 얻는다. 약 58만 3천 염기쌍이다. 2008년, 그들은 해냈다. 그다음은? 그다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DNA는 시험관 속에 누워 있었다. 정확하고 완전하며, 염기 하나씩 대조해도 틀린 곳이 없는 염색체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대사하지 않았다. 분열하지 않았다. 그것은 설명서 한 부였다. 설명서는 혼자 집을 짓지 않는다.

2년 뒤 그들은 방식을 바꿨다. 유전체를 합성한 다음 이미 살아 있는 세포에 이식했다. 인공 유전체를 넣고 세포를 몇 차례 분열시킨 뒤 선별을 거치자, 받는 세포에 원래 있던 염색체는 사라지고 인공 염색체만 남았다. 이번에는 성공했다. 합성 유전체가 그 세포를 넘겨받았고, 자손은 유전체를 제공한 종의 단백질과 외형을 나타냈다.

이 일은 ‘인공 생명’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유는 아주 구체적이다. 합성한 것은 유전체뿐이었다. 그것을 가동한 나머지 전부, 막, 단백질 제조 기계, 수송 단백질, 대사 효소, 이온 기울기, 세포질 속 온갖 살림살이는 모두 이식을 받은 세포에서 왔다.

그리고 그 세포는 살아 있었다. 그 조상은 실험대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살아왔다. 인공 유전체가 넘겨받은 것은 이미 달리고 있던 차였다. 받는 세포가 없으면 그 DNA가 저절로 세포가 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쌓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면 반대로 해보자. 이미 있는 세포 하나를 가져와 유전자를 하나씩 지운다. 어디까지 줄여도 살아남는지 보는 것이다.

그들은 이 길도 갔다. 2016년 최소 세포가 나왔다. 약 53만 염기쌍, 유전자 473개. 영양분이 풍부한 조건에서는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분열할 수 있었다.

비교를 위해 앞서 본 멸구 몸속의 세균을 떠올려보자. 기능을 알아볼 수 있는 단백질 유전자가 68개뿐이다. 최소 세포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는 400개가 넘는다. 다만 전자는 숙주가 먹여 살린다. 473개는 당시 알려진 자율 증식 세포의 최소 유전자 수였다. 다만 그 자율성은 영양분이 풍부한 실험실 배지에 기대고 있었다. 모든 생명에 통하는 최저 수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가장 직관에 어긋나는 한 문장이 나온다.

473개 유전자 가운데 당시 약 30퍼센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기전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식의 점잖은 표현이 아니다. 그 배양 조건과 실험 설계 아래에서 대폭 덜어내고도, 남은 것의 3분의 1은 기능을 몰랐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당시의 실험 설계로 가능한 데까지 세포를 단순화했다. 그런데 남은 그 작은 한 줌을 바라보면서도 100개가 넘는 유전자의 용도를 말하지 못했다. 10년이 흐른 2026년에도 여전히 50~60개는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는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함의가 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이해한다’가 아니다. 당시 알려진 필수 기능을 전부 알고 있어도 이 최소 유전체를 설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워서 얻었다. 계산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후속 파생 균주에서는 비정상적인 크기와 분열 형태를 개선하려고 소수의 유전자를 다시 넣어야 했다. 번식할 수 있는 최소 유전자 수와 정상적으로 분열할 수 있는 최소 유전자 수는 애초에 같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연구팀은 반대쪽에서 시작했다. 세포에서 아래로 덜어내지 않고, 가장 단순한 화학에서 위로 쌓아 올렸다. 만들어낸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기름 성질의 분자들은 알맞은 물속에서 저절로 작은 주머니를 이루며 큰 분자들을 안에 가둔다. 같은 분자를 더 넣으면 주머니가 그것을 흡수해 커진다. 긴 실처럼 늘어난 주머니를 가볍게 저어주면 수많은 자식 주머니로 나뉜다. 안의 내용물은 새어 나오지 않는다.

주머니의 막에는 선택성도 있다. 작은 원료 분자는 통과하지만, 더 큰 핵산 주형은 안에 남는다. 바깥 원료는 들어오고 안의 주형은 달아나지 않는 것이다. 2013년, 연구팀은 이런 모형 원시세포 안에서 효소 없이 주형을 따라 RNA가 합성되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경쟁까지 만들어냈다. 주머니 안의 긴 사슬이 늘어 내부 압력이 높아지면, 그 주머니는 주변에서 막 재료를 더 많이 빼앗아온다. 이웃의 막을 가로채는 것이다.

자라고, 나뉘고, 안에서는 복제가 일어나며, 동류와 자원을 두고 다투기까지 하는 작은 주머니. 한 걸음만 남은 것처럼 들린다. 그 한 걸음은 이 모든 것을 이어 하나의 고리로 만드는 일이다.

유전체 한 벌이 주머니 안에서 완전히 복제되고, 두 가닥이 분리되고, 동시에 막이 자란다. 주머니는 확실하게 둘로 나뉘며, 두 자식 주머니는 각자 작동하는 유전 체계를 한 벌씩 받는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이 모든 과정을 다시 해낸다. 더구나 체계 전체가 외부의 단순 원료에서 복제에 필요한 촉매를 스스로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고리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빠진 것은 막연히 ‘아직 멀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하나 짚을 수 있는 것들이다. 먼저 원료의 자립이다. 현재 가장 강력한 복제 체계에서도 원료와 막 재료는 실험자가 직접 넣어준다. 연결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먹여준다.

가닥의 분리도 있다. 주형을 복제하면 상보적인 가닥이 생기고, 두 가닥은 서로 붙어 있다. 현대 세포는 전용 단백질을 써서 떼어낸다. 효소가 없을 때 RNA를 끊지 않고 온화한 조건에서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이것만으로도 별개의 문턱이다. 오류의 한계도 있다. 서열이 길어지면 복제 오류가 쌓인다. 어느 수준을 넘으면 기능 정보가 모두 사라진다.

촉매의 재생도 필요하다. 진정으로 스스로를 유지하는 체계는 복제에 필요한 촉매 자체를 복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세대마다 실험자가 한 번씩 보충해주어서는 안 된다.

이제 가장 강력한 체계 몇 가지를 그 작업용 정의 옆에 놓고 대조해보자. 서로를 촉매하는 리보자임에는 지수적인 복제가 있다. 유전적 변이가 있다. 선택도 있다.

대사는 없다. 막도 없다. 원료는 실험자가 정확하게 미리 만들어둔다. 지방산 소포에는 구획이 있고, 흡수가 있고, 부분적인 주형 복제가 있다. 완결된 복제와 분열의 순환은 없다.

번역 체계를 갖춘 RNA 복제 체계는 세포 같은 구획 안에서 다윈식 진화를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미리 만들어진 단백질 제조 기계를 대량으로 쓴다. 그 성숙한 생물학적 부품들이야말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가 설명해야 할 것들이었다. 각각 정의의 한 부분은 차지한다. 어느 하나도 전부를 동시에 채우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비생명 원료에서 시작한 어떤 실험 체계도 화학적으로 스스로를 유지하는 일, 완전한 자율 번식, 지속 가능한 다윈식 진화를 동시에 해내지 못했다.

8. 표본은 하나, 도구도 그 하나에 맞춰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생명이 시작되는 일은 대체 얼마나 쉽게 일어날까. 널리 퍼진 직관이 있다. 지구가 살 만한 곳이 되자 생명이 금방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기원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아닐까. 이 추론에는 구체적인 허점이 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무작위의 행성들 가운데 아무렇게나 뽑은 하나가 아니다. 이 질문을 던질 관찰자를 이미 만들어낸 행성이다. 표본을 뽑는 조건 자체에 ‘이곳에서는 충분히 일찍 생명이 생겨야 한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그 위에 서서 질문할 수 있는 행성이라면 어디든 생명이 빨리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생명의 기원을 발생률이 일정한 무작위 과정으로 근사해 통계 분석을 한 연구가 있다. 결론은 이렇다. ‘관찰자가 나오려면 생명이 먼저 수십억 년 동안 존재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으면, 실제 기원 발생률이 매우 낮아도 ‘우리는 기원이 일찍 일어난 성공 사례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관찰과 여전히 양립할 수 있다.

그래도 수치를 내놓은 사람들은 있다. 가장 낙관적인 추정은 지구형 행성에서 10억 년 안에 생명이 시작될 확률이 적어도 10퍼센트를 조금 넘는다고 했다. 그러나 지구를 아무렇게나 뽑은 표본으로 다루었으니, 바로 앞서 말한 오류를 범한 셈이다. 다른 추정은 더 조심스러운 방법을 썼고 결론도 훨씬 약했다. 자료는 ‘기원이 빠르다’는 쪽을 적어도 약 3 대 1로 지지했다. 어느 정도의 증거는 되지만 확정적인 결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지금도 ‘생명 기원의 확률’이라고 부를 만한, 제대로 버티는 숫자는 없다. 그리고 ‘표본이 하나’라는 말 자체에도 두 번째 뜻이 있다.

알려진 모든 세포 생명은 같은 핵심 장치를 공유한다. 단백질을 만드는 기계, 거의 통일된 유전 암호, 같은 핵심 아미노산 묶음, 단백질 속에서 같은 쪽으로 통일된 손잡이성, 그리고 같은 에너지 화폐다. 지구에 현존하는 수백만 종을 수백만 번의 독립적인 기원 사건으로 셀 수 없다는 뜻이다.

기원을 묻는다면 이들은 아마 한 번의 기원이 남긴 표본 하나일 뿐이다. 하나.

2005년, 2절에서 물을 비유로 들었던 클리랜드가 한 미생물학자와 함께 생각 하나를 제안했다. 2009년에는 다른 몇몇 연구자와 논문을 함께 써서 그 생각을 더 완전하게 풀어냈다.

초기 지구의 같은 조건에서 생명이 한 번 시작될 수 있었다면 여러 번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기원의 후손들이 다른 생화학을 쓴다면, 지금도 우리가 아는 생명과 함께 살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DNA와 리보솜을 표적으로 삼는 미생물학의 방법들이 통째로 놓치고 있을 수 있다. 그림자 생물권이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지금껏 체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검증하려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검출 도구 자체가 이미 알려진 그 한 종류의 생명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DNA를 증폭하는 방법에는 해당 효소가 알아볼 수 있는 핵산이 있어야 한다. 범용 프라이머는 대상 생물에 리보솜이 있다고 전제한다. 배양 배지 자체도 선택기다. ‘배양 불가능한 미생물’이라는 말부터가 기존 배양 조건이 생태적 공간의 아주 작은 부분만 덮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에서 유전 물질을 직접 뽑아 서열을 읽는 방법도, 그것이 추출하고 서열을 읽을 수 있는 표준 핵산이라고 여전히 전제한다.

모든 도구는 손을 대기 전에 자기가 찾을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가정한다. 그러니 정말 두 번째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낯선 서열 한 줄로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화면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을 것이다. 찾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똑같아 보인다.

거꾸로 이상한 것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2010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2009년 그 논문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짠 호수에서 세균 하나를 배양했다. 그리고 그 세균은 인 대신 비소를 써서 자기 DNA에 비소를 넣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이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2년 뒤 두 실험실이 각각 다시 실험했지만, 어느 쪽도 그 DNA에 비소가 들어 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2025년 원 논문을 실었던 학술지는 논문을 철회했다.

그런데 그 세균이 정말 비소를 썼더라도 여전히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알려진 생명의 극단적인 적응 사례일 뿐이며, 우리와 공통 조상을 가졌을 가능성이 남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원을 증명하려면 공통 조상을 배제해야 한다. 알려진 생명과 유전자를 교환했을 가능성도 배제해야 한다. 이상한 것 하나를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지구 밖에서 생명 발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때는 2025년 9월이었다. 화성 탐사차가 그 전해에 바위 하나에서 작은 반점들을 촬영했다. 하나에 약 1밀리미터, 가장자리는 어둡고 가운데는 밝았다. 표범 무늬 같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가장 뚜렷한 잠재적 생명 흔적으로 불렸다. ‘잠재적’이라는 말은 뺄 수 없다. 이런 반점은 생명 없이도 생길 수 있다. 다만 보통 그러려면 섭씨 100~200도 정도의 높은 온도가 필요한데, 연구자들은 그 바위에서 가열된 흔적을 찾지 못했다. 5절의 실 모양 구조들과 같은 처지다. 비생물적 설명을 말끔히 배제하지 못했고, 생명에 의한 설명도 아직 확증하지 못한다.

2026년 8월 현재, 화성에도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도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에도 확인된 생명 표본은 하나도 없다. 유로파에는 얼음 아래에 짠 바다가 있다는 강한 증거가 있다.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는 2024년 10월 14일 발사되었고, 2030년 목성계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탐사선이 답하려는 질문은 그곳이 생명에 적합한가이지, 생명이 있는가가 아니다.

이런 탐사의 진정한 가치는 살 만한 곳을 하나 더 찾는 데 있지 않다. 지구 생명과 독립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두 번째 표본을 손에 넣어야만, 통계 문제와 정의 문제가 동시에 질적으로 달라진다. 물이나 유기물이나 에너지원을 찾는다고 표본 수 하나가 둘이 되지는 않는다.

1절의 뿔들로 돌아가자. 논쟁의 양쪽은 같은 판정 기준을 쓴다. 그 기준은 구축된 틀이며, 실제로 작동한다. 항목이 있고, 적용할 수 있고, 몇몇 것들을 실제로 막아냈다.

그 기준은 분명히 움직이고도 있다. 같은 뿔들이 2016년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로 기록되었고, 2018년에는 다른 방향으로 잘렸으며, 2019년에는 다시 옹호되었다. 이 구축된 틀이 닫히지 않은 것은 참여한 사람들이 충분히 꼼꼼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둘러싸려는 대상 자체에 한 줄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가 123개나 나온 뒤에도 바이러스는 거기에 있다. 바이로이드도, 프리온도 거기에 있다. 미미바이러스는 위로 자라고, 멸구 몸속의 유전자 68개짜리 세균은 아래로 줄어든다. 선 위는 줄곧 가득 차 있다.

판정 기준은 여전히 거른다. 암석은 여전히 다시 잘린다. 실험실의 사슬은 한 토막씩 이어진다. 계보는 아직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뉘고 있다.

관련 연구와 사실 확인 자료